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브래이커-51화 (51/251)

<-- 17화. 통로를 지키는 수녀님 -->

그녀에겐 아직 자신과 동행하고자 하는 계기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 만큼, 자신을 사지로 데려갈 생각을 하고 있는 남자보다도 생존을 위해 출구를 찾기를 바랄 지도 모른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며 질문을 건넸고.

“...아뇨.”

머지않아 침묵 끝에 이어진 것은 부정이었다.

“5명이 초과되지 않는 선에선 많이 뭉쳐다니는 쪽이 생존률이 더 높아. 저 쪽도 약한 집단이 아니라는 건 같이 싸우면서 파악했지?.”

아무리 치유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안정감’은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묘지기보다 더 급이 높은 네임드 몬스터를 마주하게 될 경우 자칫 전멸할 각오조차도 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한 명이라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분명 힘이 되는 일일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마다한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어리석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저는 아직...강수 씨에게 은혜를 다 갚지 못했는걸요.”

“그런 거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잖아. 이런 상황이니까.”

여기서 그녀가 떠난다 해도 원망따윈 안 할 것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무력보다는 각오니까.

미래에 그녀가 자신의 곁에 있어주길 바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미래에 그녀가 보이게 될 모습으로부터 비롯된 그의 예상이었고, 확신 없는 바람일 뿐이다.

그것을 억누르고 자신의 주관을 강요할 정도로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후에 말이 덧붙여지기 전까지는.

“확신을 가지기 전까지는 강수 씨와 함께 다니고 싶어요.”

“무슨 확신?”

“........”

“...설명하기 어려운 거면 굳이 말은 안 해도 돼.”

나름대로 그녀가 자신을 따라오고자 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만 알면 충분한 문제다.

적어도 그녀가 자신과 함께 다니며 ‘각오’를 다질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세 사람...시간 없으니까 최대한 빠르게 요점만 정리해서 설명해줄게.”

“아, 네.”

전리품으로 나온 장비들을 둘러보고 있던 태산이 다급히 강수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머지않아 다시 찾아오게 될 재앙으로부터 도망치고자 그들과 거리를 둬야 할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

헤어지기 전, 강수는 세 사람과 인벤토리를 공유했다.

자신에게 필요한 아이템을 그들에게서 건네받고, 역으로 자신에게 필요 없는 아이템을 건네주어 물물교환을 하기 위함이었다.

다행히도 그들은 주혁의 높은 행운률 덕분에 좋은 장비들을 상당수 보유하고 있었고, 그 중에서 쓸만한 물건들을 선별하여 고른 결과 인벤토리를 고등급의 장비들로 채워넣을 수 있었다.

강수는 그에 대한 대가로 자신들이 지니고 있던 소모품들을 모두 그들에게 건네주었다.

그처럼 회복능력을 지니고 있는 자들에게 있어선 소모품의 가치란 매우 뒤떨어지지만, 별 다른 회복수단이 없는 그들에게 있어선 급낮은 포션이나 식량들의 가치는 높게 평가될 수밖에 없다.

일반인이기 때문에 다룰 수 있는 무기의 수도 한정되어 있다는 것도 큰 이유로써 작용되기도 했다. 써먹지 못할 무기를 달고 다닐 바에야 차라리 다칠 때를 대비하여 상비약을 더 챙겨가는 것이 생존에 있어서 큰 득이 되어줄 테니까.

그런 간단한 교환을 끝마치고 난 후 강수는 헤어지기 전 던전에서 갖추어야 할 철칙들을 여럿 가르쳐주었다.

