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브래이커-70화 (70/251)

<-- 20화. 모든 것은 재가 되어 사라진다. -->

약속을 잡았었다. 해외로 나가 한동안 보지 못하게 될 테니, 마지막으로 시내에서 만나 잠깐 대화라도 해보자는 이유로........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준비를 하고 이른 아침에 시내로 나가 약속장소로 정해두었던 카페로 향했다. 그저 앉아있기만 하는 것도 뭐했기에 미리 주문을 해두고 스마트폰을 만지막거리며 그녀의 동행자와 문자를 주고받으며 얘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기다리고 있었을까.

문득 자신을 건드리는 손짓을 느낀 요한은 자신의 눈을 덮고 있는 선글라스를 잠시 걷어내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상당히 소심해 보이는 인상, 진수아란 이름의 여인이 요한을 마주한 채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안, 느영.”

어눌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에 요한은 입을 열지 않고 손을 움직이며 대답을 건네었다.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을 대상에게 의견을 전달할 때 사용하는 수화였다.

-머리 잘랐어?

요한의 말에 수아가 깜짝 놀라고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세세한 변화를 바로 알아차린 것에 놀란 모양이다.

-잘 어울리네.

“.........”

수아가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떨어트렸다. 자신의 칭찬이 부끄러운 걸까, 기쁜 걸까?

적어도 자신은 솔직하게 말했다 자신할 수 있었다. 실제로 요한은 수아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요한아, 오랜만이야.”

“........”

들려오는 목소리에 시선을 슬며시 수아의 옆으로 옮겨보았다.

허리춤까지 흘러내려 있는 검은 장발과 고운 피부. 가녀리고 고운 손을 창가 쪽으로 향한 채 흔들고 있다.

"이 쪽이야."

“아, 방향이 좀 틀렸나?”

요한의 목소리를 들은 여인이 아차하며 자신의 입가에 손을 올렸다. 다급히 요힌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틀어 정확히 얼굴을 마주했지만, 그럼에도 눈을 마주보거나 할 수는 없었다.

여인은 두 눈을 감고 있는 채로 있었으니까.

진수현, 선천적으로 눈이 멀어 앞을 보지 못하는 여인.

요한은 잠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세워, 그런 수현의 몸을 붙잡아 반대쪽에 조심스레 자리를 잡게 도움을 주었다.

“고마워, 요한아.”

“........”

수현의 감사에 말없이 고개를 트는 요한. 그의 시선은 이미 수현을 이곳까지 데리고 온 여인에게로 향해져 있었다.

“수아 너도.........”

“나, 누........”

요한의 손짓에 수아가 다급히 양 손을 휘저었다.

“바, 쁘닐. 쁘니르. 이써서........”

-바쁜 일이라니, 무슨 일?

손을 움직여 수화로 질문을 건네자, 수아가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움직였다.

-당분간 언니랑 못 만날 테니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지금 해줘. 알았지?

“........”

수아의 바쁜 손짓에 요한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을 들은 수아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수현이 있는 곳으로 다가서 수현의 손바닥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잠깐...일이 있어서 카페 밖에 나갔다 올게...아 그래? 알았어, 조심해서 다녀와.”

끝내 수현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수아가 자리를 벗어났다.

수아가 벗어나고 난 후, 요한은 자신의 눈을 포개고 있는 선글라스를 잠시 품에 집어넣은 채 수현을 마주했다.

클래식 음악이 새어나오는 고풍스러운 느낌의 카페, 창가자리에 비춰오는 따사로운 아침햇살을 받고 있는 여인에게서 수수한 매력이 느껴지고 있다.

요한은 그런 여인을 마주한 채 나직한 웃음을 지었다.

“내일...아침에 떠나는 거지?”

“응. 몇 년간은 돌아오지 못할 거야.”

요한의 말에 수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엄마도 아빠도, 엄청 기뻐하셨어. 겨우...빛을 볼 수 있게 됐다고. 지금까지 고생 많았다면서, 수술 날짜가 잡혔을 때 엄청 기뻐하시더라.”

싱긋, 그녀의 입가에 상냥한 웃음이 그려졌다.

“고마워 요한아. 네가 알아봐준 덕에........”

“그렇게 까지 말할 필요 없어. 어디까지나 알아본 것 뿐이니까.”

수술에 필요한 돈을 내는 것은 그녀의 집안이며, 시설까지 향하는 것도 그녀가 전부 알아서 해야 할 일이다. 자신이 해준 것이라고는 기껏 해봐야 인맥을 통해 그녀의 눈을 고칠 수 있는 시설을 알아봐준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수현은 충분하다는 듯 웃음을 거두지 않고 있었다.

“수현이 너도, 기뻐?”

“그야 다들 기뻐하니까.”

“네가 기쁘냐고 묻는 거야.”

“........”

요한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수현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글쎄?”

