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집을 사다
서울로 돌아온 단한은 서준의 사무실에 들렀다.
별장을 방문할 때의 차림새로 집에 들어갔다간 어른들이 무슨 일인가 깜짝 놀랄 것이 분명했다.
단한은 사무실에서 입고 있던 옷과 신발을 벗었다.
그러곤 교복과 운동화로 갈아 신고는 손목에 차고 있던 명품시계도 풀었다.
이어 벗어 놓은 옷은 단정히 접고, 신발과 시계는 준비된 케이스에 집어넣고선 그것을 모두 서준의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덕분에 잘 사용했어요.”
비록 자신은 남자지만 신데렐라의 기분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옷이 날개였는지, 마법이 풀리자 갑자기 재벌가의 자제에서 평범한 청소년으로 돌아와 버린 것이다.
학생 신분으로 돌아온 단한의 모습에 서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것들은 네 몫으로 아버지가 구매한 것이다. 지금은 당장 들고 가기 뭐할 테니 이곳에 보관하고 있을 테니까 나중에 필요하면 가져가라.”
“그럴게요.”
서준은 이번의 일로 단한에 대한 충성심이 더욱 강해졌다. 겉으로는 청소년에 불과한 아이였지만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뇌가의 주군이었던 것이다.
그때 세면대로 다가선 단한이 물을 틀어서 세운 머리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멋스럽긴 했지만 교복 차림새에는 어울리지 않았던 탓이다.
“그만 나가죠.”
“하긴 그 정도면 감쪽같군.”
단한은 책가방을 둘러메고 서준과 함께 회사 밖으로 나왔다.
회사의 앞에 차가 대기 중이었다.
단한과 서준이 뒷좌석에 올라타자 운전기사가 서준을 향해 물었다.
“집으로 모실까요?”
운전기사의 말에 서준이 단한을 쳐다봤다.
새벽 2시.
시간이 너무 늦었다.
“피곤할 텐데 우리 집에서 자고 그대로 학교를 가면 어떨까? 어른들께는 내가 전화로 잘 말씀드릴 테니깐.”
“아니에요. 그냥 집으로 갈래요.”
“하긴 집이 편하긴 하겠지. 알았다.”
단한은 어머니와 할머니들에게 친구 집에서 축구 경기를 보고 늦게 들어갈 거라는 말을 꺼내 놓은 상태였다.
그랬기에 시간이 늦기는 했지만 집으로 가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서곰과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려면 집이 편했다.
끼이익!
단한의 동네에 당도했다.
차창으로 고갤 내민 서준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 단한이 집으로 돌아섰다.
3층으로 된 다세대주택.
그곳에서도 반지하가 단한의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이었다. 20평도 채 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조만간 이곳을 벗어나게 될 터였다.
금가의 천운현에게 100억 원을 빌린 대가로 이자를 포함한 200억 원을 돌려주고도 1,500억 원이나 남았다.
단한은 그것으로 제일 먼저 집을 살 작정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집안의 어른들에게 갑자기 생긴 거액에 대해 뭐라고 둘러대야 좋을지 고민스러웠다.
만일 그에게 1,500억 원이 생긴 것을 알게 된다면 어른들은 기절할지도 몰랐다.
‘아무래도 돈의 정확한 액수는 밝히지 않는 것이 좋겠다.’
모친이나 조모들은 가문의 내력을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그랬기에 그동안 단한이 만난 조력 가문에 대해 알 리가 없었다. 또한 그가 지니게 된 능력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주무시고 계시겠지?’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천천히 내려온 단한이 비상키를 꺼내어 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문 여는 기척에 그만 안방에서 모친이 나왔다.
모친이 단한을 발견하곤 온화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배고프지 않니?”
“친구 집에서 이것저것 많이 먹어서 괜찮아요. 할머니들은 주무시나 보죠?”
“너 오길 기다리다 방금 전에 잠이 드셨다.”
“어머니도 피곤하실 텐데 어서 들어가서 주무세요.”
“그래. 너도 어서 씻고 자라.”
“네, 그럴게요.”
모친은 단한이 들어온 것을 보려고 잠도 안 자고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머니가 안방으로 돌아서려는데 단한이 불렀다.
“어머니.”
“응?”
아들의 부름에 모친이 단한을 돌아다보았다.
