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단한 성공기-71화 (71/95)

제11장 풍가의 비기

-풍가의 가주를 만나기 전에 너에게 밝힐 일이 있다.

-그게 뭐지?

-앞으로 네가 하려는 일과 관련이 있다.

서곰의 말에 단한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꾸를 흘렸다.

-혹시 괴물 처리반을 말하는 건가?

-그렇다. 풍가의 가주는 현재 서울북부지방검찰청 지검장으로 있는 자다.

-서울북부지검의 지검장?

한국대 법학과 재학 중인 그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렇게 검사가 된다 해도 지검장의 자리는 쉽게 넘볼 수 없는 어마어마한 자리였다.

물론 금융계의 대부로 불리던 금가의 천운현 역시 지검장 못지않은 대단한 인물이긴 했다.

그런 쟁쟁한 인물들이 조력 가문이라니 새삼 기분이 묘했다.

서곰이 다시 말했다.

-박지태라고, 세상사가 크게 엇나가지만 않는다면 훗날 대검찰청 검찰총장에 오를 인물이다.

단한도 박지태란 이름을 들어 보긴 했다.

이전 세상에서 검찰총장을 지냈던 박지태임을 말이다.

물론 그건 좀 더 훗날에 벌어질 일이었지만.

-나도 기억하고 있다. 한데 이번의 조력 가문은 법조 계통에서 나오다니 뜻밖이군.

-지금으로선 오히려 잘된 일이 아닌가?

-맞아. 그렇긴 하다.

안 그래도 권순후가 대통령이 된다면 괴물 처리반을 신설토록 요청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가 대학을 졸업하는 해에 대통령에 취임한다.

신지후가 주상과 동일 인물임을 알게 된 이상 그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서곰도 단한과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조언을 하듯 말했다.

-오늘 풍가의 가주를 만나면 괴물 처리반을 상의토록 하는 것이 좋겠다. 놈이 이렇게 일찌감치 모습을 드러낸 이상 늦장을 부릴 여유가 없다.

-알았다. 한데 풍가의 가주는 풍력 몇 성에 이른 상태지?

-풍력 3성이다. 사실 박지태가 훗날 검찰총장이 될 수 있었던 비결도 모두 풍력이 바탕이 된 거다. 검사 초창기 시절에 바람의 검신으로 불렸던 것도 그 이유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네. 박지태 지검장이 조력 가문이었다니 뜻밖이군.

검도를 배운 박지태는 목검을 소지하는 습관이 있었다.

초창기 검사 시절, 그 목검으로 도망치던 범인을 바람처럼 추격해서 잡았다 하여 한때 바람의 검신으로 알려지기까지 했다.

사실 각 조력 가문들은 각자 가문에 걸맞은 기운을 내력으로 전환시키는 능력을 타고났다.

토가는 토력술, 뇌가는 뇌력술, 금가는 금력술, 수가는 수력술, 그렇다면 풍가는 풍력술을 다루게 될 터였다.

그랬기에 괴물 처리반을 만들게 되면 조력 가문들은 필히 처리반의 소속으로 등록시킬 계획이었다.

-풍력을 취하게 되면 어떤 점이 좋아지지?

-풍력술을 다루게 되면 움직임이 빨라진다. 또한 같은 주먹질이라도 위력이 배가 된다. 모두 풍력의 힘에 의해서다. 그리고 만일 풍력 5성에 이른다면 공간 이동까지 가능해진다.

공간 이동이라는 말에 단한의 눈이 동그래졌다.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다고?

-그렇다. 비록 장거리는 불가능해도 근거리의 이동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공간 이동을 하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새가 하늘을 나는 기분? 아니면 고속열차를 탄 기분?

아직은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런데 서곰이나 신지후는 둘 다 공간 이동이 가능했다.

-그렇다면 너와 신지후도 풍력을 소유했다는 건가?

-그건 아니다. 굳이 풍력을 익히지 않아도 지닌 마나가 일정 수준에 이르면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다.

-지닌 마나가 일정 수준에 오르면? …그렇군.

