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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브래이커-74화 (74/251)

<-- 21화. 경계대상 -->

“이봐요 거기!”

곧 상황을 뒤늦게 파악한 경비들이 바닥에 하진을 넘어트린 여자에게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손길이 미처 닫기 전, 여인은 하진을 붙잡은 손을 거둔 채 천천히 몸을 일으켜세우고 그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요. 귀가 불편하기도 해서 아직 상황에 대해 다 파악하지 못한 상태거든요. 방금 전에 저지른 건 무례일 지도 모르지만, 이해를 해주셨으면 해요.”

하진이 쓰러진 몸을 반쯤 일으켜 세운 채 벙찐 표정을 지으며 여인을 쳐다보았지만, 여인은 하진에게 고개를 돌린 채 청각장애인의 앞에서 양 손을 움직일 뿐이었다.

"으아아...하아앙........"

"옳지, 착하지."

그녀는 울부짖는 여인의 품을 끌어안은 채 나머지 네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그럼........”

곧 자리를 벗어나자 근처의 경비들이 두 사람에게로 다가섰다. 아무리 곱게 끝났다 하더라도 갑작스럽게 달려든 만큼 그들에 대한 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끝내 그들이 인파 사이로 빠져나갔을 때,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하진을 향해 태류가 손을 뻗어왔다.

“아가씨 괜찮아?”

“...저 여자 대체 뭐예요?”

하진은 자신에게 뻗어오는 태류의 손을 무시한 채, 정체불명의 여인에게 붙잡혔던 자신의 손을 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주 잠깐 잡혔을 뿐임에도 그녀의 가느다란 손목이 벌겋게 물들어져 있었다.

*****

“그러니까 이름은 윤초희, 나이는 스물 다섯 살, 직업은 전업주부고 주소는........”

“다 아시면서 뭘 그렇게 물어봐요?”

“...절차라는 게 있으니까 물어보지 이 망할 깡패녀야.”

던전 인근에 설립된 임시 취조실에 들어온 익숙한 얼굴의 손님을 마주한 영찬의 입에서 한이 서린 외침이 내뱉어졌다.

“야 윤초희! 너 정신 차리고 산다고 말한 지 고작 1주일 밖에 안 됐는데 이런 식으로 끌려오기야!? 그 말 믿어준 나는 대체 뭐가 되냐고!”

영찬이 양 팔을 책상에 기댄 채 머리를 부여잡았다.

영찬의 말에 초희가 볼을 부풀리며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안 형사님은 왜 일 빠지고 여기에 계신 거예요?”

“이게 내 일이다 멍청아. 누구는 탱자탱자 노는 줄 아냐? 너처럼 던전 근처에서 문제 저지르는 애들 조사하고 수작부리는지 감시하려고 내가 여기에 배정받은 건데.”

“보통 강력반 형사는 발로 뛰면서 수사하지 않아요? 이런 건 말단들이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너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어.”

일손 부족하면 뭐든 한다. 그게 대한민국의 경찰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공무원이라도 사람인데 직장 생활과 다를 게 있을 턱이 있겠는가?

그런 자신의 속마음도 모른 채 초희는 팔짱을 끼며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그냥 보내주시면 안 되요? 우리들이 이제까지 보내온 시간을 봐서요.”

“...빽쓰고 죄 깎으려 드는 것도 위법인 거 모르냐? 그리고 우리가 보내온 시간이 대체 뭔데?”

일방적으로 그녀가 자신을 갈구는 관계였던 것을 생각하면 남는 건 적의뿐이었다.

“어휴 됐다. 이거나 작성해. 제대로 적기만 하면 바로 훈방조치 취해줄 테니까.”

끝내 귀찮다는 듯 혀를 차는 영찬이 초희에게 서류 한 장을 던져주었다. 초희가 놀란 듯 눈을 벌려뜨며 영찬을 쳐다보았다.

“정말 보내주시는 거예요? 방금 전엔 그냥 한 말이었는데.......”

“너 말고도 쌓여있는 일이 많으니까.”

던전이라는 것이 나타난 후 이 근처에서 발생하는 범죄율만 던전 출몰 이전의 850%가량 뛴 상태다. 그 중 대부분은 경범죄에 해당하지만 몇몇 이들은 혼란을 틈타 대놓고 강도짓까지 벌이고 있다.

그런 녀석들을 직접 잡는 것이 강력반 형사가 하는 일이지만, 언제 어디서 벌어질 지도 모르는 그런 일을 일일이 찾아 나설 수 있겠는가?

연락을 받고 나가지 않는 한은 이렇게 앉아서 일 저지른 사람들 얘기를 듣는 처지다. 물론 그 일도 마냥 적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저는 그렇다 쳐도, 수아는 어디있어요?”

