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브래이커-21화 (21/251)

<-- 7화. 머피의 법칙 -->

“이전에도 말했지만, 저 때문에 그런 것이라면 피우셔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아니,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애써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호의에 제지를 가했다.

“마침 상자가 나왔네. 이거 운이 좋은데?”

강수가 바닥에 떨어져 덩그러니 놓여있는 상자를 내려다보며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이전에 열이나 되는 적을 상대하긴 했지만, 레벨이 낮은 만큼 그들로부터 상자가 드랍될 확률은 매우 적었다.

방금 전 때려죽인 도마뱀이 어느 정도의 레벨을 가지고 있는지는 이제 확인할 수 없지만, 어찌 되었건 행운 수치가 최악인 상황에서 상자 하나를 얻었다는 건 불행 중 다행이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제대로 된 아이템이 나올 가능성은 적겠지만.

“이거 좀 나 대신 열어줄 수 있어?”

비록 한 단계 차이지만, 최악보다는 매우 낮음 쪽이 위험한 아이템이 나올 가능성이 더 적을 것이다. 소연 역시도 그것을 알아차린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괴물이 쓰러진 자리에 나타난 상자를 조심히 열어주었다.

머지않아 상자 안에서 나온 것은 급이 낮은 포션과 상태이상 회복제 다수. 그리고 장비 아이템 하나.

“...상당히 낡은 칼이군요.”

상자 안에 존재하는 낡은 칼을 들어올린 소연이 강수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단검보다는 훨씬 길지만 장검이라기엔 적은 길이...소위 ‘숏소드(소검)’라고 부르는 무기와 흡사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녹 쓴 자국만 보아도 이 검이 그다지 좋은 아이템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아, 제발....”

깊게 한숨을 내뱉은 강수가 소연이 건네준 낡은 칼을 촬영해 정보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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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빠진 똥칼

분류: 주력 무기

등급: F

부가설명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당장 으스러질 정도로 녹이 쓸고 이가 빠진 칼이다. 이와 똑같은 검을 쥔 자들은 하나같이 ‘똥칼’이라고 부른다.

내구도: 2/2

연관치

육체-1 재주-3 순발-2 정신-1

부가옵션

-찌른 대상에게 높은 확률로 파상풍을 유발.

-맨 손으로 사용할 시 사용자에게 파상풍을 유발.

-쉽게 부서지므로 취급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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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이빠진 똥칼을 쥐어주지 나와도 하필 이런 게 나와가지고.]

-빠드득.

“강수씨?”

“잘못 들은 거야.”

일그러진 웃음을 지은 강수가 소연의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낡은 칼을 자신의 인벤토리에 집어 넣었다.

“뭐, 행운 수치가 저조하니까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는 거잖아? 좋은 아이템이 나올 거라고 기대하는 쪽이 바보짓이지.”

강수가 곧 방과 이어져있는 통로를 하나 짚어 그곳으로 들어섰다.

‘그래, 연속으로 세 번 정도...몬스터룸이 걸릴 수도 있지.’

노멀룸을 포함하여 던전 내에 있는 방들은 모두 그대로 위치가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당사자의 행운과는 전혀 연관이 되지 않는다.

당연히 몬스터룸이 몇 번이고 걸리는 것은 가는 길목이 ‘우연히’몬스터룸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일 뿐.

퀘스트가 있는 방이나 오브젝트를 활성화시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방을 노리는 그에게 있어선 절대로 환영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지만, 같은 류의 방이 밀집되어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문 만큼 다음으로 들어서는 방은 몬스터룸이 아닐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설마 또 나오겠어?’

이내 소연을 데리고 통로를 지나 다음 방으로 들어섰을 때.

-찰그랑, 덜컹.

“........”

표정이 급격히 굳어지며 자신의 앞에 나타난 괴물의 형상을 응시했다.

양 팔에 수많은 가시가 돋아나있으며 근육의 양은 일반적인 인간을 초월한 괴물이 그를 향해 입을 벌려오기 시작했다.

-크와아아아.....

-콰작!

괴성을 내지르는 괴물의 입에 프라이팬의 끝자락이 쑤셔박혔다.

*****

던전에 들어온 후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다지 긴 시간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사람 한 명의 정신이 작살나기엔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연이어 ‘12번’이나 되는 전투를 치른 녀석의 경우에는 더더욱.

“후우, 후우........”

가면을 쓰고 있는 그의 입에서 격한 숨이 내뱉어졌다.

손에 쥐고 있는 프라이팬은 난잡한 싸움 끝에 면이 사라지고 울퉁불퉁한 쇠몽둥이로 바뀌어버린 지 오래. 그 주변에 묻어나있는 피는 이전의 싸움이 얼마나 격렬했는지를 가르쳐주고 있었다.

