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단한 성공기-66화 (66/95)

제6장

신지후

한국대에서의 신이경의 CF 촬영이 모두 끝났다.

법학과 강혁의 교통사고 소식은 갑작스런 촬영 현장으로 인해 묻힌 감도 없지 않았다.

강혁이 신이경과 친분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몇몇 학생들만 재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촬영 현장을 무시하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타 과 학생들은 카메라 앞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신이경에게 넋을 잃은 기색이었다.

반면 여학생들은 촬영장 한곳에 거만스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신지후를 힐끔거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고급스런 감색 슈트 차림새의 신지후는 누가 봐도 멋스러웠다. 늘씬한 자태와 수려한 이목구비. 연예인이라고 해도 충분히 믿어질 정도였다.

그런 신지후가 촬영이 끝나자 신이경을 직접 에스코트하며 차량이 세워진 곳으로 움직이자, 지켜보던 학생들 사이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 죽은 법학과 강혁이 신이경과 사귀었다지?”

“나도 그렇게 듣긴 했어. 한데 신이경 표정으로 보아 전혀 슬픈 기색이 아닌데?”

“대단하지? 근데 저 남자는 스폰서인가? 완전 인물 쩌네?”

“사촌이라는 말이 있던데. 둘이 얼굴이 닮지 않았냐?”

학생들의 수군거림에도 강혁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신지후의 표정은 전혀 죄책감 따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입가에 차가운 조소가 맺혀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신이경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이제 강혁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기색이었다.

그렇게 학생들의 수군거림에도 태연히 걸어가던 신이경이 촬영 중에 신지후가 단한과 서연에게 접근한 사실을 알고 있기에 물었다.

“그 애들에게는 왜 접근했어요?”

“화장품 모델 일을 제안하려고.”

신지후의 말에 신이경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법학과에 재학 중인 단한과 서연. 신이경은 둘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외모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신이경이었지만 둘의 외모도 상당히 뛰어났던 것이다.

오죽하면 법학과가 아닌 정치 외교과에도 두 사람의 소문이 파다할 정도였다.

게다가 법학과 수석으로 입학한 단한이었다.

외모와 두뇌까지 겸비했다는 사실에 신이경도 한때 단한에게 관심을 가졌지만 그에게 서연이 있었기에 포기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커플로 알려진 둘이었고, 심지어는 대학마저 같은 법대에 들어온 것이다.

언젠가 둘이 교정을 거니는 것을 몰래 지켜본 적이 있었다.

서로를 향한 눈빛이 진심이라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서연을 바라보는 단한의 표정은 매우 따뜻했다.

이제까지 많은 남자들과 관계를 가졌던 신이경이었지만 한 번도 단한과 같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봐 준 남자가 없었다.

하나같이 그녀의 육체가 목적이었지, 마음의 교감을 나눌 목적으로 대시한 남자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내가 둘에게 접근한 것이 불쾌한 모양이지?”

“당신은 나만을 위해서 일하겠다고 하지 않았나요?”

신지후는 신이경의 질투가 어린 눈빛에 오히려 표정이 흐뭇해 보였다.

“맞다. 나에겐 오직 너뿐이다.”

“좋아요. 그 말을 믿죠. 한데 둘이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였나요?”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조건을 너무 야박하게 말한 모양이군요.”

“그럴 리가. 최상의 조건으로 대우해 주겠다는데도 거들떠도 보지 않더구나. 마치 나를 벌레 보듯이 쳐다보더군.”

“강혁이 그렇게 되었는데 내가 CF를 촬영한다고 설치고 있었으니 곱게 보였을 리가 없겠죠.”

“그래서 일부러 오늘 학교로 촬영을 나온 거 아니었어? 하여간 기분 전환은 확실히 되었을 거라 생각하는데.”

“맞아요. 한데 그 애와 감정이 좋지 않다면서 그렇게 대놓고 접근을 해도 괜찮은 건가요?”

사실 신지후가 단한에게 화장품 모델을 제안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 번째는 단한이 자신의 정체를 알아채지 않을까 궁금해서였다. 역시 자신의 예상대로 정체를 알아채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두 번째는 만일 단한이 자신의 모델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교제 중인 둘의 사이를 이간질시켜 놀려 주려는 속셈에서였다.

