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단한 성공기-4화 (4/95)

제2장

마지막 생일 파티(2)

“호호! 오빠, 빨리 보여 줘 봐. 이왕이면 웃긴 걸로.”

단한이 한술 더 뜨듯이 말했다.

“맞다. 너 그거 잘하잖아. 중학교 때 소풍 가서 했던 그거.”

“소풍 가서 했던 거라면…….”

유탁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

단한이 그런 유탁의 모습에 더욱 천연덕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저놈이 똥꼬의 근육이 남다르거든.”

“어머머, 저질!”

“그럼 이게 말로만 듣던 환상의 똥꼬쇼?”

“빙고! 역시 수잔이 눈치가 빠르군.”

“까르르! 똥꼬쇼래.”

“와아! 완전 재밌겠다.”

아가씨들이 크게 관심을 보이며 즐거워하자 유탁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여자들 앞에서 추하게 엉덩이로 쇼를 한다는 게 결코 좋을 턱이 없었다.

하지만 단한은 구경할 만반의 자세를 갖추듯, 아예 소파 뒤로 느긋하게 기대앉으며 재촉하듯 말했다.

“얌마! 분위기 처지는 거 안 보여? 어서 해 봐.”

“아, 알았어. 근데 그걸 하려면… 나무젓가락이 있어야 할 텐데.”

그때 종업원 하나가 테이블 아래에서 나무젓가락과 끈을 꺼내어 유탁에게로 다가왔다.

“그거라면 걱정 마시죠. 모두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오호, 대단한데? 어떻게 알고 준비한 거야?”

“술집에서 이런 서비스는 기본이죠. 손님들의 즐거움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상황을 회피하려던 유탁은 할 수 없이 종업원이 건네는 나무젓가락을 받아 들고는 스테이지로 나섰다.

‘저 새끼는 아가씨들 앞에서 창피하게 하필이면 똥꼬쇼가 뭐야. 하지만 곧 죽을 놈이니 마지막 소원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주지.’

중학교 때 이 짓을 한 것도 결코 유탁이 좋아서 나선 건 아니었다. 제비뽑기에서 어쩌다 걸려 할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했던 똥꼬쇼였던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파앗! 번쩍-!

스테이지로 나선 유탁을 부각시키듯 실내의 조명들이 죄다 꺼지고, 한곳에 집중되듯 불이 밝혀졌다.

집중 조명을 받은 유탁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으윽! 안 되겠다. 단번에 나무젓가락을 부러뜨리고 얼른 스테이지를 벗어나자.’

그때 마이크를 든 종업원이 분위기를 고조시키듯 멘트를 날리기 시작했다.

“동남아 순회를 마치고 방금 돌아온 환상의 똥꼬쇼! 지금부터 개봉박두 하겠습니다! 열렬한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와아아!”

짝짝짝!

대기 중인 밴드들도 드럼을 마구 두드리며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는 데 일조했다.

두두두두-!

유탁은 모두의 시선에 할 수 없이 나무젓가락을 엉덩이 사이에 끼우곤 힘을 주기 시작했다.

“흡! 끄응-!”

빨리 나무젓가락을 부러뜨리고 스테이지를 벗어나려던 마음과는 달리 나무젓가락이 잘 부러지지 않았다.

재미를 위해 특수 제작된 나무젓가락인 탓이다.

수잔과 세라가 깔깔거리며 야유하듯 말했다.

“뭐야, 오빠! 시시하게 그것도 못 부러뜨려?”

“좀 더 힘줘 봐! 특별한 근육이라며.”

그녀들의 야유에 얼굴이 시뻘게진 유탁이 다시금 엉덩이에 힘을 주었다.

“흐읍! 끙차-!”

하지만 나무젓가락은 강했다.

급기야는 엉덩이에 힘을 집중하다 안 되겠던지 유탁이 자세를 바꿔 가며 벽도 잡아 보고, 테이블도 탕탕 내려치며 갖은 용을 써 봤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와하하! 완전 대박!”