머지않아 이어진 것은 의문이었다.

“솔직히 말해서...나는 ‘본다’라는 걸 이제까지 살면서 경험해본 적이 없으니까. 조금 무섭다고 해야 할까.”

점점 불안이 섞인 목소리가 내뱉어졌다.

“어둠 속에서 산다고 다들 말하지만, 빛을 느낀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고 그래도 다들 ‘본다’는 걸 당연시 여기면서 사는 거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참고 견디면 분명 괜찮아 질 거야.”

“...풋.”

요한의 진지한 충고에 수현이 살짝 웃음을 터트렸다. 따스함이 느껴지는 웃음이었지만, 그 방향은 자신에게서 조금 어긋나 있는 상태였다.

어째서 그런지는 알고 있었다.

그녀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가 얼마나 큰 고독함을 느끼고 있는지를 알고 있으니까.

그런 여인에게서 자신은 구원을 받았다.

보다 나은 환경, 보다 나은 인간관계, 보다 나은 미래...그리고 사랑하는 연인까지.

그 모든 것은 분명 이 여인과 연루되었기에 얻을 수 있던 ‘소중한 것들’이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너도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속으로 그 말을 집어 삼키며 수현을 향해 손을 뻗자, 머지않아 자신에게로 뻗던 수현의 손과 충돌을 일으킨 것을 자각했다.

“아, 미안. 습관적으로 또........”

수현이 다급히 손을 거두려 했지만, 그 전에 요한이 수현의 손을 잡아채는 것이 먼저였다.

“...화 안 내?”

“화를 왜 내.”

천천히 그녀의 손을 끌어 자신의 얼굴 쪽으로 가져갔다.

가느다란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온기가 피부를 타고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얼굴에 새겨져 있는 흉한 상처부위가, 고운 손길에 의해 서서히 정화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는 수현의 입이 다시끔 천천히 열려갔다.

“내가 없어도, 수아 잘 보살펴줬으면 해.”

“.........”

“무리한 부탁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내가 없었을 때 수아를 도와줬던 건 요한이 뿐이었으니까....앞으로 몇 년 동안 돌아오지 못할 테지만, 그래도.........”

“걱정하지 마.”

끝내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는 손을 떨어트린 요한이 그녀의 손을 자상하게 움켜쥐며 상냥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네가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옆에서 지키고 있을 테니까. 안심하고 다녀오도록 해.”

“.......응.”

그저 말 뿐이지만, 소리만으로 세상을 알아갈 수 있는 여인에게 그것은 분명 큰 안도를 심어주었다.

“내가 없어도, 계속 옆에서 지켜주는 거야, 알았지?”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거친 손을 포개어왔다.

그저 그것뿐인 행동이었지만, 그 행위는 그의 마음속에 하나의 맹세를 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언젠가 그녀가 돌아오게 되는 그 날. 다시 자신의 곁으로 돌아오게 되는 때, 그녀가 안심하고 몸을 맡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맹세를 말이다.

*****

-요.....한아........

“.........”

길다란 머리카락, 가느다란 손가락, 여성 치고는 상당히 큰 키...목소리에는 힘이 없었지만 괴인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은 분명 자신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수현과 닮은 것이었다.

그 괴인이 자신의 얼굴을 향해 힘겨이 손을 뻗어왔다.

-지켜주는, 거야...내가, 돌아올 때까지, 반드시.

자상한 목소리였다.

따스한 손길이었다.

그 모든 것이 과거의 모습임에도,

괴물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에 자신의 기억이 투영되며 모든 것이 동일시 보이고 있었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도 섣불리 입이 열리지 않는다.

말을 전해도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아니, 이제는 과거를 추억하는 것조차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추한 괴물은, 그가 그토록이나 바라고 있던 ‘수 년 후의 행복’을 더럽힌 존재였으니까.

그것을 각오하고 괴물을 쓰러트렸건만, 왜 하필이면 괴물의 마지막 남은 잔해가 그녀의 모습을 빌려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것일까.

"이런 식으로...만졌었지, 항상.”

녹아내리는 팔을 붙잡은 요한이 그것을 천천히 잡아당겨 자신의 얼굴 쪽으로 옮겼다.

팔을 붙잡고 있는 손바닥이 타들어갔지만, 그로 인한 고통은 과거를 추억하며 느끼는 울분에 집어 삼켜졌다.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그녀의 손길.

그 따스함이 다시 한 번 느껴지길 바라며 잡아당긴 손을 얼굴쪽으로 향했다.

"약속, 못 지킬 거 같아."

볼에 새겨진 선명한 상처가 그녀의 손짓에 서서히 파헤쳐져가는 때.

"...미안해 수현아."

-파즈즉.

울분을 집어 삼키는 그의 목소리가 전기가 튀는 소음에 집어 삼켜졌다.

========== 작품 후기 ==========

던부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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