한편으론 아직 단한에겐 요원한 일이었다. 여러 가문의 비기를 취하고 능력이 강해진 상태였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꼭 풍력 5성에 이르고 말리라 다짐했다.

물론 다짐한다고 능력이 갖춰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현재 수력 6성에 이른 상태니 풍력도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하여간 풍력 5성에 이르지 못한다고 해도 너무 실망하지 말기를 바란다.

-알았다.

말로는 알았다고 했지만 솔직히 풍력 5성이 되지 못한다면 아주 많이 실망할 것이다.

장거리까지 기대는 안 한다 쳐도 신지후의 꽁무니는 쫓을 정도는 되어야 할 테니 말이다.

-풍가의 가주와는 언제 만나지?

-오늘 오후 3시에 약속을 잡아 놓았다.

-오늘 오후에?

-아직 시간은 충분하니 천천히 움직이면 될 거다.

단한은 그렇게 오후가 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다른 때와는 달리 초초한 마음이 컸다.

아무래도 공간 이동이 걸린 문제였기에 그러했다.

-무료하면 비밀 정원에서 토순이들과 놀다 오든가.

-그게 좋겠군. 너도 함께 가자.

-아니다. 난 쉬고 있을 테니 혼자 다녀와라.

침대에 벌러덩 눕는 서곰의 모습에 단한이 피식 웃으며 옷장으로 향했다.

하긴 아무리 곰 인형이라 해도 피곤할 터였다. 어찌 보면 단한보다 더욱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테니.

스르륵-

단한은 옷장에 마련된 블랙홀을 통과하여 비밀 정원에 들어섰다.

신지후에게 지하실의 괴수 사육장이 있다면 그에겐 이곳 비밀 정원이 있었다.

괴수 사육장에 비하면 너무도 천국 같은 분위기였다.

저 멀리서 단한을 발견한 토순이들이 깡충거리며 달려왔다.

귀엽고 앙증맞은 녀석들이었다.

톡톡!

단한의 주위로 몰려든 토순이들이 반갑다는 인사로 푸른 사탕을 열심히 풀밭에 뱉어 냈다.

산삼과도 진배없는 귀한 사탕이었다.

사실 일전에 사탕이 어머니와 할머니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궁금해서 가져다드려 보았다.

많이도 아니고 딱 한 알씩만 드렸는데도 몰라보게 기운이 정정해졌다. 사탕 덕분인지 할머니들의 희끗하던 흰머리가 반이나 줄어든 상태였다.

그 후로 단한은 가끔 이곳의 사탕을 어른들께 간식 대용으로 드리곤 했다.

나이가 들면 이곳저곳 안 아픈 구석이 없기 마련이었지만, 확실히 사탕을 드신 후로는 그런 현상이 싹 없어졌다.

그런데 토순이들이 뱉어 놓은 사탕을 먹던 순간이었다.

‘이건 색깔이 다른 사탕이네?’

이제까지는 푸른빛의 사탕만 뱉어 내던 토순이들이었다.

그런데 여러 개 바닥에 뱉어 놓은 사탕 중에서 은빛이 반짝이는 사탕이 하나 섞여 있었다.

신기한 기분에 사탕을 집어서 입에 넣었다.

‘완전 대박!’

청량함이 지나쳐 몸이 하늘을 날 것만 같았다.

게다가 단전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기분이 일더니, 내력이 한층 충만해진 기분도 없지 않았다.

‘나쁜 현상은 아닌 거 같지?’

그렇게 비밀 정원에서 토순이들과 풀밭을 뒹굴며 놀던 단한은 손목시계를 슬쩍 바라봤다.

시간이 되었다.

다시 방으로 들어선 단한을 서곰이 히죽 웃으며 쳐다봤다.

-왜 그런 느끼한 표정으로 보는 거지?

-아니다. 그럼 그만 출발하자.

-그래.

오후 2시경에 집을 나섰다.

단한은 자가용을 운전하여 서곰과 함께 풍가의 가주가 살고 있는 동네로 향했다.

성북동이었다.

