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139화
뉴클리어는 시합 상대에게 점잖은 척 다가가지만, 실상은 아주 잔인한 놈이다. 가면 너머의 얼굴은 소름끼치는 미소를 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서걱!
“크아아악!”
활을 들고 있던 레인저의 나머지 손목마저도 잘려 나갔다.
이어 양쪽 팔이 수십 조각으로 나뉘더니 펑! 하고 폭발을 일으켰다.
그 여파에 휩쓸린 레인저가 뒤로 죽 나가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아차 하는 순간 두 팔을 잃은 레인저는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고서 아등바등거렸다.
허전해진 양쪽 어깨에서는 붉은 피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뉴클리어가 계속해서 레인저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내 말을 우습게 알았다가 너처럼 다친 놈들이 많지…… 아마.”
“사, 살려줘.”
결국 레인저도 켈베로스가 그랬던 것처럼 뉴클리어에게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뉴클리어는 냉정했다.
뒤로 기듯이 도망치는 레인저의 지척까지 다다라서 쪼그려 앉더니 작별 인사를 건넸다.
“여기서 죽게 되겠지…… 아마.”
뉴클리어의 말은 사형선고와도 같았다.
서걱! 서걱! 서걱! 서걱! 퍼엉!
레인저의 몸이 수십 조각으로 썰린 뒤 크게 폭발했다.
이어 관객의 함성과 사회자의 안내 멘트가 들려왔다.
―데스 파이트 2회전 제1시합, 승자는 나이트 뉴클리어.
* * *
1회전에서 승리한 나이트들 중 2회전에 출전한 건, 나와 뉴클리어, 그리고 레인저를 비롯해서 마조틱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나이트까지 총 네 명이었다.
그래서 2회전은 두 경기만 치르게 되었다.
앞선 경기에서 뉴클리어와 레인저가 붙었다.
이번에 붙는 건 나와 나이트 마조틱이다.
2시합의 시작을 알리는 사회자의 멘트와 함께 대기실에서 나와 경기장으로 향했다.
마조틱은 나보다 먼저 경기장의 중앙에 나와 서 있었다.
녀석은 적당히 근육이 붙은 몸을 가진 사내였다.
그런데 생긴 것과 달리 입에는 진한 붉은색 립스틱을 발랐고, 눈엔 아이섀도를, 열 손톱엔 각각 다른 문양으로 네일 아트까지 되어 있었다.
옷도 하얀색 탱크톱에 청 핫팬츠를 걸친 것이 아무래도 게이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만한 차림이었다.
이미 1회전에서 그의 모습을 모니터로 접한 바 있긴 했다.
하나, 모니터를 통한 것과 직접 보는 것은 그 느낌이 상당히 달랐다.
더 충격적이고 역겨웠다.
―그럼 지금부터 2회전 제2시합, 나이트 어벤저 대 나이트 마조틱의 대결을 시작하겠습니다!
우와아아아아아!
“저 변태 자식도 잔인하게 없애라!”
“어벤저! 저 자식 고추를 떼 버려!”
내게 돈을 건 귀족들이 고래고래 악을 써댔다.
난 네놈들 경주마가 아니니 닥치고 있으라 얘기해 주고 싶다.
아무튼 경기는 시작되었다.
마조틱이 한 손에 든 채찍을 위협적으로 휘두르며 내게 다가왔다.
어쩜 손에 든 무기도 딱 차려입은 것과 비슷하리만치 게이스러운지 모르겠다.
아무튼 마조틱은 저 채찍을 화려하게 휘두르며 1회전에서 맞붙었던 상대방을 작살내 놓았다.
게이처럼 생긴 것과 달리 녀석의 채찍은 제법 화끈한 맛이 있었다.
하나 그건 일반인을 상대로 했을 때 얘기다.
마조틱은 내가 놈의 사정거리에 들어오자 채찍을 크게 휘둘렀다.
“하얏!”
기합소리가 은근히 듣기 거북했다.
휘리릭~!
매섭게 휘둘러진 채찍 대가리가 내 살에 이를 박으려는 뱀처럼 날아들었다.
찰싹!
채찍은 그대로 내 목 언저리를 때렸다.
하지만 맞은 곳의 근육이 좀 얼얼할 뿐, 그 외에 이렇다 할 고통은 조금도 없었다.
마조틱은 내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미간을 깊이 찡그렸다.
“뭐야, 뭐야? 자기 아프지 않아? 응?”
