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153화
그러니까 저 능력은 모든 영혼을 다 모은 대가로 준 보너스 같은 것이다.
‘디스트로이!’
소모 영력은 50.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영력을 전부 사용해야 한다.
게다가 재충전 시간은 꼬박 하루가 걸린단다.
필시 엄청난 위력이 기술임이 틀림없었다.
‘이걸로 부딪친다!’
내가 아무리 강해졌다 해도 아직까지 카시아스를 상대하긴 무리다.
본능적으로 그걸 알 수 있었다.
난 섀도우 워커를 멈추고 그림자 속에서 빠져나왔다.
영력을 가득 채워야 디스트로이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내 영력은 48.
영력은 1분에 1씩 차오르니 카시아스를 상대로 어떻게든 2분을 버텨야 한다.
물론 패시브 스킬만 사용하면서 말이다.
“계속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게 좋았을 텐데. 아니면 그대로 도망가든가.”
“내가 꽁무니나 뺄 인간으로 보여? 예전엔 그랬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지금은 너무 많이 변했거든.”
“후회하게 될 거야. 그리고 나 역시…….”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 말고 할 거면 제대로 해.”
“그래…… 그래야지.”
카시아스가 오른손을 위로 들어 올리고 왼손을 아래로 뻗었다.
“아무래도 널 아프지 않게 죽이려 했다간 되레 내가 당하거나 너무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할 것 같아. 그러니까 각오해. 많이 아플 거야.”
내게 경고한 카시아스가 시전어를 외쳤다.
“그라운드 오브 퓨리!”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대기가 고요해졌다.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다.
주변이 진공상태가 되어 버린 것 같았고,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갔다.
마치 폭풍 전야와도 같은 불길한 고요함이 짧게 지나갔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저택이 터졌다.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저택뿐만이 아니었다.
카시아스를 중심으로 반경 300미터 내의 모든 것이 가루가 되었다.
저택도, 나무도, 꽃도, 바윗덩이도 전부 다.
꾸우우우우우우우!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고, 지독한 고통이 내 전신을 짓눌렀다.
“끄으…… 으으으으으으!”
숨이 턱턱 막혔다.
사방에서 내 몸을 잡고 각자 다른 방향으로 마구 당기는 것 같다.
칼로 피부를 계속 썰어내는 것 같다.
불로 온몸을 지지는 것 같다.
그 모든 고통이 복합적으로 느껴질 만큼 고통스러웠다.
주르륵.
코에서 피가 터졌다.
“끄흐…… 쿨럭! 크흐.”
기침에 피가 섞여 튀어나왔다.
내장 기관이 망가진 모양이다.
내가 일반인의 몸이었으면 이미 가루가 되어 버렸겠지.
쇳덩이도 가루가 되어 버리는 판에 견딜 수 있을 리가 없다.
난 카시아스가 마법을 시전하는 순간 염력을 몸에 둘러 최대한 육신을 보호하는 중이었다.
그런데도 지금 이 모양이다.
두두득!
“끄아……!”
오른쪽 다리가 이상한 각도로 휘어지며 부러졌다.
고통이 극심한데 다른 곳도 너무 아파 비명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사십구…….’
이제 1분만 더 버티면 된다.
아니, 1분도 남지 않았나?
아무튼 조금만 버티면…….
두둑!
“끄으……!”
이번에는 왼쪽 팔이 부러졌다.
염력은 점점 약해져 가고 있었다.
그라운드 오브 퓨리는 시전자 주변의 공간을 무엇도 살아남을 수 없는 죽음의 지대로 변화시킨다.
난 겨우 고개를 들어 카시아스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복잡한 감정이 마구 뒤섞여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쿨럭! 쿨럭! 크허억! 켁…….”
이번에는 피가 바가지로 퍼 올린 것처럼 많이 터져 나왔다.
점점 정신이 혼미해졌다.
눈이 감기려 한다.
시야가 흐려진다.
의식이 끈을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들다고 느껴지는 순간까지 와 버렸다.
한데 그때.
‘오십……!’
드디어 영력이 전부 차올랐다.
난 남은 힘을 다 쥐어짜내어 몸을 일으켰다.
“끄으…… 으아아아아아아!”
오른쪽 다리는 부러졌기에 왼쪽 다리에만 체중을 실었다.
“괜한 발악하지 마.”
카시아스가 말했다.
괜한 발악인지 아닌지는 끝까지 보고 나서 판단해!
왼손을 겨우 들어 올려 하늘 높이 뻗었다.
그리고 시전어를 외쳤다.
“디스트로이!”
시전어가 터져 나오는 순간!
꿈에서 봤던 사크란의 기술이 다시 재현되었다.
내 손 위에 집채만 한 불덩어리가 피어났다.
화르르르르륵!
