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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브래이커-28화 (28/251)

<-- 10화. 덧 없는 사죄 -->

무뎌진 밸런스가 더욱 크게 기울어지며 고개가 뒤쪽으로 쏠려나갔다.

“크힉, 케헥........”

광기에 침식된 정신이 연이은 타격에 의해 무참히 붕괴되어가고 시야를 격변시켜간다.

물리적인 공격이 가면에 의해 내성을 가진다 하더라도 타격에 의한 충격은 고스란히 내부에 전해진다. 피해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일 터.

“크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에 위기감이라도 느낀 것일까?

곧 읏음을 거둔 광인의 입에서 격노가 터져 나오고 격하게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억지로 몸을 움직이자 관절에 박혀있는 단검이 삐걱이고, 어깨죽지를 찌르고 들어간 갈고리는 근육을 더욱 깊숙이 파고들어 어깨를 반쯤 갈라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결국 강수의 눈에는 처절한 발버둥으로 보일 뿐.

-투파악!

연이어 가해진 둔기의 충격은 끝내 그의 안면을 감싸 쥐고 있는 가면을 붕괴시켜 산산조각 내버렸다.

안면을 지키는 보호구는 망가트렸다. 남은 것은 그가 무기력하게 변할 때까지 안면을 몇 번이고 가격하는 것 뿐.

그를 시행시키고자 둔기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실어넣은 것도 잠시.

-콰창!

쇠가 갈라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어깨와 목을 묶고 있던 쇠사슬이 붕괴해 산산조각 나버렸다.

“...!?”

예상치 못한 일을 직시한 강수의 두 눈이 크게 벌어지고, 둔기를 휘두르려던 손이 일순간 멈춰졌다.

뒤늦게 위험을 직시하고 자리에서 몸을 빼내려 했지만, 한쪽 팔이 자유로워진 광인은 강수가 몸을 빼내기 전 불끈 쥔 주먹은 이미 강수를 향해 휘둘러지고 있었다.

-퍼억!

몸에 정통으로 가격된 주먹이 강수를 튕겨내었다.

격통에 허우적대는 정신을 바로잡으려 했지만, 가해진 주먹의 위력은 상상을 넘어선 것이었다.

미처 균형을 잡기도 전, 멀리 튕겨져 나간 그의 몸이 벽에 충돌하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쿨럭.......”

내상에 의해 각혈이 토해져 나왔다.

가면 밑으로 퍼져나간 끈적한 액체가 안면을 가득 채운 것을 느낀 강수가 슬며시 자신의 몸 곳곳에 손을 올렸다.

사지는 그나마 멀쩡하지만 가슴 부분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전의 충격으로 인해 부러진 갈비뼈가 내부의 살을 헤집기 시작한 것이다.

“...제기랄.”

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손으로 닦아낸 강수가 힘겨이 몸을 일으켜 세우며 광인을 노려보았다.

갈고리의 날카로운 날에 의해 반쯤 잘린 어깨와 관절부에 박힌 단검. 계속 움직일 경우 양 팔은 완전히 망가져버리겠지만, 광인은 개의치 않고 강수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으스러진 가면 사이로 보이는 얼굴은 너무나도 흉하게 문드러져 있었다. 그럼에도 부릅 뜨여진 눈은 어김없이 표적으로 삼은 자에게 향해져 있을 뿐.

“크히, 흐....히헤....하........”

이전의 충격으로 인해 턱이 엇나가고 이빨이 일부 부러졌지만, 그럼에도 입가에 그려진 잔학한 웃음은 지워지지 않고 있다.

‘이런 괴물이 떡하니 나타날 줄 누가 알았겠어...운이 없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레벨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주템에 해당하는 쇠사슬의 내구도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것을 불안정한 자세에서 단순히 완력만으로 끊어내는 것은 쉽게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힘에서 우러나온 공격을 직접 받아낸 만큼 더욱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봐주면서, 싸우는 것도 여기까진가.’

아무리 적성수치가 높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인간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광기에 휩싸인데다 능력과 장비에 의존까지 하는 괴물을 상대로 특성 하나 찍지 않고 이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특성을 찍는다면 상황을 모면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이제까지의 망설임은 한 번의 위기로 그르칠 정도로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이제까지 고수하고자 했던 것을 져버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감당하지 못할 일은, 처음부터 안 하는 게 낫지."

고민할 것도 없다 생각하며, 미약하게나마 느끼고 있던 '기대'를 끝내 져버리고 말았다.

체념을 하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광인을 상대하고자 무기를 들어올리려 했을 때일까?

“어?”

문득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광인의 뒤편에 서있는 인영을 보고 의아함에 찬 숨을 내뱉었다.

소연이 우산의 끄트머리를 광인의 등을 향해 겨누고 있었다.

'저 여자가 지금 무슨 짓을...!'

그녀를 만류하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린 직후.

-푸슉!