……1회전 싸움에선 입을 열지 않아서 몰랐는데 이 새끼 게이가 맞나 보다.
언제 봤다고 나한테 자기래?
게다가 이 자식 양놈인지라 꽉 끼는 핫팬츠의 중앙엔 놈의 물건이 툭 하고 도드라져 있다.
그런 인간한테 자기라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확 상한다.
“안 아프냐고 묻잖아, 내가!”
마조틱이 다시 채찍을 휘둘렀다.
휘리릭~!
난 힘차게 날아든 채찍 끝을 한 손으로 확 잡아챘다.
“어머! 잡았어?”
마조틱은 놀란 듯 입을 살짝 벌리더니 이내 채찍을 확 끌어당겼다.
힘겨루기 해보자고?
얼마든지!
나도 잡은 채찍을 내 쪽으로 힘껏 당겼다.
“어맛!”
마조틱은 나와 제대로 된 힘겨루기를 해보지도 못하고서 그대로 끌려왔다.
“이런 굴욕 처음이얏!”
마조틱은 잡고 있던 채찍 손잡이를 옆으로 살짝 틀더니 빠르게 잡아당겼다.
그러자 기다란 손잡이의 중앙이 딸칵! 소리와 함께 분리되며 쑥 빠져나갔다.
빠진 손잡이의 윗부분엔 다른 손잡이 속에 감추어져 있던 얇은 칼날이 달려 있었다.
힘겨루기에서 밀려 내게 끌려오던 마조틱은 채찍 손잡이에 숨겨놓은 단검 한 자루를 꺼내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빠르군.’
마조틱의 기습적인 공격은 충분히 빨랐다.
어지간한 이들은 그의 기습을 막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상대가 나빴다.
내 눈엔 그의 움직임이 구구절절할 정도로 잘 보였다.
게다가 난 마조틱보다 빠르다.
마조틱의 손에 들린 단검이 내 목을 노렸다.
난 그런 마조틱의 손목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퍽!
“꺄아아악!”
내 주먹에 맞은 마조틱의 손목이 이상한 방향으로 휘었다.
녀석의 손에 들린 단검은 멀리 날아갔다.
마조틱은 아파하는 와중에도 핫팬츠 안에서 또 다른 단검을 꺼내 날 찌르려 했다.
‘찝찝하게 어디서 꺼내는 거야!’
절대로 저 단검에는 맞기 싫다.
내가 죽고, 죽지 않고의 문제 이전에 기분이 나쁘다!
“낭아권!”
나도 모르게 낭아권을 시전했다.
그리고 힘 조절을 하지 못했다.
풀 파워로 휘둘러 버린 주먹이 마조틱의 안면에 그대로 틀어박혔다.
뻐어어어억!
“……!”
마조틱의 얼굴이 내 주먹 모양대로 찌그러졌다.
미간과 콧잔등이 푹 가라앉았다.
앞니가 아래위로 모조리 날아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양쪽 광대뼈가 비대칭으로 함몰되었다.
코에서는 쌍코피가 터졌다.
그렇게 안쓰러운 몰골로 마조틱은 뒤로 날아가 바닥을 몇 바퀴나 구른 뒤에야 기절해 버렸다.
―시합 종료. 나이트 어벤저 승리!
사회자가 나의 승리를 알렸다.
하지만 객석의 반응은 영 시큰둥했다.
“이건 기대했던 것과 다르잖아!”
“좀 더 잔인하게 하길 바랐더니만!”
“잔인하지 못할 거라면 죽여라, 어벤저!”
“죽여! 죽여! 죽여어어어어!”
“실망을 안겨주겠다면 다음 시합에선 뉴클리어에게 걸겠어!”
여기저기서 내게 실망했다고 고래고래 악을 써댔다.
띠링!
―도박에서 지웅 님이 이겨주길 바라던 사람들이 정말 고마워하고 있답니다~ 선행을 쌓아 765링크가 주어집니다.
망할 귀족 놈들.
경기 내용은 만족 못 해도 돈 딴 건 또 좋은 모양이지?
또다시 1회전에 느꼈던 역겨움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44 Soul
[이제 한 경기 남았군.]
대기실에 복귀해서 휴식을 취하는데 카시아스의 텔레파시가 들려왔다.
[응. 뉴클리어와 붙게 되겠지.]
뉴클리어.
염력을 사용하는 초능력자이자 무함마드가 날 죽이기 위해 고용한 청부업자다.