자그마치 열 두 번 이다. 의도적으로 누군가가 파헤친 함정에 빠진 것도 아니고, 통로로 유입된 몬스터들을 제외하고도 자그마치 열 두 번이나 몬스터가 존재하는 방에 ‘연속’으로 들어섰다.

적성수치와 별개로 이것은 순수하게 ‘우연’적으로 벌어진 일이다.

던전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강수는 그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확률의 일’인지를 알고 있었다. 한 번 짜맞춰진 방은 그대로 고정되어버리는 던전의 습성을 알고 있기에 더더욱.

하지만 확률이 0이 아니라는 것은 아주 희박하게나마 그것이 일어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강수는 운 없이 자신이 걸려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친구들과 미팅을 갔었지! 뚱뚱하고 못생긴 애 있길래~ 우와! 쟤만 빼고 다른 애는 다 괜찮아! 그러면 꼭 걔랑 나랑 짝이 되지~ 내가 맘에 들어하는 여자들은 꼭 내 친구 애인이거나~ 우리 형 애인~ 형 친구 애인~ 아니면 동성동본....푸하하하하하하하하!!!

“야이 개.......”

뭐라 욕을 하려던 강수가 끝내 이를 꽉 깨물며 자신의 얼굴에 쓰고 있는 광대가면을 격하게 벗었다.

확실히 효과는 뛰어나지만, 싸우는 종종 열을 올리는 웃음소리와 농담은 그의 스트레스지수를 잠깐 사이에 급격히 올려주었다.

특성 없이 저주템을 착용하는 것이 이렇게 성가신 일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상자라도 몇 개 나오면 모를까. ‘이빠진 똥칼’이 나온 상자를 제외하곤 12번의 전투에서 단 하나의 상자도 드랍되지 않았다.

행운수치가 최악인 상태에서 득 볼 거 하나 없는 열 두 번의 전투. 이런 열이 뻗치는 상황에서 담배라도 하나 피울 수 있다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질 텐데........

“강수 씨.”

“........”

담배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자 문득 주변에 소연이 다가왔음을 알아차렸다. 프라이팬을 손에서 놓아버린 강수가 슬며시 소연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곁으로 왔음에도 무언가 캥기는 것이 있는지 소연이 자신에게서 시선을 회피하고 있었다.

“자긴 계속 가만히 있으니까 미안한 마음이라도 드는 거야?”

“그건........”

“딱히 아가씨가 미안한 마음을 느낄 필요는 없어.”

애초에 이런 일이 연이어 벌어지는 것은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우연일 뿐이다.

만약 자신이 혼자 돌아다녔어도 이런 일이 벌어질 거였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 것이고, 그녀가 혼자 돌아다녔을 때 이 쪽 길목을 골랐다 하더라도 벌어졌을 일이다.

어찌 되었건 이쪽 길목을 골랐다면 감수해야 할 위험인데, 그것을 혼자 떠앉는다고 해서 동행자가 미안한 마음을 느낄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런 자신의 마음을 모르는지, 소연은 미안한 표정을 풀지 않고 자신의 손에 쥐어진 쇠뇌의 손잡이를 틀어쥐었다.

“만약 강수씨와 만나지 않았더라면 제가 감수했어야 할 위험일지도 모르죠. 그걸 강수 씨가 홀로 떠안는 것 같아서 신경이 쓰여요.”

소연의 말에 강수의 두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

입장은 다르지만, 보고 있는 관점이 ‘자신이 받았어야 할 일이었다’라는 것은 일치했다는 것에 묘한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걸 받아들이느냐, 뒤에서 구경하느냐의 차이일 뿐이지만.

“양심적이네. 보통 이런 때라면 자기 안전을 취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하니까.”

“저는 그 반대라고 생각해요. 언제 어느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만큼, 조금이라도 더 적극성을 가지고 적응해야 한다고.”

“그걸 양심적이라고 하는 거야.”

그 감정에 솔직하게 얘기를 한 강수가 코웃음을 치며 자신의 품에 손을 집어넣었다.

“뭔가, 지금 상황을 보고 있으면 예전에 했던 게임이 생각나.”

“...이 공간이랑 비슷한 게임이라고 하셨죠?”

“아, 뭐. 그렇지.”

머지않아 품에서 꺼내든 것은 초코바와 사탕...이전에 시체에서 얻은 전리품이었다.

비록 공복은 채울 수 없지만 맛은 느낄 수 있다. 초코바는 그녀에게 던져주고, 강수는 사탕의 포장지를 벗기며 그것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처음에 아무것도 못하고 도망치기만 했고...그 후에 어떻게든 꾸역꾸역 살려고 이런 저런 일을 저질렀는데, 내가 저지른 일이 워낙 많다보니 업보 때문에 행운수치가 바닥을 기어버렸거든. 그 게임도 이 공간처럼 행운이 중요한 걸 생각하면........“

“...치명적이군요.”

