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137화
‘이 녀석이 어디에 숨은 거지?’
난 그림자 속에서 주변을 살폈다.
닌자는 경기장 벽의 가장 어둡게 그늘진 곳에 딱 붙어 벽과 하나가 된 듯 숨까지 참아가며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 있었다.
‘이렇게 쉬운 곳에 숨었는데 눈치채지 못했다고?’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심플 이즈 베스트라더니.’
어찌 되었든 일반인이 이런 식으로 숨었다면 바로 들통났을 것이다.
그런데 이 닌자는 은신의 경지가 극에 달한 것 같았다.
정말 뛰어난 닌자들은 한 치의 그림자만 있어도 몸을 숨길 수 있다는 말을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그 말이 정말인 듯했다.
잡생각은 그만.
이제 이 시합을 끝낼 시간이다.
난 섀도우 워커를 해제했다.
내 몸이 그림자 밖으로 튀어나가는 순간 나는 닌자의 목을 낚아챘다.
“……!”
내게 제압당한 닌자의 눈에 처음으로 당황스러움이 어렸다.
“잡았다.”
난 혹시라도 닌자가 또 도망가지 못하게 요마르의 능력 중력 제어를 시전했다.
“끄으……!”
이제 닌자에게 주어지는 중력만 평소보다 몇 곱절 이상으로 강해졌을 것이다.
닌자의 팔과 다리가 축 처졌다.
녀석은 자꾸만 땅으로 꺼지려 했다.
하지만 날 놀린 대가는 셈을 치르고 꺼져야지?
“낭아권!”
쐐애애애애액!
퍽!
“크어……!”
쇳덩이처럼 무거운 주먹이 닌자의 명치를 정확히 가격했다.
두득! 두드득!
명치뼈가 모조리 작살나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여기서 어설프게 끝낸다면 닌자는 시합을 포기하지 않고 또다시 은신을 펼치며 달려들지 모른다.
아예 전투 불능이 되도록 확실하게 밟아야 한다.
“라이트!”
뇌 속성 중급 마법 라이트를 시전했다.
놈을 쥐고 있는 내 손에서 형성된 무지막지한 스파크가 크게 부풀어 올라 번개 다발이 되어 놈의 전신을 두들겨 댔다.
파지지직! 파지직!
“끄…… 으아아아아아아아아!”
닌자가 입을 쩍 벌리고 하늘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닌자의 입과 귀와 코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놈의 옷이 모두 타서 재가 되어 떨어졌다.
그 안에 감춰져 있던 털이란 털도 전부 타서 없어졌다.
“끄흐으으으…….”
닌자의 전신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풀풀 풍겼다.
적어도 2도 화상은 될 것이다.
그나마 그것도 내가 적당히 봐줘서 목숨은 건진 것이다.
뇌전의 힘을 제어해서 줄이지 않고 그대로 맞게 했으면 놈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테니.
난 엉망이 된 닌자를 숨어 있던 외벽의 그림자 속에서 끌고 나와 바닥에 탁 던졌다.
닌자는 힘없이 바닥에 널브러져 손가락 하나 까딱 못 했다.
―나이트 닌자, 전투 불가. 나이트 어벤저의 승리입니다.
사회자의 음성이 내가 승리했음을 알렸다.
동시에 관중석에서 귀족들의 벌떡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역시 나이트 어벤저! 내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군! 상대방을 잘 익힌 고깃덩이로 만들어놓다니!”
“잔인해! 아주 잔인해! 네가 맘에 든다, 이 새끼야!”
“2회전도 잘 부탁한다, 어벤저!”
저번에도 느꼈지만, 이번에도 똑같은 역겨움을 느낀다.
이곳에 제정신으로 온 인간은 아무도 없다.
아니…… 어쩌면 이게 인간의 본성인 건가?
윤리나 도덕 따위 모두 벗어 버린, 가식은 전부 사라진 원초적 욕망과 본능만 존재하는 이 모습이 본성이란 말인가?
모르겠다.
그저 확실한 건.
띠링!
―지웅 님께 돈을 걸었다가 도움받은 사람들이 고마움의 마음을 보내왔네요. 선행을 쌓아 671링크가 주어집니다.
오물통에 처박힌 것마냥 역겹다는 것이다.