식당 일을 하느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항상 웃는 모습을 보이려 애쓰는 어머니였다.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 우리 아들.”
모친이 환히 웃어 보이곤 다시 안방으로 향했다.
잠시 어둠으로 잠긴 실내를 우두커니 바라보던 단한도 자기 방으로 들어왔다.
서곰이 기다렸다는 듯이 히죽 웃으며 단한을 반겼다.
-수고했다.
-목표한 액수보다 더 거액을 벌었다. 천 회장에게 돈을 갚고도 1,500억이나 된다. 엄청나지?
-축하한다. 정말 잘되었다.
서곰의 축하 인사에 단한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러다가 오늘 만난 흉수들이 떠올랐는지 다시 서곰과 교신을 나누기 시작했다.
-나와 감정 이입으로 대충 눈치는 채고 있었겠지만 오늘 그곳에서 흉수를 만났다.
-흉수가 그곳에 참석하리라 짐작하고는 있었다.
재물에 대한 탐욕이 유난히 강한 흉수들이기에 한국의 재력가 중 반수가 거의 흉수들이라고 보면 좋았다.
게다가 정치 쪽에도 손을 벌린 놈들도 많았다.
-세 놈이 그곳에 참석했더군. 아무래도 다른 흉수들은 외국으로 빠진 모양이야.
-그랬을 것이다.
이번에 월드컵이 개최된 사실로 세계의 여러 유명한 도박 사이트들이 혈안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중에서 도박의 도시인 라스베이거스로 돈 있는 자들이 대거 몰린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으니 말이다.
-놈들이 내가 돈을 딴 것을 알고 따라붙기에 확실하게 손봐 줬다.
-아주 잘했다.
-이번에도 유탁과 마찬가지로 놈들의 코어를 손봐 주는 과정에 마나 전이가 있었다. 한데 흉수들의 마나를 취하면 능력이 강해지는 건가?
-그렇다. 흉수들의 코어에 들어 있는 마나는 선계에서 비롯된 기운이다. 인간세계에서 얻을 수 있는 마나와는 달리 효력이 배로 강할 것이다.
서곰은 단한의 눈빛을 통해 보다 기운이 강화된 것을 느끼곤 표정이 밝아졌다.
-겨우 세 놈의 마나를 취했는데도 이젠 놈들의 코어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어. 투시력이 몰라보게 좋아졌어. 놀랍지 않니?
-돈도 따고, 능력도 강화되었다니 잘된 일이다. 그만큼 너의 내공이 강해졌기에 그리된 건지도 모른다.
단한이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역시 집이 편했다.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보던 단한이 서곰을 웃으며 바라봤다. 수중에 들어온 돈을 생각하니 꿈만 같았다.
-돈에 대해선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을까? 난 일단 집부터 샀으면 하는데?
-좋은 생각이다. 안 그래도 알아본 집이 있다.
-그래? 어딘데?
-장소는 가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역시 발이 빠른 서곰이었다. 흐뭇한 표정으로 서곰을 바라보던 단한의 표정이 짐짓 구겨졌다.
집을 사게 된다면 무엇보다 모친과 조모들에게 돈이 생긴 것을 납득을 시켜야만 할 터였다.
사실은 가장 말하기 편한 방법이 로또복권에 당첨이 되었다고 둘러대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로또복권은 애석하게도 아직은 훗날에 벌어질 일이었다. 아마도 그가 기억하기에 12월쯤에 로또가 처음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어머니와 할머니들에게 돈에 대해 뭐라고 말하지? 집을 사려면 한두 푼도 아니고 거액이 들어갈 텐데.
-사실대로 말하기 곤란할 테니 기억을 첨가시키는 방법이 있다.
-뭐어? 어머니와 할머니들의 기억을 손보란 말이야?
-축구 경기 도박으로 돈을 벌었다고 사실대로 말씀드릴 수는 없는 일이다.
하긴 학생 신분에 갑자기 집을 살 수 있는 돈이 생겼다면 어떤 말로 둘러댄다 해도 잘 납득이 가지 않을 터였다. 그리고 녀석의 말대로 도박으로 돈을 벌었다는 것은 더욱 밝힐 수 없었다.
잠시 침묵에 잠겼던 단한.
생각해 봐도 별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자 서곰의 말대로 따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기억을 조작한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기억을 주입시킬 수는 없었고, 적당한 시나리오가 필요했다.
