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일리 히어로-148화 (148/153)

데일리 히어로 148화

“후우.”

설열음을 2구역으로 오게 해야 한다.

그녀가 1구역으로 갈 수 있는 포털을 지니고 있다.

1구역은 반드시 2구역에서만 넘어갈 수 있다.

다른 지역에서 1구역으로 가는 포털을 사용해 봤자 차원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그녀가 이곳으로 올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검은 그림자 하나가 내 앞에 드리워졌다.

고개를 들었다.

빛을 가로막고 선 이는 무함마드였다.

“여기서 이렇게 보니 아주 반갑군, 애송이.”

무함마드의 뒤로는 제법 강해 보이는 녀석들 열댓 명이 서 있었다.

물론 평범한 사람의 기준에서 강해 보일 거라는 얘기다.

난 무함마드에게 씩 웃어주며 물었다.

“정말 반가워?”

“아니 반가울 리가! 드디어 내 손으로 널 죽이게 됐는데!”

“내가 매드 맨들이랑 싸우는 걸 봤는데도 그런 말이 나와?”

“그게 온전히 너의 능력이라고 속일 생각은 마라. 무슨 속임수가 있었겠지. 그것으로 매드 맨들의 혼을 빼놓은 뒤, 죽여 버린 거야.”

“소설 쓰고 있네, 미친 새끼.”

“언제까지 그 혀를 놀릴 수 있을까? 내가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알려주지. 나 역시…… 백 명의 매드 맨과 싸워 귀족의 작위를 딴 놈이야!”

무함마드의 주먹이 불을 뿜듯 내게 날아들었다.

난 무미건조하게 그의 주먹을 손바닥으로 막았다.

탁.

순간 놀라는 무함마드의 얼굴을 보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설열음이 2구역으로 넘어올 수밖에 없도록 만들면 되는 거잖아.’

생각은 끝났고, 몸이 움직였다.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며 머리로 무함마드의 콧잔등을 들이박았다.

빡!

“컥!”

쇳덩이에 얻어맞은 기분일 거다.

무함마드가 코를 움켜쥐고 뒤로 비틀비틀 물러났다.

“내, 내 코!”

자신의 부러진 코를 만져본 무함마드가 분노의 일갈을 내질렀다.

“이 개자식이!”

쌍코피를 줄줄 흘리면서 욕해봐야 별로 위협적이지 않다.

무함마드가 다치자 그의 뒤로 시립해 있던 열댓 명의 사람이 내게 달려들었다.

아주 좋다.

내가 바라던 그림이다.

제대로 깽판 한번 쳐 볼란다.

선두로 나서서 내게 달려든 놈의 얼굴에다 주먹을 박아 넣었다.

뻐억!

“억!”

짧은 비명과 함께 놈의 몸이 붕 떠서 뒤로 날아갔다.

덕분에 뒤에 서 있던 패거리와 부딪혀 한 덩이가 되어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러는 사이 다른 녀석들이 각자의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난 잠깐 생각했다.

‘적당히 해야 하나, 자비를 베풀지 말아야 하나.’

직설적으로 얘기하자면 지금의 나는 이들을 죽이느냐 살리느냐를 두고 갈등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결코 아까처럼 광기에 물든 건 아니다.

살인이라는 것엔 다운 타운에 오기 전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데브게니안 사람들의 삶을 체험하면서 지독할 만큼 타인의 목숨을 취해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람을 함부로 죽이겠다는 마음을 먹은 적은 없다.

단!

죽여야 할 상황에서는 죽인다.

그리고 아무래도 지금이 그런 상황인 것 같았다.

퍽!

“크헉!”

힘껏 내지른 주먹은 더벅머리 거한의 심장을 뚫었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서 어떠한 쾌락이라든가, 혹은 죄의식 같은 걸 느낄 수 없었다.

이들은 2구역에서 늘 스스로의 욕망을 채우며 살아왔다.

법이 존재치 않는 약육강식의 세상이 바로 여기다.

지금은 나도 그 법에 따라 행동하겠다.

“죽어!”

왜소한 덩치에 얍삽하게 생긴 사내가 내게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난 몸을 비틀어 쇠파이프를 피했다.

휭―!

