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덧 없는 사죄 -->
미쳐 돌아가는 세계에서 강수는 유일하게 미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은 방관자였고, 그와 동시에 그들 이상으로 인간의 길을 벗어난 짓을 수 없이 저질러온 자였다.
자신을 방해하는 자들을 죽이고 나아가다보니, 어느 샌가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이 익숙해져 있었다.
끝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이 죽고, 자신만이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을 때에도 그는 자신을 방해하는 인간이 나타난다면 언제든 죽일 수 있는 각오가 되어있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것을 이루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과거로 돌아온 지금은 어떨까?
이제껏 수많은 죄를 지절렀지만 그것이 과거로 돌아오며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이 시간대의 사람들은 그가 세계를 멸망시키고자 수 많은 참상을 만들고 거닐어온 자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어쩔 수 없다, 자신에게 필요한 일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며 자신의 일을 정당화시킨 자가 과거로 돌아와 안락과 평안을 추구하는 것은 안 되는 걸까?
그것이 얄팍한 생각이었다는 것을 한 번의 방심을 통해 직시하게 되었다.
아무리 ‘씨앗’에 불과한 작은 재앙이라 하더라도, 결국 이곳이 지옥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아직 재앙을 막아세울 정도의 힘도 없는 미숙한 녀석이 여유를 부리며 눈앞에 있는 적을 살려두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이 시간대엔 지켜야 할 것이 존재하는 만큼 더더욱.
설령 자신이 손에 피를 묻히고,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손에 묻어나있는 피를 본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이 비극의 굴레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야 한다는, 그 확고한 결의가 소연의 말을 들은 순간 아주 약간 흐트러져버렸다.
“염병....”
이를 질끈 깨물며 자신의 갈고리를 쥐고 있는 팔을 움켜쥐었다. 혼란스러움이 가증될수록 심해지는 자해욕구, 소연의 말에 동요를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아무리 저희를 습격했다 해도, 그는 이제까지의 몬스터와는 달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연은 거듭해서 강수를 만류했고, 그를 들을수록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비명은 더욱 커져가는 것을 느꼈다.
“죽이는 순간 손을 더럽히게 되는 거예요. 아무리 이런 공간이라 해도 강수씨도 그걸 알고 있으시니까........”
“아무것도 모르면서 떠들어대지 마.”
점차 거세져가는 팔의 떨림을 억제하려들며 소연을 향해 무거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내 꼴을 봐. 고작 한 대 맞은 것만으로 이 지경이 된 건데...만약 이 주먹이 그쪽에 휘둘러졌어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흐트러진 옷 사이로 흐르는 피는 충격으로 인해 쥐어터진 살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었다. 사지는 멀쩡하지만 온 몸의 관절은 욱신거리고, 내상은 체내에서부터 극심한 고통을 유발하고 있다.
그걸 견뎌낼 수는 있어도 위화감은 쉽게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이렇게 있는 것도 충격이 아직 남아있어서 그런 것뿐이야. 회복되면 언제든 다시 일어나서 우릴 습격할 거라고. 설마 그냥 살려만 두고 자릴 벗어나면 그만이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안일한 생각이다. 광인이라는 것들은 정신만 나갔을 뿐이지, 던전에 들어온 인간들과 동일한 성질을 띠고 있다.
몬스터들과 접전을 벌이며 성장을 하고 장비도 습득 가능한 이들은 배회하는 몬스터들처럼 떠돌아다니며, 그들 이상으로 다른 생존자들에게 위험이 된다.
죽이지 않으면 이로 인해 다른 희생자가 생겨나는 것이다.
던전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그렇게 한다면야 당장은 위험해도 케어를 통해 어떻게든 정신을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외부에는 던전 내부에서처럼 당사자의 정신을 급격히 붕괴시킬 만한 요소들이 없으니까.
하지만 그건 지금으로썬 실현할 수 없는 이야기다. 출구조차도 발견하지 못하고, 자기 몸 하나 간수하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녀석들이 미쳐버린 광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간다니.......
“...그 쪽은 영리하니까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잘못 생각했나보군.”
“.......”
강수의 말에 숨을 굳힌 소연이 이내 시선을 거두고 말았다.
목 부분에서 느껴지는 먹먹함을 토해 내려는 듯 몸에 들어가는 힘이 끝내 가냘픈 손가락을 움켜쥐게 만들었다.
“강수씨는, 이런 일에 익숙하신 건가요?”
끝내 이어지는 존재성을 의심하는 질문에 강수의 표정이 다시 구겨졌다.
“익숙하고 자시고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이 상황은 두렵게 느껴질 거예요!”
강수의 말을 잘라낸 소연이 다급히 그를 향해 외쳤다.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절박함이 서린 목소리가 공간 내에 울려 퍼졌다.
