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나쁘지 않은 녀석 -->
아담하고 작은 손가락, 가늘고 작은 몸을 포개고 있는 연홍색의 원피스. 다만 얼굴 부분이 흉하게 파헤쳐져 있었다.
“으윽.”
그것을 보고 현기증을 느낀 소연이 자신의 머리를 벽쪽에 기대었다. 시체를 보는 것이 익숙해 졌다지만, 어린아이의 시체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인 만큼 충격이 적지 않을 것이다.
“미, 안해요...참아야, 하는데.........”
“사과를 왜 해?”
요한은 소연과 달리 선글라스를 치켜세운 채 시체를 직시하고 있었다. 현기증이나 구역질을 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기분이 불쾌하다는 것을 전력으로 표현할 뿐.
그 대상은 다름 아닌 시체를 마주하고 있는 강수였다.
“저런 역겨운 걸 보고 멀쩡히 있는 저 녀석이 더 이상한 거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강수가 요한의 말에 대수롭지 않게 말을 하고 다시 입에 담배를 물었다.
“아아, 옛날 생각 난다. 초희랑 같이 공포영화 보면 이런 거 제대로 보지도 못했었는데...참 장하다 한강수.”
기억상으로 15년도 더 된 기억을 떠올린 강수가 자조를 지으며 시체를 둘러보았다.
상처를 보니 사람에 의한 건 아니다. 날카롭고 상처부위를 기점으로 검게 그슬리는 부패현상이 발휘된 걸 보면 대충 언데드형 몬스터에게 당한 듯 싶었다.
아직 피가 제대로 굳지 않고 시체 썩는 냄새도 심하지 않으니 죽은 시간은 대충 1~2시간 정도. 파먹고 남은 부분이 엿보이는 이유는 중간에 다수의 생존자들이 몰려있는 곳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 뭐 쓸 만한 건........”
“뭘 하려는 거야!”
시체를 뒤적이려던 중 요한이 그에게로 다급히 다가서며 손을 잡아채었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잘은 보이지 않지만 입술을 깨물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흥분한 듯 싶었다.
“지금까지 내가 시체 볼 때마다 뭐하는 지는 봤잖아? 챙겨갈 건 챙겨 가야지.”
강수는 자신의 품에 들어있는 신분증 중 하나를 그에게 떡하니 내세웠다. 그의 것이 아닌, 이제까지 던전을 돌아다니며 발견한 시체로부터 수급한 신분증이었다.
“출구를 발견하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해줘야지. 설령 그게 어린아이라 해도...”
“네 네. 아주 잘 나셨어요. 그 대단한 짓 하려고 어린아이 시체에도 서슴없이 손 대고.”
“...누가 들으면 내가 나쁜 짓이라도 저지르는 줄 알겠네.”
-뿌드득.
침묵 속에서 이를 깨무는 소리가 들렸지만, 머지않아 자신의 팔을 부여잡는 힘이 사그라지고 말았다.
“염병.”
끝내 그로부터 고개를 돌린 요한이 깊게 한숨을 쉬며 벽을 손으로 짚었다. 그런 요한을 옆에서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던 소연이 천천히 강수에게로 걸음을 움직였다.
“시체엔 아무런 가치도 없어.”
소연이 부르기도 전에 강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가치가 있다면 그건 ‘이 사람이 살아있었다’정도를 기억하기 위한 정도 뿐이야. 그 이상 추구하려드는 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요한씨는 그 생각을 부정하고 있는 건가요?"
“그 사람 한 명만 남을 때까지 빠졌다 들어갔다 하면서 시체들 다 태워버리면 될 걸 굳이 성가시게 덩치를 남겨둔 이유가 뭐였을까? 저 녀석이 그런 걸 생각하지 못할 만큼 멍청하진 않을 테고.”
“........”
강수의 말에 소연이 뭔가를 말하려다 끝내 입을 다물고 말았다.
슬며시 시체로 향해진 그녀의 두 눈에는 측은함이 서려있었다.
“이곳에 나오는 몬스터들은, 살아있는 인간이 아닌 거죠?”
“한때는 그랬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한때는........”
