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단한 성공기-10화 (10/95)

제5장

달라진 그녀(2)

“괜찮니?”

“……?”

아무도 자신처럼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애를 위해 나서 줄 아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단한의 다가섬에 서연이 당황한 듯 물끄러미 쳐다봤다.

‘단한이 왜?’

인기가 좋은 단한과 달리, 그녀는 아이들 사이에서 최악의 인물로 알려졌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을 제외하곤 봐줄 것이 없었다.

더군다나 악에 받친 거친 입담으로 인해 남학생들에겐 ‘공포의 뚱녀’라고 알려지기까지 했다.

그러자 어딘지 멍한 서연의 표정에 단한이 걱정스레 다시 물었다.

“어디 다친 데는 없니?”

‘정신 차려. 이렇게 잘생긴 애가 나 같은 여자애를 왜 상대하려 하겠어? 나를 놀리려는 것이 분명해.’

“놀리려고 하는 거라면 꺼져. 혼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서연의 거친 말투에도 단한이 부드럽게 웃어 주었다.

그런 단한의 시선에 거북해진 서연이 허둥지둥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려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이 확 구겨지고 말았다.

“윽!”

신음을 흘리며 푹 주저앉는 서연의 모습에 단한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얼른 그녀의 발목 쪽을 살피듯 내려다봤다.

‘발목을 삔 모양이군.’

발목 부분의 스타킹이 구멍이 나고, 흙도 잔뜩 묻어 있었다. 이대로는 혼자 양호실까지 걸어가긴 힘들 터였다.

“다친 모양인데 도와줄게.”

“괜찮으니까… 저리 비켜!”

서연이 다가드는 단한의 손길을 잽싸게 뿌리치고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신히 일어났지만 잔뜩 찌푸려진 그녀에게선 신음 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그런 서연의 모습에 단한이 나무라듯 말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잘 걷지도 못하면서?”

“어어-”

“책가방은 내가 들어 줄 테니 조심해서 걸어 봐.”

엉겁결에 책가방을 단한에게 빼앗겨 버린 서연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남몰래 짝사랑하던 아이.

그러다 그와 같은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입학식 전날엔 잠까지 설쳤을 정도였다.

하지만 하늘의 별이나 마찬가지인 아이.

자신처럼 추한 여자애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황송해서 죄의식이 느껴지는 그런 별.

그랬는데 이렇게 그가 자신을 도와주고 있었다.

“얼른 양호실로 가는 게 좋겠다.”

“으윽!”

절뚝절뚝.

단한은 절뚝거리는 서연의 모습에 마음 같아선 안아서 양호실까지 옮겨 주고 싶었지만, 그녀의 육중한 체중을 감당하지 못할 듯싶었다.

대신 그녀의 팔을 잡고 곁에서 부축해 주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우아악! 창피해! 살찐 내 팔을 잡았어. 분명히 속으로 돼지라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단한의 마음을 전혀 알 리 없는 그녀는 그에게 잡힌 자신의 뚱뚱한 팔이 너무 신경 쓰이고, 창피하기만 했다.

돌아가는 분위기에 여학생들이 술렁거렸다.

“저거 일부러 자빠진 거 아냐?”

“뚱녀 주제에 아주 호강하네.”

“어쩜? 단한인 얼굴도 잘생겼으면서 매너도 좋지?”

“아! 나도 넘어지고 싶다.”

단한은 주위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서연을 부축하여 양호실까지 데려갔다.

하지만 실내엔 양호 교사가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이 안 계시네? 일단 침대에 앉아서 기다리는 게 좋겠다.”

“고마워. 혼자 있어도 되니 그만 가.”

“아냐. 선생님 오시면 갈게. 이왕 도움을 줬는데 확실하게 마무리까지 잘해야 되지 않겠어?”

단한은 먼저 서연을 침대에 앉도록 도와주곤 자신은 반대편 침대에 걸터앉았다.

“…….”

“…….”

마주 바라보는 둘의 표정이 뭔가 어색했다.

단한은 아무리 뚱뚱하고 혐오스럽게 생겼다 해도 상대가 서연이라고 생각하자 슬쩍 긴장이 되었다.

반면, 서연은 짝사랑하던 단한과 이렇게 단둘이 있는 것이 꿈처럼만 여겨졌다.

‘이 아이는 예전의 기억은 모두 잊었겠지?’

단한이 슬쩍 서연의 얼굴을 살피듯 쳐다봤다.

과거와는 크게 달라진 그녀의 모습이었지만 본원적인 강한 기질은 그대로였다.

게다가 늘어진 턱살과 볼 살로 인해 빼어난 이목구비가 묻혀 버렸지만, 살만 빠진다면 필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를 향해 단한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정식으로 인사할게. 내 이름은 대단한이야. 이름이 좀 재미있지?”

“으응.”

단한의 미소에 서연이 시선을 회피하듯 고개를 살며시 돌렸다. 단한과 단둘만이 있는 상황이 행복했지만 너무도 거북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때였다.

“네 이름은 서연이지?”

“……?”

서연이 깜짝 놀란 눈으로 단한을 빤히 쳐다봤다.

설마하니 단한이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던 탓이다.