그 불덩어리는 보랏빛으로 바뀌었다가 하얀빛으로 변했다.
좀 전에 카시아스가 내게 쏘아 보냈던 그것처럼 초고열의 불덩어리가 된 것이다.
이를 본 카시아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저 기술을…… 어떻게…….”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난 고함과 함께 들어 올린 손을 힘껏 내렸다.
집채만 한 불덩이는 그대로 카시아스에게 떨어져 내렸다.
순간 내 몸을 압박하던 기운이 전부 사라졌다.
대신 카시아스의 머리 위에 단단히 압축된 거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녀는 내가 쏘아 보낸 불덩이를 막기 위해 반경 300미터를 지배하던 힘을 한곳으로 응집한 것이다.
콰아아아아아앙!
디스트로이와 한데 뭉친 그라운드 오브 퓨리의 기운이 맞부딪혔다.
순간 지축이 흔들리며 소닉붐이 일었다.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으으……!”
카시아스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크으…….”
나도 지지 않고 맞섰다.
두 개의 강렬한 기운은 한참 동안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맹렬히 싸우다가.
퍼어어어어어엉!
큰 폭발을 일으켰다.
그리고 내 의식은 멀리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 * *
눈을 떴다.
난 엉망이 되어 바닥에 누워 있었다.
카시아스가 보였다.
그녀가 걸친 옷은 찢어지고 더럽혀져 넝마 같았다.
머리카락이 많이 탔고, 몸 곳곳에 크고 작은 상처가 가득했다.
“…….”
카시아스는 말없이 날 바라보았다.
그녀와 나 사이에 작은 스파크가 튀는가 싶더니 이내 덩치를 키워 수박만 한 뇌전의 구가 되었다.
지금 내 상태라면 저걸 정통으로 맞는 순간 죽는다.
분명히 죽는다.
결국엔 이렇게 되는 거였나.
“……죽여.”
난 힘들게 말했다.
이제 나도 너무 지쳤다.
포기하고 싶었다.
뇌전의 구가 천천히 움직이다 빠르게 날아들었다.
파지직! 지직!
난 눈을 감지 않고 그것을 똑바로 응시했다.
적어도 내 마지막 순간이 암흑으로 가득 차는 건 싫었다.
그런데.
스팟.
뇌전의 구가 내 코앞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뭐하는 거야?”
내 물음에 카시아스가 대답했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뭐하는 거야. 왜…… 왜 그랬지? 왜 마지막 순간에 힘을 뺐지? 안 그랬다면 죽는 건 나였을 텐데.”
……그랬다.
난 디스트로이를 시전했고, 카시아스를 확실히 압도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힘을 빼 버리고 말았다.
그 순간 폭발이 일었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내가 힘을 뺀 이유.
그거 뭐…… 별거 없었다.
“내가 널 어떻게 죽여.”
“…….”
카시아스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서 있었다.
뜨거운 차 한 잔을 마실 정도의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그러다 카시아스는 무릎을 꿇고 앉아 내 몸에 손을 댔다.
동시에 따스한 기운이 내 전신으로 퍼졌고, 부러진 뼈가 다시 붙었다.
그 외에 크고 작은 상처들도 말끔하게 치료되었다.
회복 마법이었다.
“카시아스…… 너…….”
카시아스의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난 상체를 일으켜 그녀를 바라보았다.
카시아스가 갑자기 내게 와락 안겨들었다.
그러고는 숨 죽여 흐느꼈다.
“흐윽…… 흑…… 못 해. 역시 못 하겠어. 사크란이 좋아. 그가 너무 보고 싶어. 그런데…… 지구의 유지웅도 좋아져 버렸어. 내가 사랑한 건 그의 겉모습이 아니라 상처받은 맑은 영혼이었어. 그러니 난 사크란도 유지웅도…… 사랑할 수밖에 없어.”
“카시아스…….”
난 카시아스를 품에 꼭 안아주었다.
한 손으로는 등을 두들기고 다른 손으로는 머리를 쓸어내렸다.
그렇게 한참 동안 내 품에 안겨 울던 카시아스는 별안간 벌떡 일어서더니 내게 등을 보였다.
“레이브란데의 인과율은 데브게니안 대륙에서 금지된 마법이었어.”
카시아스는 날 등지고 선 채 말했다.
“난 사크란을 사랑했다는 이유로 대륙 공적이 되어 버렸어. 그런 상태에서 금지된 마법까지 연구하고 있었으니 더더욱 미운털이 박혀 버렸지. 데브게니안 대륙에서의 난 매일매일이 도망의 나날이었어. 그런 상황에선 레이브란데의 인과율을 제대로 연구할 수 없었지. 그래서 차원 이동 마법을 사용해 지구로 넘어왔어. 물론…… 이 마법 역시 금지된 마법 중 하나였지만, 내가 아직 대륙 공적이 되기 전에 연구했던 것인지라 차원 이동에 성공할 수 있었지. 그렇게 지구로 오게 된 거야. 그런데…….”
