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단한 성공기-51화 (51/95)

제8장

은신술

단한은 호수를 살피듯 바라봤다.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이 맑고 깨끗했다.

서곰이 뒷짐을 지고 서서 단한에게 목소리를 흘렸다.

-수력을 이용한 능력은 다른 가문의 비기와 마찬가지다. 물론 그것 이외에도 은신술이 한 가지 추가될 것이다.

-은신술을 펼칠 수 있다고?

-은신술도 본인을 은폐하는 기술과 주변을 은폐시키는 기술이 있다. 오늘은 그것만 시험해 보자.

-그게 좋겠군.

단한이 호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런 단한의 손끝으로 막대한 진기가 일렁이는 게 느껴졌다.

시원하고도 서늘한 진기였다.

‘이것이 수기인가?’

수기를 느낀 단한은 이내 그것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수력으로 변환시켰다.

그러곤 먼저 주변 경관을 은폐시키는 은신술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공식은 따로 없었다.

그의 의지에 의해 자연스럽게 은신술이 발현되었다.

그도 처음으로 펼치는 수가의 비기이기에 과연 어떤 식으로 은신술이 펼쳐질지 자못 두근거렸다.

싸아아-

순간 바람이 불어오는 묘한 음향이 들렸다.

그러더니 허공에 떠오른 태양으로 인해 환했던 주변 경관이 급속도로 희뿌옇게 막이 씌워진 듯 변해 갔다.

주위가 하얀 안개로 뒤덮이고 있었던 것이다.

갈수록 낮이 아니라 마치 새벽에 물안개가 잔뜩 낀 것과 유사한 현상이 비롯되었다.

게다가 그것도 단계가 있는지, 그가 강도를 높이자 안개의 밀도가 더욱 촘촘해졌다.

그야말로 한치 앞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뿌연 안개로 바뀌었다.

바로 옆에 서 있는 이소현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호수의 일대를 가리는 데 성공한 단한은, 그제야 수력의 방출을 멈추었다.

5분 정도에 불과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곳이 호수여서 그런지 내력의 고갈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단한이 서곰을 향해 목소리를 흘렸다.

-이 정도면 성공한 건가?

-축하한다. 역시 5성이라 그런지 다르군.

탄탄하고 촘촘하게 몇 겹으로 구성된 안개였다.

만일 싸움에서 이것을 적절하게 이용한다면 아주 효과적일 터였다.

-은신술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지?

-적어도 이 정도의 안개라면 반나절은 충분히 유지될 수 있을 거다.

-반나절이나?

-더군다나 이곳이 호수이기에 수력이 고갈되는 현상은 없을 터. 마음만 먹는다면 며칠 동안 이런 상태로 유지할 수도 있을 거다.

-놀라운 능력이군.

그때 곁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던 이소현이 속으로 크게 탄성을 흘렸다.

‘역시 나와는 차이가 크군. 이렇게 빨리 광역 은신술을 펼칠 수 있다니.’

그녀도 은신술을 펼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짙은 안개는 불가능했다.

범위도 고작 반경 50미터 정도가 한계였다.

그 정도만 펼쳐도 내력의 소모가 극심했다.

그런데 지금 그녀가 느끼기에 단한이 펼친 은신술은 최대 광역 은신술임이 분명했다.

능력이 부족한 그녀로선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어쩌면 호수를 넘어 숲 속까지 안개가 이어지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건 죽었다 깨어나도 힘든 일이었다.

이소현과 달리 서곰은 신안을 가진 존재.

안개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답게 주위에 펼쳐진 은신술의 확인이 끝나자, 본인의 모습을 은폐하는 은신술의 시도를 재촉했다.

-안개를 거둬들이고 다른 은신술을 시도해 봐라.

-알았다.

단한이 손을 뻗어 수력을 끌어모았다.

은신술을 펼칠 때와는 달리 해제는 너무도 빨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뿌옇게 퍼져 나간 안개가 말끔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누가 보면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할 터였다.

그렇게 주변을 은폐하는 은신술에 성공한 단한이 두 번째 은신술을 시도했다.

바로 본인의 모습을 감추는 일이었다.

차아앗- 스르륵!

그의 의지에 의해 은신술이 발현되었다.

순간 정자에 서 있던 그의 몸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주변을 은폐하는 것과는 달리 본인을 은폐시키는 은신술은 순식간에 펼쳐졌다.

서곰은 신안으로써 이내 단한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이소현은 바로 옆에 있는 그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단한의 몸은 마치 코팅된 것처럼 투명한 막에 싸여 있는 상황이었다.