재미있게도 그곳은 얼마 전에 단한이 방문한 적이 있던 Q 화장품 회사 회장인 흉수 노천마가 살고 있는 동네였다.

풍가의 가주가 살고 있는 저택은 노천마의 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거리였다.

-저곳이 바로 풍가의 가주 저택이다.

노천마의 저택 규모에 비해선 다소 협소한 크기였지만, 그래도 운치 있는 저택의 외관 분위기였다.

저택 앞에 차를 정지하려는데 누군가 대문 앞에 나와 있었다. 젊은 사내였다.

사내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물었다.

“혹시 대단한 학생입니까?”

“그렇습니다.”

사내가 단한을 향해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이훈식입니다. 제가 안으로 안내토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30대 초반 정도의 나이, 입매가 묵직하고 눈빛이 곧아 보이는 자였다. 공무원들이 즐겨 입는 감색 정장을 걸친 모습으로 보아 저택의 고용인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단한이 차에서 내려 서곰을 품에 안고 움직이자 이훈식이 힐끗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하긴 대학생씩이나 되는 나이에 곰 인형을 들고 있으니 이상하게 보는 것도 당연했다.

그때 서곰이 슬쩍 교신을 시도했다.

-이훈식은 지검장이 아끼는 후배 검사다. 두뇌가 우수하고, 성격도 정순한 편이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비기를 보관하고 있지 않으나 이훈식 가문도 조력 가문이다. 물론 박지태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너와 친분을 나눴으면 하는 의미로 안내를 부탁했을 것이지만.

뜻밖의 사실에 단한은 속으로 크게 놀랐다.

-이곳에서 또 다른 조력 가문을 만나다니 놀랍군. 하면 이훈식 검사는 어떤 속성을 타고났지?

-십이지신 중 이훈식은 소의 속성을, 그리고 박지태는 말의 속성을 타고났다. 이로써 네 주변에 모두 일곱 곳의 십이지신이 모인 셈이다.

-그럼 남은 가문이 모두 다섯 곳인 셈이군.

-비기를 간직한 가문은 화가(火家)만 남고, 나머지 조력 가문으로 모두 네 곳이 남은 셈이다.

한편으론 십이지신 가문 중 반은 넘게 알게 된 것이다.

단한이 앞서 걸어가는 이훈식을 살피듯 쳐다봤다.

소의 속성을 타고난 가문의 존재답게 묵묵한 성격으로 여겨졌다. 어딘지 모르게 토가의 황진구를 연상시켰다.

-한데 이훈식 검사가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을 보니, 풍가의 가주에게 나에 대한 정보를 알려 준 모양이지?

-그렇다. 박지태가 각성을 했다는 것을 알고는 너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꿈을 통해 전해 준 상태다. 물론 오늘 만날 약속 시간도 꿈을 통해 잡았고.

-그랬었군.

그렇게 서곰과 은밀히 교신을 이어 가던 찰나였다.

어느덧 저택의 현관에 당도한 것이다.

두서너 걸음 앞서 움직였던 이훈식이 저택의 현관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가시죠.’란 눈빛으로 단한을 쳐다봤다.

단한은 이훈식을 따라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던 흉수 노천마의 화려했던 집 안의 인테리어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조용하고 아늑한 실내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이훈식이 단한을 저택의 접대실로 안내했다.

접대실 안에 박지태와 가족이 기다리고 있었다.

단아한 부인의 인상이었고, 자식들은 남자애는 중학생, 여자애는 고등학생으로 보였다. 둘 다 눈빛에 총기가 짙었다.

다들 단한을 대하는 눈빛에 호기심이 강하게 느껴졌다.

-다들 너를 반신반의하는 기색이다.

-아직은 그렇겠지.

박지태는 각성을 하기는 했지만 막상 단한을 대하자 그의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을 터였다.

어쨌든 이전의 삶에서 검찰총장에 오른 박지태의 얼굴을 보긴 했지만 이렇게 직접 보기는 처음이었다.

40대 중반의 나이.

