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브래이커-53화 (53/251)

<-- 17화. 통로를 지키는 수녀님 -->

정말로 다행스럽게도, 그들을 쫓아온 몬스터는 소연이 쏴죽인 한 마리 뿐이었고, 근처에 다른 몬스터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과 접촉했음에도 몬스터들이 통로를 통해 들이닥치지 않는다는 것은 적어도 이 부근에 몬스터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일 터. 하지만 접촉한 상태에서 위험레벨은 지속적으로 상승하니, 그들과의 대화를 최대한 빠르게 끝마칠 필요가 있었다.

“마호란이라고 합니다~! 직업은 인터넷 BJ고~ 주요 컨텐츠는 노래와 게임, 하지만 게임의 경우엔 영 재주가 없어서 시청자들에게 욕을 먹는 것이 일상입니다!”

괴물에게 쫓기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실성한 듯 웃음을 터트렸던 여자가 언제 그랬냐는 듯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체크무늬의 치마에 멜빵이라는 아이같은 패션센스를 포함해 머리를 양갈래로 땋은 머리카락까지. 마치 유아방송 채널에서 등장하는 여성 진행자 특유의 천진난만함이 물씬 풍겨왔다.

“저 이렇게 보여도 순위권엔 꼬박꼬박 드는 유명 BJ랍니다!! 때로는 상큼발랄, 때로는 귀염 순수, 하지만 진짜 모습은 지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글로벌 스타 아이돌 마호란! 혹시 못 들어보셨........"

“대화는 최대한 간결하게 하라고 말했잖아요. 소개 끝났으면 저리 비켜요.”

“냐악!”

쯧, 하고 혀를 차는 여성이 호란의 몸을 밀쳐내며 강수의 앞에 섰다.

타원형의 안경을 치켜세우는 태도에서 지적이고 똑부러지는 느낌이 돋보이고 있었다.

“안희선이라고 해요. 시내를 돌아다니는 중에 이 정체불명의 공간에 휩쓸렸다가, 이 두 사람이랑 합류하게 돼서 어찌저찌 돌아다니고 있는 처지죠.”

현재의 상황이 못마땅하다는 티를 팍팍 표하고 있는 여자. 다만 태도를 보건데 이 상황을 부정하거나 마냥 겁에 질려있기만 한 것은 아닌 듯 싶었다.

“직업은 어떻게 되시나?”

“...그것까지 말씀해줘야 하나요?”

“생명의 은인한테 너무 빡빡하게 구는구먼.”

“이런 상황인 만큼 만나는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건 이해해줬으면 해요. 여기에 오기 전에도 공격을 받기까지 했고.......”

“공격을 받았다고?”

“네. 여기 오기 전에 원래 가고 있던 길을 가로막고 있는 이상한 녀석한테 공격을 받았어요. 가까이 오면 죽이겠다고 협박까지 했고...무서워서 도망쳤죠. 다행히 쫓아오진 않았지만 가급적 이런 상황인 만큼 뭉쳐 다녀야 할 팔자인데 그 사람은........”

투덜거리는 희선이 다시 강수와 눈을 마주쳤다.

“그것보다...아까 전에 5명이 뭉쳐있으면 위험해진다는 건 진짜인가요?”

“거짓말은 아니야.”

그들과 만나고 난 후 태산과 다윤일행에게 설명해주었던 것처럼 던전에서의 위험수칙을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이유는 당연히 그들과의 물물교환과, 그들이 지니고 있는 정보를 공유하기 위함이었다. 위기에서 구해주기까지 했는데 대놓고 자신들을 습격해올 리 없지 않은가?

하물며 이제 곧 위험이 들이닥치리란 걸 안다면 당연히 조급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처음에 떼거지로 몰려오더라니, 역시 숫자 제한이 있던 건가........”

희선이 강수의 설명에 골머리를 썩듯 자신의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올렸다.

경험을 통해 파악할 수밖에 없는 일을 은연중에 깨달은 것으로 보아 상당히 머리가 잘 돌아가는 여자인 듯싶었다.

희선의 중얼거림을 끝으로 시선을 거둔 강수가 마지막으로 소연에게 넙죽 고개를 숙이고 있는 중년의 남자에게로 다가섰다.

“고맙네! 정말로 고맙네! 자네가 없었다면 난 분명 고깃덩어리가 되었을 거야!.”

