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136화
무형의 기운을 빠르게 압축한 다음 의지를 거두면, 무형의 기운은 원래의 상태로 금세 돌아올 것이다.
그 순간 폭발이 일어나는 듯했다.
역시나 이론만으로는 답을 찾아낼 수 없으니 이번에도 실험을 해보았다.
난 두 동강 난 테이블 중 한 조각 속에 무형의 기운을 집어넣은 뒤 빠르게 한계까지 압축시켰다.
그리고 의지를 거두었다.
그 순간.
퍼엉!
원래 상태로 돌아오며 폭발해 버린 무형의 기운에 의해 테이블은 터져 나가며 산산조각이 났다.
사방에 철가루가 마구 날렸다.
난 얼른 숨을 참고 테이블의 파편들에서 멀리 떨어졌다.
‘빙고.’
어찌 되었든 답을 찾았다.
뉴클리어가 사용하는 초능력은 염력이 확실했다.
하지만 염력의 활용법은 이전부터 사용해 왔던 녀석이 나보다 더 능수능란할 것이다.
그러니 나도 똑같이 염력으로 맞대응하긴 무리다.
내가 굳이 염력으로 녀석의 공격법을 연구한 건, 그 힘의 정체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을 알아야 파훼법도 생기는 법이니까.
‘녀석의 염력을 내 육신의 힘으로 뚫을 수 있을까?’
뚫을 수 없다면 마법과 투명화, 그리고 중력 제어로 상대하는 것이 최선일 듯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1회전의 7시합이 다 끝났다.
그동안 죽어나간 사람은 다섯.
살아남은 두 사람은 배팅을 제일 많이 한 귀족의 노예가 되었다.
이제 1회전의 마지막 8시합이 시작된다.
내가 나가야 하는 시합이다.
―나이트 닌자, 나이트 어벤저는 경기장으로 나오십시오.
사회자의 음성이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철컹.
동시에 잠겨 있던 내 방문이 열렸다.
방문 앞에는 설열음과 그녀의 어깨 위에 올라탄 카시아스가 서 있었다.
“네 차례야.”
“알아.”
설열음에게 대답하며 카시아스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뭐 알아낸 거 있어?]
[아직.]
[대답 참 간단하다. 뭐 엄청난 걸 알아낼 것처럼 따라가더니.]
[그녀가 상부와 연락을 취해야 어떤 정보를 얻어도 얻어낼 것 아니냐.]
[상부에서 연락 오지 않으면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고서 털레털레 돌아올 셈이야?]
[어쩔 수 없지. 그때는 자력으로 알아내야지.]
[차라리 지금부터 그러는 게 어때.]
[귀찮다.]
[다운 타운 가자고 그렇게 난리 칠 때는 언제고. 진짜 이해 안 되는 인간이다, 너도.]
[네 알량한 의식의 수준으로는 감히 날 이해 한다는 게 당연히 어려울 테지.]
[……설열음만 아니었으면 당장 모가지를 졸랐을 거야.]
[방금 그 개그는 제법 재미있었다.]
말을 말자.
애초부터 말로는 이길 수 없는 녀석이다.
이겨보려고 할수록 내 속만 더 터진다.
설열음을 따라 경기장의 입구에 도착했다.
“오랜만이네, 여기.”
“죽지 마.”
설열음이 말했다.
난 그녀에게 피식 웃어주었다.
“절대 안 죽어. 이런 후진 곳에서는.”
“그럼 노예가 될 가능성이 높겠네.”
“내 실력 못 봐서 그래? 그딴 걱정 하지 않아도 돼.”
“걱정한 거 아닌데. 네가 달봉이 주인이라서 챙겨주는 척한 거야.”
“아주 고맙다. 대단히 영광스럽네.”
그렇게 쓸데없는 잡담을 주고받는 사이 경기장의 문이 열렸다.
전에 치러진 전투들로 인해 유혈이 낭자한 흙바닥을 밟고 경기장의 중앙에 섰다.
내 맞은편에는 닌자의 복장을 한 녀석이 등에 일본도를 차고 서 있었다.
‘닉네임이 나이트 닌자라더니 이름값 하네.’
아마도 정통 닌자의 기술을 전수받은 녀석이겠지.
놈이 사나운 시선을 내게 던지며 말했다.
“그대는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주접 싸고 있네.
지금 시대극 찍고 있는 줄 아나.
“뒈지기 싫으면 아가리 닥쳐.”
“지금 한 그 말이 그대의 마지막 유언이라면 죽음과 입 맞출 때 대단히 후회하게 될 터. 괜찮겠는가?”
그냥 얘랑은 말을 섞지 말아야겠다.
한마디 한마디가 손발이 오그러들어 참기가 힘들어진다.