코팅된 투명막은 바로 수기.

물의 기운이 차단막으로 화하여 은신술로 전환된 것이다.

실로 놀라운 능력이 아닐 수 없었다.

은신술을 성공시킨 단한은 자신의 몸이 투명한 막에 싸인 것을 확인하고는 피식 웃었다.

-재미있군. 이것의 유지 시간도 같은가?

-그렇다. 한 번 은신을 시도하면 반나절 정도 유지되니 은신술이 풀리면 재시도하면 된다. 아무래도 앞서의 은신술보다는 내력 소모가 적다.

-그럼 앞서 펼친 은신술이 더 고난도의 기술인가?

-그런 셈이다.

단한이 은신술을 해제하곤 본모습으로 돌아왔다.

지금까지 곁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던 이소현은 얼이 빠진 듯 보였다.

이번의 은신술 역시 그녀와는 차원이 달랐던 것이다.

본인의 모습을 가리는 은신술을 그녀도 펼칠 수 있었지만, 그처럼 순식간에 펼치지는 못했다.

30분 정도 뜸을 들여야만 은신술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수가의 가문에서는 그녀를 신처럼 떠받들고 있었다.

그녀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말 대단하다. 그간 나는 우물 안의 개구리였어. 너로 인하여 개안(開眼)하는 기분이야.”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언제 기회가 된다면 소현 누나의 은신술도 보여 주세요.”

“보면 실망할 거야.”

“수가의 가주께서 그리 약한 소리를 하시다니. 흐음, 하여간 알았어요. 그만 안으로 들어가죠.”

“그래, 손님들을 너무 기다리게 했다. 어서 가자.”

이소현이 앞서 호수의 다리로 움직였다.

그런 그녀는 마음이 다소 복잡했다.

한편으론 지금까지 저 아이를 기다려 온 그녀의 삶이기도 했다.

과연 자신의 대에서 주군을 만나게 될지 의문이었다.

그랬는데 이렇게 주군을 만났다.

그런 주군을 동생으로 삼게 되어 좋기도 했지만, 부담스러운 마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아이가 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단한이 마음에 들었다.

이제까지 누구도 그녀의 마음을 이토록 설레게, 꽉 차게 만드는 존재는 단연코 없었다.

진심으로 감격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그의 조력 가문의 역할을 각성처럼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소현이 걸음을 멈춰 뒤따라오는 단한을 조용히 미소 지으며 돌아다봤다. 호수에 피어난 수선화와도 같은 미소.

스르륵-

그녀의 미소에, 바람도 일지 않건만 순간 호수의 수면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마치 호수가 노래라도 부르는 듯 찰랑찰랑 물결이 듣기 좋게 일렁였다.

이건 그녀가 심심할 때 유일하게 즐겨 하는 놀이이기도 했다.

마치 어머니의 자장가처럼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물결 소리였다.

단한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그도 그녀의 놀이가 마음에 든 것이다.

그렇게 둘은 잠시간 서로의 얼굴을 말없이 주시했다.

묘한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거북하거나 싫지 않았다.

편안한 마음으로 물결 소리를 듣던 둘은 다시금 저택이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곰은 정자에 남아 그런 둘의 움직임을 흡족히 바라봤다.

이제 그가 화가(火家)와 풍가(風家)의 비기를 취하는 일만 남았다.

“많이 기다렸죠?”

단한과 이소현이 접대실로 들어왔다.

단한의 경쾌한 음성에 일행들이 그의 옆에 서 있는 이소현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시했다.

설마하니 저 여자가 수가의 가주란 말인가?

다들 산속에 자리한 운치 있는 저택의 분위기 때문에 나이가 지긋한 노인네가 살고 있을 줄로만 알았다.

단한이 이소현을 웃으며 쳐다봤다.

“소개는 직접 하는 것이 좋겠네요.”

“그러죠.”

역시 가주로 교육받은 존재라 그런지 사람들 앞에서도 태도가 의연했다.

허리가 꼿꼿해지고 눈빛에 힘이 서렸다.

이소현이 모두를 향해 정중히 인사한 후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소현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도 짐작하고 있겠지만, 저는 수가의 가주를 맡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신수의 조력 가문인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반갑게 생각합니다. 다들 나이도 어린 젊은 여자가 가주라니 신기하신 모양이네요. 어쨌든 누추하지만 이곳에서 편히 쉬다가 가시길 바랍니다.”

이소현의 인사가 끝나자 단한이 싱긋 웃으며 일행을 그녀에게 소개했다.

