<-- 24화. 격리 -->
-철커덩.
끝내 간수장을 쓰러트렸을 무렵 입구를 막고 있던 철망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까지의 치열했던 전투의 피로를 담은 한숨이 입 밖으로 내뱉어졌을 무렵, 강수를 포함한 세 사람의 시선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시체로 향해졌다.
몸과 일체화된 쇠사슬들이 뽑혀져나가고, 피가 엉겨 붙은 살은 연이은 전격에 의해 완전히 타들어간 상태다. 보기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크, 하악....이, 이것이 죽음인가....정말로 고독하고 아픈........:”
“닥치고 전리품 내놔 새꺄.”
요한의 오른쪽 발이 간수장의 안면을 짓밟았다. 발의 힘을 버티지 못한 그의 머리가 먼지가 되어 으스러지고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먼 옛날 수 많은 이들을 상대로 잔인한 고문을 자행한 괴물은 그렇게 최후를 맞이했다. 그가 있던 곳에 남은 흔적은 기껏 해봐야 전리품 상자 뿐.
아무리 쉽게 상대했다고는 하나 네임드 몬스터, 당연히 네임드 몬스터들에게 주어지는 ‘붉은 상자’에는 좋은 물건이 들어있을 확률이 높았다.
강수는 곧장 상자를 열어 안에 들어있는 두 개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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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움직이는 쇠사슬
분류: 보조장비
등급: 네임드
부가설명
왕의 실험으로 인해 자신이 사용하는 고문도구와 일체화된 간수장의 몸에 얽메여져 있던 쇠사슬. 소유자의 몸에 휘감아 의지에 따라 조종하는 것이 가능하다.
내구도: 65/65
연관치
육체-7 재주-9 순발-3 정신-1
부가옵션
-재주의 적성수치가 2단계 증가한다
-몸에 휘감은 상태에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조절하는 것이 가능하다. 제어력은 재주의 수치에 따라 달라진다.
-사슬의 끝에 최대 중간 사이즈의 장비를 매달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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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한 자의 각반
분류: 다리 보호구
등급: 네임드
부가설명
왕의 실험으로 인해 자신이 사용하는 고문도구와 일체화된 간수장이 착용하고 다니던 다리 보호구이다.
내구도: 42/42
연관치
육체-5 재주-8 순발-4 정신-1
부가옵션
-높은 레벨의 속박, 둔화, 억제 등의 상태이상을 차단한다.
-10초에 한 번 대상 지점을 빠르게 벗어나는 ‘긴급회피’를 사용할 수 있다.
-다리를 이용한 기술을 사용할 시 일시적으로 재주가 1단계 상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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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임드급인 아이템은 어지간한 고등급의 아이템의 효과를 씹어먹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효과를 지니고 있었지만, 자신의 손에 쥐어진 장비들은 마냥 강력하다 평가하기엔 애매한 감이 적잖아 존재했기 때문이다.
삽이나 쇠뇌처럼 제대로 된 무기도 아닌 ‘보조장비’. 각반 역시 다리 부분만을 보호시켜주는 데에 그칠 뿐이었다.
나름 네임드를 잡아 죽인 것인데 주력으로 쓸 수 있는 장비가 아닌, 보조에 그치는 장비만을 얻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이건 네가 쓰는 게 낫겠다.”
머지않아 고민을 끝마친 강수가 자신에게 다가온 요한에게 각반과 쇠사슬을 던져주었다.
나름대로 진지하게 고민하여 낸 결과였다.
요한의 경우에는 능력 자체는 강력하지만 신체적인 열악함이 단점으로 작용된다. 능력으로 방어는 할 수 있어도, 회피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선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리기술에 한해 재주가 올라간다거나, 둔화나 속박 등의 상태이상의 효력이 줄어든다는 건 고정된 자리에서 공격을 가하는 요한에겐 쓸모없는 옵션이지만, 짧은 시간 마다 사용할 수 있는 ‘긴급회피’는 회피 자체가 어려운 요한에게 있어선 그 무엇보다도 필요한 옵션. 그것 하나만으로 그에게 이 각반을 건네줄 가치는 충분하다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쇠사슬은 범용성이 매우 높은 보조장비이다. 적을 포박하거나, 뭣하면 둔기처럼 때릴 수도 있고, 몸에 휘감아 적의 공격을 차단하는 방어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당연한 것이지만 범용성이 높은 장비는 육체나 순발보다는 재주를 더 높이 요구하는 법.
육체와 행운을 제외한 모든 적성수치가 기본적으로 ‘매우 높음’인 자신이라면 잘 다룰 수 있겠지만, 요한도 재주수치가 높음에 머물러있는 데다, 능력의 특성상 육체능력만 뛰어날 뿐인 자신보단 요한이 다루는 게 훨씬 낫다.