우산 끝에서 쏘아진 화산살이 강수에게로 다가서는 광인의 등에 꽂혔다. 근육이 뭉쳐진 등살은 우산살의 끝자락만을 포갤 뿐, 그 이상의 전진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광인의 시선이 돌아가기엔 충분하다.

“크히, 히........”

일그러진 웃음을 소연에게로 향하는 광인. 그것을 대면한 소연의 몸이 움찔 떨렸지만, 침착의 끈을 놓지 않은 그녀는 재차 우산의 끄트머리를 광인을 향해 겨누었다.

“크헤, 크히하하하하...하하하!!!”

곧 광인의 입에서 격한 웃음이 터져 나오고, 육중한 거구가 소연이 있는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딸칵, 철컥.

우산에 매어진 장치를 조절한 소연은 달려드는 괴물을 주시하며 능력을 사용했다.

머지않아 광인의 몸에 새겨지는 붉은 반점. 다리 부분에 만들어진 붉은 점을 향해 우산 끝을 겨눈 소연이 방아쇠를 당겨 우산살을 사출했다.

-푸슉!

날카로운 우산살의 끝이 다리의 살을 찢으며 피를 퍼트렸지만 고작 그것으로 그칠 뿐이었다.

한계를 초월한 광인의 다리는 무뎌지지 않고 도리어 속도를 내어 소연이 있는 곳을 향해 도약을 가했다.

-쿠웅!

추락한 순간 대지가 흔들리고, 광인의 시선이 옆으로 몸을 비튼 소연에게로 향해졌다.

한 순간 땅에 가해진 힘을 버티지 못하고 자리에 고꾸라진 소연이 숨을 집어 삼키며 광인을 향해 능력을 사용했다.

이번에 새로이 습득한 특성인 ‘약체화’. 표식을 건 대상의 육체능력을 1단계 낮추는 특성이다.

그것을 사용하고자 하는 의지를 발휘한 순간 광인의 몸이 일순간 낮춰졌다. 갑작스러운 육체능력의 상실에 의해 몸의 무게를 버티지 못한 것이다.

-푸슉!

바닥에 몸이 뉘어진 채로 이어지는 우산의 사격이 광인의 다리를 꿰뚫었다.

이전과는 달리 정확히 다리의 한가운데에 꿰뚫린 우산살은 다리의 신경을 마비시켜 광인의 몸을 바닥에 고꾸라트렸다.

무기력하게 변해버린 광인의 모습을 직시한 소연이 다급히 몸을 일으켜세워 뒤로 몸을 물리려던 직후.

광인의 묵직한 손이 소연의 다리를 움켜쥐어 힘을 실어 넣었다.

“...!?”

바닥에 쓰러진 채 다리가 붙잡힌 소연의 두 눈이 크게 벌어졌다.

아무리 다리를 무력화시켰다 하더라도 상대는 자신의 몸이 망가지건 말건 신경을 쓰지 않는 미치광이. 상대의 몸을 찢어발기기 위해서라면 망가진 두 팔을 불사르는 것도 거침없이 일으킨다.

서서히 다리에 실리기 시작하는 힘을 감지한 소연이 얼굴에 공포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들어 올리는 그 손이 자신의 몸을 사정없이 바닥에 내치리라 생각한 직후.

-콰앙!

굉음과 함께 소연의 다리를 붙잡은 광인의 머리가 기울어져 옆으로 튕겨져 나갔다

광인의 머리를 강타한 것은 쇠사슬에 연결되어 있는 거대한 철구. 광인이 이전까지 손에 쥐고 있던 철퇴를 멀리서 강수가 집어 던진 것이다.

“크헤, 크.....헥.......”

광인이 머리에 가해진 충격을 버티지 못하자, 곧장 그에게로 접근한 강수가 철구와 연결된 쇠사슬을 이용해 그의 몸을 휘어 감쌌다.

쇠사슬에 실린 힘이 끝내 균형이 무너진 광인의 몸을 바닥에 사정없이 넘어트렸다.

몸을 일으 켜세우기 위해 발버둥을 치려했지만, 그 전에 철구를 주워든 강수의 공격이 광인의 등을 가격하는 것이 먼저였다.

-쿠웅!!

또 다시 굉음이 울려 퍼지며 광인의 몸에 경련이 일어났다.

육체능력은 특성의 효과로 인하여 일반인을 초월했지만, 약체화로 인해 약화된 상태에서 철구의 무게와 힘을 막기엔 부족함이 있었다.

“크에, 케....그.....카학........”

충격을 견디지 못한 광인이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움직이려는 듯 팔다리에서 경련이 일어났지만, 결국에는 그것으로 그칠 뿐이었다.

철구의 충격으로 인해 산산조각 나버린 보호구의 조각이 목에 박혀 피를 흘리게 만들었다. 쓰러진 광인은 그 정도로 쓰러질 만큼 나약한 존재가 아니지만, 보호구가 벗겨진 상태에서 목을 끊어내는 건 갈고리의 날카로움으로 어떻게든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수는 곧장 갈고리로 광인의 숨통을 끊어내지 않았다.