신이경이 중간에서 역할만 잘해 준다면 얼마든지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할 수 있으리라 여긴 것이다.

하지만 단한과 서연은 신지후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화장품 모델을 시켜 준다면 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냉랭한 둘의 반응이었다.

“걱정 마. 그 정도의 능력으론 쉽게 내 정체를 파악하지 못할 거다. 게다가 예전에 내려왔을 때와는 모습도, 이름도 달라진 상태이니 말이다.”

신이경이 의아히 쳐다봤다.

“예전에도 이곳을 내려왔다고요?”

“그래. 3년 전이니 고등학교 1학년 때였지. 단한 그 아이를 제외하곤 내가 이곳 세상에 있었다는 것은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겠지만.”

“그럼 대단한 그 아이와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말인가요?”

“그래.”

“그때는 어떤 모습이었죠?”

“거의 존재감이 없는 평범한 분위기였지. 일부러 눈길을 끌기 싫어서 그리 선택한 것이지만.”

“이름은요?”

“그때는 주상이란 이름이었다.”

“주상요? 눈길을 끌기 싫다고 하더니, 이름자는 어떻게 특이한 이름을 사용했네요.”

“사극을 보다 우연히 지은 이름인데 짓고 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랬었군요.”

과거에 주상이라는 이름으로 유탁의 집에서 거주한 적이 있었던 그였다.

그렇게 이곳 세상에서 사라지면서 단한에게 10년이란 유예기간을 제시했던 것이다.

하지만 단한이 흉수들 중에서 거물인 마달평을 처리했다.

그것도 2차 변태에 이른 마달평을 말이다.

생각보다 단한의 능력이 강하다는 사실에 상황을 살펴볼 생각에 다시 이곳 세상에 들어섰다.

이번에 선택한 이름은 신지후였다.

외국으로 이민을 간 신이경의 사촌 오빠의 이름자였다.

사촌이지만 이민을 간 이후로 신이경의 집안과 20년간이나 연락 없이 지내 온 상태였다.

신분을 속이기엔 안성맞춤이었고, 신이경과 사촌지간으로 사람들에게 소개를 하는 것이 편했기에 신지후란 이름자를 선택하게 되었다.

신지후의 표면적인 위치는 Q 화장품 회사의 홍보팀장이었다.

하지만 홍보팀장임에도 회사의 최고 오너인 회장도 신지후의 말이라면 벌벌 떨었다.

술법을 이용하여 회장에게 신지후의 어떤 지시도 받아들이도록 각인시켜 놓은 탓이다.

그런 영향인지 몰라도 회사에서는 회장의 숨겨 놓은 아들로 통하고 있었다.

이어 두 사람이 고급 벤츠 앞에 당도했다.

조수석 차 문을 열고 신지후가 신이경을 웃으며 쳐다봤다.

“타라. 가 볼 데가 있다.”

“어디를요?”

“저택을 마련했다.”

“그렇게 빨리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않겠어? 비좁은 오피스텔은 내 취향이 아니라서 말이지.”

그때 CF 촬영 감독과 스태프들이 허둥지둥 둘의 주위로 다가오더니 정중히 인사를 했다. 정확히는 신지후를 향해.

“오늘 촬영장까지 직접 나와 주시고, 여러모로 관심을 가져주셔서 촬영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젠 실내 촬영만 끝나면 편집하여 방송에 내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세요. 다들 오늘 수고가 많았습니다. 이걸로 회식이나 하시죠.”

신지후가 지갑에서 수표 한 장을 꺼내어 감독에게 건넸다.

천만 원.

액수를 흘끗 확인한 감독의 고개가 다시금 숙여졌다.

“그럼 편히 돌아가십시오.”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신지후의 차가 주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곳 세상에 내려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지만 신지후는 자신의 입지를 확실하게 구축한 상태였다.

술법을 이용하면 사람의 기억 내지 문서 조작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였다.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선 거칠 것이 없었다.

죽이든가, 아니면 기억 조작을 하든가, 그것도 아니면 빼앗아 버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이경에게 수치심을 안겨 준 강혁을 처리했다.

그렇게 강혁을 처리하고 오피스텔로 다시 돌아온 신지후는 신이경에게 놀라운 사실을 말해 주었다.

그리고 신이경의 생활 형편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는 Q 화장품 회사의 모델로 만들어 주었다.