“그 귀머거리 아가씨 이름이 수아야? 그 아가씨라면 귀에 문제가 있어서 취조가 어려우니까 잠시 대기시켜두고 있는 상태야.”

“귀머거리라고 부르지 마세요. '청각장애인'이라는 어엿한 칭호가 있다고요.”

“그 쪽도 그리 듣기 좋은 단어는 아니라 생각하는데....”

"그거야 대개 그걸 욕으로 쓰니까 그렇지, 표준어는 장애인이 올바른 표현이에요. 애초에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배려한다고 '장애인'이라 부르지 말라고 하면 뭐라고 불러야 하는데요? 장애우? 장애자? 병신?"

"마지막 껀 욕이잖아."

"나머지 둘도 장애를 가진 사람 앞에선 병신이나 다를 바 없는 욕이에요. 의도만 좋은 허울뿐인 칭호지. 그리고 병신은 먼 옛날엔 표준어로 사용했지만 비하성 의도가 짙어서 장애인으로 대체된......."

"그래그래. 내가 잘못했다."

초희의 진심을 다한 빈정거림에 영찬이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올곧고 당당하면 얼마나 좋겠냐.”

끝내 서류를 작성하는 초희를 보던 영찬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내뱉어졌다.

“네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예부터 지켜봐서 알고 있지만, 그래도 상황은 봐가면서 나서야지. 세상은 교과서적 도덕만으로 살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하지 않다는 건 너도 알고 있잖아.”

“지금도 성격 많이 죽인 거예요. 만약 제가 거기서 상황 안 봤으면 그 여자 반 죽었을 걸요?”

“야이....”

초희의 말에 반사적으로 욕을 내뱉으려 했다.

자신의 앞이 아니라도 방금 전 초희가 한 말은 사회적인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위험하게 들릴 수도 있었다.

던전으로 들어가는 그 네 명은 초인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는 존재들. 비록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능력자들은 모두 격리조치를 취한 상태이지만, 유일하게 던전에 다시 들어감으로써 사회에 노출된 그들은 만민에게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 중 한 명을 바닥에 내팽개치다니, 벌써부터 각종 SNS에서 들끓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다. 정작 본인은 그것을 허세가 아니라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는 게 문제지만.

“......경찰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어 이 여자가.”

“뭐 어때요, 여기에 들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밖에 두 명은 무슨 정승인 줄 아냐?”

초희의 말에 영찬이 취조실 출구 쪽으로 살짝 시선을 주었다. 입구는 닫혀있었지만 급하게 세운 곳이다 보니 방음 자체는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아마 여기서 하는 말소리는 밖에서 이곳을 지키고 있는 두 명의 순경의 귀에도 들릴 것이다.

물론 말단인 만큼 이곳에서 들은 얘기를 일일이 떠들고 다니진 않을 테지만, 그래도 앞일은 모르는 법이니까,

“수아 말이에요. 언니랑 남자친구가 휩쓸렸데요.”

초희에게 연이어 따지려 들던 영찬이 이어지는 말에 잠깐 입을 다물고 말았다.

“선천적으로 쌍둥이로 태어났는데, 자기는 귀가 안 좋고, 언니는 눈이 안 보였데요. 그래서 항상 서로 붙어다녔는데, 자기가 떨어져 있는 사이에 언니랑 남자친구가 함께 있던 카페가 던전에 먹혀버렸다고.......”

“.......”

“...자신이 대신 들어가야 했다고 누누이 말하더라고요. 눈이 안 보이는 것보다는 귀가 안 들리는 쪽이 위험이 덜하지 않을까, 하면서. 그리고 남자친구가 그런 언니가 피해를 본 것 때문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을까 걱정이 든데요.”

쓸데없는 죄책감이다. 애초에 던전이란 공간은 사지 멀쩡한 녀석들도 잘만 죽어나가는 공간이었으니까.

“아마 그 때 달려들은 것도 그 사람들이 다시 나올 때 안쪽의 소식을 듣기 위함이었겠죠. 어떤 식으로라도 그 두 사람의 소식을 접하고 싶으니까”

“.......”

“...괜한 말을 했네요. 헤헤.”

작게 웃음을 터트린 초희가 마저 서류를 작성해갔다. 영찬은 그런 초희로부터 잠시 고개를 돌린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넌 괜찮고?”

“저번에도 말했잖아요. 기다리는 것밖에 하지 못한다면, 확신이 없는 한 계속 기다릴 뿐이라고.”

"........"

자그마치 1주일이나 지났다. 휩쓸린 인원의 추정은 약 1만을 넘어선 상태. 그 중 살아서 돌아온 사람은 200명 안팎 뿐이다.

당연한 것이지만 확률적으로 그들이 돌아오길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일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얼굴에는 깊은 절망감이 아닌, 미약한 기대심이 엿보이고 있었다.

