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138화
[그랬지.]
[하지만 오래도록 인류가 멸망할 정도의 커다란 천재지변이나 제4차 대전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다운 타운은 오래도록 제 역할을 못 하게 되겠지.]
이야기가 흘러가는 꼴이 어째 엄청 불길한 내용이 나올 것 같은 예감이다.
그리고 대부분이 그렇듯 불길한 예감은 들어맞았다.
[다운 타운의 제1구역은 다운 타운을 지배하고 이끌어가는 간부들이 머무는 곳이다. 다운 타운의 지배자들은 1구역 내에서 핵미사일을 만드는 중이다.]
[핵미사일?!]
[그래. 그것도 어마어마한 양의. 핵미사일이 완성되어 땅 밖으로 쏘아지는 순간 지상의 모든 인류는, 아니, 모든 생명체는 멸종하고 말거야.]
잠깐만…… 그럼 이게 이야기가 어떻게 되는 거야?
다운 타운은 현대판 노아의 방주다.
하지만 노아의 방주가 진가를 발휘하려면 그만한 재해가 일어나야 한다.
만약 재해가 오래도록 일어나지 않을 경우 다운 타운의 진가가 발휘되는 날은 계속해서 멀어져만 갈 것이다.
그래서 다운 타운의 지배자들은 그러한 재해를 일으키기 위해 핵미사일을 만들고 있다는 건가?
내가 생각을 정리하고 있자니 카시아스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지금 네가 생각하는 그게 맞아. 녀석들은 핵미사일을 지상에 쏴서 다운 타운이 제 값어치를 찾도록 만들 셈이야. 지상의 생명체가 전부 사라질 때, 다운 타운에 집을 사둔 이들은 목숨을 구원받겠지.]
[이게 무슨 미친 짓들이야? 겨우 다운 타운의 제 기능을 실현하기 위해 핵미사일을 쏜다고?]
[아니,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야. 이곳의 지배자들은 현재의 인류를 모두 말살하고 신인류를 탄생시키려 하고 있어. 물론 신인류는 다운 타운 내부에서 살아남은 모든 사람을 뜻하는 것이겠지.]
[미친 지배자들이 망가뜨린 세상 속에서 살아남으면 무조건 신인류라는 거야?]
[그럴 리가. 제1구역에서는 핵미사일을 만드는 것 외에도 인체 실험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들으면 들을수록 가관이다.
핵미사일에 인체 실험이라니?
대체 이곳의 지배자라는 놈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인체 실험은 또 뭐야?]
[살아 있는 인간의 육신을 개조시켜 더욱 우월한 종족으로 발전시키는 걸 인체 실험이라 하더군. 그들이 쓰는 용어로 말하자면 ‘비욘드 프로젝트’다.]
[하…….]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문이 탁 막혔다.
인류의 멸망과 신인류를 만들기 위한 비욘드 프로젝트라고?
이건 신의 권위에 도전하겠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핵미사일은 언제 완성되는 건데?]
[오가는 대화를 들어 보니 앞으로 늦어도 반년 이내엔 완성될 것 같더군.]
[반년?]
[그래.]
[얼마 안 남았잖아?]
[그러니까 오늘 귀족의 작위를 얻어서 2구역에 진입하라는 거다.]
[굳이 그럴 필요 있어? 당장 2구역으로 들이닥쳐서 1구역까지 진입한 후에 다 날려 버리는 게…….]
[3구역에서 2구역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없다.]
[뭐?]
[출입문이 없고 2구역으로 연결해 주는 포털을 받아야 하는 것 같더군.]
이런 젠장.
일이 갑자기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럼 2구역으로 간 다음에는? 1구역에는 어떻게 가라는 거야?]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봐야지.]
[하아.]
[하기 싫은가?]
이건 하기 싫고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다운 타운의 미친 인간들이 세우는 계획을 알았으니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그래야 나는 물론이고 내 가족들, 그리고 내 소중한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
[할 거야. 다만 왜 이런 미친놈들 때문에 내가 가시밭길을 걸어야 하는 건지 회의가 들 뿐이지.]
