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흉수를 보다
단한은 집으로 돌아오자 곧장 비밀 정원에 들어섰다.
푹신한 풀밭에 편안하게 누워 토순이들이 토해 내는 사탕을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곳의 사탕이 어머니나 할머니들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알았으나, 조력 가문들에게까지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늦게 알려 줘서 서운하냐?
-아니다. 적당한 시기에 알려 준 셈이다. 한데 너는 비기를 보관하지 않은 조력 가문을 모두 알고 있는 모양이지?
-당연하다. 너와 관련한 것들은 모두 꿰뚫어 보고 있다.
서곰이 곁에 있다는 것이 참으로 위안이 되었다.
녀석이 없었더라면 혼자 이 많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검사까지 조력 가문이었다니 뜻밖이었다. 하면 나머지 조력 가문들이 모두 네 곳이 남은 셈이군.
-빠른 시일 안에 그들과의 만남을 주선토록 하마.
-네가 수고가 많다. 한데 화가는 언제 각성을 하게 될까?
-흐음, 화가는 아무래도 좀 더 두고 봐야겠다.
현재 다섯 가문에서 보관 중이던 비기를 취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렇게 비기를 취했음에도 분하게도 아직 신지후보다 능력이 약한 상태였다.
‘그나마 풍력 5성이 되어 공간 이동을 할 수 있게 되었기에 망정이지.’
푸른 사탕을 한 알 집어서 막 입 안에 넣으려던 순간 단한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혹시 풍가를 만나기 전에 먹었던 은빛 사탕이?’
풍룡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은빛이 떠올랐다.
이제까지 토순이들에게서 비롯된 사탕들은 하나같이 푸른빛이었다. 그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날 먹은 사탕만은 풍룡과 같은 은빛이었다.
그걸 먹고 나서도 기분이 다른 때와 확실히 달랐던 것이 떠올랐다.
단한이 서곰을 쳐다봤다.
-서곰, 너 나에게 숨기는 비밀이 있지?
-글쎄다?
시치미를 잡아떼는 녀석의 태도였다.
단한이 서곰을 배 위에 올려놓고는 시선을 맞추며 물었다.
-풍가를 방문하기 전에 이곳에서 특이한 사탕을 하나 먹었다. 그것이 네 짓이 아니라고?
-글쎄다? 그런 사탕도 있었나?
녀석의 시치미에 단한이 싱긋 웃어 보였다.
딴엔 비밀로 하려고 한 모양이지만 이미 서곰의 짓임을 알게 된 것이다.
단한이 서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주며 말했다.
-고맙다. 덕분에 풍력 5성에 이를 수 있었다.
-그게 왜 내 덕분이냐? 은빛 사탕 덕분이지?
-은빛이라? 사탕이 은빛인 걸 어떻게 알았을까?
-…….
단한의 시선에 서곰이 삐질거리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런 서곰의 엉덩이를 톡톡 부드럽게 두드려 주곤 단한이 누웠던 풀밭에서 일어나 앉았다.
잠시 취한 휴식으로 눈빛이 또렷하니 기운이 충만한 기색이었다.
-충분히 쉬었으니 권순후 의원에게 연락을 취해 봐야겠다.
???
권순후의 저택.
어제저녁에 단한의 전화를 받은 권순후였다.
과거에 위기에 처한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단한에게 명함을 건네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까지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았던 그가 느닷없이 오늘 만남을 요청한 것이다.
과연 무슨 의도로 만나고자 하는지 궁금했다.
권순후는 사실 오늘 수뇌부들과 사전 약속이 잡혀 있었으나, 그것을 물리고 단한을 만나기 위해 집을 떠나지 않았다.
그만큼 단한을 예사롭지 않은 존재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약속한 시간이 가까워졌다. 저택의 접대실에서 차를 한 잔 마시며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약속했던 시간이 10분가량 남았을 무렵,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그리고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님께서 당도하셨습니다.”
“그래? 안으로 모시게.”
이어 안으로 단한과 박지태가 들어왔다.
실버톤의 심플한 슈트의 핏이 보기 좋게 어울린 탓인지 단한의 모습은 멋스럽고 준수했다.
반면 박지태는 공무원답게 깔끔한 감색 슈트를 걸쳤다.
편안한 개량 한복을 걸친 권순후는 단한과 함께 온 박지태는 건성으로 쳐다보곤 이내 단한의 얼굴로 고갤 돌렸다.
단한이 공손히 인사를 했다.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오랜만일세. 자네 전화를 받고 매우 흥분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네.”
“갑작스레 전화를 드려서 실례가 되지 않았을지 속으로 걱정했습니다.”
“허허허! 표정은 전혀 걱정스러운 기색이 아니구먼.”
단한을 보게 된 것이 진심으로 즐거운지 그와 몇 마디 주고받은 권순후의 표정은 눈에 띄게 환해 보였다.
단한이 곁의 박지태를 권순후에게 소개하듯 입을 열었다.
“어제 말씀드린 분입니다. 오늘 어르신과 나눌 얘기에 필요하신 분이라 제가 동행을 요구했습니다.”