카시아스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마른침을 한 번 삼켰다.
“우연히 너를 보게 된 거야. 사크란의 영혼을 가진 너를. 아니…… 우연이 아니었겠지. 그래…… 운명이었겠지. 너와 나의 지독한 운명. 마침 나는 지구에 머물면서 레이브란데의 인과율에 대한 연구를 끝낸 상황이었어. 이제 아무에게나 마법을 시전해서 영혼을 모으게 하면 그만인 거야.”
“그런데 왜 내게…….”
“지구에 사는 넌 너무 형편없는 모습이었지. 하루하루가 괴로워 보였어. 내가 사랑하는 영혼이 그런 삶을 사는 걸 두고 볼 수 없었어. 그래서 마법의 대상으로 널 선택하게 된 거야. 하지만…… 네 곁에 머물면서 널 사랑하게 될 줄은 몰랐지. 이건 내 계산에 없는 일이었어. 시간이 갈수록 되도록 네 앞에 나타나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그래서 카시아스가 내게 찾아오는 횟수가 갈수록 줄어들었었구나.
“또 한편으로는 네가 전생의 기억을 찾을까 싶어 내 본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아무튼 나도 혼란스러웠어.”
뜬금없이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데엔 이런 이유가 있었던 거고.
“하아…… 이제 그만해야지. 돌아가겠어.”
“어디로?”
“글쎄…… 어디든 내 한 몸 쉴 곳은 있겠지.”
“영원히…… 떠날 셈이야?”
카시아스는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망설이다가 대답 대신 손을 들어 살짝 흔들었다.
그러고는 앞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런 그녀를 붙잡을 수 없었다.
어느새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녀의 뒷모습을 끝까지 똑바로 보고 싶었는데, 계속 눈앞이 흐려졌다.
눈물을 닦아내고 또 닦아내고, 또다시 닦아냈다.
그러다 카시아스의 모습은 영영 사라졌다.
그게…… 그녀와 나의 마지막이었다.
에필로그
세상은 온통 하얀색으로 가득했다.
거리거리마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왔고,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로 가득했다.
나 역시 나의 연인 아랑이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25살의 내가 맞는 크리스마스는 제법 괜찮았다.
난 여전히 데일리 히어로 사이트를 운영하며 제법 짭짤한 돈벌이를 하고 있다.
우리 가족은 4년 전 크고 좋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누나는 어엿한 미대생이며, 아버지의 음식 장사는 손을 대는 종목마다 대히트를 쳤다.
그야말로 부족할 것도, 남부러울 것도 없는 풍요로운 삶이었다.
게다가 결혼을 약속한 예쁜 여자 친구까지 있다.
난 아무것도 아쉬운 게 없었다.
그런데…… 가슴 한편에 자리한 작은 구멍은 메워지지가 않았다.
그 구멍은 간혹 내게 외로움과 그리움과 슬픔과 우울을 불러오게끔 만들었다.
언젠가는 채워지겠지.
언젠가는 메워지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5년이 흘렀다.
오늘은 좋은 날.
눈 내린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사랑하는 나의 연인과 근사한 데이트를 즐기는 날이다.
그러니 가슴속의 구멍은 생각하지 말자.
행복한 것들만 떠올리자.
굳건한 신념은 늘 내가 믿는 것들을 현실에서 이루게 해준다.
난 그것을 믿는다.
뽀드득. 뽀드득.
쌓인 눈을 밟아 나갈 때마다 귀에 들리는 소리가 정겹다.
적당히 추운 날씨도 좋다.
숨 쉴 때 보이는 입김도 재미있다.
우리가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다.
아랑이는 아직 오지 않은 모양이다.
조각 공원의 구석에 놓인 벤치.
이 주변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난 멀뚱히 서서 아랑이를 기다렸다.
그런데 무심코 내려다본 바닥에 앙증맞은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그럴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었지만 나는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한 발, 두 발, 세 발, 네 발.
계속해서 발자국을 따라 걷다가 나중에야 그게 고양이 발자국이라는 걸 깨달았다.
고양이 발자국을 따라갈수록 아랑이와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는 계속 멀어져 갔다.
그렇게 뭐에 홀린 듯 계속 발자국을 따라가다가 난 가슴이 저릿한 기분에 멈춰 서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발자국의 끝엔……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서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고양이가 웃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도 아주 즐겁고 밝게.
세상에 고양이가 웃을 수도 있었나?
나도 모르게 고양이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겨우 가슴의 구멍이 메워졌다.
『데일리 히어로』 완결
$공$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