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단한 성공기-72화 (72/95)

제12장 어려도 주군 (1)

“지검장님께 상의할 일이 있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말씀하시지요.”

말을 편하게 놓으라고 했지만 그것이 쉽지 않은 모양인지 박지태가 정중한 태도로 단한을 쳐다봤다.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박지태의 상태였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조력 가문으로의 역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였지만, 괴물 처리반에 대한 상의를 하기 전에 먼저 조력 가문에 관련한 보다 상세한 설명을 해 주는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될 터였다.

“일단 제가 상의할 내용을 말씀드리기 전에 조력 가문에 대한 말씀을 먼저 드리는 게 순서이겠군요.”

“그러시지요.”

박지태는 내심 조력 가문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있었기에 단한의 얼굴을 관심 있게 주시했다.

“지금까지 제가 비기를 취한 가문이 모두 다섯 곳입니다. 토가(土家), 뇌가(雷家), 금가(金家), 수가(水家), 그리고 오늘 이렇게 풍가(風家)까지 합세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하면 다른 조력 가문들은 서로 소통이 원활한 상태입니까?”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서로 얼굴을 알고 지내는 사이입니다. 지검장님께도 제가 조만간 다른 조력 가문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시간을 마련해 보겠습니다.”

“조력 가문의 사람들이 어떤 분들일지 기대되는군요.”

“다들 좋은 분들입니다. 토가에 속한 분은 명상수련원을 운영하고 계시고, 뇌가는 정보 기업체를, 그리고 금가는 지검장님도 익히 아시는 분일 겁니다.”

“금가라니까 왠지 재력과 관련이 있을 듯싶군요.”

역시 두뇌 회전이 빠른 자였다.

“그렇습니다. 금융계의 대부로 불리던 천운그룹의 회장님이 금가의 소속입니다.”

“천운현 회장님이라면 저도 익히 알고 있지요. 제법 거물급인 분이 조력 가문이라니 놀랍습니다.”

진심으로 놀라워하는 박지태의 얼굴을 웃으며 바라보던 단한이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수가는 다른 조력 가문과 달리 가주가 여자분입니다. 강원도에서 조용히 은둔 생활을 하며 수공을 연마해 온 분이십니다. 현재 서울에 올라와 금가에서 지내고 있는 상태이고요.”

“아, 그렇군요. 하면 아직 비기를 취하지 못한 조력 가문이 더 있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비기를 보관한 가문은 모두 여섯 곳입니다. 현재 다섯 가문에서 보관 중이던 비기를 취했으니 한 군데의 가문이 빠진 셈입니다.”

“한 군데라? 어떤 조력 가문일지 궁금하군요.”

“화가(火家)의 비기를 간직한 가문입니다.”

“화가라면 불의 속성이겠군요. 하면 그곳의 가주가 아직 각성을 하지 않은 모양이군요.”

“맞습니다.”

사실 박지태도 조부로부터 조력 가문의 역할에 대해서 전해 듣기는 했지만, 각성을 하기 전까지는 그저 남 일처럼 여겨지는 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각성을 하고 나니 모든 것이 달라졌다.

세상을 보는 안목도, 느낌도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신수의 피를 타고난 존재를 주군으로 섬겨야 한다는 사실이 숙명처럼 여겨졌다.

그건 누가 시켜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본능이, 가슴이 그걸 원하고 있었다.

“화가의 가주도 조만간 저처럼 각성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단한 군을 주군으로 섬길 것이리라 믿습니다.”

단한을 생각해서 꺼낸 박지태의 말임을 알고 있기에 그가 조용히 웃어 보였다.

“지검장님께선 십이지신(十二支神)이라고 들어 보셨을 겁니다.”

“물론입니다. 땅을 지키는 열두 신장이란 의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나이를 십이지신의 띠로 분류하기도 하고요. 한데 갑자기 십이지신을 왜 꺼내신 건가요? 뭔가 의미가 있는 모양이군요.”

박지태의 예리한 눈빛이 반짝거렸다.

단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조용히 웃어 보였다.

그런 단한의 얼굴을 지그시 주시하던 박지태는 자연스럽게 사람을 압도하는 그의 자태에 갈수록 경외심이 깊어졌다.

각성을 하기 전까지는 은근히 지검장이라는 자신의 위치를 뽐내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만나고 경이로운 능력을 경험하게 되자, 세속적인 겉치레에 연연했던 그간의 삶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실은 이곳 세상에 조력 가문이 십이지신처럼 모두 열두 곳의 가문이 존재하고 있답니다.”