“저쪽 잘생긴 남자분은 뇌가의 서준 형님이시고, 옆은 여동생 서연, 그리고 금가의 천지연 쌤이네요. 참고로 천지연 쌤은 제가 졸업한 고등학교의 교사였고요.”

단한의 소개에 이소현이 서준은 그저 한번 힐끗 바라볼 뿐이었지만, 천지연과 서연의 미모에는 크게 놀라워하고 있었다. 미모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도 어디서 빠지는 축은 아니었지만, 둘의 미모는 지금까지 보아온 어떤 여자들보다도 아름다웠다.

게다가 둘에게서는 그녀가 갖지 못한 자유로움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녀에겐 이곳이 삶의 전부였기에 바깥세상에 대해서 아는 것이 그다지 없었다.

‘저들이 조력 가문이라고?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처럼 여겨진다.’

그때였다.

천지연이 이소현을 향해 질문을 했다.

“이소현 씨라고 했죠?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죠?”

“27살입니다.”

갑자기 나이를 묻는 천지연의 태도에 이소현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늘 조용한 이곳에 모처럼 찾아온 손님, 그것도 조력 가문의 존재들이었다.

혹여 예의에 어긋날까 우려도 되었다.

“그럼 제가 언니겠군요. 우리 주군께서는 서로 편하게 지내는 것을 선호하시는 분이라서. 호호.”

“그… 렇군요.”

이소현이 당황한 기색으로 천지연을 쳐다봤다.

그런 이소현을 향해 천지연이 해바라기 같은 미소를 보여 주며 말했다.

“수가의 가주이신데 함부로 대해서 미안하지만, 말을 놓아도 되겠죠?”

“그러세요.”

천지연의 말에 이소현이 얌전히 고갤 끄덕이자 이번엔 서연이 나섰다.

“그럼 저는 소현 언니라고 부르면 되겠네요? 언니도 저를 동생처럼 편하게 대해 주세요.”

“그래도 될까요?”

“물론이죠. 편하게 말을 놓으세요.”

“그럼… 그럴까?”

그렇게 여자들끼리 화기애애하게 친목을 도모하는 모습에 서준이 차마 끼어들지는 못하고 머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소현이 남자였다면 모를까, 여자였기에 섣불리 말을 걸기가 어색했을 터.

단한이 그런 서준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주듯 이소현에게 말했다.

“소현 누나, 이쪽 서준 형님에게는 오빠라고 불러 주세요. 우리 준이 형님 혼자 왕따 당한다고 삐질 것 같거든요.”

“자식이 내가 언제 삐졌다고 그래? 그냥 나도 인사를 나누고 싶어서 그런 것뿐인데. 흠흠.”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크게 당황하는 서준의 모습에 이소현이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이런 식으로 편하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 본 것이 언제인지 까마득했다.

낯설지만, 왠지 싫지 않은 분위기.

다들 좋은 사람이라는 단한의 말이 피부에 와 닿았다.

-그럼 이제 내가 나설 차례인가?

-응? 그렇군. 너를 정식으로 소개하는 일이 남았지?

정자에 혼자 남아 있던 서곰이 접대실로 들어온 것이다.

그런 녀석이 단한의 어깨에 폴짝 뛰어올라 걸터앉자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서곰에게로 향했다.

먼저 서곰을 알아본 서연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도사님… 아냐?”

서준과 천지연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증표 역할을 할 때 서곰을 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인형 상태였던 탓이다.

“저 곰 인형이 도사님이라고?”

“증표 역할을 했던 곰 인형이잖아?”

“…….”

이소현은 아까 호수에서 서곰을 보아서인지 비교적 침착해 보였다.

단한이 실내의 사람들을 피식 웃으며 둘러보곤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럼 지금부터 곰 인형을 정식으로 여러분께 소개할까 합니다. 녀석은 보다시피 인형의 탈을 쓰고 있지만, 이렇게 살아 있는 생물체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랑 함께 이곳에 온 거야?”

“네. 제 배낭에 들어 있었거든요. 물론 녀석에겐 신비로운 재주가 있기에,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고 어디로든 움직일 수 있어요.”

단한의 말에 모두가 놀랍다는 기색으로 서곰을 쳐다봤다. 그러자 녀석이 히죽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덕분에 실내의 분위기가 더욱 싸해졌지만.

“일단 이름부터 밝히는 것이 좋겠군요. 녀석의 이름은 서곰입니다.”

“서곰? 설마 성이 서는 아니겠지?”

서준의 말에 단한이 조용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전의 일을 이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서연이 인형 뽑기 기계에 들어 있던 곰 인형을 그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새벽까지 노력한 것을.