쇠파이프가 허공을 가르며 위협적인 파공성을 흘렸다.

얍삽한 사내는 다시 자세를 고쳐 잡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려 했다.

동시에 그의 옆에 뱁새눈을 한 녀석이 나타나 건틀릿을 낀 주먹을 휘둘렀다.

난 정수리를 향해 내려오는 쇠파이프를 잡아챘다.

그리고 쇠파이프의 끄트머리로 뱁새눈의 턱을 밀어 쳤다.

퍽!

“억!”

뱁새눈의 턱이 깨졌고, 녀석은 뇌가 흔들렸는지 그대로 쓰러졌다.

얍삽한 사내가 당황했다.

그사이 난 쇠파이프를 빼앗아 놈의 정수리를 깨부쉈다.

퍼억!

“……!”

머리가 터진 얍삽한 사내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죽어 넘어졌다.

다시 세 녀석이 달려들었다.

그들의 손에도 제각각의 무기가 들려 있었다.

하지만 그 무기들은 내 몸에 절대 닿을 수가 없었다.

제대로 휘두르기도 전에, 내가 녀석들의 머리를 터뜨려 제압했기 때문이다.

퍼퍼퍽!

세 놈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졌다.

피와 뇌수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털썩.

머리를 잃은 몸뚱이는 커다란 고깃덩이가 되어 쓰러졌다.

그쯤 되니 다른 녀석들은 내게 함부로 달려들지 못했다.

한데 그때, 뒤로 물러나 있던 무함마드가 달려와 제 노예 중 한 놈의 목을 잡고 분질러 버렸다.

두둑!

“끄으!”

믿고 있던 주인에게 느닷없이 죽임을 당한 노예는 억울함이 가득 담긴 시선을 무함마드에게 보내며 무너졌다.

이 황당한 상황에 다른 노예들은 놀라 무함마드를 바라보았다.

“저따위 놈이 무서워서 망설이는 것이냐! 어디 계속 그렇게 해봐라! 지금부터 우물쭈물하는 놈은 내 손에 죽을 테니까!”

무함마드는 노예들에게 배수의 진을 쳤다.

그리고 그것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어차피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판이라면 마지막 발악이라도 해보는 게 낫다.

노예들은 눈에 불을 켜고 이판사판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덤벼도 헤쳐 나갈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퍼퍼퍼퍼퍼퍼퍽!

전광석화처럼 휘둘러진 내 쇠파이프는 남은 노예들의 머리도 순식간에 터뜨려 버렸다.

모든 노예가 죽어 버리고, 이제 남은 건 무함마드 하나였다.

무함마드가 분을 삭이지 못해 콧김을 팍팍 내뱉더니 주먹을 꽉 말아 쥐고 고함을 질렀다.

“우어어어어어어어어!”

이어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마치 분노한 브루스 배너가 헐크로 변신하는 것처럼 무함마드의 몸이 거대해지고 있었다.

입고 있던 옷이 전부 터져 나갔다.

땅딸한 키는 훤칠해졌고, 근육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몸에 바윗덩이 같은 근육들이 자라났다.

불뚝 튀어나온 배가 쏙 들어가고, 대신 탄탄한 복근이 나타났다.

“우어어어어어어어어!”

조금 전의 무함마드는 사라지고, 2미터가 넘는 거구의 거인이 내 앞에 서 있었다.

무함마드는 초능력자가 아니라더니, 이 정도면 거의 초능력과 버금가는 거 아닌가?

변신을 마친 무함마드가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난 쇠파이프에 검기를 실었다.

보랏빛의 기운이 쇠파이프에 어렸다.

그리고 지척에 다다른 무함마드의 허리를 벴다.

서걱!

무함마드는 주먹을 내지르다 그대로 굳어 버렸다.

“우어……?”

이 녀석은 변신하면 언어를 잊어버리는 건가?

동물 같은 의성어를 내뱉은 무함마드가 자신의 허리를 바라보았다.

난 그런 무함마드의 이마를 탁 쳤다.

그러자 무함마드의 허리에 붉은 선혈이 생겼다.

이어, 그의 몸이 두 동강 나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끄으으으…….”

무함마드의 입에서 마지막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윽고 숨이 끊어졌다.

갑자기 벌어진 일방적인 살육전에 광장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집중되었다.