“아이고, 배꼽이야. 깔깔!”

유탁이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리얼리티한 장면을 연출하자 홀 안에 자리한 모두가 박장대소하며 즐거워했다.

적당히 유탁을 골려 먹은 단한이 혀를 차며 나섰다.

“쯧쯧! 너도 예전 같지가 않구나. 기대했는데. 오늘은 그냥 술만 마시는 게 좋겠다. 포기하고 이리 와 앉아라.”

“그, 그럼… 그럴까?”

꺼졌던 실내의 등이 다시금 밝혀졌다.

유탁이 살았다는 기색으로 단한을 쳐다보다가, 다리가 풀렸는지 흐느적거리는 몸짓으로 다가왔다.

순간 다가오는 유탁을 향해 단한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가 이내 무심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비열한 새끼. 감히 나를 속여?’

단한이 술병을 들어 유탁에게 술을 권했다.

“묘기를 보이느라 힘들었을 텐데 한잔 마셔라.”

“고마워.”

하지만 술잔이 넘치는데도 아랑곳없이 계속 술을 콸콸 따르는 단한의 태도에 유탁이 당황하여 쳐다봤다.

“너 많이… 취한 모양이네?”

“내 걱정 말고 술이나 마셔.”

유탁이 눈치를 보듯 술잔을 비우곤 말했다.

“오늘 정말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겠어? 어르신들이 많이 염려하고 계실 텐데.”

가증스럽게도 집안 어른들이 모두 절에 간 것을 알고 있음에도 유탁은 시치미를 딱 떼고 단한을 쳐다봤다.

그런 유탁의 얼굴을 단한이 빤히 주시하며,

“마지막 파티인데 실컷 즐겨야지. 안 그래?”

“그래도 너무 비관하지 마. 세상일이란 게 간혹 기적이란 것이 있을 수 있으니까.”

“기적이라? 정말 나에게 기적이 찾아올까?”

실소를 흘리던 단한이 술병을 병째로 들어선 벌컥벌컥 들이켜기 시작했다.

세상이 너무도 허무하게 느껴졌다.

유탁을 세상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존재라고 믿었건만 그게 아니었다.

그만의 착각이었다.

게다가 그가 죽고 나면 유탁네 식구들이 그의 집안에 수작을 부리려고까지 하고 있었다.

물론 집안 어른들이 결코 호락호락한 성격은 아니기에 안심은 되었지만, 그래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면 충성스러운 황 집사가 유난히 유탁네 식구를 마음에 안 들어 하던 것이 결국 이유가 있었다.

겉과 속이 다른 존재들임을 황 집사는 처음부터 꿰뚫어 본 것이 분명했다.

‘더는 놈의 얼굴을 보고 있기가 역겹군.’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유탁의 멱살을 부여잡고 어퍼컷을 힘차게 날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고 오히려 빙그레 웃는 얼굴로 유탁을 향해 말했다.

“탁이 넌 그만 집으로 들어가는 게 좋겠다.”

“집에? 그럼 넌?”

한강 고수부지에 있을 때만 해도 함께 따라서 죽겠다던 유탁이 돌아가라는 말에 크게 반색하여 쳐다보자, 단한은 심사가 뒤틀려 그만 뼈가 있는 말을 내뱉었다.

“나야 여기서 술 마시다 뒈지든 말든 할 테니 염려 말고 들어가. 괜히 내 비위 맞추느라 생고생하지 말고.”

“그래도… 내가 곁에 있는 게 낫지 않겠어?”

“아냐. 혼자 조용히 이곳에서 마지막을 맞고 싶다.”

“하긴 차라리 집보다는 여기가 편할 수도 있겠군.”

“맞아. 여기서 한번 갈 데까지 가 보려고.”

“그렇게 말한다면… 알았어.”

유탁이 주머니에서 차키를 꺼내어 확인하는 모습에 단한이 다시금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차키는 놔두고 가.”