3년 전속 모델이 되어 주는 대가로 자그마치 30억을 주었다.

신인치고는 파격적인 대우라고 볼 수 있었다. 마달평의 후원과는 감히 비교가 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모든 것이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란 점이었다.

놀랍게도 달랑 전화 한 통만으로 신지후가 언급한 내용들이 일사천리로 막힘없이 통과되었던 것이다.

“아직도 믿어지지 않아요. 당신이 나의 오빠라는 것이.”

신이경은 강혁의 죽음을 알고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자신을 위해 그렇게 행한 신지후를 위해서였다.

마달평의 후원이 끊긴 상황에서 신이경에게 있어서 신지후는 이제 든든한 아군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세상에 유일하게 여동생의 기운을 타고난 너다. 너를 지금이라도 발견하게 되어 너무 기쁘다. 최선을 다해 너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신지후의 얘기는 마치 소설 속의 얘기와도 흡사했다.

지구가 아닌 신비로운 선계라는 세상에서 내려온 신지후였다. 그곳에서 그녀와 신지후는 오누이의 관계였다고 했다.

그러다 그녀가 한 남자를 사랑하는 바람에 그것이 원인이 되어 일가가 몰살당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것에 신지후가 복수를 하고자 이곳 세상에 내려온 것이라고 했다.

“그놈에게 보란 듯이 복수를 해 주고 말겠다. 너와 우리 가문을 엿 먹인 그놈이다.”

“대단한 그 아이가 그곳의 존재였다니 믿기지 않아요. 한데 잘 납득이 되지 않아요. 그를 사랑한 것이 그렇게 엄청난 죄인가요? 일가가 몰살당할 정도로 말이죠?”

“그건… 그럴 만한 사유가 있었다. 흠흠!”

왠지 말을 회피하는 신지후의 태도에 신이경이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어떤 일이 벌어졌기에 그러죠? 이미 지나간 과거인데 말한다고 해도 상관없지 않나요? 그리고 그때의 일을 알아야 나도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 아녜요.”

“네가 정 그렇게 알고 싶다면 말해 주마. 모든 것은 부덕한 나의 탓이다. 그놈을 짝사랑하는 너를 보다 못해 내가 알려 준 방법을 쓴 탓이다.”

“어떤 방법을 알려 주었는데요?”

“그놈의 처소에 숨어들어 하룻밤을 지새우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 그놈에게 순결을 잃었다고 소문을 낸다면 아무리 여자에게 관심이 없는 그놈일지라도 책임감을 느끼리라 여겼다. 한데…….”

말을 하다가 멈춘 신지후.

그런 신지후의 모습을 신이경이 잠자코 쳐다봤다.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난 탓인지 신지후의 감정은 매우 격해진 상태였다.

끼이익!

마침 신호 대기로 차가 잠시 정지했다.

신지후가 도로의 붉은 신호등을 노려보듯 쳐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 그놈의 처소에 은밀히 숨어들었으나 하룻밤을 지새우지 못하고 발각되고 말았다.”

“…발각되었다고요?”

“불쌍하게도 그것이 그놈을 보자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사랑을 고백한 탓이다. 그 장면을 우연히 내전 호위에게 들켜 버렸고, 고문실에 끌려간 너는 모진 고문 끝에 그곳에 숨어든 이유를 실토하고 말았지. 그러면서도 끝끝내 오라비인 내가 시켰다는 것은 빼고 스스로 자진하여 숨어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했군요.”

“결국 너는 그놈의 명예를 실추시키려던 죄를 짓게 된 탓에 그곳 세상에서 다른 차원으로 이동 명령이 떨어졌다. 하지만 너는 그놈과 헤어질 바에는 영원한 소멸을 원했다. 그렇게 네가 소멸 위기에 처하자 분노한 아버지께서 들고일어나셨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우리 가문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부모님은 사형에 처해졌고, 나는 선계의 변방으로 쫓겨나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은 그놈으로 인해서다. 네가 짝사랑하는 것을 알면서도 무시한 그놈의 죄다. 너를 조금이라도 생각했더라면 그렇게 행동해선 안 되는 거였다. 빌어먹을!”

사실 신이경에게 다 꺼내지 않은 얘기가 있었다.

여동생을 짝사랑하는 그의 처소로 보낸 이유가 따로 있었던 것이다.