그리고 그런 여동생을 위해 새벽까지 불침번을 서야 했던 서준의 행동을 다들 기억하지 못했다.

세상이 바뀌었기에.

“서곰의 이름은 그냥 제가 부르기 편하게 지은 겁니다. 본래의 이름이 있지만, 그건 사정상 밝힐 수 없고요. 어쨌든 다들 서곰을 잘 알고는 있을 겁니다. 제가 각 가문의 비기를 취할 때 증표 역으로 등장했던 그 인형이니까요. 그리고…….”

단한이 잠시 말을 멈추고 힐끗 서연의 얼굴을 멋쩍은 듯 쳐다봤다.

이 중에서 서곰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게 그녀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도 정확히는 서곰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다.

“연이에게는 일전에 도사님이라고 소개하긴 했지만, 사실 서곰은 저의 수호천사입니다.”

“곰 인형이 수호천사라고?”

서준의 질문에 단한은 이제 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진실은 알려 줘도 무방하리라 생각했다.

다들 그가 신수의 혈육임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서곰은 신수의 피를 타고난 저를 보호하기 위해 이곳 세상에 내려온 선계의 존재입니다.”

“선계의 존재?”

아직은 선계라는 말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을 터였다.

단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도 그 세상을 가 보지 못했으니 뭐라고 자세한 설명은 드릴 수 없네요. 하지만 여러분도 아실 겁니다. 조력 가문인 여러분과 저와의 특별한 관계를요. 그리고 제가 신비로운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도 말이죠. 물론 수호천사인 서곰 또한 저 못지않은 능력을 지닌 존재입니다.”

서곰이 화이트 드래곤으로 변신하여 영약을 주던 일을 직접 목격한 서연은 단한의 말에 수긍이 되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서곰은 아직 곰 인형에 불과한 상태였기에 의문도 없지 않았다.

“서곰, 신고식 겸 너의 능력의 일부를 개방하는 것이 좋겠다.”

-알았다.

단한의 어깨에 있던 서곰이 바닥으로 폴짝 뛰어내려서는 접대실 문에 결계를 형성했다.

저택에 거주하는 이들은 일반 고용인들이었다.

심성이 나쁘지 않은 자들이나 조력 가문이 아닌 존재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알려선 곤란했다.

그렇게 문에 결계를 형성한 서곰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곤 뒷짐을 지며 아장아장 걸었다.

그런 서곰의 모습이 서서히 다른 형체로 바뀌어 갔다.

스르륵-

나이가 지긋한 노인의 모습.

새하얀 도포에 수염이 가슴 아래까지 내려오는 노인은 마치 동화 속에 등장하는 신선과도 같아 보였다.

자그마한 곰 인형이었던 서곰의 놀라운 변신에 모두의 표정이 탄성으로 가득했다.

게다가 잔잔한 노인네의 음성이 모두의 귀에 신비롭게 울려 퍼졌다.

-노부는 선계에서 내려온 단한 군의 수호천사다. 곰 인형으로 지내는 것은 선계의 기운을 숨기기 위한 방편임을 알아라. 이곳 세상에는 너희와 천적인 흉수들이란 것들이 살고 있다. 노부는 단한 군을 안전하게 보필함은 물론이거니와 조력 가문으로서 안배된 너희와 함께 이 세상을 괴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제 단한 군이 네 번째 비기를 취함으로써 이렇게 너희에게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서곰의 본체는 화이트 드래곤이었지만, 의외로 신령스러운 노인네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것이 확실히 효과는 좋아 보였다.

그래서인지 서곰의 말이 끝나자 다들 처음보다는 녀석이 수호천사라는 게 믿긴다는 기색이었다.

그렇게 할 말을 마친 서곰이 다시 본래의 곰 인형으로 돌아왔지만 누구도 녀석을 귀엽다고 하지 못했다.

하긴 나이가 지긋한 노인네가 서곰의 본모습이었으니 말이다.

-이만하면 분위기는 확실하게 잡았으니 나는 밖에 나가서 놀겠다.

-그러든가.

-참, 오후 일정은 어떻게 되지?

-오후 일정?

수가가 위치한 곳은 설악산의 지류라고 봐도 좋았다.

게다가 백담사가 근방에 있었기에, 오후에 그곳을 돌아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점심을 먹고 백담사를 구경하지, 뭐.

-그것도 좋겠다.

순간 서곰의 눈빛이 뭔가 수상쩍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이어 결계를 해제한 서곰이 접대실에서 사라졌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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