‘던전에서 붙어다닐 때엔 최대 4명으로, 다른 사람을 만날 때엔 필요한 정보를 교환하고 물물교환을 하는 정도로 그친다. 다만 먼저 다가오는 사람들이 미쳐있거나, 혹은 흑심을 품고 접근해올 가능성도 있으니 사람을 만나면 일단 적의를 가질 필요가 있다. 길을 전혀 모를 때엔 지도의 갱신을 우선으로 염두에 두고 활동하는 게 좋을 것이다. 적어도 이전에 자신이 지나온 길목에 한해선 위험을 방지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도가 아직 갱신되지 않은 상황인 만큼 출구를 찾고자 한다면 외곽부분을 찾기 위해 최대한 일방통행으로 나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모든 철칙들을 하나하나 새겨듣는 그들은 강수를 의심하기보다는 ‘그런 걸 다 파악하며 다니셨군요.’라는 말을 하며 감탄을 내뱉었다.

아마 이전에 보여주었던 전투가 그들에게서 설득력을 얻은 듯 싶었다.

그들에게 조언을 건네고 난 후 강수는 마지막으로 그들이 지니고 있는 스마트폰과 자신의 스마트폰을 조작하여 두 개의 기능을 활성화시켰다.

하나는 지도에 존재하는 ‘지도전송’기능이었다. 자신이 이제까지 지나온 길목의 데이터를 타인에게 전가하는 능력이다.

던전에서는 자신이 지나온 길목들의 길과 방의 형태를 모두 기록할 수 있지만, 지나가지 않은 곳은 어디로 이어지는지, 목표로 하는 지점이 어디에 있는지, 그 지점을 어느 곳을 통해 갈 수 있는지를 전혀 알 수 없게 되어있다.

때문에 생존자들을 만날 때면 자신들이 이제껏 지나온 길목들에 대해서 공유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후 그들이 지나온 길목에 들어설 때 자칫 있을 지도 모르는 위험에 대비할 필요가 있으니 말이다.

그들은 강수와 소연보다는 적은 수의 방을 돌았고, 그마저도 살기에만 급급한 나머지 분별없이 돌아다닌 티가 팍팍 드러났는지 이동궤적에 겉도는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건 그 방 중에서 자신들처럼 ‘몬스터 룸’을 포함해 위험 종류의 방을 마주한 적은 거의 없다는 것일까. 새삼 자신들의 운이 얼마나 없는지를 실감하게 된 순간이었다.

이후 그들과의 지도공유를 끝마치고 난 후 다음으로 한 것은 ‘그룹기능의 활성화’였다.‘

“그룹기능?”

“써본 적 없나?”

“아뇨, 쓰긴 했어요. 일단 다윤씨랑 주혁 어르신들과 함께........”

“앞으로 사용을 할 때엔 자기랑 ‘떨어져서 지내는 사람들’과 그룹을 지정하는 게 좋을 거야.”

그룹기능은 각 생존자들이 지니고 있는 스마트폰에 연결고리를 만들어내는 기능이다.

이 기능을 활성화해둘 시, 그룹으로 지정된 사람들은 서로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맵을 통해서 서로의 위치를 간접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가능해지며, 그들이 지나온 길목의 궤적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또한 한정적이지만 짧게 메시지를 나눔으로써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 횟수는 서로 다시 만나게 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3번’으로 한정되어 있지만, 위치가 표기되는 그룹으로 지정해둔 사람들에게 SOS를 보내거나 탐색지점으로 먼저 보내어 무엇이 있는지를 미리 확인하는 게 기능해진 것이다.

던전에만 있다면 그 어디에 있더라도 효과가 발휘되는 만큼, 같이 붙어 다니는 사람보다는 앞으로 헤어지게 될 사람에게 사용하는 편이 더 득이 되는 기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문자를 보낼 때엔 최대한 신중하게 써. 쓸 수 있는 글자 수도 한계가 있으니까 간결하고 핵심만 담아서...추천할 것은 위험한 상황에 이르렀거나 출구를 발견했을 때야. 우리 쪽도 출구를 발견하면 바로 문자를 보내줄게. 위치가 공유되는 만큼 길만 잘 찾는다면 어렵지 않게 올 수 있을 거야.”

끝내 작별을 앞두고 통로 앞에선 강수가 세 사람 중 리더격에 해당하는 태산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마음 같아선 그 쪽이랑 함께 다니고 싶었는데 같이 있으면 위험이 더 커져버리니 아쉽게 됐어.”