아마도 유탁은 그가 죽게 되면 자가용을 차지할 생각인 모양이었지만 어림도 없었다.

차라리 자가용을 부수어 망가뜨리는 한이 있어도 유탁의 수중에 들어가게 놔둘 수가 없었다.

유탁이 의아한 표정으로 단한을 쳐다봤다.

“차키를 왜? 너 운전 못하잖아.”

“그건 상관없어.”

“아, 알았어.”

유탁이 아쉬운 표정으로 차키를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단한을 어색하게 쳐다봤다.

마침 단한의 좌우에 엉겨 붙은 세라와 수잔이 단한에게 치근덕거리며 침실로 가지 않겠냐고 유혹했다.

“좋아! 너희와 한번 실컷 놀아 보자.”

“와아! 정말요, 단한 씨?”

“이게 웬일이래니? 호호!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던데?”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선 단한이 세라와 수잔을 옆에 끼고는, 아직 자리를 뜨지 않고 있는 유탁을 보란 듯이 쳐다봤다.

“너는 그만 가 보라니깐.”

“그, 그럴게.”

유탁은 안쪽의 침실로 움직이는 단한을 당황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동안 아무리 예쁜 여자를 봐도 절대 흔들리지 않던 단한이었다. 정말 갈 데까지 가 보려는 모양이다.

‘저놈이 진짜 죽을 때가 되긴 되었나 보군.’

죽는 순간까지 함께 있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유탁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는 홀을 떠났다.

세라와 수잔을 끼고 침실에 들어선 단한.

자신이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보다 당장은 유탁에게 받은 배신감이 충격이 컸다.

휘청거리던 단한은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나마 총각 귀신은 면하겠군.’

사실 이제까지 많은 여자들을 만났지만 한 번도 육체적인 관계를 가진 적이 없었다.

단한은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었다.

허무한 마음 탓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어머, 이 오빠 우나 봐?”

“호호! 그렇게 우리가 좋은가?”

세라와 수잔이 유혹적인 몸짓으로 단한의 몸을 천천히 애무하기 시작했다.

단한의 눈빛이 갈수록 몽롱하게 변해 갔다.

이대로 그녀들에게 몸을 맡겨 동정을 잃게 된다 해도 하나도 아쉬울 것이 없었다.

그저 서른도 못 되어 요절하는 자신의 운명이 한없이 서럽고, 비참할 뿐이다.

단한이 반응을 보이자 세라와 수잔이 흥이 나서 걸친 옷들을 벗어 던지고 속옷 차림새로 나섰다.

하지만 바로 그때였다.

콰당!

침실 문이 거칠게 열리고 안으로 누군가 들어왔다.

여자였다.

하지만 이곳 룸살롱 아가씨는 아닌 듯싶었다.

게다가 미친 여자처럼 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머리는 잔뜩 헝클어졌으며, 한쪽 손에는 작은 곰 인형을 들고 있었다.

세라와 수잔은 갑작스런 상황에 기분이 불쾌했다.

겨우 단한을 침실에 데려오는 데 성공했는데, 난데없는 불청객이 침입하여 방해한 것이다.

“뭐야? 저 미친 언니는?”

“어머머, 저 나이에 웬 곰 인형? 호호!”

세라와 수잔의 조소 어린 반응에 여자는 오히려 도끼눈을 뜨고 그녀들을 노려봤다.

그러다가 여자가 주먹을 꽉 거머쥐고는 성큼성큼 다가와 침대에 누운 단한을 쳐다봤다.

“야, 대단한! 당장 일어나!”

“으으… 뭐야?”

“대단한! 이 바보 멍청아! 당장 일어나지 않으면 이곳을 폭파시켜 버린다!”

잔뜩 술에 취한 단한은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언급하며 떠들어 대자, 감았던 눈을 뜨고는 멍하니 상대의 얼굴을 살폈다.

순간 익숙한 상대의 얼굴에 단한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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