“영문도 모른 채 이곳에 끌려와서...생존을 강요당하는 상황이에요. 초능력 같은 것도 생겨나고...정보를 확인하거나 성장을 하는 비현실적인 일도 일어나고...저도 처음에는 이 상황이 꿈이 아닐까 생각을 했어요. 제 앞에서 사람이 죽기 전까지는........”
자신을 마주하기 전에 보았던 참상을 기억해낸 소연의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일반적으로 지독한 악몽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그것을 통해 소연은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것을 맨정신으로 버텨내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간인 만큼 공포는 어디에나 존재했으며, 그것은 언제나 그녀가 느끼고 있는 냉정을 붕괴시켜가려 했다.
“하지만 강수씨는 이 비현실적인 상황을 이해하려 드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익숙한 듯이 행동해 왔어요."
그것을 고수하려 들었던 만큼 눈앞에 있는 존재로부터 느껴지는 이질감은 확실히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요? 일개 회사원이라고 했으면서, 이런 공간에서 괴물들을 하는 것도, 이 이질적인 공간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도........”
애초에 얼버무림 식의 변명...그걸로 완벽하게 설득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하물며 이제껏 자신의 예상을 훌쩍 넘을 정도의 판단력과 눈치를 보였던 여자...자신이 평범한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할 것이다.
“대체 이 던전이라는 공간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시는 거죠? 당신은 여기에 휩쓸리기 전에 어떤 일을 겪으셨기에........”
불안이 서린 눈으로 강수를 마주한 소연의 입에서 의심이 내뱉어지고, 서서히 그 시선에 공포라는 감정이 서리기 시작했을 때.
-꾸드득, 드드득. 구극.
기이한 소음과 함께 바닥에 쓰러져 있는 광인의 몸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
갑작스러운 변화에 다급히 체중을 실어 억누르려 했지만, 그 전에 광인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먼저였다.
-퍼엉!
부풀어오른 근육에 고여있던 무언가가 뿜어져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강렬한 열기를 내포하고 있는 그것은 체내에 존재하는 수분이 증발하여 나온 증기였다.
‘이 자식...특성을...!’
증기에 휩쓸린 강수의 몸이 자리에서 튕겨져 나갔다.
끝내 자유로운 몸이 된 광인은 이전에 가해졌던 충격에서 벗어나, 자신의 흉해진 몸을 전방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리는 표적은 이전에 자신이 잡아채어 쓰러트리려 했던 소연. 피하려 했지만 갑작스럽게 이어지는 습격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크흑!”
그대로 소연의 몸이 광인의 손에 잡혀 바닥에 쓰러지고, 바닥에 내쳐진 소연의 목이 광인의 양 손에 붙잡혔다.
이전에 몸에서 일으킨 폭발의 영향 때문일까? 부풀어 오른 근육이 쪼그라들고, 폭발이 일어난 부분의 살은 파열되어 피를 퍼트리고 있다.
근육이 망가진 상태에서 표식으로 인한 '2단계'의 육체능력 상실까지 겪은 광인은 이전처럼 압도적인 힘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손아귀에 들어가는 힘엔 거리낌이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광인은 이제까지와 다를 바 없는 광기가 서린 웃음을 소연에게로 향한 채 자신의 양 손에 힘을 실어넣길 반복했다.
“에, 흐....하, 크....카학......하하하.......!”
비릿한 피와 침이 엮인 액체가 소연의 얼굴에 떨어져 내렸지만, 불결한 기운보다도 목에서 느껴지는 힘이 그녀에게 더욱 위협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힘이 실리면 실릴수록 수명이 앞당겨져가는 것을 느낀다. 죄여지는 목으로나마 억지로 숨을 쉬려는 소연이었지만, 뇌에 산소와 피가 공급되지 않은 영향으로 인해 몸에서 힘이 빠지고 시야가 흐려져가고 있었다.
“그, 으.....흑.......!”
힘겨이 부들거리는 손으로 목을 움켜쥐고 있는 양 손을 붙잡았다.
그것으로는 목을 죄이는 손을 내치는 것도, 힘을 억누르는 것도 불가능했지만, 그녀의 손짓에는 미약하게나마 간절함이 존재하고 있었다.
아무리 정신이 나갔더라도 하다못해 인간이라면........
그러한 기대가 마음 속에서 떠올랐을 무렵.
“......시.....어.”
이제까지와는 다른 희미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들려오고, 목을 죄고 있는 손에서 미약하게 힘이 풀려났다.
아주 잠깐, 흐릿했던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오며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는 광인의 모습이 훤히 들어왔다.
목을 조르는 힘도, 광기가 서린 웃음도 모두 그대로였지만, 이전과는 다른 차이가 존재하고 있었다.
“더, 이.....사은.....시러.......그만.........”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기 전.
끝내 자신을 죽이려 든 광인의 얼굴이 선홍빛으로 물들어져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시간이 멈춰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시야를 물들인 붉은 색이 갈라져 서서히 세상의 모습이 다시 드러나기 시작했다.
