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유품 -->
“운이 없어도 그렇지 뭐 이런...하.”
투덜거리며 반대쪽 손으로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쓰디쓴 담배연기를 삼키고 있는 중에도 냄새는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직접 만진 만큼 손에서 느껴지는 찝찝함은 더더욱.
설령 참고 견디고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수모라 할지라도, 익숙한 것과 괜찮은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더럽고 불결한 것을 싫어하는 것은 인간으로써 당연한 심리다.
“진정해라 한강수, 괜히 던전에서 스트레스 심하게 쌓이면 앞으로 힘들어진다.”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담배를 격하게 빨아마셨다.
던전이란 공간은 외부와 단절된 만큼 탐사자의 정신에 위험이 되는 일이 수도 없이 벌어진다.
괴악한 괴물들에게 쫓기고, 함께 있던 이들에게선 배신이 잇따르고, 홀로 돌아다니며 느끼는 고독함이 기억을 갉아먹으며 혼란을 유발하는 둥.
그 하나하나가 모두 정신적인 부담이 되고, 그것은 머지않아 던전을 돌아다니는 자의 정신이 미쳐 날뛰는 계기로 이어지게 된다.
물론 재생력의 효과 덕택에 정신적인 상태이상에도 어느 정도 빠른 회복력을 갖추고 있지만, 그것도 완전한 무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만큼 대비는 최대한 해야만 한다.
“겨우 똥 좀 만진 거잖아. 별로 화낼 일은 아니야. 화낼 일은.”
투덜거리는 강수가 넥타이를 벗어 대변을 만졌던 손을 닦아내었다. 없는 형편이라 아끼고 살아야 하는 처지였지만 역시 손에서 느껴지는 찝찝함을 쉽게 떨쳐낼 수는 없었다.
끝내 넥타이를 벗어던전 강수는 바닥에 내던졌던 변을 카메라로 찍은 후, 화면의 하단부에 배치된 ‘습득’버튼에 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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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아이템을 습득합니다. 습득하는 데에는 5초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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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의 렌즈에서 새어나오는 빛이 바닥에 놓인 대변을 비추었다. 머지않아 화면에 나온 글대로 촬영된 대상이 증발해 인벤토리 안으로 들어갔다.
비록 더러운 물건이었지만 조합용으로 써먹을 건덕지는 충분하다. 뭣하면 적에게 직접 투척하는 용도로 써먹을 수도 있다.
자신에게 불쾌한 건 상대에게도 불쾌하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이런 말도 있잖아?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먼 옛날의 속담을 떠올린 그가 코웃음을 터트리며 담배를 격하게 씹었다.
“막상 있으면 엿 같은 건 나지만. 젠장.”
입에서 연기를 뿜어내며 상자 안에 들어있는 다른 물품들을 마저 살펴보았다.
대충 이전에 상자에 들어있던 것들과 흡사한 물건들...주로 물약이나 약초처럼 상태이상을 회복하거나 체력을 회복시켜주는 물품이 세 개, 나머지 하나는 손에 낄 수 있는 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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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아빠진 원기 생성의 반지
분류: 장신구
등급: E-
부가설명
사용자에게 힘을 불어넣어주는 반지이다. 매우 낡아 쉽게 부서져 오래 사용할 수는 없다.
내구도: 10/10
연관치
육체-1 재주-1 순발-1 정신-1
부가옵션
-사용하고 있는 무기의 연관치 ‘육체’가 +1만큼 상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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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구형 아이템...등급이 낮아 써먹기 애매한 수준이다. 만약 물자가 풍족한 상태였다면 고민할 거 없이 바로 폐기처분을 결정했을 만한 아이템.
하지만 개똥이라도 써먹어야 하는 처지인 만큼 곧장 손가락에 끼워 사용하기로 했다. 직접 힘을 증가시켜주는 것은 아니지만, 이걸로 프라이팬을 휘둘렀을 때 ‘연관치 1’만큼의 위력이 더 나와 줄 것이다.
“뭐든 올라간다는 건 좋은 거니까.”
손가락에 반지를 끼우고, 상자 안에 들어있는 아이템을 모두 회수하자 머지않아 그의 앞에 존재하는 상자가 증발하듯 사라져버렸다.
그로부터 시선을 거두며 이전에 목을 짓밟았던 개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목에 체중이 실려 골골대고 있는 개는 발작을 일으키며 입밖으로 혀를 축 내밀고 있었다. 아무리 반송장이라 할지라도 목이 밟혀 신체기관이 망가졌는데 움직일 수 있을까.
“이성 없는 괴물이라도...애도 정도는 해줄게.”