신분 상승에 여동생을 이용하려던 부모님의 뜻을 그도 반대하지 않았기에 행해진 일이었다.

그에 대한 여동생의 감정을 이용하여 탐욕을 채우려 했던 것이 결국 가문의 몰락을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곳 세상에 대한 어떤 기억도 없던 신이경.

신지후의 얘기가 끝나자 신이경은 자신의 얘기임에도 남의 얘기처럼 느껴지는 감도 없지 않았다.

솔직히 처연한 과거사였다.

그럼에도 아무런 기억도 없었다.

그렇게 목숨까지 포기하면서 사랑했던 그에 대해서 어떤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부릉-

차가 다시 출발했다.

차창을 말없이 주시하던 신이경이 입을 열었다.

“이해가 되지 않네요. 그렇게까지 그를 사랑했다면 이곳에서도 그 애를 본 순간 뭔가 끌리는 감정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지만 그 애를 처음 봤을 때 조금 관심을 가졌을 뿐, 크게 끌리는 감정을 느끼지 못했거든요. 뭔가 이유가 있는 건가요?”

“그건 그 아이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네가 소멸되기 직전에 술법을 걸어 놓은 때문이다.”

“술법을 걸어 놓았다고요?”

“그래.”

“왜요?”

“혹시라도 다른 세계에서 너의 영이 발아를 한다면 그때는 두 번 다시 그런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아…….”

선계에서 그녀의 오라비였던 그의 감정이 절절이 가슴에 와 닿았다.

“사실 너를 그렇게 보내고 많이 괴로웠다. 오라비가 못나서 너를 그렇게 만들었다. 하여간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지금까지 여러 차원에서 너의 기운을 찾아보려 애를 썼다. 그러다 영원히 소멸한 것으로 알고 체념하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우연히 너를 발견하게 되었다. 우습게도 마달평 그놈으로 인해서였지. 그놈 역시 선계에 속한 존재였던 탓이다.”

“마달평 의원도 선계의 존재였다고요?”

“그래. 그놈은 지하 마물관에서 살던 흉수라는 생물체였다. 지금은 비록 인간의 탈을 뒤집어쓰고 인간처럼 버젓이 행동하고 있지만, 본래는 개나 돼지보다도 못한 흉측한 짐승들이다.”

“맙소사! 그런 흉수와 내가 알고 지냈다는 건가요?”

신이경의 크게 당황해하는 기색에 신지후는 내심 기분이 씁쓸했다.

그곳 세상에서 몰락하기 직전까지 지하 마물관을 다스리던 신지후의 가문이었다.

여동생의 소멸과 가문의 몰락으로 억하심정에 그분의 처소에 보관하고 있던 영과를 훔쳐 내어 흉수들에게 건네주었다.

최상품의 영과를 먹은 탓에 그도 내력 상승이라는 효과를 보았지만, 흉수들 역시도 짐승이나 다름없던 놈들이 지혜란 것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 그곳 세상에서 하계인 인간계로 쫓겨나게 된 흉수들이었고, 신수의 피를 타고난 그는 가문을 대신하여 이곳 세상에 내려오게 된 것이 그간의 우여곡절이었다.

“충격적이겠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그리고 놈들이 인간의 탈을 뒤집어쓴 탓에 몰라본 것이 당연하다. 어쨌든 그놈으로 인해 네 몸속에 도사리고 있던 선기가 발아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너를 이렇게 찾아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윽!”

신이경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붉게 달아올랐다.

강혁을 소개받기 전까지 흉수인 마달평과 한 달에 두어 번 정도 육체관계를 해 온 그녀였다.

게다가 마달평의 성적 취향을 더욱 만족시키기 위해서 가슴까지 성형수술로 키운 것이다.

물론 마달평이 흉수임을 모르고 행한 행위였지만, 그래도 돌이켜 생각하니 불쾌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신지후도 마달평을 떠올리자 부르르 분노하며 말했다.

“미천한 흉수 주제에 감히 너를 능욕한 마달평 그놈은 사지를 갈가리 찢어발겨 개 먹이로 던져 주고 말 것이다.”

“그래요. 꼭 그렇게 해 주세요. 빠드득!”

이를 가는 분노한 신이경의 모습에 운전대를 잡은 신지후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를 찾아낸 이상 앞으로 나는 너를 위해 살 것이다. 그러니 두 번 다시 그곳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해라.”