먹구름에 가려져 희미한 달빛만이 만연한 어두운 하늘, 그 속을 포개고 있는 높은 벽.
그리고 그 사이를 가리고 있는 피묻은 갈고리.
이전까지 자신의 시야를 차지하고 있던 광인의 얼굴 따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철퍽.
잘려나간 목에서 치솟아 오르는 피가 얼굴에 흩뿌려졌다.
끈적한 액이 피부를 타고 스며들었음을 느꼈을 때 몸이 얼어붙기라도 하듯 떨림이 멈춰졌다.
고작 액체일 뿐이다. 이제까지 몬스터들을 사냥했을
하지만 몸에 묻어난 피는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다.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속에서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여기에 휩쓸리기 전에 무슨 일을 겪었냐고?”
선혈이 낭자한 작은 세계의 중심에서 무거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광인의 몸에 포개어진 소연은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 남자를 초점 잃은 눈으로 쳐다보았다.
“만약 내가 손을 쓰지 않았다면, 아가씨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알 기회를 영영 잃어버렸을 거야.”
자신과 마찬가지로 피칠갑이 되어있음에도 그는 태연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알고 싶다면 설명해줄 수 있어. 내가 누구고, 이 던전이란 공간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다........”
끝내 목을 잘라낸 갈고리마저 놓아버린 그의 피묻은 손이 시체의 품으로 뻗어졌다.
그 행동이, 마치 필요에 의한 절박함이 아닌 ‘익숙함’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았을 때, 소연은 눈앞에 있는 남자가 하는 말에 서린 무게를 눈치 채었다.
“...정말로 알고 싶어?”
‘감당할 수 있겠어?’
마치 자신을 시험하는 것 같은 말. 그에 소연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끝내 고개를 땅으로 늘어트리고 말았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직도 그에게서 느끼고 있는 의문은 사라진 것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 뒤에 이어져올 무게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으니까.
침착도 냉정도 모두 잃어버린 채, 소연은 감정을 이겨내지 못한 채 힘겨이 숨을 내뱉었다.
“...제가, 잘못한 건가요?”
죄책도 후회도 아니다.
이런 일에 휘말려 이런 일을 겪게 되었다는, 그저 억울함에 사무친 비탄일 뿐이었다.
“잘못된, 일은...하고 싶지 않다고...이런 상황에서 그런 마음을 품은 게 잘못된 건가요?”
그 비탄의 방향이 자신에게로 향해졌을 때, 비정한 남자는 남자의 품에 들어있는 것들을 빼들며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잘못된 거 하나도 없어.”
시체의 품에서 꺼낸 것은 스마트폰과 지갑이었다. 피묻은 스마트폰을 자신의 스마트폰과 맞대며 조작을 한 그는 태연히 중얼거리며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을 내쳐버렸다.
“이런 곳에 휩쓸리게 된 것도, 손에 피를 묻히게 된 것도...그저 운이 없어서 그런 것뿐이야.”
방금 전까지 기동하던 스마트폰은 끝내 사용자의 사망으로 인해 사용시간이 초과되어 전원이 나가고 말았다.
하지만 지갑에 들어있는 것은 남아있다. 강수는 그 안에 들어있는 신분증을 빼들며 조용히 입에 담배를 물었다.
“하지만 아무리 운이 없어도 이곳에선 여유를 부리는 건 사치야. 죽기 싫으면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어."
신분증이 떨어진 지갑을 바닥에 내쳐버린 강수가 언제부터인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세운 소연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말에도 불구하고, 소연은 이전까지 자신을 죽이려 들었던 시체의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고 있을 뿐.
충격으로 인해 냉정을 잃어버린 그녀는 이제껏 억누르고 있던 울분을 소리를 죽인 채 내뱉었다.
“...미안해요.”
피로 버무려진 손에 흘러내리는 자그마한 물방울.
“미안해요, 정말로....미안해요........”
“........”
그것은 누구에게 하는 사과일까.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고 설교를 늘어놓으려 했던 남자에게?
어느 쪽이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무의미한 넋두리에 불과할 뿐이다.
목이 잘려나간 인간은 그가 죽이기 전부터 구제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고, 자신은 그런 그들을 죽이는 것이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자였으니까.
설령 그것이 이 환경에 익숙해지지 못해 일을 그르칠 뻔 한 자신에 대한 사죄라 하더라도, 그것이 덧없는 사죄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렇게 울고 있는 나약하고 인간다운 여자도, 언젠가 이 던전이란 공간에 적응하게 되리란 걸 알고 있었으니까.
“...역시 익숙해지질 않아. 이 엿 같은 공간은.”
씁쓸한 중얼거림과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지핀 라이터의 불빛이 담배의 끝을 태웠다.
독한 연기가 폐를 가득 채우는 감각이 몸을 엄습해왔다.
========== 작품 후기 ==========
던부추 플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