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브래이커-39화 (39/251)

<-- 13화. 그대의 무덤을 이 손으로 짓뭉개리라 -->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존재해야 하는 두 눈은 뽑혀나가 피눈물만을 흘리고 있었다. 그 속에는 공허함만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마주한 이에게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데엔 부족함이 없었다.

“...생각보다 엄청난 게 나와 주셨군. 이렇게 일 빨리 터질 줄 알았으면 팀플레이도 연습해둘 걸 그랬는데.”

비석을 깨고 나온 존재에게 전율을 느끼면서도, 몸을 짓누르는 감각을 쓴웃음으로 무마시킨 강수가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을 소연에게 던져주었다.

“강수씨, 이건 왜...?”

“거기에 지시사항 적어뒀어.”

태연히 말한 강수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내버리며 가면으로 얼굴을 포개었다.

그는 네임드 몬스터가 등장하기 전의 시간 동안 소연에게 가르쳐줄 지시사항을 바쁘게 스마트폰에 적고 있었다.

아무리 이해력이 높다 하더라도 네임드 몬스터를 상대하는 데에 필요한 지시사항은 상당히 많고, 그것은 말로 설명하는 것은 설명하는 쪽도 알아듣는 쪽도 매우 고된 일이니까.

차라리 자신이 탐색전을 이어가는 동안 지시사항을 읽으며 ‘뒷공작’을 벌이는 편이 나을 것이다.

“내가 시간 끄는 동안 거기에 적혀있는 일 그대로 하고, 준비 다 됐으면 신호해, 알았지?”

“........”

강수의 말에 소연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서 물러났다.

그 직후.

-크오오오오오아아아아아아아아!!!

괴성을 내지르는 거인이 손에 쥐고 있는 묵직한 삽을 들어올리며 강수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등 뒤에 돋아나있는 수 십 개의 손이 묘지기의 움직임에 맞춰 공기를 찢어발기듯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그 흉측한 모습의 돌진을 주시하던 강수가 이를 질끈 깨물며 자리에서 몸을 물렸다.

-콰앙!

삽이 땅에 처박히며 굉음을 터트렸다. 사방으로 튀어오르는 흙과 파편, 그 속을 누비는 강수가 손에 쥐고 있는 갈고리로 빠르게 그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까극!

살이 찢어지는 것이 아닌, 단단한 찰흙에 처박힌 것 같은 느낌이 손잡이를 타고 전해져왔다.

직접 공격을 가하면 내부까지 박아넣을 수 있겠지만, 지금의 공격은 어디까지나 탐색용이다. 이런 무지막지한 괴물에게 얄팍한 공격을 가하며 데미지를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쿠드득, 콰가강!

그대로 땅에 박힌 삽을 들어올리며 사방으로 흙을 퍼트렸다. 그 공세를 피하며 몸을 굴리던 와중, 머지않아 허공으로 들어올려진 삽의 끝자락이 자신에게로 겨누어진 것을 직시했다.

-까강, 카각!!

빠르게 휘둘러지는 삽을 상대로 갈고리를 휘둘렀다. 스치듯이 치고 지나간 갈고리의 힘이 삽의 궤적을 변형시켜 옆으로 튕겨나가게 했다.

그대로 몸을 회전시키며 묘지기의 옆으로 다가선 강수의 갈고리가 빠르게 허리춤을 가르고 지나갔다. 허리의 끝자락의 살에 박힌 갈고리는 당겨지는 힘에 의해 가죽과 살을 뜯어내며 피를 퍼트렸다.

바닥에 흩뿌려지는 거무죽죽한 혈액. 썩었다기보다는 혈액에 섞인 약물의 농도가 너무 진하기에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그 상처부위가 머지않아 빠른 속도로 재생되어가는 것이 가면의 좁은 틈 사이로 강수의 눈에 들어왔다.

‘재생력도 가지고 있고...이크.’

상처부위를 눈여겨보고 있자 등 부분에 돋아난 손들이 일제히 자신에게로 향해진 것을 눈치 챘다. 황급히 뒤로 물러서자 방금 전까지 자신이 있던 부분으로 뻗어진 손들이 공기를 쥐어짜내듯 틀어쥐어졌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힘이 실린 손들이 하나 둘도 아닌 수 십 개...고슴도치의 가시마냥 돋아난 그것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자아를 가진 것처럼 기묘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신경반응...근처에 다가서면 바로 잡는 건가.’

후방으로 접근할 경우 손들이 반사적으로 손을 움직인다. 옆으로 지나쳐도 사정거리에 들어설 정도인데, 뒤에서 배후를 노린다면 수 십 개의 손에 붙잡히게 될 것이다.

손 하나하나가 지니고 있는 괴력이 삽자루를 틀어쥐고 있는 광인이 발휘하는 힘과 동등하다고 한다면, 그저 잡히는 것만으로 사지가 찢겨져 나갈 각오를 해야만 할 것이다.

-그와아아아아아아악!!!