“내가, 어떤 일이 있어도 나서지 말라고 했을 텐데!”

광인의 숨통을 끊어내기 전, 강수가 먼저 가면을 벗으며 소연을 향해 외쳤다.

중간에 습격을 당하긴 했지만 분명히 그녀에게 거듭해서 경고를 날렸었다. 지금 그녀는 그 경고를 무시하며 광인에게 습격을 당하려는 자신을 도운 것이다.

그것은 분명 감사해야 할 일이지만, 자칫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그녀의 몸은 광인의 손에 의해 바닥에 내쳐져 끔찍한 꼴이 되었을 것임을 생각하면 지극히 어리석은 판단이라 여길 수밖에 없었다.

소연 역시도 그에 대한 공포가 가시지 않은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뭔가를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말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소연의 모습...상당히 당황한 듯 보였지만, 강수는 그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어렴풋이 직시하고 있었다.

“...위험해 보였으니까요.”

예상했던 말이 나오자 강수의 표정이 팍 구겨졌다.

“위험한 날 도와주려고 했던 건 감사해야 할 일이야. 하지만 아가씨는 나랑은 다르잖아.”

그나마 재생력이라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자신과는 달리, 소연에게는 부상을 치료할 수 있는 수단이 전무했다.

회복아이템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대체로 질이 낮기 때문에 그에 의지하며 활동하는 것도 불가능...그런 만큼 위험이 있다 하더라도 자신을 믿고 뒤에서 지켜봐주기를 바랬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도움을 준 그녀에게 힐난을 가했지만........

“그 사람을...죽이려고 했죠?”

“........”

소연의 말에 갈고리가 겨누어진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허우적대는 광인은 자신의 목에 흉기가 겨누어지건 말건 이전에 몸에 가해졌던 충격과 강수의 체중을 이겨내고자 안간힘을 쓰기에만 급급할 뿐이었다.

머리가 반쯤 뭉개지고, 수 없이 이어진 참격과 타격마저도 꿋꿋이 버텨낸 존재이다. 그런 존재를 과연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이 녀석을 죽일 거라고 생각해서 나섰다는 말이야?”

어처구니없다는 듯 강수가 혀를 차기 시작했다.

인간이기는 하나 그것은 한때였을 뿐이다. 던전이란 환경으로 인해 침식되어버린 정신을 바로잡을 수 없는 한, 그들은 죽을 때까지 던전을 배회하며 생존자들에게 위험이 되는 괴물로써 인식될 수밖에 없다.

그런 존재에게 ‘사람’이라는 이유로 자비를 보이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아무리 이 시간대의 그녀가 인간답다 하더라도 이제까지 사리분별을 다 해온 만큼 이 정도는 버티고 넘어갈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틀린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여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랑은 전혀 다른 곳이야."

그 틀린 생각을 바로잡게 만들고자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얘기했다.

“들어온 사람 모두가 똑같은 약자니까 누가 손 대신 더럽혀줄 수도 없어. 법의 보호도 받을 수 없으니까. 자기 목숨이 위험해지면 자기가 직접 손을 쓰는 수밖에 없는 곳이라고. 살고 싶으면 어떤 일이든 해야 하는 곳이 이 던전이라는 공간이란 말이야."

‘그걸 알고 있음에도 어째서.......’

그 말이 미처 내뱉어지기 전.

“강수씨는 왜 처음에 망설이셨던 건가요?”

‘망설였다.’라는 말을 들은 순간 강수의 입이 덜컥 막혀버렸다.

그 침묵에 소연은 떨리는 목소리를 힘겨이 이어나갔다.

“...이제까지의 전투와는 달랐어요. 이번의 전투에서는, 강수씨는 무기를 휘두르는 걸 주저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방금 전의 그 치열한 전투에서 대체 어디에 망설임이라는 것이 느껴졌다는 것일까?

그것을 따지려 들었지만, 소연의 눈을 마주한 순간 목구멍을 비집고 올라오던 그 말이 도로 집어 삼켜졌다.

감정이 희미한 그녀의 눈에 새겨져 있는 것은 미약한 동정과 절박함...마치 자신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것 같은 눈이다.

“이제까지 봐왔으니까 알고 있어요. 처음부터 전력을 다했다면 숨을 끊어내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다는 걸...그럼에도 전력을 다하지 않은 건, 그를 죽이는 걸 망설였기 때문이 아닌가요?”

말이 이어질수록 강수는 자신이 무언가를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덕과 배려, 그런 얄팍한 것을 위해 자신이 손에 피를 묻히려는 것을 막아세운 것이 아니다.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라는 얄팍한 기대를 끝내 내팽개쳐버렸을 때, 소연은 그것을 눈치 채고 위험을 무릅쓰는 행동을 취한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동행자를 위해서.

“...사실 그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으신 거 아닌가요?”

-욱씬.

무의식적으로 전신에 들어가는 힘이 상처를 벌리며 고통을 일으켰다.

========== 작품 후기 ==========

던부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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