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단한 성공기-94화 (94/95)

제13장. 황금 보고 (1)

2학기가 시작되었다.

무더웠던 여름이 서서히 지고 있었다.

물론 낮에는 뜨거운 기운이 여전했지만 아침저녁으로는 날씨가 제법 초가을처럼 선선했다.

하늘이 더욱 파래지고, 구름은 새하얗다.

교정의 한곳에 자리한 단한과 서연.

둘은 숲에서 퍼져 나오는 바람의 향기를 묵묵히 들이켰다.

지금의 이런 시간이 둘에겐 너무도 평화롭고 감미롭게만 다가왔다.

경기도 수련관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마치 꿈처럼 여겨졌다.

단한은 그곳에서 서곰을 잃은 일이 슬픈 꿈처럼 녀석의 얼굴을 떠올리면 아직까지도 가슴이 먹먹했다.

‘자그마한 곰 인형 주제에…….’

서곰의 부재가 가져다주는 공허함이 생각보다 너무 컸다.

하긴 세상에서 가장 든든했던 아군이 사라진 것이니.

묵묵히 침묵에 잠긴 단한의 옆모습을 바라보던 서연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제 마수들은 더는 출몰하지 않겠지?”

“그럴 거야.”

정부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MDT의 중요성을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비록 단한이 숲에 형성한 결계로 인하여 그날 벌어진 마수들과의 전투는 직접 구경하지 못했지만, 허공에 떠오른 블랙홀을 알고 있었다. 그곳에서 괴이한 것들이 쏟아져 나와 숲으로 떨어진 것까지는 파악이 된 것이다.

“대원들이 모두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그래.”

앞서 수련관을 벗어난 제2팀 대원들을 비롯하여 제1팀 대원들까지도 누구도 목숨을 잃지 않았다.

게다가 마수들과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던 이들은 단한의 도움으로 모두 치유가 되었다.

괴수들의 코어를 취한 덕분이었다.

그도 미처 몰랐던 치유 능력이 생긴 것이다.

어쩌다 팔뚝을 심하게 다친 서연의 모습에 안쓰러워 손을 가져다 대었더니 빛이 흘러나오며 금세 치유가 되었다.

금가의 보고인 그곳의 봉인을 푼 것도 놀라운데 치유 능력까지 생긴 것이다.

그렇게 다친 대원들을 죄다 치유 능력으로 치료한 단한은 비록 자신이 오히려 탈진이 되었지만 행복했다.

대원들에게 부축되어 숲을 나서자 지원 병력과 함께 이곳에 당도한 권순후가 환하게 웃는 낯으로 그를 반겨 주었다.

“이제 남은 일은 흉수를 처리하면 되는 건가?”

“그래.”

“그 일은 이제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게.”

마수들과의 전투를 경험한 대원들에게 흉수 따위 어려울 것이 없었다. 단한이 허락하듯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대한민국에 퍼져 있는 흉수들은 모두 천여 명이었지만, 아직 처리 못한 놈들이 있었다.

흉수들에 대한 처리까지 끝나면 단한은 금가의 황금 보고를 찾아갈 생각이었다.

금가의 황금 보고가 어디 있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그가 지닌 금력은 현재 9성에 가까웠다.

서곰의 말로는 9성에 이르면 열쇠가 알아서 보고로 그를 안내한다고 했다.

금가의 천운현이 황금 보고가 위치한 지역을 알고 있었다. 물론 보고가 있는 정확한 위치는 천운현도 모를 터였지만.

어쨌든 물욕에 대한 욕심보다는 한번 구경하고 싶었다. 과연 황금 보고는 어떻게 생겼는지 말이다.

‘서곰과 함께 그곳을 가기를 원했건만.’

이렇게 열쇠의 봉인을 풀었지만 곁에 서곰이 없었다.

푸른 허공을 아련한 눈빛으로 올려다보는 단한의 모습에 서연은 더는 말을 붙이지 못하고 침묵을 유지했다.