또 다시 괴성이 울려 퍼지고, 거인의 손에 쥐어진 육중한 삽이 휘둘러지기 시작했다.

거센 힘과 그 속에서 우러나오는 빠른 속도. 거구를 지니고있는데다 등 뒤에 손이 돋아나 균형이 불안정한 몸에서 나오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속도와 연계였다.

하지만 결국에는 광기에 침식된 이성에서부터 우러나온 분별 없는 휘두름. 기술이라는 것이 전혀 없는 단조로운 공격은 아무리 압도적인 힘이 있다 하더라도 피하기가 어렵지 않다.

‘패턴은 충분히 파악했고.......’

연이어 휘둘러지는 삽이 대지를 부수고, 그곳에 심겨져 있는 뿌리들을 들추어내며 산산이 조각을 흩뿌렸다.

튀어 오르는 파편 속을 누비는 강수가 갈고리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실어 넣으며 눈을 치켜세웠다.

-스각!

절묘한 순간 휘둘러지는 갈고리가 삽을 쥐고 있는 묘지기의 손을 갈라내었다. 끈적한 피가 사방으로 튀어 오르고, 두터운 손가락 중 하나가 추락해 바닥에 떨어졌다.

한 순간 불안정해진 삽의 휘두름. 그것을 가벼이 피해낸 강수가 묘지기의 품 안으로 들어가 갈고리를 휘두를 준비를 취했다.

-꾸르륵, 그르륵.

그 순간 가슴팍에 새겨져 있는 충혈된 눈의 안구가 강수가 있는 쪽으로 향해졌다.

이미 그 눈의 존재를 염두에 두고 있던 강수는 충혈된 눈의 시각에서 벗어나고자 빠르게 몸을 틀었다.

-콰앙!

휘둘러진 삽이 바닥을 내리찍으며 굉음을 터트렸다.

그 공격으로부터 벗어난 강수는 몸을 낮춘 채 묘지기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피눈물이 흐르고 있는 두 개의 눈을 대신한 가슴팍에 달려있는 거대한 눈. 이제까지의 전투에서 충혈된 눈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으며, 그 방향은 정확히 묘지기가 표적으로 삼는 강수에게로 향해져 있었다.

그 충혈된 눈이 안쪽으로 파고들은 순간 협소하게 변했고, 그 순간 묘지기의 움직임에 다급함이 생겨났다.

가슴팍의 눈이야말로 묘지기의 시각을 책임지는 요소. 이런 저런 실험을 벌여 만들어진 육체인 만큼 상상을 초월한 변화가 일어나도 이상할 것 없지만, 시신경이 위치한 곳은 대개 급소와 연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머리는 장식, 상대적으로 강한 만큼 약점을 공략하며 전투를 벌인다면 몸통 쪽을 노려야만 한다.

‘배후는 손들이 엮여있어서 힘들고, 정면은....저걸 어떻게 파고들라는 건지 원.’

거리를 벌리며 묘지기의 간을 보고 있자, 이제까지 빠르게 접근해오는 묘지기가 양 손을 한데 모아 자세를 잡고 있는 것이 강수의 눈에 들어왔다.

표면만을 보면 광기가 사라지고 이성을 바로잡아 견제행동을 취하는 것 같지만, 강수는 그것이 ‘이후에 벌어질 위험한 일’의 신호임을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나는, 왕을 막지 못했다.

피눈물이 흐르는 묘지기의 입에서 내뱉어지는 것은 괴성이 아닌 원통함이 서린 목소리.

그에 반응하듯 묘지기의 삽이 붕괴시킨 대지에서 무언가가 하나 둘 씩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슬픔을 이해했을 뿐, 슬픔에 침식되어 생겨나는 광기는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죽었고, 그들의 안식은 끝내 내 손에 처참히 붕괴되었다.

흙을 파헤치며 솟아오르는 손, 그로부터 시작하며 땅에서 자라나듯 무언가가 빠르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반쯤 썩어버려 백골이 드러날 정도의 흉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 시체들이 강력한 힘에 의해 으깨지고, 비틀리고, 사지가 분질러져 있다.

인간이라기보다는 석고로 만들어진 조형물에 썩은 고기를 엉겨붙은 것 같은 생김새의 추악한 괴물들.

-내 손에 으스러진 그들의 육신...그대는 그 속에 깃들은 원망을 잠재워줄 수 있는가?

그의 비탄에 반응하듯 땅에서 자라난 괴인들이 강수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와아아....크와아아아아악!

괴성을 내지르며 접근해오는 시체들. 늘어지는 몸과는 달리 상당히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뒤로 물러서고, 다가오는 녀석들을 갈고리로 베어내며 쓰러트리자, 주변에 엉겨붙은 살이 잘려나간 부분을 수복시키는 것이 강수의 눈에 들어왔다.

재생보다는 결손된 부위의 충전...그런 표현이 어울렸지만, 중요한 것은 공격을 하더라도 당장 그들의 돌진을 저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아주 가지가지하는군.”

이를 질끈 깨문 강수가 가면을 고쳐쓰며 자신의 몸에 힘을 실어 넣었다.