다운 타운의 비밀
대기실에 돌아오니 설열음과 카시아스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승리한 거 축하해.”
설열음이 예의 그 투박한 어투로 말했다.
“축하한다는 말에 영혼을 1그램이라도 좀 담아라.”
“축하한다는 말 취소.”
“그래. 차라리 그게 낫다.”
“2회전도 나갈 거지?”
“나가.”
“일단 이번에 이겨서 천만 원가량을 받을 수 있게 됐어.”
천만 원.
저번에 왔을 때는, 1회전 시합에서 이겼을 때 칠백만 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고 했었다.
시합에 참여하는 나이트들은 한 시합을 이길 때마다 귀족들이 배팅한 돈의 0.1퍼센트를 가질 수 있게 된다.
한마디로 이번에 배팅된 액수가 저번 시합에서 배팅된 액수보다 많았다는 얘기다.
“3회전 다 승리해서 돈이나 왕창 벌어 가야겠다.”
“이번엔 세이브 카드 선택 안 할 거야?”
아까 사회자가 말했듯이 데스 파이트에 참여해서 3연승을 한 사람은 세이브 카드와 상금 50만 달러 중 선택을 해서 가져갈 수 있다.
세이브 카드는 내가 시합에서 지는 바람에 노예가 될 위기에 처했을 경우, 그 상황에서 날 구해주는 역할을 한다.
아울러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세이브 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난 시합에서 질 생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다른 사람을 도와줄 생각도 없으므로 세이브 카드는 필요치 않다.
상금이나 가져가서 회사를 번창시키고 우리 가족 잘 먹고 잘사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세이브 카드 같은 거 필요 없어.”
“그래, 좋을 대로 해. 다시 대기실에 들어가.”
난 군말 없이 대기실로 들어갔다.
설열음이 문을 닫아 밖에서 잠그자 카시아스가 내게 텔레파시를 보내왔다.
[지웅.]
[왜? 뭐 알아냈어?]
[그래. 여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스케일이 크고 복잡하고 더러운 곳이다.]
[뭘 알았길래 그래?]
[설열음이 상부와 통화하는 걸 들었다. 일단 내가 알아낸 사실들만 간단하게 추려서 말하지. 첫째, 나이트가 귀족이 되는 방법은 데스 파이트에 참가해 두 번 이상 3연승을 해야 한다는 것.]
[3연승을 두 번 하면 바로 귀족이 되는 거야? 나 오늘 귀족 되겠네?]
[아니. 3연승을 두 번 하게 될 경우 귀족의 자격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심사에 지원할 수 있게 되지. 하지만 켈베로스라는 녀석은 다섯 번이나 3연승을 했는데도 귀족 심사에 한 번도 임하지 않았던 모양이야.]
[왜?]
[그 심사가 그만큼 어렵고 힘들다는 뜻이겠지.]
[어떤 식으로 심사를 하는데 그래?]
[매드 맨 백 명과 붙어서 이겨야 한다고 한다.]
매드 맨.
데스 파이트를 여는 주최 측에서 양성한 전투귀신들이다.
그들은 전투와 살육에 미친 자들이다.
매드 맨은 대전자의 짝이 맞지 않는 경우, 예를 들어 1회전에서 승리한 이들 전부가 2회전에 나가길 거부했는데, 단 한 명만이 1회전에 나가고 싶다고 했을 경우 그와 맞붙을 상대로 투입된다.
그들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다운 타운의 과학으로 인해서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다.
나도 일전에 매드 맨과 싸워봤었다.
내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강한 녀석은 아니었다.
그러나 데스 파이트에 참가하는 녀석들의 수준을 봤을 땐 상대하기 까다로운 존재다.
그런 이들 백 명과 싸워서 이겨야 귀족으로서 인정해 준다는 건 그냥 죽어 버리라는 것과 다름없는 얘기다.
[일당백으로 싸워 이겨야만 귀족이 된다니. 켈베로스가 심사에 지원 안 할 만하지.]
[놀라운 건 그 심사를 통과한 인간도 있다는 거야.]
[그래?]
순간 뉴클리어가 떠올랐다.
[뉴클리어처럼 초능력자들인가?]
[그런 부류의 녀석들이 대부분이지.]