그 기대감을 계속 유지하게 만드는 건 결국 희망고문이지 않을까.

“...할 말이 하나 있는데, 괜찮을까?”

“뭔데요?”

“이런 거 가급적 외부인에게는 안 하는 말이지만, 이미 그 쪽이 휩쓸렸다는 게 확정된 이상, 관계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는 너에겐 말해두는 게 좋을 거라 생각해서.”

곧 영찬이 자신의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을 꺼내들어 조작한 후 화면을 초희에게 보여주었다.

기사의 내용을 스크립한 것이었다.

“이 사건 알아?”

“네, 알아요. 던전이 출몰하기 이전에 이슈가 되었던 사건이잖아요??”

"뉴스는 꼬박꼬박 보고 사는 모양이네."

기사의 내용은 요약하자면 어느 살인범의 범죄내용을 기록한 것들이었다.

그가 스크립한 살인범의 기사내용에는 모두 공통점이 존재했는데, 바로 모든 시체들이 예외 없이 ‘머리와 양 손’이 잘려나간 채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시체가 발견되는 곳은 주로 공원이나 하천 등등...누군가를 납치하고, 이후 공작을 벌인 후에 그들의 시체를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내다 버리는 것이다.

“이 일대를 중심으로 연이어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녀석이야. 뉴스에서 사이코패스 끼가 있는 연쇄살인범이라고 보도되어 있긴 한데...단순히 그렇게 보기엔 시체를 잘라내는 솜씨가 너무 정교한 편이지.”

“예술이라도 추구한다는 거예요? 영화나 소설에서 흔히 나오는........”

“살인 자체를 유희나 복수 같은 게 아니라 ‘사회에게 보내는 메시지의 수단’으로 써먹는 부류의 범죄자라는 뜻이야. 어떤 의미에선 사이코패스라고 불리는 놈들보다는 훨씬 더 위험하지. 극도의 흥분이나 분노도 아니고, 정신 이상도 아니고, 제정신으로 그런 일을 저지르는 만큼 신념 자체가 굳건하거든."

영찬의 말에 말을 내뱉던 초희의 입술이 살짝 굳어졌다.

“그런 사람이, 지금 저 던전 안에 들어가 있다는 건가요?”

“목격자 증언이야.”

사건이 발생한 이후 생존자들의 신변을 보호하고 국가기관에 넘기기까지의 과정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호하는 것은 경찰들의 몫이다.

비록 다른 부서의 일이기에 직접적으로 취조한 일은 없지만 은연중에 그들의 얘기를 접하는 것은 가능하다.

“자기 앞에서...사람의 머리와 손을 직접 잘라냈다고 하더군.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고 자신도 정신이 반쯤 나가있는 상태라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들었지만........”

“뭐예요, 지금 저 겁주려는 거예요?”

영찬의 말에 초희가 머지않아 코웃음을 터트리며 자신의 입가에 손을 올렸다.

그런 초희의 모습이 못마땅해 보인 걸까, 영찬이 표정을 구기며 책상에 올린 손을 움켜쥐었다.

“겁을 주려는 게 아니라, 내가 조사하던 녀석이랑 똑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녀석이 던전 내에서 사람을 죽이고 다니고 있다는 거야. 자칫 네 남편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을 지도 모르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형사님을 원망하거나 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안심하세요.”

“.........”

초희의 무덤덤한 말에 틀어쥐었던 주먹에서 힘이 풀려버렸다.

“...솔직히 말해서 어떤 말을 들어도 별로 와 닿지가 않아요. 연쇄살인범이네 뭐네 해도, 저 안은 그런 것들보다 더 위험한 것들로 가득 차있다고 다들 말하니까요.”

끝내 서류를 다 작성한 초희가 그것을 영찬에게 건네주며 책상에 머리를 기대었다.

“마음 같아선 직접 찾아서 지켜주고 싶어요. 그런데...지금은 기다리는 것밖에 하질 못하니 아쉽네요.”

씁쓸한 웃음이 그려진 그녀의 입이 벌어지며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보고 싶다, 강수 오빠.”

“.........”

초희를 보고 있던 영찬이 고개를 숙이며 이마를 움켜쥐었다.

'나도 네 남편 얼굴 한 번 보고 싶다.'

능력자를 상대로도 꿇리지 않는 패기를 보인 여자의 사랑을 듬뿍 받는 남자가 누구인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 작품 후기 ==========

던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건 한 번 던전의 출현에 휩쓸려본 사람들 뿐입니다.

간간이 등장해서 바깥 사정에 대해서 설명을 할 뿐, 초희나 기타 인물들이 던전 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일은 없을 거예요.

가시는 길에 던부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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