박지태가 권순후를 향해 공손히 인사를 했다.
“서울북부지검 소속인 박지태 지검장입니다.”
“권순후일세. 우리 언젠가 만난 적이 있었지?”
“그렇습니다. 제가 초창기 검사 시절에 어르신을 한번 뵌 적이 있었습니다.”
“맞네. 그때 펄펄 날아다니더니 요즘은 어떤가?”
“아무래도 세월을 이길 장사가 있겠습니까?”
서로 안면이 있었던지 분위기가 부드럽게 넘어갔다.
한편으론 훗날 권순후는 대통령에 오를 존재였고, 박지태는 검찰총장이 될 인물이었다.
엄청난 존재들이었지만 둘을 대하는 단한의 표정은 전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모두가 소파에 자리했다.
테이블의 상석에 권순후가, 좌우로 단한과 박지태가 나눠서 앉았다.
비서가 들어와 각자 앞에 차를 내려놓고는 나갔다.
권순후가 찻잔을 들어 입 안을 한 번 축이곤 말했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나를 보자고 한 건가?”
“어르신께 부탁할 일이 있어서입니다.”
명함을 건네주었지만 그동안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던 단한이었기에 권순후의 눈빛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부탁할 일이 어떤 내용인가?”
“그 내용을 말씀드리기 전에 어르신의 앞날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면 자네가 나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세상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면 분명 제가 본 바대로 흘러갈 것입니다.”
단한이 신비로운 존재라는 것은 이미 예전에 경험했기에 권순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어디 한번 나의 미래가 어떠한지 말해 보게.”
권순후에게 괴물 처리반을 신속히 구성해야 하는 이유를 납득을 시키기엔 미래에 대한 언급이 효과적일 터였다.
서곰도 그 점에 한해선 수긍을 해 주었다.
단한이 권순후의 얼굴을 조용히 주시하며 입을 열었다.
“어르신께선 다음 대권을 이어 갈 대통령으로 취임하시게 됩니다.”
유력한 대권 후보자인 권순후였다.
그랬기에 대통령이 되리라는 보장은 이미 되어 있는 터였지만, 그래도 세상사는 모르는 것이다.
권순후가 흐뭇한 낯빛으로 단한을 쳐다봤다.
“흐음, 나쁘지 않은 소리로군.”
“다행입니다. 그리고 여기 지검장님의 미래도 제가 본 바로는 어르신의 임기 후반부에 검찰총장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내가… 검찰총장?”
박지태가 깜짝 놀란 눈으로 단한의 얼굴을 쳐다봤다.
권순후의 미래는 이미 예상하던 일이지만 자신의 미래까지 그가 보았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물론 박지태도 최종 목표는 대검찰청 검찰총장이 꿈이었다.
단한이 권순후와 박지태를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돌아보곤 다시 입을 열었다.
“이렇게 훌륭한 두 분과 함께 있으니 무한한 영광입니다. 하면 인사치레는 이것으로 마무리하고 본원적인 얘기를 꺼내고자 합니다. 오늘 이렇게 어르신을 찾아온 이유는 조속한 시일 안에 괴물 처리반을 구성토록 부탁할 생각에서입니다.”
“괴물 처리반?”
권순후가 의아히 단한을 쳐다봤다. 허튼소리를 할 존재가 아님을 알고 있지만 뜬금없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괴물 처리반은 훗날 대통령에 오르실 어르신을 위해서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나에게 도움이 된다? 어떤 면에서 말이지?”
“일단 괴물로부터 대한민국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더불어 수많은 국민들의 목숨을 구하게 될 수 있고요.”
“대체 어떤 괴물들이 나오기에 그리 말하는가?”
“현대식 무기가 통하지 않는 괴물들입니다.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그것이 이 세상에 튀어나올 것입니다. 해서 괴물 처리반을 구성토록 이렇게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그것이 내가 대통령이 된 후에 벌어지는 일이란 말인가?”
이전의 세상에서는 없던 변수였지만 이번의 세상에는 반드시 일어날 변괴였다.
단한이 진중한 눈빛으로 권순후의 얼굴을 지그시 응시했다.
“어쩌면 그 안에 당겨질 수도 있지만… 제가 예상하는 시기는 아마 그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괴물에 대한 대처 방안으로 괴물 처리반을 조속히 신설토록 하는 것입니다.”
사실 권순후가 마음만 먹는다면 못할 것도 없었다.
대통령을 만나 특별 처리로 요청을 한다면 며칠 만에 괴물 처리반이 신설될 터였기에 말이다.
“괴물 처리반이라? 자네의 말을 불신하는 것은 아니네만 갑작스런 얘기라 조금 당황스럽군.”
“그럴 것입니다. 어르신께선 마달평 의원 사건을 알고 계실 겁니다.”
“물론이네. 항간에선 우리 측에서 저지른 짓이라며 비난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네.”
“그 마달평 의원이 바로 괴물이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마 의원이 괴물?”
