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유탁의 수모(2)
점심시간이 되었다.
유탁이 친위대 아이들과 서둘러 교실을 빠져나갔다.
평소 같았으면 거들먹거리며 교실 분위기를 휘어잡았을 놈들이었지만, 수학 시간의 일로 인하여 다들 꼬리를 내린 기색이었다.
그러자 교실에 남은 아이들이 기회란 듯 수군거렸다.
“유탁, 그놈 표정 봤냐?”
“잘난 척하더니 꼴좋지? 완전 속이 시원하다.”
“진짜 어이없지 않냐? 단한이 만점 받은 사실이 납득이 안 가긴 뭐가 안 가? 오히려 문제도 풀지 못한 주제에.”
“그러면서 어떻게 10번 문제의 정답을 맞혔을까?”
“내 말이 그 말이라니깐.”
아이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은 김형태가 씨익 웃으며 단한을 쳐다봤다.
“어이, 수학 천재, 반 1등을 누른 기분이 어때?”
“까불지 말고 어서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
“좋았어.”
단한과 김형태가 교실을 나서자, 친하게 지내던 몇몇 아이들도 당연하단 듯 우르르 몰려들었다.
“대단한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하하!”
“오늘 밥맛은 완전 꿀맛이겠는데?”
“하하, 당연하지.”
떠들썩한 아이들의 분위기에 김형태가 다급히 제지하듯 나섰다.
“잠깐, 미안하지만 실은 단한과 할 얘기가 좀 있어서. 금방 갈 테니 너희 먼저 식당에 내려가는 게 좋겠다.”
“그러지, 뭐.”
“가자.”
아이들이 우르르 식당이 있는 방향으로 향하자, 김형태가 단한을 복도의 한적한 곳으로 이끌었다.
단한이 피식 웃으며 김형태를 쳐다봤다.
“할 얘기가 뭔데?”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
“뭐가?”
“유탁은 그렇다 쳐도 주상이 그놈, 어떻게 그놈이 나도 세 개나 틀린 문제를 하나만 틀렸을까? 평소에 수학을 그리 잘해 보이지도 않던데.”
“열심히 공부했나 보지, 뭐.”
“그래도 심화 문제까지 척척 풀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
주상의 성적이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던지 고갤 갸웃거리는 김형태의 모습에, 단한도 내심 미심쩍은 구석은 있었지만 뭐라고 대꾸하기가 뭐했다.
“게다가 애들 말대로 유탁이 10번 문제를 풀지 못한 것도 그렇고. 수학 쌤도 겉으론 말은 안 해도 뭔가 이상하게 여기는 눈치던데.”
“…….”
시험 감독으로 들어온 수학 교사 이석현이었다.
만일 유탁과 주상이 시험을 보는 시간에 부정행위를 했으면 꼬장꼬장한 수학 교사의 성격상 절대 그대로 넘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자 대꾸 없이 생각에 잠긴 단한의 모습에 김형태의 눈빛이 반짝였다.
“너도 그놈을 의심하고 있구나.”
“글쎄다.”
“솔직히 말해 봐. 그놈, 딴 짓을 한 것 같지?”
“딴 짓?”
김형태는 반장이란 위치 때문인지는 몰라도, 반 분위기를 흐리는 유탁과 친위대 아이들을 누구보다 혐오하고 있었다.
“워낙 비열한 놈이잖아. 교사들 앞에선 착하고 겸손한 척 내숭을 떨지만, 실제로는 만만해 보이는 아이들을 완전 장난감으로 취급하고 있잖아.”
“그렇다고 설마… 수행평가 따위에?”
“수행평가라 해도 중간고사에 20프로나 반영이 되니 작은 점수는 아니지. 그리고 네가 아직 유탁을 잘 모르는 모양인데, 사실은 그놈 중학교 때도 시험 성적으로 논란을 일으킨 전적이 있었거든.”
단한은 바뀐 삶으로 인해 유탁과 같은 중학교를 나오지 않았지만, 김형태는 유탁과 같은 중학교 출신이었기에 놈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는 듯했다.
“뜻밖이군. 그럼 그때는 어떻게 처리되었지?”
“우습게도 오히려 시험 성적 조작 논란을 제기한 아이가 학교를 자퇴하고 말았어. 가난하지만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어. 그렇게 쉽게 학교를 그만둘 녀석이 아닌데도 말이지. 필시 그놈의 집안에서 학교에 압력을 넣었을 것이 분명해.”
“자퇴한 아이와 친한 사이였던 모양이구나.”
“그래. 하지만 이제는 연락조차 없이 지내게 되었지. 모두 유탁 그놈으로 인해서.”