비록 쇠사슬이 끊어졌지만 저주템이 지니고 있는 연관치 자체는 남아있다. 광대의 가면과 더불어 부정한 피를 머금은 쇠사슬이 발휘하는 순발력. 그리고 그에 영향을 받는 매우 높음에 해당하는 순발력.

그 모든 것은 다가오는 모든 괴인들의 공격의 사정권으로부터 교묘히 벗어나게 만드는 데엔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다.

-슈학! 서걱, 스카각!

그들의 손짓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내고, 교차를 이루는 갈고리는 그들의 목과 사지를 재빠르게 갈라내며 다음 표적으로 나아갔다.

순식간에 절반을 갈라내고, 피와 살이 퍼져나가는 향연 속을 나아간 강수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다가서는 시체들로부터 벗어나 전방에 들어선 그림자로 향해졌다.

-슈학! 서걱, 스카각!

그들의 손짓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내고, 교차를 이루는 갈고리는 그들의 목과 사지를 재빠르게 갈라내며 다음 표적으로 나아갔다.

‘소환 자체는 별 거 없어. 문제는 저 쪽...!!’

피와 살이 퍼져나가는 향연 속을 나아간 강수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다가서는 시체들로부터 벗어나 전방에 들어선 그림자로 향해졌다.

땅에서 치솟아 오른 썩어버린 망자들의 사이에 군림한 묘지기는 자신의 거구를 움직였고, 그 과정에서 등에 돋아난 손의 옆을 지나친 망자들은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손에 붙잡혀 버렸다.

그 순간 손과 등을 연결짓는 연결부위가 끊어지고, 손에 붙잡힌 망자들의 몸이 바닥에 고꾸라졌다.

-나는 죄인이오, 그대들은 내가 저지른 죄악의 증거로다. 나의 육신은 그 속죄를 위한 제물, 이 자리에서 피를 바쳐 그대들의 일그러진 안식을 바로 잡으리라...!

-꾸드득, 드득.

몸을 감싸쥐고 있는 손의 살이 그들의 썩어버린 몸에 스며들어 살을 돋아나게 만들었다.

한 순간 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에서부터 언데드와 유사한 인간의 형체로...다만 그가 알고 있는 언데드들과는 달리, 되살아난 이들의 눈에는 광기가 서려있었다.

-그와아....크와아아아악!!!

검게 충혈된 눈이 강수에게로 겨누어지며, 그들의 날카롭게 갈린 손톱이 허공을 갈라내기 시작했다.

빠르고 강력하다. 크기는 작지만, 언데드들 중 상대하기 껄끄러운 부류에 해당하는 ‘구울’과 맘먹는 전투력을 지니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런 녀석이 한 둘도 아닌, 지나치는 과정에서 등 뒤에 돋아난 손에 잡힌 모든 언데드들이 변화하는 상황.

‘소환 이후의 강화 패턴이 위험한 거였나.......’

그들의 손을 갈고리로 내쳤지만 차단되는 것은 잘려나간 손 뿐. 그들의 공세를 막아내기엔 갈고리는 너무나도 작은 무기였다.

“강수씨!”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기다렸다는 듯이 강수의 손이 허공으로 들려지기 시작했다.

“딱 좋은 타이밍이야!”

활짝 펼쳐진 손바닥에 곧장 생겨나기 시작하는 붉은 점. 멀리서 상황을 보고 있던 소연이 강수의 지시사항대로 능력을 사용한 것이다.

-키야아아악!!

달려드는 시체들의 괴성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그들의 사이를 빠르게 가로질러 포위를 벗어난 강수가 공중으로 도약을 가하며 날아드는 것을 손으로 붙잡았다.

이전에 소연에게 건네주었던 스마트폰. 그 화면에는 이전까지 강수가 상대하고 있던 묘지기의 정보가 세세히 표시되어 있었다.

네임드 몬스터는 일반 몬스터와는 달리 확인 기능을 사용해도 정보가 바로바로 갱신되지 않는다. 때문에 강수는 소연에게 필요한 준비와 더불어 묘지기의 정보를 갱신하기 위한 시간을 벌어준 것이다.

“말씀하신 대로 준비 끝났어요.”

멀리서 쇠뇌에 화살을 장전하고 있는 소연. 이제까지의 전투로 인해 묘지기의 사정권 바깥으로 벗어난 소연은 당장 강수의 주변에 존재하는 적들을 향해 화살을 겨눌 준비를 취하고 있었다.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소연에게서 시선을 거둔 강수는 곧장 인벤토리를 활성화시켜 안에 들어있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내보내었다.

“탐색전도 끝났으니 슬슬 본격적으로 나가보자고.”

허공에서 생겨나 바닥에 추락하는 수많은 철제 장비들.

그 중 하나를 주워든 강수가 묘지기를 향해 살의를 퍼트리며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추천하면 upper respiratory tract infection(감기) 치료됨.

작가가.

주말에 감기 걸려서 죽을 거 같다. 내일 출근인데 찌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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