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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히어로-147화 (147/153)

데일리 히어로 147화

“이제 3년이 되어가네요. 하지만 모르죠. 내일이라도 당장 이곳의 지배인은 바뀔 수 있어요.”

“그게 무슨…….”

“제가 관리하는 이 레스토랑의 이름은 스테이크(Stake)예요.”

“네, 들어오면서 봤어요.”

“뜻은 아나요?”

“영어에 그리 능통한 편이 아니라…… 제가 알고 있는 스테이크(Steak)와는 철자가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언어유희 같은 느낌이 들었죠.”

“맞아요. 언어유희예요. 스테이크(Stake)의 뜻은 ‘지분’ 혹은 ‘돈을 걸다’등이 있죠. 이 레스토랑을 탐내는 모든 귀족이 열심히 여기에 투자를 하고 있어요. 투자금이 많을수록 귀족에게 돌아가는 지분도 높아지죠. 그리고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진 귀족이 레스토랑의 지배인이 돼요. 지금은 그게 나일 뿐인 거죠. 누군가 당장에라도 나보다 많은 투자금을 내놓게 된다면 그가 지배인이 되겠죠.”

“그렇군요.”

이 레스토랑의 이름에 그런 뜻이 담겨 있는 줄은 몰랐다.

난 다시 라멘을 맛보며 클리아에게 물었다.

“한데…… 왜 저와 합석을 한 거죠?”

“제 취미예요.”

“네?”

“레스토랑 테이블에 홀로 앉아 시간을 보내다가 처음 온 것 같은 귀족이 보이면 이렇게 합석을 하죠. 그리고 짧은 대화를 나눠요. 그러면 그 사람의 성향이 얕게나마 보이죠.”

“제 성향도 보이나요?”

“조금 어렵네요.”

“왜 어렵다는 거죠?”

“어벤저의 안에는 마치 여러 사람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

정곡을 찔렸다.

그녀의 말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난 영혼의 퀘스트를 하며 여러 사람의 인격을 겪어왔다.

그리고 그 인격 중 일부는 내 것이 되어 버렸다.

때문에 내 안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겪었던 모든 영혼들이 함께 담겨 있다.

“아직 어려 보이는데, 그리고 정신분열증이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어떻게 하면 당신과 같은 성향이 되는 걸까요?”

그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는 피식 웃었다.

“아, 미안해요. 비웃은 건 아니에요. 고민하는 모습이 귀여웠을 뿐이에요.”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어요. 사과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게 받아들여 주시면 고맙구요. 어쨌든 제 물음에 대답할 수 없는 곤란한 이유가 있는 거겠죠?”

“맞아요.”

“알았어요. 더 이상 개인적인 질문은 하지 않을게요. 마지막으로…… 어벤저?”

“네?”

“당신이 무슨 목적으로 여기 왔는지 모르겠지만, 늘 행운이 가득하길 바랄게요.”

클리아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테이블에서 떠났다.

손도 대지 않은 돈코츠 라멘은 종업원이 와서 다시 가져갔다.

클리아는 멀리 떨어진 빈 테이블에 홀로 앉아 그녀만의 사색에 빠져들었다.

난 돈코츠 라멘을 다 비우고서 레스토랑을 나왔다.

그리고 레스토랑 스테이크의 입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안에서도 짧은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운 타운의 지배자

다시 광장의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1구역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진정 없는 것일까?

한참을 고민하던 와중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자두 알만 한 구슬이 만져졌다.

난 그것을 꺼냈다.

영혼의 보옥이었다.

타인의 기억을 읽게 해주는 마제스 신의 신물.

별생각 없이 그것을 들고 있다가 갑자기 설열음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다운 타운의 관계자다.

그리고 그녀 스스로 말하길 자신은 단순한 커플러가 아니라고 했다.

다운 타운에서 제법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뉘앙스였다.

‘사실일까?’

부디 사실이었으면 좋겠다.

영혼의 보옥은 딱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설열음이 정말 다운 타운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여인이라면 분명 그녀의 기억 속에서 1구역으로 갈 수 있는 정보를 얻는 게 가능할 것이다.

‘이것보다 더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 있으면 좋을 텐데.’

지금으로썬 이게 최선이다.

난 부디 이 도박이 먹혀들길 바라면서 영혼의 보옥을 입에 넣었다.

보옥은 혀에 닿자마자 사르르 녹아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내 몸속으로 스며든 보옥은 기이한 기운으로 변해 전신으로 퍼졌다가 전부 머리로 몰려들었다.

난 갑작스런 현기증에 이마를 짚고 눈을 질끈 감았다.

눈앞이 흐려졌다.

눈꺼풀은 천천히 닫혔다 열리기를 반복했다.

주변의 세상이 계속해서 흐려졌다.

그리고 설열음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녀가 태어나서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인생이 빠르게 흘러갔다.

하지만 정확하게 내 뇌리에 각인되었다.

마치 주마등을 보는 것 같았다.

설열음의 기억을 훔쳐보면서 나는 점점 충격에 빠져들었다.

이어, 모든 기억을 보게 된 이후 보옥의 힘이 사라졌다.

나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말도 안 돼…….”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다.

난 그저 설열음의 기억 속에서 1구역으로 가는 방법을 찾아내려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녀가, 그녀가…… 다운 타운의 지배자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 * *

설열음은 올해 28살의 여인이다.

20살 초반까지 그녀는 평범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인생의 결핍이라 하면 아버지라는 사람이 오래전에 가정을 버리고 떠났다는 것 정도.