“너 수석으로 들어왔잖아. 입학식 때 단상에서 선서하는 거 봤거든. 그때 참 예쁜 이름이구나 생각했어.”

“아…….”

서연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비록 이름자지만 태어나서 예쁘다는 소리는 처음으로 들은 것이다.

“이름도 그렇지만 지금 상태에서 살만 빠진다면 건강하고 예뻐질 텐데.”

“……!”

순간 서연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졌다.

역시 남자는 다 똑같구나 싶었다. 하긴 자신처럼 뚱뚱한 여자애보다는 예쁜 여자애가 백번 좋겠지.

“너도 결국 외모가 최고라고 생각하는구나?”

“예뻐서 나쁠 것은 없지. 사실 너처럼 뚱뚱한 여자애는 처음 보거든.”

“…뭐?”

서연이 충격을 받은 듯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잠시 그런 표정으로 단한을 바라보던 서연이 주먹을 꽉 움켜쥐곤 정색하듯 말했다.

“그만 돌아가 줄래? 혼자 있고 싶어.”

“내 말이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 하지만 너도 자신의 모습에 만족스럽지 않을 거 아냐?”

자존심이 상한 서연이 이를 악물듯 목소리를 흘렸다.

“당연하지. 이런 저주받은 몸 따위… 나도 지긋지긋해.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살이 빠지지 않는걸.”

남들은 식탐을 자제 못한 그녀가 음식을 잔뜩 먹어서 뚱뚱해진 것으로 오인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밥도 보통 여학생 수준으로 먹고, 군것질도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살이 찌고 있다.

병원에서도 정확한 원인을 모르고 있었고, 한의원을 찾아가도 괜히 아프게 침만 놓을 뿐 차도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 체념하듯 살고 있었다.

“노력해도 살이 빠지지 않는다고?”

“남들은 내가 뚱보라 뭘 잔뜩 처먹는 줄 비웃고 있겠지. 새 모이만큼 먹어도, 아무리 운동을 해도 살이 찌는 것을 알 리가 없지. 쿡쿡! 저주받은 체질이거든. 이게 내 숙명이니까 괜한 상관 말고 썩 꺼져!”

“살이 찌는 게 숙명이라고?”

단한의 눈빛이 반짝였다.

죽을 운명이었던 자신도 이렇게 살아났다.

어쩌면 신기한 서곰이라면 서연의 체질을 정상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 빌어먹을! 뚱뚱하고 못생긴 나 따위는 관심 끄고, 얼른 다른 여학생들에게나 가 보란 말이야.”

거칠어진 서연의 말투에도 단한의 표정은 전혀 불쾌한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한술 더 뜨듯 느긋한 기색이었다.

“너 날 좋아하니?”

“……?”

흠칫한 서연의 표정에 단한이 피식 웃었다.

“아니면 말고. 하여간 잘 찾아보면 뭔가 방법이 있지 않을까? 내가 잘 아는 도사님이 계시는데, 그분 말씀엔 이유 없는 병이 없다고 하더라고.”

서곰을 의식한 단한의 발언이었지만 서연이 처음으로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내가 살찌는 것이 모두 이유가 있다는 말이야?”

“만약 체질이 개선되어 날씬해진다면 나랑 정식으로 사귀지 않을래?”

“사, 사귀자고?”

서연이 크게 놀란 표정으로 단한을 쳐다봤다.

단한이 흔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지금 날 놀리는 거니?”

“진심이야. 네가 날씬해진다면 한번 사귀어 보는 것도 괜찮겠단 생각이 들어. 공부도 잘하겠다, 거기에 날씬하기까지 하면 최상의 여친이 될 테니깐.”

과거와는 너무도 달라진 서연의 외모에 단한은 속으로 결심했다.

‘한 가지 목표가 더 생겼다.’

그것은 바로 서연의 외모를 모두가 선망하던 과거의 모습처럼 바꿔 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왕 일을 추진하는 김에 그녀에게 확실한 자극제가 필요하리라 여겼다.

보아하니 자신을 그리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기에.

“최상의 여친?”

“그래. 만일 네가 달라진다면 나도 노력할게. 너와 나란히 한국대에 들어가고 말겠어.”

“나랑 한국대를?”

“내가 한국대를 언급하니 불쾌한 모양이지?”

서연의 딱 하나 남은 자존심이 바로 공부였다.

중학교 시절 한 번도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었으며, 고등학교 반 배치고사도 수석으로 들어왔다.

그랬기에 그녀가 한국대를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지만 단한에겐 벅찬 일일 터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믿어지지 않아.”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과연 네가 살을 뺄 수 있을까 믿어지지 않거든. 하지만 벌써부터 포기하기엔 분하지 않아? 우린 이제 겨우 17살인데. 아직 인생이 창창하다고. 그리고 만약의 경우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실패한다면 어때. 돈 주고도 못 살 좋은 경험을 했다고 셈 치면 되잖아. 안 그래?”

단한의 일장연설에 서연의 눈빛이 흔들렸다.

얼굴만 잘생긴 것이 아니라 속까지 꽉 찬 아이였다니.

서연이 진심으로 감탄했다.

“너 참 대단한 애구나?”

“맞아. 내 이름이 대단한이잖아.”

환하게 웃는 햇살 같은 단한의 얼굴을 서연이 눈이 부시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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