“애초에 여긴 게임이 아니니까. 그게 오히려 당연한 거지.”
게임에서는 ‘그럴듯한 설정’이 붙어있지만, 이곳에 존재하는 것들은 누군가의 환상을 만들어놓은 테마파크와 거리가 멀다.
어딘지는 몰라도 실제로 벌어졌던 일들, 그 과정에서 벌어진 참극과 미쳐버린 사람들...그런 것들이 구현되어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던전이란 공간이다.
물론 그들에게 동정을 가지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과거가 어땠든 지금의 그들은 자신들을 습격하는 괴물이었으니까.
“가치가 있다면 그건 ‘이 사람이 살아있었다’정도를 기억하기 위한 정도지만, 그런 걸 간간이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야.”
“........”
강수의 씁쓸함이 서린 목소리에 소연이 침묵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강수씨는 그런 사람을 많이 봐왔나요?’
차마 그 말이 입 밖으로 내뱉어지질 않았다. 소녀의 시체를 뒤적이고 있는 그의 얼굴에서 미약하게나마 쓸쓸함이 엿보이고 있었으니까.
“대충 뒤져봤지만 아쉽게도 건질 건 이거 하나밖에 없었네.”
곧 강수가 시체의 품에 들어있는 것을 꺼내들었다.
손수건 한 장. 그 밑자락에는 ‘서율....’이라는 글자의 뒷자락이 피에 가려져 지워져 있었다. 세정제라도 써먹으면 이름을 확인할 수 있겠지만...아쉽게도 지금 그에게 남아있는 세정제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시 가볼까? 오랫동안 여기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막 소연에게 손짓을 하며 자리를 벗어나려 했을 때일까? 강수는 문득 소녀의 시체 뒤에 감춰져 있는 자그마한 물체에 시선이 미친 것을 자각했다.
시선을 살짝 뒤쪽으로 옮겨보자 눈에 들어온 것은 아담한 크기의 곰인형이었다. 소녀의 피로 얼룩져있는 그것은 어떤 시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상당히 섬뜩하게 여겨지는 것이기도 했다.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것인가, 아니면........
혹시나 싶어서 촬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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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버팀목
분류: 보조장비
등급: C-
부가설명
매일 밤 악몽을 지새는 소녀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었던 물건이다. 끌어안으면 악몽에서 해방되는 효과가 있다.
내구도: 7/11
연관치
육체-2 재주-1 순발-1 정신-9
부가옵션
-양 손으로 끌어안을 시 정신적인 데미지 소폭 감소
-인형을 소유한 채 정신계 효과를 발휘할 시 효과 대폭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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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은 원래부터 소녀가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닌, 던전 내에서 나온 전리품 상자를 열어재껴 나온 물품이었다.
인형의 목이 심하게 눌려있거나 때가 심하게 타있는 것을 볼 때, 이 소녀가 던전 내를 돌아다니며 얼마나 불안에 떨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건, 내버려두는 게 좋겠지.”
장비나 소모품은 인벤토리에 넣거나 탐사자가 건드리지 않는 한 일정시간이 지나면 소멸하고 만다.
장비 아이템이 사라지는 것은 아까운 일이지만, 이 인형은 무기로써 쓰기엔 적합하지 않고, 소연이나 요한도 정신계열 능력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가지고 있어봐야 써먹을 곳도 없는 물건은 인벤토리의 한구석을 차지할 뿐인 짐짝일 뿐. 그렇게 단정을 지은 강수는 소녀의 인형에서 손을 놓으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끝내 시체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리려 했을 때일까?
-부스럭.
어느 샌가 자신의 뒤로 접근한 누군가가 빠르게 인형을 주워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전까지 뒤에서 한탄을 내뱉고 있던 요한이 강수가 관심을 거둔 인형을 주워든 것이었다.
“왜, 꼽냐?”
뭐라 물으려 하자 요한이 먼저 입을 열었다.
상당히 적개심까지 서려있는 말이었다.
강수가 혀를 차며 요한을 향해 자신이 신경 쓰는 걸 얘기했다.
“인벤토리에 여유도 없고, 무기로 써먹지도 못하는 거 가지고 있어봐야 짐덩이만 될 텐데.”