[이길 자신 있나?]
[그걸 지금 질문이라고 하냐.]
초능력자라는 사실 자체가 대단하긴 하지만, 그의 능력은 내게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다.
내게는 염력뿐만 아니라 다른 능력들도 무수히 많다.
‘가만. 그러고 보니 제법 링크가 모이지 않았을까?’
대기실에서 할 일도 없는데 새로운 능력이나 얻는 게 좋을 듯했다.
“마인드 탭.”
이름 : 유지웅
소속 : 지구, 대한민국
성별 : 남
나이 : 20
영력 : 35/35
영매 : 33
아티팩트 소켓 4/4
보유 링크 : 410,268
보유링크 41만!
“41만이라니…….”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으로 지속적으로 벌어들이고 있는 링크를 한동안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새 41만이라는 링크가 쌓여 있었다.
돈이 생겼으면 일단 쓰고 보는 게 진리.
난 영력을 터치했다.
팅―
영력 : 35
영력을 36으로 업그레이드하시겠습니까?
업그레이드 비용은 16,000링크입니다.
[Yes/No]
당연히 ‘Yes’!
팅―
영력 : 36
영력을 37로 업그레이드하시겠습니까?
업그레이드 비용은 18,000링크입니다.
[Yes/No]
이번에도 볼 것 없이 ‘Yes’를 터치했다.
팅―
그런 식으로 영력을 40까지 업그레이드시켰다.
영력 : 40
영력을 41로 업그레이드하시겠습니까?
업그레이드 비용은 30,000링크입니다.
[Yes/No]
일단은 여기서 그만.
일전에 소울 스토어를 찾았을 때, 내가 라헬에게서 사지 못하고 나왔던 영혼 네 개가 있었다.
그중 두 개는 11,000링크에 32의 영력을 필요로 했고, 나머지 두 개는 13,000링크에 35의 영력을 필요로 했다.
그러니 영력은 40까지만 올려도 충분히 많은 영혼의 힘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영력을 올리는 데만 십만 삼천 링크가 나가 버렸네.”
이제 남은 링크는 31만 정도 된다.
“이걸로도 충분하겠지. 그럼 가보자. 소울 커넥트!”
* * *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우주대스타 유지웅 님 아니십니까?”
라헬은 머리가 거의 땅에 닿을 듯 굽신거렸다.
그래, 계속 그렇게 해라.
나 거지 되면 또 무시나 팍팍 해댈 거, 누릴 때 누려보자.
이젠 나도 네 태도에 발끈하지 않으련다.
“그래, 잘 있었냐?”
“그러믄요. 지웅 님 오실 날만 손꼽아 기다렸지요.”
“그럼 허리 더 숙여.”
라헬은 내 말에 기분 나쁜 기색 하나 없이 더 깊이 허리를 숙여보였다.
“이 정도로 숙이면 만족하실까요, 지웅 님?”
“됐다, 그만해라. 비굴하고 비참해 보인다.”
라헬이 굽혔던 허리를 펴고서 빙그레 미소 지었다.
“저는 지웅 님 앞에서 언제나 비굴하고 비참하지요. 그게 다 지웅 님이 너무 잘나셔서 그런 겁니다. 너무 잘난 사람 옆에 있으면 내가 딱히 부족한 것이 없는데도 비참해지고, 비참해지다 보면 비굴한 짓도 하게 되고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얼마나 비굴하고, 비참하게 굴 건데?”
라헬이 두 손을 싹싹 비볐다.
“지웅 님이 원하시는 것 그 이상일 겁니다.”
“그래?”
“그러믄요.”
너 오늘 제대로 죽어봐라.
“앞으로 취침.”
“네!”
라헬이 앞으로 납작 엎드렸다.
“뒤로 취침.”
“아무렴요!”
이번엔 뒤로 벌렁 드러누웠다.
“그 상태로 두 다리 든다.”
“그러겠습니다.”
라헬이 다리를 위로 쭉 들어 올렸다.
“좋아. 그 상태에서 거래하자.”
“식은 죽 먹기지요! 그럼 지웅 님께서 당장 거래할 수 있는 영혼들부터 보여 드릴까요?”
“아니. 아티팩트부터.”
내 말에 라헬이 씩 미소 지었다.
“역시 지웅 님이십니다. 암요~ 지웅 님께서 구매하시기에 아주 적절한 아티팩트가 하나 있지요~ 그러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