한편으론 김형태가 유탁을 유난히 싫어하는 이유가 밝혀진 셈이었다.
어쨌든 김형태의 말은 충격적이긴 했다.
과거에는 단한의 눈치를 보느라 악한 본성을 억누르며 살았던 유탁이 이번의 삶에선 환경이 바뀌자 온갖 나쁜 짓은 다 저지르고 살고 있음을 말이다.
“그럼 유탁 그놈이 정말로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면 방법은 한 가지뿐이겠군. 사전에 시험에 뭐가 나올지를 알고 있었다는 것.”
단한의 말에 김형태가 얼른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둘이 나눌 얘기가 다른 아이들이 들어선 안 되는 내용이었기에.
다행히 주변에 지나가는 아이가 없었다.
단한이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랬다면 만점은 당연하겠지. 그걸 함께 살고 있는 주상도 알고 있었을 거고. 물론 주상까지 만점을 받으면 의심을 살 테니 하나를 틀리라고 했을 테고.”
“맞아. 그런데 그것이 바로 실수였지. 주상이 그놈이 차라리 반타작만 했다면 나도 이렇게까지 의심할 생각을 못했을 거야.”
단한은 문득 주상에 대해서 의문이 생겼다.
유탁처럼 탐욕이 강한 놈이 따까리처럼 부리는 주상을 그렇게 챙겨 준 것이 뭔가 이상했다.
겨우 유탁과 한 문제 차이였다.
김형태가 핏대를 올리며 단한을 쳐다봤다.
“설마… 수학 쌤이 문제를 유출했을까?”
“융통성 없지만 교직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수학 쌤이야. 아무리 돈으로 유혹해도 쉽게 휘둘릴 성격이 아니지. 그리고 정말 그런 짓에 가담했다면 오늘 유탁 그놈에게 나와서 문제를 풀어 보란 소리도 하지 않았을 거고.”
“하긴 그건 나도 동감이야. 그리고 시험 문제지는 시험 전날 교무실 금고에 보관되는 것이 그간의 관례이니, 다른 선생님도 얼마든지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이지.”
역시 김형태는 반장답게 교무실의 상황에 대해 그보다 아는 것이 많았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문제지를 유출했을까?”
“혹시 너는 짐작 가는 선생이라도 있어?”
“너는?”
단한이 김형태의 얼굴을 빤히 주시했다.
콧등이 실룩이는 녀석의 표정으로 보아 누군가를 의심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실은 담탱이 수상해.”
“담임?”
“워낙 구린 인간이잖아. 담탱은 나보단 유탁이 반장이 되기를 원했을걸. 그래야 떨어지는 콩고물이 더욱 많아질 테니깐. 근데 내가 유탁을 누르고 반장이 되었으니. 어쨌든 반장 건은 그렇다 쳐도……. 사실 일전에 교무실에 볼일이 있어서 갔는데… 마침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담탱 혼자 안에 있더라고.”
“……?”
“근데 어쩌다 담탱이 누군가와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는 내용을 엿듣게 되었지. 유탁 그놈의 집안에서 담탱에게 뭔가를 요구하는 내용처럼 들렸어. 담탱은 연신 문제없다고 굽실거리는 태도였고.”
“놈의 집안에서 정확히 뭐를 요구했는지는 모르고?”
“유감스럽게도 자세히는 못 들었어. 하여간 분위기가 이상해서 몰래 교무실을 나와 버리긴 했는데… 아무래도 찝찝해. 물론 그 전화 건이 수행평가 문제 건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교사들 중에서 그 일을 할 만한 인물은 우리 담탱뿐이라고 생각해.”
과거에 배중학 밑에서 한 학년을 지낸 적이 있었기에 단한은 누구보다 담임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돈만 찔러 주면 어떤 짓도 불사할 정도로 도덕심 따위 전혀 개의치 않는 인간임을 말이다.
“나도 담임을 신용하지 않지만 그래도 확실한 증거가 없는 한, 이 일은 너와 나의 얘기로만 끝내자.”
단한의 조언에 김형태가 분하지만 수긍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괜히 설쳐 댔다가 미운 털 박히면 그것도 곤란하니깐. 하여간 난 유탁 그놈이 싫어. 그런 놈이 세상에 버젓이 활개 치고 다니는 꼴이 속상해.”
단한이 불만 어린 김형태의 얼굴을 바라보며 피식 웃어 주었다. 과거에는 적대적인 관계였지만 이번의 삶에선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나중에 기자가 되었었지?’
김형태의 불의를 싫어하는 이런 근성이 미래에 녀석을 기자로 만들었는지도 몰랐다.
“혹시 너 나중에 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냐?”