서곰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에.

지금은 그저 곁에서 조용히 함께 있는 것이 그를 위로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밤이 되었다.

서곰이 사라지고 나자 천운현의 저택에 형성된 포탈은 해제가 되었다.

그렇지만 기이하게도 단한의 옷장에 형성된 포탈은 해제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랬기에 비밀 정원도 여전히 유지할 수 있었다.

스르륵-

바람처럼 비밀 정원에 들어선 단한.

토순이들이 깡충거리며 단한의 주위로 몰려들었다가 귀를 쫑긋거렸다. 늘 함께하던 서곰이 오늘은 보이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진 모양이었다.

토순이들은 기다려도 서곰이 오지 않자 푸른 사탕을 톡톡 단한의 발치에 뱉어 놓고는 풀밭으로 이리저리 자유롭게 뛰어다녔다.

단순한 녀석들이란 것이 이럴 때는 편안했다.

저 녀석들까지 서곰의 부재를 슬퍼했다면 그의 가슴이 더욱 미어질 터였다.

풀밭에 누웠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손에 쥐고 있는 셈이었다.

멋진 저택, 그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집안 어른들, 든든한 조력 가문들, MDT 총사령관이란 직책. 거기에 황금 보고의 열쇠까지 소유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허전했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친구를 잃은 탓인지도 몰랐다.

‘서곰, 너무 보고 싶다.’

앙증맞은 녀석을 배 위에 올려놓고 까만 눈동자를 질리도록 실컷 들여다보고만 싶었다.

‘이 모든 것은 신지후 그놈으로 인해서다.’

그러고 보니 처리할 일을 한 가지 빠트렸다.

어찌 보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바로 신지후와 오누이의 연이었던 신이경. 그녀를 용서할 수 없었다.

알고 보면 모두 그녀로 인해 비롯된 일이었다. 그래 놓고 자신이 희생양인 듯 청승을 떨고 있을 터였다.

‘지 오라비가 사라진 것을 신이경도 알고 있겠지?’

오누이 간에는 기감이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랬기에 지금쯤 신이경도 신지후가 세상에서 사라진 것을 눈치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에게도 흉수 못지않게 단죄가 필요했다.

그간 신지후로 인하여 그녀는 상당한 부를 축적하고 있는 상태였다. 화장품 CF를 비롯하여 이번에 영화를 찍을 계획이라고 알고 있다.

신지후는 소멸된 이상 더는 여동생인 신이경의 방패막이가 되어 주지 못할 터였다.

신지후를 떠올리자 가슴속에서 분노가 치솟았다.

서곰이 그렇게 소멸된 것은 모두 놈으로 인해서였다.

게다가 만일 그가 능력이 약했더라면 신지후가 끌어들인 마수들의 발에 짓밟혀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었을 터였다.

조력 가문 사람들도, 그리고 어쩌면 집안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걸 생각하자 치가 떨렸다.

그런 놈의 여동생이 이 세상에 살아 있었다.

그동안 신지후의 후원 덕분으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확실하게 밟아 버리리라.

누웠던 풀밭에서 일어선 단한은 집을 나와 공간 이동을 이용하여 신이경이 거주하고 있는 저택으로 향했다.

그렇게 저택에 당도하자 은신술을 펼쳐 몸을 가렸다.

그녀의 기감이 2층에서 느껴졌기에, 막 2층으로 올라서려는 찰나였다.

뭔가 투욱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닥에 놓았던 뭔가의 받침대가 넘어지는 소리와 흡사했다.

순간 그녀의 기감이 미약해졌다.

‘설마 자살을 시도한 건가?’

이런 경우 추리할 수 있는 일은 바로 자살이었다.

단한은 방문을 열지 않고도 그녀의 방에 들어설 수 있었다.

공간 이동의 능력 덕분이다. 이곳에 가능한 그의 어떤 흔적도 남기기 싫었다.