[대부분이라는 말은, 초능력자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매드 맨 백 명과 싸워 이긴 사람이 있다는 거야?]
[그래. 순수하게 육신의 힘을 키워서 매드 맨 백 명을 무찌르고 귀족의 자리에 앉은 이가 있다. 그는 귀족이 되어서도 육신의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하더군. 그래서 지금은 예전보다 더 강해졌다던데.]
[그게 누군데?]
[무함마드.]
순간 머리가 띵했다.
무함마드? 그 녀석이 매드 맨 백 명을 혼자서 처리했다고?
그놈의 노예가 될 뻔한 이랑이를 세이브 카드로 구해준 것에 앙심을 품어, 복수를 계획한 옹졸한 인간이?
무엇보다 그 녀석은…… 배가 불뚝 나온 아저씨 같은 체형을 가지고 있었다.
정확히 기억한다.
경기장에서 이랑이를 데려가는 내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으니 기억 못 할 수가 없다.
[말도 안 돼.]
[다운 타운의 존재 자제가 말도 안 되는 곳이지. 귀족들 중에는 괴물 같은 녀석들도 가득하다.]
[하아…… 아무래도 무함마드랑 나는 한번 크게 붙어야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그럴지도 모르지. 네가 뉴클리어를 이겨 버린다면 말이야. 무함마드의 성격에 가만있지 않겠지.]
[네가 무함마드 성격을 어떻게 알아?]
[전부 설열음이 말하는 걸 듣고서 네게 전해주는 거다.]
그렇다면 인정.
어휴, 애초에 내가 다운 타운에 오는 게 아니었다.
괜히 카시아스 소원 한번 들어준다고 발걸음 했다가 귀찮은 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귀족이 되면 데스 파이트를 관람할 자격이 생기고 배팅도 할 수 있게 되며, 보너스로 500만 달러를 얻게 된다. 아울러 다운 타운의 제2구역에 발을 들일 수 있는 권한이 생겨. 또한 그곳에 집을 구해 살 수도 있게 되지. 하지만 집 한 채 값이 5,000만 달러 이상이야.]
[5,000만 달러 이상이면…… 대략 700억 정도 된다는 얘기잖아?]
[그래. 하지만 그 집은 살 만한 가치가 있어. 2구역에 집을 사게 되면 지구 밖의 모든 위험에서부터 안전해지지.]
[지구 밖의 모든 위험이라고 하면…… 전쟁 같은 것?]
[전쟁, 자연 재해. 그리고 그 밖의 천재지변들. 이곳은 완벽하게 보호받고 있어. 지구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티끌 하나 다치는 사람이 없도록. 이를테면 현대판 노아의 방주라고 할 수 있겠지.]
[한마디로 이 노아의 방주에 타려면 귀족의 작위와 500만 달러가 필요하다?]
[그렇지. 그래서 귀족들은 데스 파이트에 열광하는 거다. 그것만큼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일이 또 없으니. 빨리 돈을 불려 방주에 올라타고 싶은 거지.]
[하지만 그만큼 쉽게 잃기도 하잖아.]
[어차피 확률은 반반이야. 카지노에서 가장 있기 있는 종목이 뭔지 알아? 바카라다. 반반의 확률로 돈을 거는 도박. 50퍼센트라는 수치는 퍽 매력적이니까.]
[흠…… 아무튼 네 생각보다 스케일이 큰 곳이라는 건 알겠고, 더럽다는 건 뭐야?]
카시아스는 잠시 말없이 뜸을 들였다.
생각을 정리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그녀가 문득 던진 말은 의외의 것이었다.
[꼭 귀족이 돼라.]
[뭐? 느닷없이 귀족이 되라니, 무슨 말이야?]
[귀족의 작위를 얻으면 그 직후부터 제2구역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면 바로 1구역으로 침입해서 내부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시켜라.]
[좀 알아듣게 설명해 줬으면 좋겠는데.]
[이제부터 설명할 참이었으니까 닥치고 들어.]
그냥 카시아스와 시원하게 한판 싸웠음 좋겠다.
[설열음이 동료와 주고받는 잡담 중 기가 막힌 내용이 있었다.]
[그게 뭔데?]
[다운 타운의 존재 의의. 아까 내가 다운 타운은 현대판 노아의 방주라 그랬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