“그건 걱정 말아요. 나에겐 그깟 사랑보다는 성공이 더욱 중요해요. 모두에게 보란 듯이 떵떵거리며 살고 싶어요.”

“그렇게 생각하다니 다행이다. 너의 성공을 위해 내 힘이 닿는 한까지 도와주마.”

이윽고 둘이 탄 차량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청담동. 단한과 서연이 살고 있는 동네였다.

단한의 집에서 다소 떨어진 위치에 저택을 사들인 신지후였다.

차고에 차를 주차하곤 둘이 정원으로 이어진 길로 나왔다.

신이경은 호화로운 대저택의 분위기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택을 마련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엄청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곳이 앞으로 너와 내가 살 집이다.”

“여기가요?”

“그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집을 알아보겠다.”

“아, 아니에요. 너무 멋져요. 이런 집이 우리 집이라니 믿어지지가 않네요.”

신이경의 황홀해하는 표정에 신지후가 흐뭇하게 웃었다.

정원의 중간 지점에 이르자 일렬로 늘어서서 기다리고 있는 고용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미 대저택을 관리할 집사며, 가사 도우미며, 필요한 고용인들을 모두 갖춘 상태였던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도련님, 아가씨!”

고용인들이 둘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조아렸다.

저택은 모두 3층 구조로, 1층은 고용인들이 사용했다.

이어 신이경은 자신의 방으로 꾸며진 2층을 돌아보곤 입이 떠억 벌어졌다.

‘너무 좋다! 이게 내 방이란 말이지?’

그야말로 여왕을 위한 궁전이나 진배없었다. 모든 것이 최상의 상태로 구비되어 있었다.

심지어는 옷장에는 평소 구경만 해 오던 명품 옷들이 즐비하게 걸려 있었다. 그녀의 치수를 어찌 알고 장만한 것인지 신기하기만 했다.

거기에 가방과 구두까지 모두 명품이었다.

그야말로 호화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흥분으로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신이경의 모습을 바라보던 신지후가 물었다.

“어때? 마음에 드느냐?”

“설마 지금… 꿈은 아니겠죠?”

“꿈은 아니니 걱정 말아라.”

“당신의 방은 어디죠?”

“내 방은 바로 3층에 마련되어 있다.”

“그렇군요. 한번 구경해도 되죠?”

“물론이다. 한데 이곳에서 사는 동안 한 가지 지켜야 할 것이 있다.”

“그게 뭐죠?”

“지하실은 절대 내려가지 마라.”

“지하실에 뭐가 있는데요?”

“나의 애완동물이 있다.”

“애완동물이라고요?”

애완동물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마수(魔獸)였다.

마수 중에서도 왕급 마물.

그런 괴물을 이곳 세상에 데려온 것이다.

“성질이 난폭한 녀석이다. 나의 명령에만 따르는 녀석이라 너를 알아보지 못하고 잡아먹을 우려가 있다. 게다가 넌 각성하지 못한 상태라 녀석을 통제할 능력이 되지 못할 거다.”

“그런 위험한 동물을 지하실에 두어도 괜찮을까요?”

“결계를 형성해 놓았으니 쉽게 위로 올라오지는 못할 거다. 그리고 녀석은 이곳 세상의 동물과는 차원이 다른 생물체다. 그곳에서 녀석들을 일컬어 마수라고 불렀지.”

“마수요?”

“너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선계에서 우리 가문의 역할이 지하 마물관을 다스리는 일이었다. 마수들을 비롯하여 흉수들까지 모두 우리의 관할이었다. 때가 되면 마수들을 이용하여 이곳 세상을 파괴할 작정이다. 단한 그놈을 비롯하여 가족과 조력 가문의 사람들은 죄다 마수들의 먹이가 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복수다.”

신지후의 말을 들으면서 신이경은 직접 마수들을 본 적은 없지만 소름이 오싹 끼치는 느낌이었다.

“알았어요. 지하실에는 내려가지 않을게요.”

“그게 좋을 거다.”

“그럼 당신 방을 구경하러 가죠.”

“그러자. 한데 앞으로 나에 대한 호칭은 당신보다는 오빠라고 부르는 게 좋겠다. 어차피 이곳 인간들에겐 사촌지간으로 소개를 했으니 그게 어색하지 않을 거다.”