“그렇지. 그런데 그래도 상관은 안 했어. 행운이 없어도 어떻게든 될 정도로 능력은 되는 편이었으니까.”

마냥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 때에 대한 일을 떠올리는 그의 얼굴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 놓고 그거에만 집중하게 되다보니 운이 없어도 짜증나는 상황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어버렸거든. 게임이 너무 쉬워진 게 문제였던 건가, 싶기도 하고. 지금 상황을 돌아보면 그 때 일이 떠올라.”

“게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아무리 쉽게 헤쳐나갈 수 있다 하더라도, 너무 무리를 하면 육체나 정신적으로 부담이 커질 거라 생각해요.”

“........”

강수가 사탕의 노란 표면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소연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소연의 얼굴엔 희미하지만 다정한 웃음이 그려져 있었다.

자신을 보며 득달같이 달려들던 냉혈한이 이런 표정을 지을 날이 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미래의 삶을 돌아보는 그가 그 생각을 집어 삼키듯 사탕을 입 안에 집어 넣었다.

시큼한 레몬맛이 입 안 가득 퍼지며 혼란에 치달은 그의 마음을 안정시켜주었다.

“그래, 아가씨 말대로 가급적 무리는 하지 말아야지. 다음 방이 몬스터룸이 아니길 빌겠지만...너무 걱정하진 마. 안 좋은 일이라도 열 번이 넘으면 나름대로 익숙해지기 마련이니까.”

“익숙한 것과 괜찮은 것은 다른 의미라고 하셨죠?”

“그래, 내가 도저히 못 버티겠다 싶으면 아가씨한테도 도움을 요청할 테니까 그 땐 좀 도와주고.”

운이 없어도 떡잎부터 뛰어난 그녀에게 기대를 표하며 다음 방으로 향하는 통로로 걸음을 옮겼다.

머지않아 통로를 빠져나가 다음 방으로 들어섰을 때, 방의 중심에 존재하는 것을 본 강수의 두 눈이 크게 벌어졌다.

이번에는 몬스터 룸에 들어섰을 때의 짜증나는 소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방의 중심에 배치되어 있는 거대한 상자. 그것은 이제까지 봤던 초라한 겉모습을 지닌 것들과는 다르게 주변에서 희미하게 황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저 상자는 좀 특별해보이네요.”

“보물방이야.”

“보물방?”

“행운과 관계없이 높은 확률로 좋은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상자가 하나 배치된 방이지.”

원래 노렸던 퀘스트룸이나 오브젝트 룸과는 다르지만, 급으로 치자면 그 두 개의 방보다 훨씬 높은 곳이다. 조건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없이 확정적으로 좋은 아이템을 하나 얻을 수 있는 곳이니까.

던전의 무수히 많은 방 중 보물방이 배치된 곳은 얼마 되지 않지만, 확정적으로 아무런 대가 없이 좋은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만큼 탐사자들이 가장 환영하는 방이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게 이런 말이로군.”

“정말로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건가요?”

“지금까지 고생했는데 이 정도 보상은 달게 받아들여야지.”

불안을 느끼듯 말을 건네는 소연에게서 떨어진 강수가 곧장 보물상자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뭐, 가끔 보물상자 말고 미믹(상자형 괴물)이 배치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 수는 매우 희박하니까........”

-키야아아악!!

-콰각!!

다가가는 순간 이빨을 세우며 달려드는 괴물을 발로 차버렸다. 강한 힘이 실린 발차기는 거대한 상자의 표면을 부수고 바닥에 몸을 고꾸라트리게 만들었다.

보물방은 확정적으로 좋은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곳이지만 극히 드문 확률로 보물상자 대신 보물상자로 위장하는 상자형 괴물이 나타난다.

그것이 바로 지금 눈앞에서 바닥에 반쯤 뒤집어진 몸으로 난동을 부리고 있는 괴물인 ‘미믹’.

날카로운 이빨을 딱딱대고 괴악한 혀를 사방으로 뻗고 있는 모습은 보통의 사람들에겐 혐오스럽겠지만, 지금의 강수에게 있어서 미믹이란 12번의 싸움 이상으로 짜증을 유발하는 존재였다.

“누가 그랬더라...기대할 일이 없으면 실망할 일도 없다고 하던데.”

-푸욱.

인벤토리에서 낡아빠진 칼을 주워들은 강수가 그것을 쓰러진 미믹의 입에 쑤셔 박았다.

“됐고, 넌 일단 좀 쳐 맞자.”

-키야아아아아아아아아악!!

부식된 철이 몸 속 깊은 곳에 박혀가자 미믹의 입에서 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 작품 후기 ==========

보물방에서 poop 나온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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