미남자는 아니지만 반듯한 이목구비였다. 예리한 눈빛은 사물을 명석하게 꿰뚫어 볼 듯이 보였다.

박지태는 검사 초창기 시절 ‘바람의 검신’으로 알려진 만큼 날렵한 몸매를 소유하고 있었다.

박지태를 빠르게 훑어보았던 단한이 인사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대단한입니다.”

“반갑네. 박지태일세. 그리고 이쪽은 안사람과 자식들이네. 아무래도 나 혼자서 자네를 만나는 것보다는 모두에게 밝히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네.”

“잘하셨습니다.”

박지태의 자제들이 성인은 아니었지만 조력 가문의 혈육들답게 심지가 굳은 아이들일 터였다.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다 해도 그것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또한 박지태도 자식을 신뢰하고 있기에 이 자리에 데리고 나왔을 것이다.

“이렇게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조숙희입니다.”

“안녕하세요. 장녀 박은영입니다.”

“저는 차남 박은석입니다.”

박지태의 소개에 단한은 부인과 자식들과도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나자 이훈식이 실내에 있기가 뭐했던지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저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게 좋겠군.”

이훈식이 밖으로 나가자 모두가 자리에 앉았다.

반원형 테이블.

일부러 상석을 비운 박지태의 처사였다.

그 자리에 자신이 앉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단한을 앉으라고 권유하기엔 아직 검증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과연 그가 정말로 가문에서 전해 내려오던 비기의 주인일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었기에.

단한이 서곰을 옆에 내려놓았다.

박지태의 자제인 박은영과 박은석이 눈빛을 반짝이며 서곰을 힐끔거렸다. 둘에겐 이런 자리에 곰 인형을 들고 온 단한의 처사가 뭔가 색다르게 여겨진 모양이었다.

그리고 박지태도 내심 궁금한 기색이었지만 용도를 묻지 않았다. 뭔가 이유가 있으니 곰 인형을 가져왔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한국대 법학과에 재학 중이라고 들었네.”

“그렇습니다.”

박지태 역시 이미 단한의 이모저모를 빠르게 훑어본 상태였다.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젊은이였다.

게다가 만일 가문의 비기를 취하게 된다면 풍가의 주군이 될 존재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은 나이가 어린 그였기에 말을 편하게 했다.

“내가 자네의 조력 가문임을 알고 있을 테니 긴말은 필요 없겠군. 우리 가문에서 보관 중인 비기를 취하려면 증표가 있어야 하네. 그걸 알고 있는가?”

“물론입니다.”

“그럼 증표를 보여 주게.”

박지태의 말에 단한이 서곰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모두가 의아히 서곰을 쳐다봤다.

과연 자그마한 곰 인형이 어떻게 증표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자못 궁금한 기색들이었다.

그때였다.

화악!

서곰의 배 부분에서 신비로운 빛이 폭사되듯 뿜어져 나오더니, 증(證)이라는 글씨가 나타난 것이다.

“와!”

“하?”

신비로운 현상에 아이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감정을 호들갑스럽게 표현하지 않고 나름대로 격식을 지키려는 태도가 한편으론 가상했다.

박지태도 서곰의 변화에 눈빛이 파르르 흔들렸다.

‘증표가 확실하군.’

대대로 증표에 대한 얘기를 전해 들었다.

신비로운 빛에 잠시 노출되었던 박지태는 심신이 더할 나위 청량해짐을 느끼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기다리게. 비기를 가지고 오겠네.”

“그러시죠.”

자리에서 일어선 박지태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 박지태의 손에는 작은 목함이 들려 있었다.

그간 박지태의 집안에서 오랜 세월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비기가 담긴 목함이었다.

앞서 비기를 취했던 조력 가문들과 똑같은 형태의 목함.

하지만 이번엔 풍력의 비기가 저 목함에 담겨 있을 터였다.

박지태가 목함을 단한에게 건네며 말했다.

“한번 열어 보게. 만일 자네가 비기의 주인이 맞는다면 그 목함을 열 수 있을 걸세.”

“알겠습니다.”