“에? 그걸 어떻게 알았냐?”
김형태가 놀라 단한을 쳐다봤다. 아직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장래희망이었던 것이다.
“배고프다. 얼른 식당으로 가자.”
“알았어.”
그렇게 식당에 들어선 단한과 김형태는 식판을 들고는 줄 서 있는 아이들의 뒤로 움직였다.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있던 아이들이 반색하여 둘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곧이어 두 사람도 배급을 받은 식판을 들고 그들의 옆자리에 합류했다.
그러다 단한이 식당 안을 한 번 둘러보았다.
점심시간이니 서연도 왔을 거라 생각했던 탓이다.
마침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서 식사 중인 서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얼른 식사하고 잠시 얘기를 나눠야겠다.’
서연은 살이 빠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크게 놀라워할 터였다.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단한이 막 식사를 하려는 찰나였다.
‘응? 무슨 일이지?’
그녀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보아하니 밥을 먹다 만 기색처럼 보였지만.
그때 어제 다친 발목으로 인해 반 깁스를 한 상태인 그녀가 다리를 절며 바로 근처의 테이블로 향했다.
‘저놈들은?’
유탁과 친위대 아이들이 앉은 자리였다.
그렇게 그곳으로 움직인 서연의 모습에 놈들이 킥킥거리며 놀리듯 그녀를 쳐다봤다.
안 그래도 수학 시간의 일로 잠시 의기소침했던 놈들이 뚱뚱한 서연을 발견하곤 분풀이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서연이 들고 있던 식판을 식사 중인 놈들의 테이블 위로 거꾸로 뒤집어 보였다.
후두둑!
먹다 만 음식물이 테이블 위로 지저분하게 쏟아졌다.
오늘 메뉴는 카레와 김치.
노란 카레와 벌건 김치가 환상적으로 조합을 이룬 채 테이블을 완전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렸다.
서연이 설마 이렇게 세게 나오리라곤 미처 생각지 못한 놈들이 당황하여 서연을 쳐다봤다.
그러다 친위대 중 오지강이 벌떡 일어섰다.
“우씨이! 이 뚱녀가? 더럽게 이게 뭐야?”
“너희는 개다. 개에게 먹이를 주는데 고맙게 여겨야지, 왜 짖고 그래?”
“이년이 진짜…….”
오지강이 시뻘게진 얼굴로 서연을 향해 주먹을 들어 보였다.
하지만 뚱뚱하긴 해도 여자였다.
게다가 식당 안에서 밥을 먹던 아이들이 갑작스런 소란에 모두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오지강이 차마 서연을 때리지는 못하고 쳐든 주먹을 부르르 떨어 댔다.
그러자 서연은 오지강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유탁과 주상을 차갑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어제 고의적으로 날 넘어뜨린 거 사과해라. 너희 덕에 이렇게 반 깁스까지 하게 되었거든.”
“뚱녀가 겁을 상실했군.”
유탁이 조소를 흘리며 서연을 쳐다봤다.
하지만 서연은 유탁의 조소에도 전혀 겁을 집어먹은 기색이 아니었다.
“한 번 더 기회를 주지. 어서 사과해라.”
“사과는 개뿔? 야, 그만 가자. 입맛 떨어졌다.”
유탁이 비아냥거리듯 자리에서 일어선 순간이었다.
콰앙!
서연이 들고 있던 식판으로 유탁의 이마를 힘차게 후려친 것이다.
“헐~ 대박!”
“유탁을 식판으로 쳤어.”
“과연 공포의 뚱녀다!”
지켜보던 아이들의 입이 떠억 벌어졌다.
웅성거리는 식당의 분위기에도 서연은 당당한 태도로 말했다.
“이걸로 쌤쌤으로 쳐주지.”
“씨팔! 이게 죽으려고-!”
흥분한 유탁이 돌아선 서연의 뒷머리를 잡아채려는 타이밍에 절묘하게 단한이 끼어들었다.
꽈악!
단한이 유탁의 손목을 거머잡고는 말했다.
“그만해라. 먼저 시비를 건 건 너희였어. 그리고 어제 뒤에서 따라오면서 똑똑히 봤거든. 서연을 미는 것을. 반 깁스를 한 상태니 폭행죄로 고소해도 충분한 걸, 겨우 식판으로 한 대 얻어맞고 끝나는 거니까.”
“하…….”
느닷없이 끼어든 단한의 일목요연한 발언에 유탁이 반박하지 못한 채 인상만 잔뜩 일그러뜨렸다.
반면 기이하게도 유탁이 당한 상황에도 주상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단한의 행동을 묵묵히 주시할 뿐이었다.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