[아무튼 이번에 귀족 작위를 얻은 뒤 2구역으로 이동해서 1구역으로 진입할 방법을 찾아라. 만약 찾지 못한다면 시간 날 때마다 다운 타운을 오가며 방법을 찾아야 할 거야.]
[그래야겠지.]
[건투를 빌지.]
카시아스와의 텔레파시는 거기에서 끝났다.
“하아, 돌겠네.”
다운 타운의 지배자라는 인간들은 대체 뭐하는 작자들인 거야?
“그러고 보니 설열음, 그 계집애도 확실히 정상이 아니었어.”
카시아스가 내게 준 정보는 설열음의 입에서 나온 것들이다.
즉 설열음은 다운 타운의 지배자들이 세운 계획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아무런 죄의식 없이 데스 파이트에 추천된 사람들을 다운 타운과 연결해 주는 커플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제정신 박힌 사람이라면 그렇게 행동할 순 없을 것이다.
‘아무튼 남은 시간은 6개월이야.’
어쩌면 6개월이 아닐 수도 있다.
6개월이라는 건 핵미사일 완성이 늦어질 경우의 리미트다.
재수 없으면 다섯 달, 넉 달 만에 핵미사일이 완성될지도 모른다.
안전하게 이들의 계획을 막으려면 석 달 안에 핵미사일의 연구를 멈추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무슨 수로?’
3구역에서 2구역으로 넘어가는 것도 귀족들만 오갈 수 있도록 철저히 막아놓았다.
하물며 2구역에서 1구역으로 넘어가는 건 굳이 알아보지 않아도 얼마나 어려울지 익히 짐작이 간다.
‘천운이 따라서 직행열차 탄 듯 단숨에 1구역으로 가는 방법을 알아내게 되면 좋으련만.’
아마 오늘 그것까지 캐내는 건 불가능하겠지.
하여튼 확실한 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 미친 계획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난 카시아스가 그저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다운 타운에 가는 걸 재촉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녀석은 무언가를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하긴, 생각해 보면 카시아스는 개인적인 이유로 어떤 일을 추진하는 경우가 없었지.’
사람 열 받게 하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녀석인 건 맞지만, 한편으로는 또 속이 깊다.
그래서 더 열 받는다.
결국 나는 늘 녀석에게 지게 되니까.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지금부터 데스 파이트 2회전 제1시합, 나이트 뉴클리어 대 나이트 레인저의 경기가 펼쳐지겠습니다.]
사회자의 안내 멘트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경기장을 비추는 모니터엔 서로 마주 보고 선 뉴클리어와 레인저의 모습이 보였다.
마조틱 VS 어벤저
레인저는 이미 대기실에서 뉴클리어의 전투를 모니터했을 터였다.
그래서인지 켈베로스처럼 섣불리 달려들다가 다진 고깃덩이가 되는 경솔한 실수는 하지 않았다.
레인저는 활을 사용하는 나이트였다.
그가 활에 살 세 대를 먹여 힘 있게 당긴 뒤 뉴클리어를 겨냥했다.
뉴클리어는 켈베로스를 상대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저 편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여전히 긴장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레인저가 힘껏 당겼던 시위를 놓았다.
그러자 세 발의 화살이 공간을 찢으며 뉴클리어에게 날아들었다.
하지만 뉴클리어는 무형의 막으로 화살을 모두 막아냈다.
레인저의 공격이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한데 레인저는 다시 세 발의 화살을 장전해 뉴클리어에게 쏘아 보냈다.
쐐애애애액!
타타탕!
이번에도 결과는 같았다.
세 발의 화살은 레인저의 몸에 닿지도 못한 채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그런데.
퍼퍼퍽!
뉴클리어의 가슴에서 무언가에 두들겨 맞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뉴클리어가 커다란 힘에 밀려 비틀거리다가 한쪽 발을 뒤로 쭉 빼서 쓰러지지 않고 중심을 잡았다.
‘이건 뭐지? 뉴클리어가 무형의 막으로 화살을 막은 것처럼, 화살에 담겨 날아갔던 무형의 기운이 뉴클리어를 가격했어.’