단한이 목함을 건네받자 모두가 눈을 빛내며 지켜보았다.

특히 박지태의 눈빛은 드디어 자신의 대에 가문의 유지를 받들게 되었다는 생각 때문인지 부쩍 힘이 들어간 상태였다.

하지만 그런 마음 한구석엔 불안감도 없지 않았다.

오랜 세월 동안 가문의 누구도 열어 보지 못했던 목함이었던 것이다. 어떤 짓을 해도 요지부동이었던 목함이 과연 단한에 의해 정말로 열릴 것인지 궁금했다.

그러던 찰나였다.

스륵- 탁!

단한이 목함에 손을 가져가기가 무섭게 목함의 뚜껑이 너무도 쉽게 열렸다.

‘저게 열리다니?’

박지태의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확 커졌다.

하지만 이어진 단한의 움직임에 정신을 차리고 얼른 앞을 쳐다봤다.

단한이 목함에서 괴황지를 꺼냈다.

부적과도 흡사한 괴황지의 분위기였다.

하지만 박지태는 괴황지가 보통 물건이 아니란 생각에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보기엔 고작 괴황지 한 장이었지만, 풍가의 비기가 담긴 소중한 괴황지였던 것이다.

그것이 단한의 손에 들어간 순간이었다.

사라라락-

괴황지가 마치 피를 머금은 듯 시뻘겋게 변해 가더니, 이내 감쪽같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 과정을 지켜본 박지태의 입이 떠억 벌어졌다.

부인과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렇게 괴황지가 사라지고 나서였다.

콰오오오-

느닷없이 실내로 거센 회오리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소파에 앉아 있던 모두의 몸이 들썩거리며 마구 요동을 쳤지만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잠시간 실내를 휘몰아치던 바람이 잠잠해지면서 은빛이 반짝이는 거대한 용이 나타났다.

“와아! 용이다.”

“조, 조용히 해.”

신비로운 현상에 그만 박은석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탄성의 목소리를 내자, 누나 박은영이 얼른 주의를 주었다.

박지태와 부인은 아이들처럼 소리를 내지 못했지만 경외심이 어린 기색이었다.

풍룡(風龍).

용의 등장에 단한이 주먹을 꽉 움켜쥐곤 허공을 쳐다봤다.

누구보다 간절한 마음.

제발 풍력이 5성이 넘기를.

순간 풍룡을 살펴보던 단한의 눈빛이 기쁨으로 환해졌다.

길이가 3미터에 이른 풍룡의 크기였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풍룡의 자태는 수가의 비기를 취했을 때와 흡사한 크기였던 것이다.

서곰의 흡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풍력 5성이다. 축하한다.

-고맙다.

풍력 5성이면 이제 공간 이동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때 단한을 향해 풍룡이 정중히 고개를 조아리며 주군을 대하는 예를 취하기 시작했다.

-풍룡, 주군을 뵈옵니다.

-반갑다. 나는 대단한이라고 한다.

풍룡을 대하자 자연스럽게 풍기를 이용한 여러 가지 풍력술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그중에서 단한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단연코 공간 이동이란 능력이었다.

그런데 공간 이동을 펼치려면 다른 풍력술과는 달리 풍룡과 연관이 밀접한 듯싶었다.

아무래도 직접 물어보는 것이 좋으리라 여긴 단한이 풍룡을 향해 물었다.

-공간 이동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가고자 하시는 장소를 명령만 내리시면 됩니다.

-장소만 말하면 그대로 공간 이동이 된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소신이 지닌 기운이 주군을 안전하게 원하는 목적지로 이동시켜 드릴 것입니다. 궁금하시면 직접 시험해 보시는 것이 빠를 것입니다.

앞서 다른 조력 가문의 비기를 취했을 때는 인사만 나누고 돌아가게 두었던 용들이었다.

그런데 풍룡과 대화를 나눠 보니 서곰 못지않게 놀라울 정도로 교신이 원활했다.

-하면 지금 시험해 봐도 되겠느냐?

-소신으로선 영광입니다.