하지만 그러한 결핍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다.

굳이 가정불화가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결핍 말이다.

여기까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난 그다지 놀랄 것 없이 그녀의 기억을 관람했다.

그런데 그다음부터가 가관이었다.

가정을 떠났던 아버지가 어느 날 다시 돌아왔다.

초췌하고 병색이 완연한 모습으로.

당시 설열음은 혼자였다.

원체 병약했던 어머니가 2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열음은 슬픔에 잠길 여유도 없이 어떻게든 살아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던 지하 단칸방에서 쫓겨나지 않으려고 닥치는 대로 알바를 했다.

아직 고등학생인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일을 구해 돈을 벌었다.

물론 학교생활은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수업에 빠지기 일쑤였고 성적은 늘 바닥을 쳤다.

겨우겨우 졸업장만 따서 성인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여전히 일거리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하루하루를 그냥 흘려보내고만 있었다.

그런 그녀 앞에 떠나간 아버지가 나타난 것이다.

설열음은 그런 아버지가 밉지도, 좋지도 않았다.

그녀가 너무 어렸을 때 떠나간 지라 그 어떠한 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무덤덤했다.

딱 17년 만에 딸을 보러 찾아온 아버지는 미안하다는 사과도, 잘 지냈냐는 안부도 묻지 않았다.

대뜸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너밖에 없다. 내 뒤를 이을 사람은.”

그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영문을 몰라 하는 설열음에게 아버지는 다시 말했다.

“사실 널 세상에 태어나게 한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내 피를, 내 유전자를 이을 존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지. 다른 어느 누구도 내 자리를 대신할 수 없도록.”

들을수록 더 영문을 알 수 없는 얘기였다.

혼란스러워하는 설열음에게 아버지라는 사람은 또다시 자기 얘기만 해댔다.

“그렇다고 네 엄마를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녀는 내가 세상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한 유일한 여인이었지. 어차피 내 핏줄이 필요하다면 사랑하는 여인에게서 얻고 싶었어.”

아버지는 설열음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신과 함께 가야 할 곳이 있다며.

설열음은 영문도 모르고 그 손을 잡았다.

아버지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 아니다.

갑자기 정이 생긴 것도 아니다.

그저 그녀는 지금의 생활에 지쳐 있었고, 기댈 곳이 필요했다.

적어도 아버지를 따라가면 먹여주고 재워는 주겠지.

그것이 그녀가 가진 기대감의 전부였다.

그래서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이해 못 한 채 그저 따라가게 되었다.

다운 타운이란 곳으로.

설열음은 포털을 통해 다운 타운으로 오게 된 후 무척이나 놀랐다.

이런 세상이 존재할 것이라곤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녀에게 말했다.

“여기는 오래전부터 우리 가문이 대를 이어 만들어온 곳이란다. 다운 타운의 실질적 지배자는 내게 유전자를 전해준 내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의 아버지, 다시 그 아버지의 아버지였지. 그분과 뜻을 같이한 세계 각국의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대부호도 있었지. 하지만 그들은 조력자였을 뿐. 한 번 더 강조하지만 이곳의 지배자는 그 유전자를 이어받은 나, 그리고 이제는 네가 될 거다.”

설열음은 자신이 왜 이곳의 지배자가 되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난감해하는 설열음에게 아버지는 계속 얘기했다.

“지구는 언젠가 멸망할 거다. 인간들로 인해서. 그들은 나중을 생각하지 않고 무분별한 발전을 이룩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어. 그러다간 지구가 완전히 사라지고 말거야. 먼 미래의 일이 아니란다. 곧 다가올 현실이야. 전 인류가 고향을 잃게 되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노아의 방주를 만들어 선택된 인간들만 태우고, 나머지 인간들은 모두 죽여야 돼.”

처음에 설열음은 아버지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전 인류를 죽이기 위해 핵을 만들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땐 몸서리가 쳐졌다.

아버지는 지금 핵을 터뜨려 인간들을 죽이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했다.

그러면 적어도 지구는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지구에게 핵보다 해로운 것은 인간들이라고.

그리고 선택받은 인간들은 다운 타운이라는 노아의 방주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될 것이며, 점점 더 진화하게 될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자신은 이제 병들었으며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얘기했다.

그러니 그의 피를 이어받은 설열음이 다운 타운의 지배자가 되어 이곳을 이끌어가 주기를 바랐다.

다운 타운의 메인 시스템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선대의 유전자를 가지지 못한 사람은 결코 작동시킬 수 없었다.

설열음의 아버지가 죽고 나면, 오로지 설열음만이 다운 타운을 무사히 운영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설열음은 한동안 혼란스러워했다.

그런 그녀를 아버지는 2구역으로 데려갔다.

그 안에서 한동안 사람들을 지켜보라 말했다.

설열음은 미치광이들만 있는 것 같은 2구역이 역겨웠다.

하나 그것도 잠시.

일탈을 꿈꾸던 그녀의 속내가 순수한 광기를 받아들였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도 광기에 물들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아니, 그 이전에 이 세상을, 다운 타운을 사랑하게 되었다.

설열음은 비로소 모든 것을 품고 가기로 했다.

아버지에게 자신이 다운 타운의 지배자가 되겠노라 선언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비로소 편안한 안식에 들 수 있었다.

그렇게 설열음은 다운 타운의 새로운 지배자로서 거듭났다.

이후 핵미사일 개발과 인체 실험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러면서 지배자라는 신분을 숨기고 다운 타운의 커플러 행세를 하며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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