금속인 만큼 전류를 흘려보내거나 자력을 이용해 보다 세심한 컨트롤을 유도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을 테니까.
“...사실 그런 것보다 별 다른 무기도 없이 돌아다니는 게 안쓰러워서 건네주는 거지만.”
“난 무기를 못 쓰는 게 아니라 안 쓰는 거거든?”
분해서가 아닌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충분한 힘에는 기술이 필요 없는 법,요한의 전격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니 무기를 다룰 필요가 없다. 아니, 오히려 무기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낭비일 정도다.
하지만 그의 능력은 강력하면서도, 자력을 포함한 특성들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선 크나큰 변수를 창출할 수 있기도 하다. 그에게 건네준 쇠사슬은 분명 그 변수를 창출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다.
“일단 주면 감사히 받겠다만.”
자신의 팔 부근에 쇠사슬을 붕대마냥 휘감는 요한이 슬며시 소연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소연은 강수와 요한의 대화를 멀뚱히 듣고 있던 중 요한의 시선을 감지하고 몸을 크게 떨었다.
“그러고 보니 그 쪽은 별 다른 네임드 장비도 없었지?”
“네, 그건.......”
요한의 말에 소연이 살짝 시선을 회피했다.
근 1주일(추정)의 시간 동안 던전을 돌아다니며 많은 장비를 얻었지만, 소연이 고정적으로 사용하는 장비는 초기때 얻었던 쇠뇌와 부메랑 정도가 고작이었다.
투척류 공격에만 능력을 적용시킬 수 있는 만큼 사용할 수 있는 장비가 한정될 수밖에 없었던 만큼 당연한 결과였다.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쇠뇌가 망가지기 전에 수리도구(장비의 내구도를 회복시켜주는 소모성 아이템)과 화살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해줬다는 것 정도.
하지만 장비에 변화가 없는 만큼 그녀의 성장이 돋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나랑 이 녀석만 네임드 아이템 쓰는 건 좀 그러니까 일단 이거라도 받아둬.”
곧 요한이 자신의 인벤토리를 활성화시켜 내부에 들어있는 아이템 중 하나를 꺼내고 소연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은 요한이 불태워죽였던 살덩어리를 잡은 후 나온 전리품 상자에서 드랍한 아이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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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알
인공 생물체가 가두어진 알이다. 시간이 지나면 부화한다. 강한 충격을 받을 경우 내부의 생물체가 죽거나 돌연변이가 태어날 가능성이 높아짐으로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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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부분은 단단한 껍질에 둘러싸여 있다. 직접 압력을 주어 깨트리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굳이 그러지 않은 이유는 설명대로 부화할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강수의 설명을 들어본 바, 알의 형태를 지니고 있는 아이템은 조합의 재료용으로 쓰이거나, 혹은 태어날 때까지 기다려 ‘펫’으로 다룰 수 있다고 한다.
하물며 네임드에게서 나온 알인 만큼 급이 상당히 높은 펫이 나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떤 식으로 기르느냐에 따라선 장비아이템 몇 개보다도 훨씬 가치가 클 수 있다고 할 정도면 귀한 아이템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었다.
지금 요한은 그런 아이템을 자신에게 건네주겠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괘, 괜찮아요. 신경 써주시지 않으셔도...무기라면 이걸로도 충분하고, 화살도 아직 인벤토리에 많이 남아있는데.........”
“같이 다니는 입장에서 한 명만 보잘 거 없는 걸 들고 다니면 이 쪽이 죄지은 기분이 들거든.”
“하지만........”
“받아둬. 적어도 출구까지 가기 전까진 동반자잖아. 나중에 필요 없어지면 다시 돌려주고.”
“...네. 그럼.”
마지못해 요한의 제안을 받아들여 자신의 인벤토리에 알을 집어넣는 소연. 내부에는 고스란히 검은 색의 표면을 지닌 타원형의 알이 배치되었다.
정작 알을 받아들인 소연의 얼굴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출구에 도착하고 나면 자신이 내린 선택의 결론을 따라야만 하니까.
“........”
말없이 강수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옮겨 보았다. 이미 그는 소연에게서 완전히 관심을 거둔 채 자리에서 등을 돌리고 있었다.
‘정말로, 도착한다면 나는.......’
끝내 강수의 뒷모습에서부터 시선을 거두었을 때일까?
“어...?”
문득 통로 쪽으로 향한 그녀의 시선에 희미한 그림자가 기웃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몬스터? 아니, 몬스터라기엔 너무나도 작다. 거기다 걸음걸이도 상당히 안정적이다.
끝내 통로를 통해 안으로 들어선 존재를 직시한 소연의 두 눈이 크게 벌어졌다.