녀석이 방법을 제시했다.
-컴퓨터 게임 개발에 아이디어를 제공한 대가로 돈 대신 뇌가의 주식을 받았다고 하면 좋을 거다.
-뇌가의 주식을?
-그것이 대박을 쳐서 상당한 이문을 남겼다고 하면 무리가 없다. 그리고 만약의 경우를 위해서 뇌가에도 사전에 도움을 요청해서 대충 말을 맞춰 놓는 것도 좋겠다.
거짓말은 싫지만 그것이 지금으로선 답이었다.
하지만 기분은 그리 좋지 못했다. 어른들에게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 죄책감이 들었다.
-선의의 거짓말도 때론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어른들에겐 오늘 딴 액수를 죄다 밝힐 필요는 없다.
-물론이지. 집을 구입할 정도만 밝히는 것이 좋겠지? 아마 거액을 전부 밝혔다간 어른들이 기절하실걸.
아무튼 돈에 대한 문제는 녀석의 말이 현실적이었다.
그렇게 서곰과 얘기를 나눈 단한은 빨리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하루라도 빨리 모친과 조모들에게 편안한 환경을 제공하고만 싶었다.
???
점심시간에 서연과 옥상에서 만났다.
서연은 어젯밤에 단한이 그녀의 오빠와 별장에 간 것을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서연이 단한의 얼굴을 흥미로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오빠 서준에게 일이 성공리에 끝났다고 전해 듣기는 했지만 자세한 언급은 회피했던 것이다.
“돈 많이 땄다며?”
“응.”
“얼마나 되는데?”
“모르는 게 약이야. 알면 기겁할걸?”
단한의 장난스러운 표정에 서연이 환한 기색으로 웃으며 축하해 주었다.
“부자 된 것을 축하해.”
“고마워.”
어려운 단한의 형편을 알고 있기에 서연은 누구보다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러다 단한이 돈으로 뭐를 할 건지가 궁금했는지 물었다.
“그 돈으로 뭐 할 거야?”
“일단 집부터 사려고.”
“집을? 그럼 우리 동네로 오면 안 돼?”
“안 그래도 그러려고.”
“와우! 진짜? 정말 좋은데?”
같은 동네에 살면 앞으로 단한을 자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인지 그녀의 표정이 매우 밝았다.
사실 예전에 살던 동네의 집을 사려는 생각은 서곰의 의견이었고, 단한도 반대를 하지 않았다.
거의 29년을 살아온 동네였으니 아무래도 다른 곳보다는 편할 터였다. 그리고 비록 예전의 기억을 전혀 못하는 어른들이라 할지라도 무의식의 세계에선 어딘지 낯설지 않게 받아들일 거라고 여겼다.
서연이 햇살이 가득한 교정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날씨 정말 좋지? 어디 놀러 가면 딱 좋겠다.”
“나중에 너희 동네로 이사하고 나면 우리 한강 고수부지로 자전거 타러 가자.”
“오호, 그것도 좋겠는데?”
과거에는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었지만 이번의 삶에선 행복하게 결혼까지 골인할 생각이었다.
이제 학교에서 여신으로 일컬어지는 서연의 외모였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과 늘씬한 몸매를 기분 좋은 표정으로 바라보던 단한이 주위를 슬쩍 둘러보았다.
옥상에 단둘이 있음을 알자 단한이 그녀의 양 볼을 살며시 거머쥐고는 이마에 뽀뽀를 해 버렸다.
둘 사이에 첫 번째로 행해진 스킨십이기도 했다.
그녀가 사과처럼 붉어진 얼굴로 단한을 배시시 웃으며 쳐다봤다.
“오빠에겐 비밀로 해야겠지? 히히!”
“그래.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서준의 얼굴을 떠올린 단한이 피식 웃었다.
안 그래도 아침에 서준과 통화를 했다.
주택 구입 문제를 비롯하여 서준과 상의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준은 흔쾌히 단한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아무래도 현재 미성년자인 단한의 신분이었기에 성인인 서준이 함께해 주는 것이 좋기는 했다.
“그럼 오늘 집을 보러 가는 거야?”
“그러려고.”
“나도 따라가도 돼?”
“나야 좋지. 실은 준이 형님과 만나기로 했거든.”
“잘되었다. 집 알아보고 우리 맛있는 거 먹자.”
“그러자, 그럼.”
둘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