“아뇨, 괜찮습니다. 오히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도움을 받았는걸요.”

곧 태산이 양 손을 가로젓고는 강수의 앞에서 경례를 취했다.

“그럼 강수씨, 소연씨. 이후에 다시 살아서 만나길 빌겠습니다.”

“...소방관이 경례도 하던가?”

"이건 던전에서 상자에 나온 물건들입니다. 사실 제대한 직후라 아직 사회적응이 안 된 감도 있고.........”

“........”

불행이라는 게 세삼 적성수치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다시 실감하게 된 순간이었다.

“조심해서 가게나 젊은이.”

“어르신도 두 사람 잘 부탁드립니다.”

“허허, 나야 딸려가는 입장이니 내가 더 신세를 끼칠 것 같지만 뭐, 자네의 부탁이니 내 최선을 다해보겠네.”

인자한 웃음을 뒤로하며 강수와 소연은 세 사람에게서 등을 돌렸다.

통로를 들어서고 얼마 쯤의 시간이 지나자 그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좋은 사람들이었지?”

그들이 사라지자마자 입에 담배를 문 강수가 나란히 걷는 소연에게 눈짓을 하며 말했다.

그 말에 소연이 의외인 듯 강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만나기 전부터 그 사람들을 알고 있었나요?”

“굳이 따지자면, 예전에 도움을 좀 받았다고 해야 할까?”

“도움이요?”

“그런 게 있어.”

강수의 의미심장한 말에 소연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지만, 정작 강수는 태연히 웃음을 지으며 담배를 태워갈 뿐이었다.

‘그 구조대 커플을 바로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던전이 처음 생겨나고 상당한 시간이 흐를 무렵, 던전이란 환경에 익숙해진 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던전으로 자진해서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그 이익이 마냥 명예와 돈만이 있던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대의’를 위해, 혹은 사회의 안전을 위해 힘을 기울이는 자들이었다.

태산과 다윤, 두 사람은 최초의 던전에 휩쓸린 생존자들이자, 던전이란 험악한 공간을 전진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구해온 ‘구조대’였다. 고립되어 죽었어야 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손에 의해 목숨을 부지했고, 세간에서는 태산과 다윤을 ‘영웅’으로 칭송하기까지 했었다.

적어도 사회라는 틀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후보에는 올려두는 게 낫겠지?’

던전이 출몰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구조활동에 뛰어들 정도로 정의감이 깊은 사람들이다. 두 사람이 함께 보스 몬스터를 처치할 동료로써 받아들여진다면 분명 든든해질 것이다.

‘두 사람이 들어온다고 전제를 하면 앞으로 남은 건 한 명........’

입에 담배를 슬며시 떨어트린 강수가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굳혀갔다.

[이, 이봐. 너 대체...어딜 가는 거야? 출구는 저 쪽이라고!]

[갈 거면 그 쪽이나 가. 난 아직 여기서 할 일이 남아있으니까.]

“........”

희미하게 남아있는 잔상을 떠올린 그가 조용히 담배연기를 내뱉었다.

자그마치 15년 전이다. 그 때 당시의 그는 미숙했고, 도망치기에 급급할 뿐인 나약한 인간에 불과했던 몸. 당연한 것이지만 몬스터들과 직접적으로 싸울 생각 따윈 하지 못했다.

그런 그와는 반대로 죽지 못해 안달이 났었던 자가 이 시간대엔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만날 수 있으려나.’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과거로 돌아온 만큼 그 때의 일이 조금씩이나마 생생히 떠오르고 있었다.

출구를 앞두고 다시 던전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소식이 끊어졌던 ‘수녀복의 생존자’와 말이다.

========== 작품 후기 ==========

부산 여행 다녀왔습니다! 즐거웠습니다!

근데 모래 병원입원함! 존나씡난다 씌발!!!

불쌍하니까 추천 좀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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