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지옥으로 -->
으즈적, 으즈적.
살이 찢어지는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인 강수는 엄폐물을 등에 진 채 어두운 길목을 걸어갔다.
조금이라도 소리를 잘못 내는 순간 ‘그들’이 이곳으로 몰려올 것이다. 설령 온다 하더라도 쉽게 당해주진 않을 테지만, 귀찮고 성가신 일에 괜히 휘말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끝내 자리를 벗어난 그가 조심스레 주변으로 시선을 옮겼다.
근처에 위험한 존재는 보이지 않았다. 설령 바닥이 거칠고 편히 앉을 만한 곳이 없는 비좁은 공간이라 하더라도 휴식을 취하기엔 문제없을 것이다.
자신보다 먼저 온 손님만 없었다면........
“쿨럭.”
기침을 토해내는 자를 대면한 강수가 웃옷 주머니에 반사적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무기의 손잡이를 쥐며 눈앞에 있는 자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갔다.
몸의 중앙에 대각선으로 그어진 큰 상처가 존재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상처가 벌어지며 나온 출혈만으로 죽어버렸을 것이다.
나름대로 생명력이 질긴 축에 속하지만, 그것도 머지않아 한계에 도달할 것이다.
출혈이 문제가 아니다. 상처부위의 주변에 있는 살이 검게 물들어져 썩어가고 있다.
그의 몸을 갈라낸 흉기가 독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머지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자네는 누군가?”
노인이 피가 섞인 기침을 토해내며 질문을 건네어왔다.
주머니 속에서 쥐고 있는 무기에서 차츰 힘을 풀어간 그가 노인과의 거리를 좁혀갔다.
“그냥 길을 지나가는 청년입니다.”“귀한 존재로군.”
어디를 가더라도 방심하면 죽어버리는 만큼 마냥 듣고 흘리기 힘든 농담이었다.
“꼴을 보아하니 치료약 같은 건...없는 모양이군.”
“안타깝게도 그런 게 필요 없는 ‘능력’이라서요.”
“만약을 대비해서, 한 두 개 정도는 가지고 다녀도, 될 법하거늘.”
“쓸모없는 걸 들려고 짐을 늘릴 필요도 없잖습니까.”
그의 말에 어깨를 으쓱하며 자리에 몸을 주저앉혔다.
“그리고 노인분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 상처는 치료약 한 두 개로는 치료할 수 없다는 걸.”
“매정하구먼.”
웃음을 터트리는 노인이 숨을 몰아쉬며 다시 말을 내뱉었다,
“자네는 왜 아직도 살아있는 겐가?”
‘왜 사는가.’
그것은 세계가 멸망으로 치닫고 난 후에 생존자들끼리 만나면 주고받는 인사말 같은 것이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괴물은 존재한다. 그들은 끝없이 배회하여 생존자들이 숨어있는 안전지대를 찾아다니고, 그들을 발견하면 자신들의 탐욕스러운 입을 벌려 그들의 살을 쑤셔 넣을 생각만을 반복한다.
그런 괴물들과 싸운다 하더라도 얻는 것이라곤 약간의 전리품 뿐. 고작 그것을 위해 전면전을 벌이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신들과 같은 생존자들을 만날 때에도 적의를 가져야만 한다. 지금은 괜찮아도 언제 뒤통수를 칠지 알 수 없으니까.
이런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건 최후에 이르기까지 그런 비참한 과정을 만끽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정신이 박힌 인간들은 아마 진작 자신들의 손으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 분명할 터.
그럼에도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인간들은 보통 두 가지 부류로 나눠질 것이다.
미련이 남았거나, 혹은 정신이 나갔거나.
“굳이 따지자면 죽지 못해 사는 거죠.”
“정신 나갔군.”
이어지는 그의 대답에 노인이 곧장 후자 쪽으로 단정을 지었다.
“언제라도 숨을 끊을 수 있지 않은가? 주머니에, 들어있는 그걸 머리에 겨누기만 해도....”