주인의 머리를 뭉개버린 프라이팬을 들어 올려 그 끝을 개에게로 겨누었다.
“삼가 고견의 명복을 빕니다.”
-퍼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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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전투를 끝마치고 곧장 그들이 지나온 통로를 이용해 다른 방으로 향하기로 했다.
마음 같아선 편하게 있고 싶지만 방을 돌아다니지 않으면 성장에 필요한 물자를 얻을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가급적 장비가 갖춰지지 않은 지금은 몬스터들과의 전투를 피해야만 한다.
그들에게도 전리품 상자가 드랍되긴 하지만, 운이 최하치인 상태에선 드랍률도, 나오는 아이템들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그들과의 전투를 주력 성장수단으로 삼을 수는 없다.
노린다고 한다면 ‘퀘스트 룸’과 ‘오브젝트 룸’이다.
퀘스트 룸은 일정한 조건을 만족할 시 전리품 상자를 건네주는 곳이다.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것만으로 전리품 상자를 얻을 수 있기에 초반에는 꼭 들릴 필요가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오브젝트 룸의 경우에는 오브젝트를 활성화하는 데에 성공할 경우 당사자에게 일정확률로 특별한 보상을 건네준다.
주로 버프나, 혹은 특수한 아이템 등등...던전을 탐사하는 데에 이로운 것들이다.
그것들을 통해 어느 정도 상황이 나아졌을 때 비로소 제대로 된 탐사를 이어갈 자격이 갖추어질 것이다.
“배도 고파오고 체력도 떨어지니까...가급적 불필요한 싸움은 피해야지.”
그러한 결론을 내리며 통로를 지나길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횃불의 빛이 가득한 통로를 지난 끝에 반대쪽에 존재하는 방에 도달하게 되었다.
-쿠어어, 어어억.....크허어어.......
방에 들어선 순간 웬 시체 한 마리가 허공에 양 손을 허우적대고 있는 꼴이 눈에 들어왔다.
-끼리릭, 철컹!
시체를 마주한 순간 들어온 통로가 위에서 내려온 철망에 의해 완전히 닫혀버리고 말았다.
배회하는 몬스터가 방에서 기웃거리는 것이었다면 문이 닫힐 일은 없다. 강수는 눈앞에 존재하는 시체가 ‘이 방의 주인’이라는 것을 직시했다.
“싸움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자마자 바로 나타나시네.”
던전 내에 존재하는 9종류의 방 중 ‘몬스터 룸(괴물의 방)’은 특정한 수나2 종류의 몬스터가 방에 자리를 잡고 있는 곳으로, 그 괴물을 쓰러트리거나 일정 시간 동안 버티지 않는 한 통로가 개방되지 않는 구조를 띄고 있었다.
분류도 수도 제각각인 만큼 무엇이 나오는지는 완전히 무작위지만, 대체로 통로를 지나다니는 몬스터에 비해서는 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초기에 맞딱 트려선 곤란한 녀석 중 하나이다.
위안이라고 할 것은 몬스터룸의 특성상 나타나는 몬스터들의 레벨은 들어선 자들의 평균 레벨과 엇비슷한 수준이라는 것이지만, 레벨이 1인 상태에서 엇비슷한 수준이라며 2~3정도 더 높은 적들이 나올 확률이 높다.
"...까라면 까야 하는 처지지만."
투덜거리며 눈앞에 있는 괴물을 두 눈으로 주시했다.
온 몸의 살이 녹아내린 듯 늘어져있는 그것은 눈이 멀었는지 허공에 대고 손을 이리저리 휘젓기만을 반복할 뿐.
상당히 이상한 괴물이었지만 그 행동에도 무언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상대의 전력을 확인하고자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이용해 대상을 촬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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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귀〉
분류: 시험체
추천 사냥레벨: 4
설명
어느 실험실에서 끝 없는 인체실험의 희생양이 된 존재로, 실험의 여파로 인해 온 몸에서 산이 발산되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위험요소
-온 몸에서 산이 방출되며 닿은 것을 빠르게 녹여버린다. 몸을 휘저어 산방울을 사방에 퍼트릴 수도 있다.
-눈이 멀었지만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을 보인다. 소리가 들려온 쪽을 우선으로 빠르게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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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레벨 4라.”
화면을 주시한 강수의 눈이 협소하게 변했다.
“...눈이 멀었다면 할 만 하겠구먼.”
확인 기능이 던전을 활보하는 데에 가장 필수적인 이유는 적이 지니고 있는 공격의 패턴이나 약점들이 간략하게 표기되기 때문이다. 경험이 없다면 모를까,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정보 하나하나가 대상의 숨통을 끊어낼 수 있는 무기로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약점을 안다면 레벨 2~3정도의 차이 정도는 가뿐히 좁힐 수 있다.