“아직 제 말이 납득이 잘 가지 않을 겁니다. 하면 어르신께 직접 흉수란 것을 보여 드리도록 하죠.”
“흉수? 그것도 괴물인가?”
“괴물 중에서 가장 약한 괴물이라고 보면 됩니다. 마달평 의원 역시 그 흉수에 속했고요. 하면 준비된 장소로 옮기시는 게 좋겠습니다. 저택에서 근방의 거리이니 차가 필요 없을 겁니다.”
“…알았네.”
권순후는 아직도 얼떨떨한 기분도 없지 않았다.
그렇게 이들이 향한 곳은 권순후의 저택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일부러 단한이 밖에서 권순후를 보지 않고 집까지 찾아온 이유이기도 했다.
한 저택 앞에 멈춰 서자 권순후가 의아히 단한을 쳐다봤다.
“…이곳은?”
권순후와 안면이 있는 동네 주민이 사는 집이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자였다.
그동안 후원 명목으로 상당한 금액을 기부하고 있었기에 몇 번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다.
“흉수를 보여 준다더니, 이곳은 왜 온 것인가?”
“여기에 사는 방추섭이 바로 흉수이기 때문입니다.”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닌가?”
“들어가 보시면 알게 될 것입니다.”
방추섭은 흉수치고 그리 강한 놈은 아니었다.
권순후의 집과 거리도 가까웠고, 눈요깃거리로 적당한 상태였기에 놈을 택한 것이다.
단한이 권순후의 경호원들을 힐끗 둘러보며 말했다.
“저들은 이곳에서 대기하도록 하는 게 좋겠습니다.”
“알았네.”
권순후의 손짓에 경호원들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저택의 대문 앞에 일렬로 늘어섰다.
과거에 강변에서의 사건 이후로 어디를 가나 경호원들이 따라붙게 된 것이다.
그렇게 경호원들을 물리고 이들이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정원에 이미 서곰이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서곰의 곁에는 잔뜩 주눅 든 표정의 방추섭이 함께 있었다. 방추섭의 부인과 자식들은 마침 외국 여행을 떠난 상태였다.
그때였다.
파앗-!
단한과 일행이 안으로 들어선 것을 확인한 서곰이 정원의 일대로 빠르게 결계를 형성했다.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는 서곰의 모습에 권순후의 눈빛이 확 굳어졌다. 그러다 전혀 놀라운 기색이 없는 태연스러운 박지태의 모습에 권순후가 의아히 쳐다봤다.
“자네는 저 곰 인형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군.”
권순후의 질문에 박지태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때 서곰이 결계 형성을 끝내자 단한의 곁으로 다가왔다.
단한이 서곰을 권순후에게 소개했다.
“서곰입니다. 저를 돕는 일을 하고 있지요.”
“특… 이한 곰 인형이군.”
“그렇습니다. 하면 저기 방추섭을 한번 보시지요. 그동안 어르신과 인사를 나누며 지내 온 존재일 것입니다.”
“그렇다네. 한데 자네가 뭔가 오해를 하고 있음이 분명하네. 방 사장은 괴물이 아닐세. 저렇게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괴물이라는 건가?”
권순후는 단한의 얼굴을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하면 말보다 직접 보시는 것이 이해가 빠를 겁니다. 방추섭이 흉수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죠.”
단한이 불안한 표정으로 눈치를 보고 있던 방추섭을 향해 암기술을 시전했다.
핏! 핏핏!
이곳에서 처음으로 시도해 본 풍력 암기술이었다.
토력 암기술보다 효과가 더욱 좋았다.
암기술에 격중당한 방추섭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입에서 괴이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크르르…….
“쯧쯧! 그것으론 부족하지. 얼른 변신을 해라.”
핏핏핏!
단한이 다시금 방추섭의 성미를 돋우듯 암기술로 놈의 여기저기에 쏘아 댔다.
그러자 더는 참을 수가 없어진 방추섭이 서서히 흉수의 모습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스르륵-
뱀과 사자와 개를 뒤섞어 놓은 듯한 흉측한 형체.
그렇게 흉수 본연의 모습으로 변신한 방추섭이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단한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지켜보던 권순후의 눈빛이 파르르 흔들렸다.
‘맙소사! 저게 정말로 방 사장이라고?’
박지태도 흉수의 모습을 직접 보는 것이 처음이어서인지 잔뜩 흥분한 표정이었다.
‘저게 괴물 중에서 가장 약한 괴물이라니?’
분위기를 확실하게 잡은 단한이 굳어진 권순후와 박지태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것이 흉수의 본모습입니다. 이런 놈들이 현재 대한민국에 잔뜩 도사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런 놈들보다 몇 배로 강한 마수들이 앞으로 이 세상에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하면 지금부터 제가 흉수를 처리하기 전에 지검장님께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그걸 준비해 오셨겠죠?”
박지태가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키곤 대답했다.
“그, 그렇습니다.”
“시작하십시오.”
권순후가 의아히 박지태를 쳐다봤다.
박지태가 품 안에서 권총을 꺼냈다.
5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