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패배 시인 -->
인간의 사회에서 전기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지만, 그것을 직접 다룬다고는 할 수 없었다.
전기를 사용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발전소의 기구에서 흘러나온 전기를 해당 지점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비유를 하자면 강물에 댐을 건설하거나 수로를 파는 등 ‘흐름을 제어하는 선에서 응용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제 아무리 많은 노력과 자원을 투자한다 할지라도, 흐름의 제어가 아닌 순수하게 전기를 다룬다는 것은 현대 과학으로도 난이도가 높은 일이며, 그마저도 다수의 안전책을 제대로 숙지하지 않을 경우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한 난해한 힘을 자유자재로, 그것도 광범위하게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자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내가 이런 말은 앵간해선 안 하는데 이건 꼭 말해야겠다.”
굳어진 숨을 가다듬는 강수가 식은땀이 흐르는 볼을 닦아내며 눈앞에 일어난 현상을 주시했다.
"누군 살아남는 게 고작인 능력을 쥐어줘놓고, 이상한 여장변태에겐 이런 사기적인 능력을 건네주다니. 불공평한 것도 정도껏 해야지."
아주 잠깐의 접전이었다.
무기를 쥔 채 그와 거리를 좁힌 직후, 수녀복의 남성은 자신의 몸에서 뿜어낸 무지막지한 양의 전기를 방의 곳곳으로 퍼트렸다.
벼락 한 두 개가 아니라, 어쩌면 세 자리수를 넘어설 지도 모로는 전류의 창이 방 곳곳에 퍼져나간 것이다.
무차별적으로 쏘아진 만큼 유효타는 적었지만 위력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삽시간에 퍼져나간 전류는 방의 벽을 부수고, 바닥을 조각내며 파편을 터트리고 내부를 헤집었다. 파헤쳐진 곳에는 그을려진 흔적과 더불어 매캐한 냄새가 퍼져 나오고 있는 것을 물리적인 위력뿐만 아니라 고열까지 동반한 흉악한 공격임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것이 몸에 적중했다면? 벼락에 맞은 인간이 어떻게 될지를 상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좀 봐주면서 해라, 이 쪽은 생명력 좀 질긴 거 빼면 무능력자나 다름없는 몸이거든?”
투덜거림은 수녀가 아닌 그의 빌어먹을 운명에 향한 것이었지만, 그의 두 눈에 서려있는 적의는 수녀에게로 향해져 있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적의를 퍼트리건 말건 그와는 전혀 관계 없는 이야기. 수녀에게 있어서의 주요 관심사는 자신이 지키고 있는 영역에 침범한 침입자에 대한 배제였다.
“내가 경고 했을 텐데. 다가오면 사지가 분질러질 각오 정도는 해야 한다고.”
“그래. 확실히 그렇게 말하긴 했지. 이런 곳에서 여장이나 벌이는 변태가 이 정도로 날뛰어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으니까.”
투덜대며 단검을 들어올린 강수가 그의 눈치를 살폈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 눈빛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얼굴의 근육이나 입꼬리엔 전혀 변화가 없었다.
나름대로 도발을 한 것이었지만, 마치 들리지 않기라도 하는 것처럼 수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을 뿐이었다.
냉정하다...기보다는 관심이 없다는 쪽이 더 가까워 보였다.
말 그대로 통로를 지키는 것 외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과묵한 문지기’다운 모습.
몬스터도 아닌 자가 그런 모습을 보이다니, 그 누구라도 이상하다 여길 수밖에 없는 일이다.
‘점점 더 궁금해지잖아, 저 뒤에 뭐가 있는지.’
점차 호기심이 강해지는 것을 느끼며 인벤토리에서 새로운 무기들은 강수가 비릿한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정말로 비켜줄 생각이 없나보네. 그런데 이거 어쩌나? 그 쪽이 계속 싸고 돌면 싸고 돌수록 궁금증이 더 커져서.........”
-파즈즈즉!
강수의 말에 양 손에 끌어 모으고 있던 전기가 격해지기 시작했다. 통로의 뒤편에 관한 것을 거론한 것이 그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도발에 걸려 상대의 판단력이 흐트러진 것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일이다. 하물며 원거리 공격과 같은 ‘집중’이 필요한 공격의 경우에는 명중률이 저하되기 마련.
만약 그가 소연과 같은 ‘순수하게 무기’를 다루는 자였다면 도발에 걸려든 순간을 통해 곧장 승기를 다잡았겠지만, 생각 이상으로 도발이 과도하게 들어간 것은 마냥 반갑게 여길 일이 아니었다.
‘상대가 안 좋아. 아가씨 같은 재능있는 인간 정도면 어떻게 하겠는데........’
검은 수녀복의 사이로 피어오르는 푸른 빛. 그것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공간을 일으러트릴 정도의 괴랄한 힘을 자아내어갔다.
그것이 어떤 공격으로 이어질지 알고 있는 강수로썬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저건 인재가 아니라 인간 재앙 수준이야.’
머지않아 허공으로 뻗어져나간 벼락들이 하늘을 메우고, 끝내 그것이 비처럼 지상으로 추락해 강수의 주변을 엄습하기 시작했다.
-퍼엉! 퍼엉!
땅에 내리 꽂힐 때마다 퍼져나가는 파편. 벼락이 치고 지나간 곳은 흉하게 파이고, 그 부근을 강한 열기로 그을리며 연기를 퍼트렸다.
그것이 한 두 번도 아닌 수 십 번. 무차별적인 폭격이기에 유효타가 많지 않아 하더라도, 그 하나하나의 공격은 인간에게 있어선 치명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피한다? 벼락의 속도란 음속의 300배에 해당한다. 총알 따윈 비교조차 되지 않는 속도로 쇄도해오는 공격을 어찌 피해낼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을 직접 다루는 자의 공격을 피한다는 것은 시내 한복판에 사람 잡아먹는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건물이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상소설에서나 나올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현실적으로 접근하자고, 피할 수 없다면 막으면 그만!’