그들 중에는 조커의 모습도 보였다.

조커가 광기에 젖은 눈을 희번덕이더니 혀로 입술을 핥으며 내게 다가왔다.

“잘하잖아? 죽이는 거 엄청 잘하잖아! 좋아, 아주 좋아! 이제 나도 네 손으로 죽……!”

푹!

“어?”

조커는 말을 하다 말고 자신의 왼쪽 가슴을 쳐다봤다.

그리고 보았다.

가슴을 깊숙이 박힌 쇠파이프를.

조커가 미친 사람처럼 히죽히죽 웃었다.

그러더니 이내 눈을 까뒤집으며 픽 쓰러졌다.

“결국 광기에 먹혀 버린 건가?”

킹의 음성이었다.

킹은 착찹한 얼굴로 터벅터벅 내게 다가왔다.

“킹.”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킹이 고개를 서서히 저었다.

“자네는 광기에 먹히지 않길 바랐네.”

“그렇게 보여?”

“스스로 부정하겠지만, 이미 자네가 저지른 일이 모든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네.”

“킹, 넌 통찰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네.”

“내가 그대를 잘못 판단한 건지, 그대가 광기에 먹혀 버린 건지는 그대 안에 자리한 진심만이 알고 있겠지.”

그때였다.

주변에서 구경을 하던 무리 중 몇몇 사람이 내게 다가왔다.

“저거 뭐야?”

“오늘 귀족이 된 어벤저라는 녀석이야.”

“신참 귀족이야? 그런데 너무 설치네.”

“나도 마음에 안 들어, 저 오빠.”

“이놈! 내가 오늘 네놈에게 호된 맛을 보여주마!”

녀석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싸울 태세를 갖추었다.

킹이 그들과 나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어쩔 텐가?”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는 타입이라서.”

“죽일 건가?”

“저들도 날 죽일 생각인 것 같으니, 나도 그 마음에 보답해 줘야지.”

“안타깝군.”

“계속 그렇게 안타까워해. 이게 나니까.”

킹과 내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일곱 사람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무함마드보다도 약했다.

난 쇠파이프에 어린 검기를 거두었다.

그리고 달려드는 놈들을 무자비하게 두들겨 팼다.

퍼퍼퍼퍼퍼퍼퍽!

녀석들은 머리가 깨지고 뼈가 부러져 순식간에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내 주변은 스물이 넘는 시체들로 피바다가 되었다.

그러자 킹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내 앞에 섰다.

“더는 두고 볼 수가 없겠군.”

“두고 볼 수 없으면?”

“나는 그대를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르네. 하지만 광기에 폭주하는 그대를 보고서도 그냥 지나친다면 그건 도리가 아니네. 그대에게 개인적인 원한은 없으나 대적할 수밖에 없는 날 이해해 주게.”

난 그런 킹에게 경고했다.

“킹. 난 사정 봐주지 않아. 봤잖아. 날 죽일 생각으로 덤빈다면 나도 킹을 죽일 수밖에 없어.”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와라.”

* * *

차마 킹을 죽일 수는 없었다.

그는 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누워 있었다.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왜…… 죽이지 않지?”

킹의 물음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사방에서 내게 보내고 있는 살기에 집중할 뿐이었다.

이제는 광장에 있는 모든 이가 날 죽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생각한 대로 돌아가는군.’

난 일부러 그들에게 소리쳐 도발했다.

“다 덤벼, 새끼들아!”

도발은 통했다.

광장의 사람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더욱 강해졌다.

“저거 조져!”

“아무리 강해도 쪽수많은 데엔 장사 없다!”

“죽여!”

수십 명의 사람이 일제히 내게 몰려들었다.

소란스러운 함성을 듣고 또 다른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다가왔다.

그리고 그들도 전투에 가담했다.

진정 나를 죽이고 싶어 하는 이들도, 그저 광기에 휩쓸려 전투에 끼어드는 이들도 있었다.

나는 그들 모두와 싸웠다.

2구역에서는 사람 간의 싸움은 제재하지 않지만, 건물을 망가뜨리는 건 엄히 다스린다고 했다.

그래서 일부러 주변의 건물들을 마구 때려 부수면서 싸움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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