“열두 가문이나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들은 각자 가문 특성대로 십이지신에 해당하는 속성을 타고났습니다.”

박지태가 새로운 사실에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확실히 조력 가문에 대한 정보가 어두운 박지태임을 알 수 있었다.

그건 여타 가문도 마찬가지였다. 조력 가문 중에서 그나마 금가의 천운현이 그런 면에선 가장 관심을 많이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면 풍가는 어떤 속성을 타고났는지 궁금하군요.”

“풍가는 십이지신 중 오(午)인 말의 속성을 타고났습니다.”

“말이라고요?”

순간 박지태는 허허로운 들판을 바람처럼 자유롭게 달리는 말의 모습을 떠올리곤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의문이 있는지 다시 물었다.

“한데 좀 전에 비기를 보관한 가문이 여섯 곳이라 말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럼 나머지 여섯 곳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궁금하군요.”

“나머지 여섯 곳도 조력 가문입니다. 비록 비기를 보관하지 않은 가문들이나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기운을 타고난 그들이니, 저에게 훌륭한 조력자의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한데 비기를 보관하지 않은 조력 가문이 반수나 된다니 놀라운 일이로군요.”

조력 가문이라면 응당 그에게 전할 비기를 보관하고 있으리라 여긴 박지태로선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하면 그 가문들도 만나 보셨습니까?”

“유감스럽지만 아직까지는 한 군데의 가문만 만났을 뿐입니다. 비기를 보관하고 있는 가문과는 달리 각성이 늦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흐음, 그런 면이 있군요.”

“한데 오늘 운 좋게 이곳에서 비기를 보관하지 않은 다른 조력 가문의 혈육을 만나게 될 듯싶습니다.”

“……?”

단한의 말에 박지태의 눈빛이 의혹에 잠겼다.

오늘 단한이 이곳에 와서 만난 존재라곤 이훈식이 전부일 터였다.

“설마 이훈식 검사를 말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저도 이곳에 와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허허! 이 검사가 단한 군의 조력 가문이었다니 놀라운 일이로군요.”

박지태는 이훈식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그동안 다른 검사들도 많이 만나 봤지만 이상하게도 이훈식을 대한 순간 묘하게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대하면 대할수록 신뢰감을 갖게 만드는 이훈식의 됨됨이에 좋은 후배를 두게 되었다며 기뻐했다.

“하면 이 검사는 어떤 속성을 타고났습니까?”

“십이지신 중에서 축(丑)인 소의 특성을 타고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의 특성이라고요? 하긴 묵묵하고 충직한 성격이 딱 이 검사와 잘 맞는군요.”

박지태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단한이 접대실 문을 돌아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상의드릴 내용은 조력 가문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 이 검사님도 함께 얘기를 듣는 게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실은 안 그래도 일부러 안면을 익히게 할 겸 이 검사에게 단한 군의 안내를 맡겼던 겁니다. 나중에 단한 군도 법조계에 들어올 터이니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지검장님의 배려 덕분에 다른 조력 가문을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즐겁게 생각합니다.”

박지태가 벨을 누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훈식이 안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그쪽으로 앉게.”

“알겠습니다.”

이훈식이 박지태의 맞은편으로 착석했다. 그러면서 상석에 자리한 단한을 의아히 쳐다봤다.

박지태는 단한에게 주군의 예를 갖춘 이후로 자연스럽게 그에게 상석을 권유한 것이다. 그걸 그는 마다하지 않았다.

박지태가 웃으며 이훈식을 쳐다봤다.

“정식으로 인사드리게. 자네의 주군이 되실 단한 군일세.”

“주군이라고요?”

이훈식이 당황한 표정으로 단한의 얼굴을 쳐다봤다.

박지태가 그런 이훈식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껄껄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에게도 주군이시지만 나에게도 소중한 주군이시라네. 알고 보니 자네의 가문이 우리 가문과 마찬가지로 단한 군의 조력 가문임이 밝혀졌다네.”

“하면 설마 단한 군이 신수의 피를 이어받은 존재란 말씀인가요?”

이훈식은 가문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전설과도 같은 얘기를 어릴 때 조부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신수의 피를 이어받은 존재를 위한 조력 가문.

주군을 위해 안배된 가문답게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두뇌가 우수하며, 건강 체질을 타고났다.