“그렇게까지 감사하지 않으셔도 되요. 저도.......”

“내 비록 지금 형편에선 가진 것은 없지만 이 곳을 벗어나면 반드시 자네에게 보답을 하겠네! 반드시 말이네!!”

“........”

소연이 곤란하다는 듯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강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머리털이 반쯤 벗겨진 뚱뚱한 남자가 자신의 손을 부여잡으며 몇 번이고 고개를 숙여대는데 당혹스럽지 않고 배기겠는가?

“부담스럽게 너무 인사하고 그러지 맙시다.”

“...아, 그렇군. 자네에게 인사를 하는 걸 잊고 있었구먼! 나는 서창석이라고 하네. 여기 내 명함을 받게나.”

이런 상황에서까지 명함을 주려고 하는 것으로 보면 사회인으로써의 각인이 뼛속까지 새겨져 있는 듯싶었다.

일단 주는 건 받았지만 그에 감탄을 내뱉거나 하진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어느 대기업의 한 팀을 맡고 있는 부장님이란 직책이 적힌 명함 따위가 아닌, 그들이 지니고 있는 정보와 아이템이었으니까.

“은혜를 갚으실 거라면 일단 인벤토리부터 보여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언제 몬스터들이 몰려올지 모르니 할 일은 바로 끝내는 게 좋을 테니까요.”

“오, 오오...그러도록 하지.”

곧 창석이 강수의 말에 다급함을 느끼며 자신의 주머니에 들어있는 스마트폰을 꺼내들었고, 그에 호란 역시도 곧장 스마트폰을 꺼내들어 강수에게 내세웠다.

“아가씨는 안 보여줄 거야?”

“........”

팔짱을 끼고 있던 희선이 마지못해 자신의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어 강수에게 건네주었다. 일단 자신들을 구해주고 정보까지 건네준 만큼 조금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세 사람의 인벤토리에 시선을 준 강수였지만.......

“이제까지 몬스터들을 잡아본 적이 얼마 안 되나?”

정작 인벤토리를 본 강수의 반응은 영 탐탁치 못한 것이었다.

안에 들어있는 아이템들은 대체로 소모품들 뿐. 양도 그리 많지 않은 편인 것을 보면 이 던전을 돌아다니며 사냥을 통해 물자를 수집한 적이 전무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잖아요. 방금 전에 쫓아온 놈을 포함해서 사람의 손으로 어찌 할 수 없는 괴물들이 넘쳐나는데.”

"능력을 사용해서 싸우는 것도 생각할 수 있었을 텐데."

“하필이면 저희 셋 모두 쓸모없는 능력들 뿐이라서요.”

“쓸모없는 능력이라뇨! 제 능력은 엄청 좋은 능력이거든요! 무시하지 마세요!”

호란이 희선의 눈치에 발끈하며 삿대질을 가했지만 그에 기분 나빠하긴 커녕 마음 속의 깊이만이 심해진 듯 한숨을 내뱉을 뿐이었다.

“노래를 하면 듣는 사람들의 마음이 평온해지는 능력이라니, 그런 걸 대체 어디에 써먹으라는 거예요?”

“제 노래 듣고 희선 씨도 기분 좋아하셨잖아요!”

“네, 그 말대로...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나도 기분 좋게 들어줬겠죠.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거듭 강조하며 자신의 이마를 부여잡는 희선. 이제는 암담하다 못해 울상까지 지을 지경이었다.

“그냥 기분이 좋아지는 능력은 그렇다 쳐요, 그런데 저기 있는 아저씨의 능력은 더 가관인게, 음식의 열량을 높여서 조금만 먹어도 배가 차게 만든다는 이상한 능력이에요.”

“...반박할 수가 없구먼.”

창석이 자신의 품에서 꺼낸 수건으로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아내었다. 그 역시도 이제까지의 경험을 통해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듯싶었다.

“그렇게 말하는 아가씨는 무슨 능력인데?”

“치유요.”

“뭐?”

“말 그대로 치유예요. 상처를 회복시키거나 오염된 부분을 정화하는 그런 거.”

희선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어올리며 강수에게 자신의 정보창을 보여주었다.

버젓이 ‘치유’라고 적혀있는 능력의 설명창에는 ‘대상의 상처를 회복시킨다’라는 글이 버젓이 적혀있었다.