“한 번 해봤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그의 퀭한 눈을 주시하던 노인의 두 눈이 크게 벌어졌다.
“아, 그렇군. 자네는 세계가 이렇게 되고 난 후...그런 능력을 가지게 된 건가? 회복약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고 한 것도......”
“부러우십니까?”
“설마.”
당연한 것이지만 돌아오는 것은 동정이 어린 쓴웃음이었다.
“정말로 안타까운 젊은이로군. 자기 스스로, 선택할 수도 없다니.......”
“어르신은 왜 이제까지 살아있으셨던 겁니까?”
“아들이...지은 죄를 속죄하려고...다니고 있었지. 이런 저런 곳에서...사고를 많이 치고 다녔거든.”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이런 세계니까.”
노인을 바라보는 강수의 눈이 서서히 가느다랗게 변해갔다. 협소해진 시야에 피로 버무려진 손으로 자신의 눈가를 부여잡는 노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세계라도...사람으로써, 죽기를 바랬어. 하다못해, 괴로워하며 미쳐갔을 때 내 손으로 죽였어야 했는데, 끝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말았지.”
피가 섞인 오열이 입 밖으로 흘러내려 맥없이 땅으로 떨어졌다.
어떤 사정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세계인 만큼 그 누구라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 분명했다. 삶을 갈망하면 갈망할수록 그에 따른 괴로움이 더욱 커진다는 것 역시도.
이제까지의 경험을 통해 강수는 그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정말로 속죄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오신 겁니까?”
“미쳤다고 생각하나?”
실소를 터트리는 눈가를 훔치는 손을 거두었다. 눈물과 피로 범벅이 된 추한 모습.
노인은 그런 눈으로 자신을 대면하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이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냉정한 얼굴을 한 채, 남자는 자신의 품에 손을 집어 넣고 있었다.
“미쳤을 수도 있죠. 그런 이유로 이제까지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간다는 건 제정신으로 할 짓이 아니니까요.”
-철컥.
찰나의 순간 울려 퍼지는 쇠의 마찰음이 그의 넋두리를 집어 삼켰다.
“이러는 게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후회할 짓을 하려드는군.”
자신에게 겨누어진 무기를 감지한 그의 입에서 낮은 읊조림이 흘러 나왔다.
“자네...는...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입장이...아닌가, 이런 짓을 저지르면...이후에 감당하기 어려울 텐데.......”
“말했잖습니까? 죽지 못해서 사는 입장이라고. 감당하기 어려워도 살 수 밖에 없는 처지인데 짐덩이 하나 더 들고 가죠 뭐.”
“.....하하하.”
힘 없는 폭소가 좁은 공간에 메아리쳤다.
“자네는, 나나 남들과는 달리...선택할 수 없다고 했던가? 그렇다면...언젠가 기회를 찾을 수도 있겠군.”
상처부위를 손으로 움켜쥔 노인이 이를 질끈 깨문 채 웃음을 지었다.
한 순간 두 사람이 서로의 눈빛을 교환했다.
살아가는 걸 포기한 자와, 죽는 것을 포기한 자의 눈이 맞대어진 순간이었다.
“만약, 이 빌어먹을 세계를...구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면...그 기회를...반드시 잡아주게나.......”
-타앙!
건조한 총성이 울려 퍼지고, 그에 사방으로 피가 튀어 올랐다.
몸에 걸치고 있는 검은 코트가 피칠갑이 되었지만, 강수는 개의치 않고 손에서 총을 내던진 채 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입에 물고, 지포라이터를 꺼내어 끝에 불을 붙였다.
“세계를 구한다라...”
슬며시 하늘 쪽으로 고개를 들어 올린다.
태양도 달도 뜨지 않았다.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검은 색과 붉은 색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추상적인 천장 뿐.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이런 세계에 익숙해진다는 것을 과연 반가이 여길 일이라 할 수 있을까?