“계속 빈손으로 있기 허전해서 들고 다니겠다는 건데 그렇게까지 신경 쓸 일이야?”
“...보는 사람 생각도 좀 해라.”
스물 넘은 성인 남성이 수녀복을 입은 채 곰인형을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라니, 아무리 중성적인 외모라지만 점잖은 소녀행세를 하면 보는 이로썬 기분이 역해지는 법이다.
하지만 저 녀석이 말을 한다고 해서 들어 처먹을 놈이던가?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선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장땡이다.
“그래, 알아서 해라. 어차피 넌 빈손으로 돌아다니니까, 하나 정도는 들고 다녀도 괜찮겠지.”
끝내 혀를 차는 것을 마지막으로 강수가 요한에게서 관심을 거둔 채 통로 반대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소연과 요한이 말 없이 강수의 뒤를 따라갔다. 두 사람의 발걸음은 무게가 실려있었지만, 요한의 경우에는 발걸음소리가 소연에 비해 상당히 느린 상태였다.
마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기라도 하는 것처럼.
“........”
이내 소녀의 시체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통로를 걸어왔을 무렵, 강수가 벽을 짚은 채 나지막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처음에도 말했지만, ‘만약 조금만 더 빨리 도착했으면’같은 생각하면서 죄책감 가지지 마. 그건 진짜 쓸데없는 거니까.”
강수의 말에 요한 또한 걸음을 멈춘 채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그의 냉정한 시선은 이미 요한에게로 향해져 있었다.
“지금 처지를 감당하는 데에만 해도 급급한데, 미래를 읽을 수도 없는 우리가 죽어가는 사람들 일일이 보고 그런 걸 느끼면 앞으로 어떻게 담당하겠어?”
“네가 상관할 바 아니잖아. 내가 신경 쓰건 말건...!”
“경험자의 충고야.”
열을 터트리려던 요한의 입이 강수의 말에 한 순간 다물어지고 말았다.
감정을 내세우고 우습게 받아들일 수도 있었지만, 목소리만으로도 그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었다.
작지만 그 목소리에는 무게가 실려 있었으니까. 그것은 욱하는 감정으로 가벼이 밀어낼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은 그렇게만 알아둬.”
머지않아 멈춰졌던 그의 발걸음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서히 멀어져가는 그를 주시하던 요한이 피 묻은 곰인형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실어 넣었다.
분한 듯, 그를 향해 뭔가를 외치려는 것처럼 입술이 부들거렸지만 끝내 내뱉어지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강수씨는 요한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매정한 사람이 아니에요.”
강수를 바로 따라나서리라 생각했던 소연이 요한의 곁으로 다가서며 조용히 말을 꺼내었다.
“강수씨도, 이 공간에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길 바라고 있어요. 던전을 부수겠다고 하셨지만 그건 이유가 있는 거고........”
“저 녀석이 나쁘지 않은 녀석이라는 건 나도 충분히 알아.”
아무리 필요에 의한 것이라 한들, 무조건적인 악인이라면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자신에게 충고를 해줬을까?
비록 마음에 들지 않는 면도 많지만, 근 1주일 간 그를 지켜보며 그의 인간상이 어떤지 정도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환경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걸 보면 ‘좋은 녀석’이길 포기했다는 것도 충분히 알 수 있고.”
“........”
요한의 말을 소연은 바로 부정할 수 없었다. 아무리 악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가 이제까지 보여준 행적이 세간에서 흔히 말하는 ‘선인’과 거리가 멀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까.
다만 그의 말을 정정해야 한다는 강한 마음은 느껴지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건 아니에요.”
차츰 강수를 따라나서는 소연의 시선이 앞서 걸어가는 강수에게로 향해졌다.
“어쩔 수 없는 거죠. 익숙한 것과 괜찮은 건 다르니까.....”
자신이 지나간 곳에 발자취를 남기듯 입가에서 회색 연기를 뿜어내는 그의 등은 이제까지 봐왔던 것과 다를 바 없는 쓸쓸함이 묻어나 있었다.
========== 작품 후기 ==========
가시는 길에 던부추 살포시 놓고 가주십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