“아, 알았어요.”

아직은 신지후가 오빠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자신을 위해 자상하게 신경 써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당신이라는 호칭보다는 오빠라는 호칭이 살갑게 느껴지긴 했다.

두 사람은 곧바로 3층에 올라왔다.

“여기가 당… 오빠 방인가요?”

“아무래도 네 방보다는 멋이 없을 거다.”

“그래도 좋은데요?”

신이경이 머무는 2층은 아무래도 여자가 사용하는 공간인 탓에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지만 3층은 편리함을 목적으로 꾸며진 분위기였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있었다.

2층에는 없는 영화 감상실이 갖춰진 점이었다.

안락한 소파며 모니터의 크기, 그리고 스피커의 음향 시설까지 최상으로 꾸며진 상태였다.

“여기는 영화 감상실인가요?”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말해라. 함께 감상해도 좋다.”

신지후가 이곳 세상에서 가장 매력을 느끼는 부분이 바로 영화였다. 그래서 이렇게 영화 감상실을 따로 마련하게 되었다.

“어떤 영화를 좋아해요?”

“질질 짜는 내용이 아니라면 다 좋다. 특히 때리고 부수는 영화가 시원해서 보기가 좋더군.”

“나랑 취향이 비슷하네요. 나도 그런 종류를 좋아하는데.”

“여자들은 로맨스를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여자라고 다 로맨스를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그렇군.”

신이경이 실내의 인테리어를 둘러보다가 말했다.

“혹시 영화를 한번 만들어 볼 생각은 없어요?”

“없다. 보는 것을 좋아하지, 만드는 것은 별로다. 게다가 만드는 과정을 보면 영화를 보는 맛이 떨어진다.”

“하긴 그러하겠네요. 요즘 영화는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하는 부분도 많으니까요.”

“하지만 이번에 연예 기획사를 하나 차릴 생각이다.”

“연예 기획사를요?”

“너를 위해서다. 이곳 세상에서 쉽게 성공을 하는 비결 중의 하나가 바로 연예인이더구나. 너처럼 아름다운 아이가 TV에 나온다면 인기가 좋을 거다.”

“말은 고맙지만 아름답다고 다 인기가 좋은 건 아니에요. 인기 스타가 되려면 그만큼 대중들이 호감을 가질 수 있는 매력이 있어야만 할 테니까요.”

“너의 매력이면 충분히 어필이 될 거다. 이번 화장품 CF를 처리한 후에 차차 방법을 찾아보자. 보아하니 인기 스타 중에 김태이란 아이도 한국대 출신이더구나. 요즘은 연예인도 명문대를 중시하는 모양이니 너에겐 아주 잘된 일이다.”

신이경도 한국대 출신 연예인 김태이에 대해선 익히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인기 스타가 될 수 있었던 가장 커다란 이유는 예쁘장한 얼굴도 중요했지만, 한국대 출신이라는 것이 더욱 크게 작용했을 터였다.

“그럼 화장품 회사 홍보팀장 자리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연예 기획사를 차린다면 그쪽 일은 그만둬야겠지. 내가 회사를 그만둬도 화장품 모델은 그대로 유지될 테니 걱정 마라.”

“알았어요. 난 오빠만 믿을게요.”

“그래. 오늘은 피곤할 테니 그만 내려가서 쉬어라.”

“네. 그래야겠어요.”

신이경이 돌아가자 신지후는 창가로 다가섰다. 전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시야가 훤하게 트였다.

일부러 고지대의 저택을 구입한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상당히 떨어진 거리이나 단한의 저택이 신지후의 눈에 훤히 들어왔다.

‘나는 네놈이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단한의 이전의 삶. 29살을 넘기지 못하던 단한의 가문의 내력이었다.

단한의 가문이 비운의 가문이 되었던 이유가 바로 신지후로 인해서였다.

단한이 용케 이곳 세상으로 들어선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분통이 터졌던가.

‘네놈 덕분에 나도 좋은 일 한 가지는 생겼군. 이렇게 여동생의 기운을 타고난 인간을 만나게 되다니.’

앞서 세상에서 단한을 지워 버리지 못한 신지후는 이번 세상에서는 반드시 그를 소멸시켜 버리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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