풍룡과 대화를 나누었던 단한이 박지태를 웃으며 쳐다봤다.

안 그래도 풍룡을 불러낸 사실에 그를 대하는 눈빛에는 경외심이 잔뜩 어린 기색이었다.

“잠시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래서인지 박지태의 말투가 공손하게 바뀌었다.

가문의 비기를 이어받은 주군이었다.

아무리 그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고, 지위가 낮다고 해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신비로운 존재였던 것이다.

“잠시 바깥을 나갔다가 오겠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을 테니 기다리고 계십시오.”

“바깥을 말씀입니까?”

박지태의 질문에 단한이 빙그레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순간 박지태는 단한이 새파랗게 젊은 나이임에도 이상하게 자신보다 훨씬 오랜 세월을 살아온 존재처럼 숭고하게 여겨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때였다.

스르륵…….

단한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허공에 떠 있던 풍룡도 마찬가지로 사라졌다.

서곰은 단한이 사라진 사실에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그가 공간 이동을 시험 중임을 눈치챈 탓이다.

-사탕의 효과가 제대로 먹혔군.

단한이 비밀 정원에서 취한 은빛 사탕이 사실은 서곰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그의 내력을 보다 업그레이드시켜 주기 위해서였다.

아공간에 보관 중인 바람의 정령의 입김이 담긴 마나였다.

역시 기대했던 대로 풍력 5성에 이른 그의 상태였다.

아무래도 풍력 4성에 머물 그의 내력이었기에 자구책으로 특단 조치를 취한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은 서곰만 아는 비밀로 가져갈 생각이었다.

스르륵- 척!

한편, 박지태의 접대실에서 사라졌던 단한이 당도한 곳은 바로 자신의 방이었다.

그야말로 순식간의 이동이었다.

‘맙소사! 공간 이동을 하게 되다니?’

자신의 방을 둘러보던 단한은 몸을 살피듯 훑어보았다.

바람의 기운인 은빛이 감도는 기류가 몸을 감싸듯 에워싸고 있었다. 수력을 이용하여 은신술을 펼칠 때와 흡사한 방식이긴 했지만, 그것보다는 좀 더 산뜻한 느낌이었다.

-이게 바로 공간 이동이라는 거구나.

-그렇습니다. 어떻게, 만족하십니까?

-아주 만족스럽다. 좀 전의 장소로 다시 돌아가자.

-알겠습니다.

자신의 방으로 공간 이동했던 단한은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박지태의 접대실로 돌아왔다.

-수고했다. 그만 돌아가서 쉬어라.

-알겠습니다.

그렇게 다시 나타난 단한의 모습에 박지태를 비롯하여 부인과 아이들이 죄다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고개를 조아렸다.

아무리 과학 문명이 발달한 시대라고 해도 공간 이동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신비로운 능력이었다.

그것이 모두 자신의 가문으로 비롯된 일이었다.

박지태는 크게 격양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풍가의 가주, 주군께 감히 인사 올립니다!”

박지태가 가문을 대신하여 예를 취해 보이자 부인과 아이들은 침묵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주시했다.

박지태를 향해 단한이 빙그레 웃으며 인사치레를 했다.

“그동안 비기를 소중히 간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아까처럼 말을 편하게 놓으세요.”

“알겠습니다.”

박지태와 얘기를 나눴던 단한이 부인과 아이들을 쳐다봤다.

조력 가문의 존재들답게 심지가 굳고 정순한 기운들로 넘쳐흐르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곳에서 벌어졌던 일은 이들만의 비밀로 가져가야만 할 터였다.

“오늘 여기서 벌어졌던 일들은 함부로 밝혀선 안 되는 일입니다. 지킬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풍가의 자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도요.”

단한이 흡족한 표정으로 모두를 쳐다봤다.

서곰도 모두를 신뢰하는지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주군의 예를 마치자 박지태는 부인과 아이들을 밖으로 물렸다. 그의 눈빛이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인 탓이다.

사실 지금부터 나눌 얘기가 중요했기에 단한의 표정이 자못 진중하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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