그렇게 들어선 방 안의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신이경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여자는 내가 찾아올 것을 알고 있었다.’

신지후가 세상에서 소멸된 것을 눈치챈 그녀는 그의 보복이 두려워 편하게 자살을 택한 모양이었다.

신이경의 꺼져 가는 생명에 그는 갈등이 일었다.

살려 내서 버러지만도 못한 인생을 살게 해 주자는 생각과 동시에 이대로 그냥 죽게 내버려 두자는 생각.

그때였다.

뚝.

신이경의 생기가 끊어졌다.

갈등하고 말고 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그의 손을 더럽히지 않아도 되었다.

신지후에 이어 신이경까지, 둘 다 세상을 떠났다.

이곳 세상에서의 연을 끝으로, 두 번 다시 그와 연관되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이곳이 둘에게도 마지막 세상이었기에.

***

흉수들의 처리 계획을 수정했다.

놈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처리할 것이 아니라 한곳에 모아 놓고 한 방에 처리를 하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안 그래도 흉수들의 우두머리 격인 마달평이 참혹하게 세상을 뜬 이후로 불안에 떨던 흉수들이었다.

호텔을 빌려 파티 형식으로 놈들을 초대했다.

마달평에 이어 재력가로 유명세를 날리고 있던 흉수 노천마의 이름을 팔았다.

이미 코어를 제압당한 흉수 노천마는 순순히 단한이 원하는 대로 따랐다.

그렇게 약속한 날짜가 다가왔다.

호텔의 연회장에 흉수들이 죄다 모인 것을 확인한 단한은 연회장의 주변에 결계를 형성했다.

누구도 결계 밖으로 빠져나갈 수 없었다.

파티가 시작되기 전에 제1팀 대원들은 이미 연회장 안에 모두 들어온 상태였다.

단한이 연회장의 단상에 올라섰다.

와인을 홀짝이며 서로 담소를 나누던 흉수들이 의아한 기색으로 단한을 쳐다봤다.

단한에게 코어를 제압당한 적이 있던 흉수들은 그를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두려움에 몸을 떨어 댔다.

하지만 나머지 흉수들은 그의 잘생긴 얼굴에 침을 흘렸다.

본원적으로 흉수들은 성을 가리지 않고 즐기는 취미가 있었던 탓이다.

단한이 마이크를 잡고는 말했다.

“오늘 너희를 위해 특별 쇼를 준비했다. 쇼가 끝나면 세상이 달라 보일 거다. …흉수를 처리하십시오.”

단한의 말에 흉수들의 표정이 일제히 굳어졌다.

대기하고 있던 제1팀 대원들이 각자 맡은 흉수들을 손보기 시작한 것이다.

마수들과의 전투를 경험한 제1팀 대원들이었다.

아무리 괴물체로 돌변한다 해도 마수들보다 못한 흉수들이었다.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나 진배없었다.

단한도 지켜보고만 있기에 심심해서인지 연회장의 이곳저곳을 바람처럼 누비며 놈들을 처리했다.

단한까지 나서자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아서 상황이 종료되었다.

단한이 다시 단상에 올라섰다. 코어를 제압당한 흉수들의 뒤처리를 위해서였다.

난장판이 되어 버린 연회장의 분위기였다. 음식 테이블은 엎어지고, 흉수들은 거의가 찢어진 의복으로 인해 반나체에 가까웠다.

모르는 이가 본다면 단체로 마약을 흡입하고, 그 짓을 하기 위해 몰려든 광란의 집단으로도 보일 터였다.

흉수들의 찢어진 옷이야 나중에 콜서비스를 통해 알아서 처리할 터였다. 저대로 호텔을 벗어났다간 경범죄로 걸릴 터였기에.

단한은 광역 섭혼술로 놈들의 심령 제압에 들어갔다.