“어린아이...?”
“뭐?”
“저기 여자애가 있어요.”
소연의 말에 강수 또한 소연이 바라보는 곳으로 고개를 움직였다.
그곳에는 소연이 말했던 대로 힘겨이 걸음을 옮기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복장도 이제껏 마주했던 몬스터들과는 달리 깨끗하고 현대적이다. 피가 상당히 묻어나있긴 했지만, 소녀의 가녀린 겉모습은 적개심보다 동정심을 더욱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이전에 어린 여자아이의 끔찍한 시체를 본 적이 있는 만큼 더더욱.
“괜찮니 꼬마야?”
그 소녀를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강수를 뒤로한 채, 소연이 다급히 소녀가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 소녀는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소연의 존재를 감지하고 깜짝 놀란 듯 뒷걸음질을 쳤지만, 끝내 그녀의 얼굴에 그려진 걱정을 눈치 채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 으...언니......언니........”
끝내 울상을 짓는 소녀가 소연의 품에 얼굴을 파묻기 시작했다. 서럽게 울부짖는 소녀의 몸을 양 팔로 포갠 소연의 두 눈에 측은함이 서리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고생 많았지? 괜찮아...이제 걱정하지 마.”
“흐아아앙, 아아아앙.....”
곧 소연의 품에서 울음을 터트리는 소녀가 소연의 옷자락을 질끈 움켜쥐기 시작했고.
“.....아아앙. 아아하하...하하하하핫~”
머지않아 그 울음소리가 웃음소리고 변질되어가는 것을 자각한 소연의 두 눈이 크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역시 이런 모습이 잘 먹힌다니까.”
-지지직.
소녀의 입에서 내뱉어진 나지막한 중얼거림과 함께 피부가 저릿해져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몸을 짓누르는 중력이 강해지듯 몸이 무거워져가는 것을 느끼는 것도 잠시. 소연은 머지않아 자신의 발치를 가득 메우는 붉은 빛을 직시하고 표정을 굳히기 시작했다.
‘사람이 아니야. 이건........’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직시했지만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소녀의 작은 손이 옷자락을 쥐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의 눈을 마주하고 있는 흉흉한 붉은 눈동자가 그녀의 몸을 억제하고 있었으니까.
“자, 같이 가자, 언니~”
입가에 진한 웃음이 그려지며 끝내 바닥에 생겨난 붉은 늪에 몸이 가라앉아가는 것을 느낀 직후, 소연은 자신의 뒷덜미를 잡아채는 감각을 눈치 채며 황급히 뒤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그룹지정 미리 해놓은 거 기억하지?”
소연의 몸을 뒤쪽으로 던져버린 강수가 그 반작용으로 소녀의 품에 뛰어들었다. 곧 그의 다리가 소연의 몸을 집어 삼키려던 붉은 늪에 가라앉기 시작했다.
“살아남으면 연락할게.”
소연을 돌아보는 강수가 태연히 미소를 지었고, 그를 마지막으로 소녀와 함께 붉은 늪으로 가라앉은 그의 존재가 방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대신, 끌려간 거예요.”
다리의 장애로 인해 그가 사라진 곳에 뒤늦게 다가선 요한이 당혹성을 표하자, 바닥에 쓰러져 있는 소연이 힘겨이 대답했다.
그 소녀는 인간이 아닌, 던전 내에 존재하는 몬스터. 겉모습이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었기에 자신도 모르게 방심을 하고 말았다.
그 결과 자신을 대신해 소녀의 마수에 끌려간 강수는........
“저 때문에...제가........”
“뭐만 하면 네 책임으로 몰지 마라 좀. 저 얼간이가 지 멋대로 위험을 자초한 게 문제지. 그걸 왜 네가 떠안으려고 해?”
“하지만........”
“살아남으면 연락한다...그 자식 분명 그렇게 말했어.”
요한이 곧장 자신의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확인하는 것은 그룹창. 그곳에는 자신을 포함해 소연과 강수의 이름이 버젓이 표기되어 있었다.
태산일행에게 연락을 받고 난 후, 혹시나 모를 일에 대비하여 서로가 그룹을 짜맞춘 상태였다. 이런 식으로 일이 갑작스럽게 벌어질 지는 모르겠지만........
“이름 안 사라졌어. 아직 안 뒤졌다는 뜻이야.”
그룹에 강수의 이름이 남아있다는 것을 확인한 요한이 그룹창을 거두고 지도 기능을 활성화시켰다.
그룹원의 위치와 행동궤적을 기록하는 지도, 그곳에는 자신들이 있는 곳과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 전송되어있는 그의 위치가 표기되어 있었다.
========== 작품 후기 ==========
던부추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