레인저도 염력을 사용하는 것인가?
잠시 그런 생각을 했던 난 고개를 휘휘 저었다.
‘염력을 사용하는데 굳이 화살로 공격할 필요가 없지.’
그럼 뭘까?
‘혹…… 검기 같은 건가?’
내가 산 영혼의 능력 중에는 제서스의 검기도 있다.
검기는 검에 체내의 기를 실어 상대방을 공격하는 기술이다.
레인저 역시 화살에 체내의 기를 실어 날려 보낸 것이 아닐까?
현재로서는 그게 가장 그럴듯한 가설이었다.
우와아아아아아!
“잘한다 레인저!”
“켈베로스를 단숨에 작살낸 뉴클리어에게 일격을 가했어! 멋진데!”
“난 너한테 걸었으니 반드시 뉴클리어의 대가리를 꿰뚫어 버려라!”
예상외의 상황 전개에 객석은 후끈 달아올랐다.
그럴 만도 했다.
아마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뉴클리어에게 배팅했을 것이다.
1회전에서 그가 보여준 놀라운 힘에 반했을 테니 말이다.
배팅의 기본은 조금이라도 이길 확률이 높은 곳에 거는 것이다.
당연히 이번 시합에서도 많은 귀족들이 뉴클리어가 이길 것이라 생각했겠지.
반면 레인저에게 돈을 건 귀족은 얼마 없었을 테고.
뻔히 뉴클리어의 승리가 눈에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레인저에게 돈을 건 귀족들은 분명 가진 돈이 별로 없어 기적이 일어나길 비는 부류였을 것이다.
백에 하나라도 레인저가 이긴다면 배당금이 어마어마하게 높아지니 말이다.
그런데 그들의 입장에서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기적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당연히 기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레인저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다시 세 발의 화살을 장전했다.
그런 레인저를 보며 뉴클리어가 말했다.
“내게 고통을 주었던 인간은 전부 비참하게 죽었었지…… 아마.”
레인저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입심이 좋은 게 죽어도 주둥이만 둥둥 뜨겠군! 이번에는 확실히 죽인다.”
뉴클리어가 목을 좌우로 꺾었다.
둑. 두둑.
그러고는 천천히 레인저에게로 다가갔다.
동시에 레인저의 손이 시위를 놓았다.
쐐애애애액!
세 발의 화살은 하나하나가 정확히 뉴클리어의 미간, 목, 왼쪽 가슴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그런데.
서걱! 서걱! 서걱!
날아들던 화살이 뉴클리어와 십여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두 동강이 나 바닥에 힘없이 추락했다.
레인저의 얼굴에 당황함이 어렸다.
레인저가 다급하게 다섯 발의 화살을 장전해서 시위를 당겼다.
뉴클리어는 그사이 레인저에게 조금 더 가까워져 있었다.
“죽어!”
레인저가 시위를 놓았다.
쐐애애애애액!
다섯 발의 화살이 전보다 더한 기세로 뉴클리어에게 날아갔다.
그러나 결과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전부 뉴클리어와 한참 떨어진 거리에서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이익!”
레인저는 이를 꽉 깨물고서 등에 맨 화살 통으로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그는 화살을 꺼낼 수 없었다.
서걱!
“……!”
뒤로 넘긴 그의 팔목이 깨끗하게 잘려 나가 화살 통에 그대로 담겨 버렸다.
“크아악!”
레인저가 잘려 나간 팔목을 보며 비명 질렀다.
조금 전까지 레인저를 응원하던 귀족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반면 뉴클리어에게 배팅한 수많은 귀족들이 열화와 같은 함성을 터뜨렸다.
‘뉴클리어…… 저 인간, 장난을 치고 있어. 그것도 아주 못된.’
현재 뉴클리어와 레인저, 둘 사이의 거리는 백 미터가량이다.
그런데 뉴클리어는 염력으로 레인저의 팔목을 잘랐다.
그 말은 목을 자를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애초부터 레인저가 화살을 쏘기 전에 제압하는 것도 가능했을 텐데, 시합을 즐기다가 목이 아닌 팔목을 잘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