-키르륵, 크르륵.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대놓고 총성을 터트렸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좀 더 깔끔하게 처리하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생각하며 슬며시 앞으로 시선을 옮겼다.
시야를 뒤덮고 있는 것은 자신을 향해 붉은 눈을 부라리는 거대한 그림자. 그것이 좁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와 사납게 이를 세우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자신을 잡아먹을 기세로 살의를 풍기는 그들을 주시하던 눈을 천천히 감아갔다.
“...죄송합니다. 영감님. 저는 악당이라서 뭔가를 구하는 건 무리거든요.”
노인이 했던 말을 되새긴 강수의 입에서 나지막한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그가 이제부터 하고자 하는 것은 ‘멸망한 세상을 다시 한 번 멸망시키는 일’이었으니까.
******
-삐리릭, 삐리릭,
알람시계의 소리와 함께 그의 눈이 탁, 트여졌다.
정신이 먹먹하고 몸아 나른하다. 마치 물 속에서 숨을 쉬는 것처럼 모든 것이 붕 뜨는 것 같은 느낌이 한동안 그를 엄습해왔다.
뒷머리를 긁적이는 그의 손이 머지않아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시계의 윗부분을 짓눌렀다. 방 안에 고요함이 찾아오고, 그제야 지금의 시간이 새벽녘에 해당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을 자는 건 오랜만이네.’
뻐근한 어깨를 움직이며 하품을 내뱉었다.
잠에서 막 깨어난 상태는 그에게 있어서 상당히 낯선 감각이었다.
세계가 무너지고 기묘한 능력을 손에 넣고 난 후 그는 단 한 번도 수면이라는 행위를 취하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나쁘진 않네. 이 기분.’
10년 가까이 자본 적이 없었던 만큼 생소하면서도, 머리의 무게감이 사그라졌다는 감각은 그로 하여금 신선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물론 직장인 특유의 스트레스와 피로를 잠을 자는 것만으로 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물며 늦은 밤까지 격렬하게 행위를 이어간 만큼 어제보다 피로가 더 쌓였으면 쌓였지, 풀리는 걸 기대할 수는 없었다.
“오빠, 일어났어?”
옆에서 깨어난 여인, 초희가 눈을 비비며 강수와 눈을 마주쳤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잠이 덜 깬 듯 늘어지는 하품을 내뱉는 초희, 이불을 걷어내니 속옷만을 걸친 반라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이 여인이 어젯밤 자신과 몸을 맞대었다. 뜨겁고 진한 숨을 내뱉으며 몸을 떨어대었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자니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왜 그래 오빠?”
“...아무것도 아니야.”
헛기침을 토해내며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접어버렸다.
비록 지금은 스물여덟의 시대로 돌아왔지만, 정신적인 나이는 그보다 15년이나 지난 마흔 셋이다.
그런 자신이 스물 가까이 낮은 여인과 몸을 섞은 걸 생각하다니. 아무리 욕정보다 다른 마음이 앞섰다 한들 그래서는 안되지 않는가?
“피곤해? 좀 더 자도 되는데, 아직 출근 시간까지는.......”
“아니, 괜찮아. 오늘은 좀 일찍 나갈 생각이라.”
얼버무리며 몸에 덮고 있는 이불을 걷어내었다. 두 사람이 겨우 잠을 잘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방을 지나 싱크대가 위치한 곳을 가로질러 화장실로 향했다.
상당히 낡은 곳인 만큼 수도시설도 열악한 편...그나마 세면대와 변기 정도는 갖춰져 있다는 걸 위안으로 삼을 뿐이었다.
수도를 꺾자 물이 세차게 새어 나왔다. 온수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만큼 손에 닿은 감각은 매우 차가웠다.
그 차가움을 한동안 느끼고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 머릿속에 남아있는 잡념이 시원함에 씻겨나갔다.
========== 작품 후기 ==========
6월 26일 수정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