한편으론 반신반의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로 그런 존재가 있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 얘기가 사실이었다니?’

이훈식의 감읍한 표정에 박지태도 그 감정을 익히 알고 있기에 마음이 뿌듯하고 흡족했다.

다른 인간들과는 달리 특별한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내가 나설 차례가 되었군.

서곰이 자신의 존재를 둘에게 알려도 좋을 것이라 판단했는지 앉았던 소파에서 벌떡 일어섰다.

사실 다른 조력 가문들은 이제 서곰의 존재를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이다.

“허어?”

“곰 인형이…….”

순간 서곰의 움직임에 박지태와 이훈식이 놀라 쳐다봤다.

바닥으로 껑충 내려선 서곰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신선과도 같은 노인이 떡하니 자리했다.

티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눈처럼 하얀 도포 자락에 가슴까지 내려오는 하얀 수염, 거기에 그윽한 맑은 눈빛.

그야말로 성스러움의 극치가 아닐 수 없었다.

서곰의 변신에 너무 놀라 할 말을 잊은 박지태와 이훈식을 쳐다보며 녀석이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놀라지 말거라. 나는 신수의 혈육인 단한 군을 보호하기 위해 이 세상에 내려온 수호천사다.”

“……?”

“……!”

서곰의 언급에 박지태와 이훈식의 눈빛에 의혹이 일었다.

지금과도 같은 신령스러운 모습이 훨씬 보기 좋은데, 왜 자그마한 곰 인형으로 지내고 있는 건지.

“내 모습에 의문이 이는 모양이구나. 하지만 이런 모습으로 지냈다간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기에, 할 수 없이 곰 인형의 몸을 빌려서 지내게 되었다.”

그제야 수긍이 된 듯 박지태와 이훈식이 서곰의 변신한 모습을 탄성 어린 눈으로 쳐다봤다.

“너희는 단한 군의 조력 가문으로 안배된 인물들이다. 둘은 십이지신 중에서 말과 소의 특성을 타고난 가문이다. 부디 단한 군을 도와 이 세상을 평화롭게 지켜 나가길 바라노라. 그리고 현재 이 세상에 위험 인물이 나타난 상황이다. 그것에 대한 대처 방안을 단한 군이 너희와 의논코자 할 터이니, 단한 군의 뜻을 받들어 잘 협조하기를 바란다. 그럼 이 노부는 다시 곰 인형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말을 마친 신령스러운 노인이 다시금 연기처럼 사라지더니 본래의 곰 인형으로 돌아왔다.

껑충!

서곰이 소파로 뛰어올라 와 자리를 잡고는 히죽 웃으며 둘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런 서곰의 모습에 박지태와 이훈식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예를 취해 보이곤 다시 자리에 앉았다.

-분위기를 확실하게 잡아 놓았으니 얘기를 꺼내기 편할 것이다.

-수고했다.

서곰으로 인해 보다 쉽게 괴물 처리반에 대한 얘기를 의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얼떨결에 조력 가문이 된 것을 알게 된 이훈식에게도 보다 신뢰를 주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곰 인형의 호칭은 편하게 서곰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서곰은 다른 조력 가문의 사람들과도 모두 인사를 나눈 상태입니다. 두 분도 앞으로 편하게 서곰으로 불러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서곰의 소개가 모두 끝난 상황이었기에 단한은 좌중에 자리한 둘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두 분에게 중요한 사실을 밝히기 전에 몇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일단 흉수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계시는지 궁금하군요.”

박지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송구스럽지만 흉수에 관련하여 알고 있는 내용이 그리 없습니다. 그저 신수의 가문과 적대 관계라는 점과, 과거에 인간의 탈을 쓰고 약탈을 일삼았다는 것 정도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이 검사님은요?”

“저도 지검장님이 알고 계시는 정도입니다.”

둘의 말에 단한이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좋습니다. 먼저 흉수에 관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도록 하죠. 과거부터 현재까지 흉수들은 유독 대한민국에만 퍼져 있는 상태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신수의 가문이 대한민국에 있기 때문이죠. 그런 흉수들이 현재 대한민국에 대략 천여 명에 가깝게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천여 명씩이나요?”

“맙소사! 흉수들이 그렇게 많이 포진해 있다니 몰랐습니다.”

박지태와 이훈식은 뜻밖의 사실에 크게 놀라워하는 표정으로 단한의 얼굴을 쳐다봤다.