벼락이 추락하기 직전, 강수는 그 찰나의 순간에 맞춰 손에 쥐고 있는 단검 중 하나를 허공에 집어 던졌다.
유효타로 지정된 전격이 강수에게 다가서기 직전 단검과 충돌을 일으켰다. 힘에 밀려난 철제장비는 바닥에 추락했지만, 전류의 흐름은 원래 노렸던 곳이 아닌 땅에 추락한 철제 장비로 향해져 있었다.
“...!?”
그 현상을 본 수녀가 놀란 듯 눈을 벌려 떴지만 그 찰나의 놀라움은 강수에게 있어선 기회로써 작용이 되었다. 유효타를 막아낸 직후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전류의 폭풍을 벗어난 강수가 소넹 무기를 쥔 채 빠르게 수녀와의 거리를 좁혔다.
-파즈즈즉!
다시 양 손에서 일어나는 전류. 손가락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그것의 끝이 강수에게로 겨누어지기 시작했다.
‘벼락의 속도는 음속의 300배........’
자신을 향해 겨누어진 손가락을 말없이 주시는 강수가 손에 쥐고 있는 두 번째 단검을 치켜 세웠다.
‘인간의 신경은 그보다 훨씬 느려 터졌지.’
손가락에 실린 힘이 풀린 직후,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속도로 쏘아진 전기의 창이 강수의 안면을 꿰뚫기 위해 전방으로 쏘아졌다.
그 궤적을 가로막는 것은 이미 손에서 던져진 또 한 자루의 단검.
-파즈즉 퍼엉!
끝내 전격을 가로막은 단검이 힘에 밀려나 허공으로 튕겨져 나갔지만, 전류는 강수에게로 나아가지 않고 허공으로 튕겨져 나간 단검을 따라가고 있었다.
땅에 박혀있는 피뢰침이 아닌 이상 위력을 줄이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힘에 밀려 튕겨져 나간 장비를 이용해 전류의 방향을 꺾어내어 아주 잠깐 동안 유효범위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정도는 해낼 수 있다.
그 순간 필요한 것은 상대의 움직임에 반응할 수 있는 순발력과, 언제 발포될지를 알아차릴 수 있는 눈치. 강수는 두 가지를 냉정한 정신과 극도의 순발력을 통해 습득한 상태였다.
“이, 자식이...!”
그제야 수녀도 강수의 속셈을 눈치 챈 듯 이를 질끈 깨물었지만, 이미 수녀와의 거리는 상당히 좁혀져 있었다.
-빠즈즈즉, 즈즉!
이전보다 훨씬 힘이 실려 있었지만 속도는 다를 바 없다.
공격을 위해 몸에 전류를 끌어 모으는 시간, 손가락의 움직임, 자세, 그리고 사출되기 직전의 분위기. 강수의 모든 신경은 오직 그것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휘리릭!
허공에 집어던진 단검이 다시 수녀가 있는 곳을 향해 던져지고, 그 직후 손가락 끝에 응축된 전격의 창이 단검을 향해 쇄도했다.
하지만 이번에 가해진 공격은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콰창!!
전압을 버티지 못한 단검이 산산조각나 사방으로 파편을 퍼트렸다.
이전처럼 공격을 회피하리라 생각하여 단검이 버틸 수 있는 허용량을 넘어선 공격을 가한 것일 터. 끝내 쏘아진 공격은 궤적을 바꾸지 않고 강수가 있었‘던’곳을 향해 날아들었다.
“선글라스 같은 걸 쓰고 있으니까 시야가 막히는 거지.”
“...!?”
측면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감지한 수녀의 고개가 다급히 뒤쪽으로 꺾여 졌다.
그곳에 나타난 것은 가면을 쓴 채 칼의 면 부분을 세우며 자신을 향해 휘두를 준비를 취하는 강수의 모습.
단검을 집어 던진 직후, 그는 교묘히 몸을 빼내어 수녀가 가한 공격범위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일단 한 대 맞고 시작하자!”
전격 능력은 강력하지만, 그것을 통해 공격을 가하기 위해선 충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이제까지의 전투를 통해 진작 파악한 상태. 충전을 필요로 해야만 공격을 가할 수 있다면, 여유를 주지 않고 압박하면 될 뿐이다.
-후웅!
곧 그의 손에 쥐어진 장검이 수녀의 머리를 깨트릴 기세로 휘둘러지기 시작했고.
끝내 머리에 도달하기 전, 장검은 움직임을 멈춘 채 허공에 고정되고 말았다.
“...어?”
한 순간 허공에 멈춰선 검을 보고 의아함에 찬 탄성이 내뱉어졌다.
그가 의지를 발휘하여 허공에 검을 멈춰세운 것이 아니다.
휘둘러지는 방향의 반대쪽에서 가해지는 기이한 힘이 검을 밀어내어 그의 휘두름을 상쇄하고 있는 것이다.
"...전력에 이어서 이제는 자력이냐?”
“공격 몇 번 막고 기고만장 하시더니 이건 예상 못 하셨나봐."
다급히 손에 쥐고 있는 검에서 손을 놓으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린 후.
제 아무리 움직임에 반응할 눈치와 순발력을 지니고 있다 할지라도, 영거리에서 장비도 없이 전격을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파즈즈즈즈즉!!!
양 손에서 타오르는 전격이 그의 몸 속을 헤집었다.
========== 작품 후기 ==========
병원 입원한 상태입니다
이번 편도 병실에서 쓰는 거고...내일 수술하네요. 으어엉.
던부추좀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