“이 능력 덕분에 크게 다쳐도 죽을 위기는 없죠. 저 두 사람도 몇 번이고 제 능력 덕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니까. 하지만 결국 살려놔도 아무것도 못하고 도망치는 데에만 급급하니 원........”

“히잉.”

희선의 말에 호란이 손을 입가에 올린 채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창석 역시도 면목이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땀을 뻘뻘 흘릴 뿐.

다만 희선의 무시하는 태도에도 따지고 들지 않는 것은 그녀에게 적잖은 죄책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런 듯 보였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계속 같이 다니고 있네.”

“...아무리 짐이 되도 혼자서 다니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마지못해, 라는 느낌을 표출하는 희선이 다시 강수와 눈을 마주쳤다. 투덜대면서도 의외로 그들을 챙겨주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에서 절로 웃음이 그려졌다.

“하다못해 쓸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한 명 끼었다면 좋았을 텐데...운도 지지리 없지.”

“딱히 쓸모없는 능력들은 아닌데?”

“...예?”

강수의 말에 희선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놀리시는 거예요?”

“놀리는 게 아니라...뒤만 받쳐준다면 이 던전 내에서 상당히 쓸 만한 능력들이잖아.”

회복이야 말할 것도 없고,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치명적으로 다가오는 던전이란 공간에선 호란의 능력도 마음에 평온을 가져다주는 만큼 상당히 빛을 바라게 된다.

음식의 열량을 높인다? 장기적인 탐사가 된다면 필수적으로 가지고 다녀야 할 식량의 소비를 줄일 수 있는 능력이라면 단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육체적인 회복능력, 스트레스 관리, 거기다 물자의 보급...세 사람이 지니고 있는 능력들은 모두 강력한 서포팅이라는 장점을 보유하고 있는 능력이다.

“물론 전투능력은 전무해서 셋만 모여 봤자 쓸모는 없지만.”

“결국 쓸모없는 거잖아요! 누구 염장 질러요!?”

강수를 향해 뭐라 따지려 하는 희선의 얼굴에 머지않아 안쓰러움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정말로 같이 다녀줄 수 없는 건가요?”

“무리야.”

동정심마저 엿보일 정도로 가차없는 말이었지만 강수는 그 구원의 요청을 단칼에 거절해버렸다.

당연한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일일이 손을 뻗을 만한 여유도 없고, 그만큼 호의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으니까.

“위험레벨이라는 게 높아져도 저희가 가진 능력으로 두 사람을 서포트하면서 다니면........”

“공교롭게도 나도 서포팅 능력이고, 실질적으로 저 아가씨 한 명한테만 몰빵을 해줘야 한다는 건데, 그럼 너무 부담이 되잖아?”

반쯤은 거짓이지만 반은 진심이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대신해줄 수 있는 동료이지, 서포팅 능력에 더욱 힘을 실어 넣어줄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하다못해 그들 중 한 사람이 빠져 자신들과 합류한다거나, 혹은 자신들 중 한 사람이 그들과 합류하는 것을 따진다면 그들에게 있어선 가장 이상적인 결과를 가져오겠지만........

‘...저 아가씨가 나랑 떨어지길 바라는 건 무리겠지.’

굳이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음에도 ‘확신’을 원한다는 이유에서 자신의 곁에 계속 남아있던 것이 소연이었다.

지금도 그들을 동정어린 눈으로 쳐다보며 적잖은 망설임을 느끼고 있었지만, 섣불리 자신에게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것을 보면 그저 지켜보는 선에서 그칠 듯 싶었다.

하지만 그들과 떨어지고 나면, 그 시선은 결국 미련으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그게 계속 남게 된다는 건 그녀와 함께 다니길 희망하는 강수에게 있어선 곤란한 일이었다.

“같이 다니는 건 무리라도 이 쪽이 바라는 걸 이뤄준다면 쓸 만한 아이템들은 건네줄 수 있는데.”

강수가 곧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장비 아이템들을 꺼내어 바닥에 떨어트렸다.

철제 나이프, 묵직한 공구들, 방어용으로 쓸 수 있는 방패나 견갑 등등.......

하나 둘 씩 자신들의 앞에 떨어지다 끝내 작은 언덕을 이루었을 때 세 사람의 눈이 휘둥그렇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내일 병원에 입원합니다. 5일 정도

5일 동안 히오스를 할 수 없다니, 지옥이다.

그러므로 던부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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