단한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들은 겉으로 보기엔 인간과 똑같습니다. 하지만 인간과 달리 머리에 코어란 것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코어에는 놈들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마나란 것이 들어 있고요.”

박지태가 물었다.

“그럼 흉수들을 보면 코어가 쉽게 확인이 가능한가요?”

“그건 아닙니다. 두 분이 흉수들을 발견한다 해도 코어를 확인하긴 힘들 겁니다.”

이번엔 이훈식이 물었다.

“하면 단한 군은 코어를 확인할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확인만이 아니라 그 코어에 들어 있는 마나를 제압까지 할 수 있습니다.”

“제압까지? 역시 대단하시군요. 한데 어떤 식으로 코어를 제압하는 건지 궁금하군요.”

박지태의 물음에 단한이 설명을 이어 갔다.

“자세한 설명을 드리기엔 조금 난해하군요. 어쨌든 인간의 겉모습을 하고 있던 놈들이 흉수로 변신하면 괴물과도 같은 모습이 된다는 점입니다. 뱀과 사자와 개를 섞어서 반죽한 것과도 같은 흉측한 형상으로 말이죠. 그런 괴물들과 싸워서 전투 능력을 상실하게 한 후에 코어를 제압하게 되는 거죠.”

“흐음, 뱀과 사자와 개라고요? 제대로 상상이 되지 않는군요. 그런 괴물이 있다니. 게다가 그런 괴물과 싸워야 한다니? 어떤 방식으로 싸우는 거죠?”

“지닌 능력을 이용해야겠죠. 그 점에 대해선 잠시 후 다시 자세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수의 조력 가문인 탓에 본능적으로 흉수를 적으로 인식하는 각인이 되어 있어서인지 박지태의 눈빛이 강렬하게 타올랐다.

박지태가 다시 물었다.

“한데 코어를 제압당한 흉수들은 어떤 상태가 되는 거죠?”

“능력이 미약해져 거의 인간과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인간과 비슷한 상태라면 그리 위험하지는 않겠군요. 하지만 본원적인 기질이 흉수인데 그래도 괜찮을지 모르겠군요.”

“그 점은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실 흉수를 처리하면서 심령 제압까지 겸하고 있기에 문제를 일으킬 수가 없습니다.”

“심령 제압이라고요?”

“워낙 탐욕이 강한 흉수들이기에 재력가로 활동하는 놈들이 대부분입니다. 흉수 주제에 그렇게 호화롭게 살고 있다니 용납할 수 없습니다. 해서 코어를 제압한 후에 놈들의 심령을 제압하여 강제로 재력을 사회로 환원시키고 있습니다.”

“흐음, 흉수들의 재력을 사회에 환원시킨다? 하긴 심령 제압을 당하면 꼼짝없이 시키는 대로 따르겠군요.”

박지태의 눈빛이 흥미롭다는 듯 반짝였다.

만일 단한을 오늘 만나지 못했더라면 이런 내용을 전혀 모르고 지나갔을 터였기에 말이다.

박지태가 다시 물었다.

“지금까지 처리한 흉수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군요. 밝히기 곤란하다면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만.”

“아닙니다. 곤란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한데 본격적으로 흉수를 처리하게 된 것은 제가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시도한 일이라, 아직까지는 그리 많은 숫자를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일단 급한 대로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놈부터 처리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처리한 놈들은 대략 사십 명 정도 됩니다.”

마달평을 처리할 때만 해도 20명 남짓한 숫자였지만, 그사이에 노천마를 비롯하여 다른 흉수들까지 처리를 하다 보니 숫자가 다소 늘어나긴 했다.

“사십 명이면 그리 적은 수도 아니군요.”

“그러게요. 게다가 중요한 놈들부터 처리를 하셨다니 말이죠. 아주 훌륭한 일을 하셨군요.”

둘의 언급에 단한이 머쓱한 듯 조용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다 박지태가 다시 궁금한 것이 있는 듯 물었다.

“혹시 단한 군이 처리한 놈들 중에서 저희가 알 만한 그런 악독한 놈들이 있는지 궁금하군요.”

“있습니다.”

“그래요? 어떤 놈들이죠?”

둘이 눈을 빛내며 단한의 얼굴을 주시했다. 단한은 그런 둘의 얼굴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치가 마달평, 그리고 마달평의 수족이었던 박치수, 유지남, 요화라는 여자까지도 모두 흉수였죠. 지금은 다들 죽은 상태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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