곧장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수학의 정석책을 꺼내든 강수가 산성귀에게로 걸음을 옮겨갔다.
-키에엑, 카으윽.......
괴성을 지르며 주변을 기웃거리는 괴물.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는 만큼 쥐죽은 듯 걸음을 옮겨오는 강수의 존재를 직시하지 못하고 허우적대기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방금 전 통로가 닫히며 난 소리는 던전의 특성상 무시하는 것일까.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며 손에 쥐고 있는 수학의 정석책의 모서리를 세워갔다.
‘처리할거면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내 거리가 제로로 좁혀졌을 때 손에 쥐고 있는 정석책의 모서리를 세워 그의 머리를 가격했다.
-콰악!
굉음이 터져 나오며, 산성귀의 녹아내리는 몸의 표면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크에엑!
머리를 가격당한 산성귀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고꾸라졌다. 비록 온 몸이 산성으로 뒤덮여있기는 하나 시체꼴인 만큼 육체능력 자체는 저조하다. 무력으로 때려눕히면 고통에 둔감해도 쓰러질 수밖에 없다.
“몇 대 정도로 죽을지는 모르겠지만 가급적 빨리 죽어줘라.”
-퍼억!
정석책을 쓰러진 산성귀의 머리에 집어던지고 프라이팬을 꺼내들었다.
공격에 반격하듯 이리저리 손을 허우적대는 산성귀였지만, 수학의 정석책이 지니고 있는 효과인 ‘기절상태유발’은 산성귀를 반쯤 기절상태로 만들어 행동을 억제하고 있었다.
상대가 무기력해졌다면 그 다음부터 이어지는 것은 싸움이 아닌 일방적인 구타. 프라이팬을 쥐고 있는 그의 양 손에 힘이 실렸다.
-퍼억! 퍼억!
이어지는 프라이팬의 공격에 산성귀의 머리가 깨지고 사방으로 피가 튀어 올랐다.
몇 번이고 그것을 반복하고 반복하자, 끝내 산성귀의 몸이 바닥에 축 늘어져 움직이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후우, 좋았어.”
제압을 끝내자 자신이 지나왔던 통로의 문이 열려가는 것을 알아차렸다. 방금 전의 기습으로 산성귀를 쓰러트려 방의 잠금이 해제된 것이리라.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꽤나 수월하게 방을 돌파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곧 시선을 자신의 옷쪽으로 향한 순간 강수의 시선이 왈칵 우그러지고 말았다.
"...아, 젠장."
방금 전 산성귀를 거침없이 가격한 결과 산성귀의 표면에 붙어있던 녹아내린 살점 중 일부가 자신의 몸에 튄 것이다.
수학의 정석이나 프라이팬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내구가 있어 직접 맞닿아도 상태가 양호했지만 옷의 경우에는 다르다. 살까지 녹이진 않더라도 옷의 이곳저곳이 녹아내려 내부를 조금씩 엿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초희가 알면 화내겠네.”
없는 형편에 비싼 양복을 또 맞춰달라고 할 수는 없잖은가? 더군다나 몬스터룸은 퀘스트룸이나 오브젝트 룸처럼 개폐조건을 완수하는 것으로 전리품 상자가 드랍되지 않는다.
이득 없는 싸움만큼 맥빠지는 법도 없으리라.
“불행하다. 진짜로.”
한숨을 내뱉으며 다 태운 담배를 떨어트린 그가 한 개비를 꺼내어 다시 입에 물었다.
그 끝에 불을 붙이려 했을 때일까?
“크, 하아......아아아........”
힘겨운 신음소리가 들려오고, 강수의 시선이 자연스레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향해졌다.
그곳은 방에 나있는 여러 통로 중 강수가 지나온 쪽의 반대편에 위치한 입구. 그곳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신음소리에 경계심이 앞섰다.
담배를 물고 있어 코가 좀 먹먹해졌지만, 희미하게나마 맡아지는 냄새는 분명 인간의 몸에서 흐르는 피였다.
지금까지 마주한 몬스터들만 하더라도 언데드(반송장)에 해당하는 녀석들이었다. 시체 썩은 내가 아닌, 선명한 피냄새를 내는 존재는 분명 하나밖에 없다.
“사, 살려......줘.......”
이내 통로 밖으로 너덜거리는 걸음걸이로 다가오는 존재를 마주한 직후.
-콰작!
등 뒤에서 다가온 무언가가 그의 등을 가차 없이 베어 넘겼다.
========== 작품 후기 ==========
빠요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