-숨긴 비자금을 전부 사회에 환원시켜라. 앞으로 탐욕을 부리지 말고 자신의 직분에 최선을 다해 바르고 선하게 살 것을 명하노라.

한층 강해진 단한의 섭혼술을 감히 흉수들이 어길 리 만무했다.

흉수들은 대다수 재력가였다. 그랬기에 자산을 모두 빼앗을까도 생각했지만 이들에게 매인 직원들이 있었다. 그들은 보통 인간이었던 것이다. 일자리를 잃어버릴 염려가 있었다. 해서 숨긴 비자금만 사회에 환원 조치시켰다.

흉수들의 처리가 모두 끝났다.

그렇다면 이제 여행을 떠나도 좋았다.

여행의 목적은 바로 금가의 보고를 찾는 일.

월요일은 휴강이었기에 사흘 동안 시간이 있었다.

호텔을 나온 단한과 대원들.

여행에는 서연, 서준, 천지연, 이소현, 이훈식을 동반하기로 했다. 예전에 설악산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던 멤버에서 이훈식이 추가된 셈이었다.

이훈식이 이소현에게 사랑을 고백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이훈식의 교제 신청을 수락했다. 비록 둘은 성은 같지만 본이 달라 결혼을 원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금가의 천운현이 단한의 가까이 다가왔다.

단한이 금가의 비기인 황금 보고의 열쇠를 손에 넣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몹시 흥분했던 천운현이었다.

하지만 천운현이 금가의 황금 보고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그저 동해 바닷속 어딘가에 보고가 있다고만 전해 들은 것이 다였다.

그래서인지 천운현은 누구보다 이번 여행에 기대를 갖고 있었다. 이미 거부인 천운현이기에 물욕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궁금했다. 대대로 내려오던 안배가 드디어 베일이 드러나게 되었으니 말이다.

“보고를 찾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천운현과 얘기를 나눈 단한이 서찬성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서찬성은 천운현과 달리 표정이 뭔가 복잡해 보였다. 좋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했다.

서연이 단한의 반려자로 안배된 것을 알고 있었고, 더구나 둘은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된 오빠인 서준이야 나이가 있으니까 문제는 없었지만, 서연은 아직 품 안의 자식처럼 여겨졌다. 단한이 결코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딸 가진 아비의 심정. 그래서 기분이 복잡했던 것이다.

그걸 알고 있기에 단한이 웃는 낯으로 서찬성에게 인사말을 먼저 건넸다.

“이렇게 저희만 여행을 떠나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하하! 여행 잘 다녀오시고, 특히 우리 연이를 잘 부탁드립니다. 아직 여러모로 부족한 아이입니다.”

“염려 마십시오.”

단한과 일행이 준비된 승합차에 올라탔다.

승합차 앞에는 운전대를 잡은 서준, 그 옆의 조수석에 단한이 자리했다. 그리고 뒤로 서연과 천지연이 나란히 앉고, 맨 뒷좌석에 이소현과 이훈식을 앉도록 배려했다.

이소현과 이훈식은 일행 중에서 가장 뒤늦게 연애 대열에 합류한 셈이었다.

부릉!

남은 대원들은 이들을 태운 차량이 사라지기까지 손을 흔들며 자리를 지켰다.

조력 가문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모두 처리해서인지 남은 대원들의 표정은 환해 보였다.

천운현이 대원들을 향해 제안하듯 말했다.

“우리 집으로 가서 오늘 제대로 파티를 합시다.”

“좋습니다.”

사실 두 달 동안 천운현의 저택에서 머무른 셈이었지만, 포탈을 통과하여 훈련을 하기에 급급해서 즐기고 할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것이 마음에 걸린 천운현이 남은 대원들에게 파티를 제안했다.

모두가 즐거운 표정으로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천운현이 휴대폰을 꺼내어 비서에게 연락을 취했다.

천운그룹의 회장의 지시였다. 아마도 이들이 저택에 도착하기 이전에 파티 준비를 해 놓고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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