―1회전 8시합 나이트 어벤저와 나이트 닌자의 대결이 시작되겠습니다. 나이트 어벤저는 일전에 데스 파이트에 참가, 총 3번의 우승을 치른 뒤 세이브 카드를 쟁취. 노예가 될 뻔했던 자신의 동료를 데리고 돌아갔던 전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잔인합니다. 자신의 적을 죽이지 않습니다. 그보다 고통스러운 삶을 선사합니다. 상대를 반신불수로 만들어놓습니다. 이번에도 귀족들은 그런 나이트 어벤저의 잔인한 행보를 기대하고 있을 겁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객석에서 귀족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이번에도 화끈하게 가자, 나이트 어벤저!”
“불구로 만들어 버려!”
“거시기를 잘라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지!”
“난 무조건 나이트 어벤저에게 걸었다!”
미치겠군.
사회자가 날 무슨 악의 화신인 양 소개해 버린 탓에 경기장의 분위기는 과열되었다.
그러나 닌자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 녀석의 주변만 고요함, 정적으로 가득 찬 듯했다.
말은 좀 오글거리게 해도 정신 수양은 잘 쌓아온 것 같았다.
“그대에게 원한은 없으나, 칼을 뽑으면 상대의 목을 취하기 전엔 거두어들인 적 없는바. 고통이 따르더라도 이해하게나.”
“계속 주접 쌀래?”
“그럼 가겠네.”
말과 함께 닌자의 모습이 사라졌다.
‘어디로 갔지?’
난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닌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하늘?
고개를 쳐들었지만 하늘에서도 닌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닌자는 은신술의 귀재라더니.’
하지만 지금 여기는 사방이 뻥 뚫린 경기장이다.
몸을 은폐, 엄폐할 수 있을 만한 장소가 어디에도 없다.
난 차라리 눈을 감았다.
분명 녀석은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떠한 수법으로 몸을 감췄을 터.
시각에 의지하기보단 감각으로 놈을 찾아내는 게 더 나았다.
눈을 감자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찬 경기장의 한 곳에 유난히 정적으로 가득 찬 공간이 느껴졌다.
거기가 바로 닌자가 숨어 있는 곳이다.
정적은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움직이며 내게 다가왔다.
그러다 한순간, 뒤에서 날카로운 예기가 느껴졌다.
난 눈을 뜨고 뒤돌아서며 주먹을 휘둘렀다.
카앙!
닌자의 검과 내 주먹이 맞부딪쳤다.
잘 벼린 검날이 파르르 떨렸다. 내 주먹에도 상당한 진동이 일었지만, 외적 고통은 전혀 없었다.
아이언 스킨은 이런 검에 잘릴 만큼 무르지 않다.
내가 주먹으로 검을 막아냈음에도 닌자는 당황하지 않고 두 번째 공격을 이어왔다.
검이 빠르게 수거되었다가 옆으로 궤도를 틀더니 내 옆구리를 노리며 흘러들어 왔다.
그 움직임이 너무나 부드러워 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난 뒤로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닌자의 품으로 쑥 파고들었다.
동시에 낭아권을 시전했다.
“낭아권!”
쐐애애애애액!
굳게 말아 쥔 주먹은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다.
퍼억!
그리고 닌자의 얼굴을 정확히 가격했다.
아니, 가격했다고 믿었다.
그런데 내 주먹이 때린 것은 닌자가 아닌 검은 천 쪼가리 한 장이었다.
닌자는 또다시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거 진짜 만화를 보는 것 같네.’
닌자들이 등장하는 만화를 보면 이런 식의 기술이 자주 등장한다.
난 다시 눈을 감고 닌자의 위치를 찾았다.
내게서 한참 떨어진 곳에 다시 고요한 정적이 포착되었다.
그 정적 속에서 예기를 품은 기운 세 개가 공기를 찢으며 내게 날아들었다.
눈을 떠보니 수리검 세 개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염력.’
염력을 이용, 뉴클리어처럼 무형의 기운으로 내 앞을 가로막는 막을 형성했다.
카카캉!
수리검 세 자루는 그 무형의 기운에 막혀 밑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그사이 내가 포착했던 정적은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눈을 감으려는 순간 정수리에서 아찔한 살기가 느껴졌다.
언제 저기로 이동한 건지 모르겠지만, 내 머리 한 치 위에서 닌자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의 손엔 검이 거꾸로 쥐어져 있었다.
검 끝은 내 정수리를 정확히 노렸다.
‘타임 리와인드!’
난 시간을 3초 전으로 되돌렸다.
내가 눈을 감고 정적의 기운을 찾은 뒤, 수리검이 날아오는 걸 느끼기 바로 전이다.
눈을 뜨고서 미리 무형의 막을 형성한 뒤, 하늘을 바라보았다.
수리검 세 자루가 무형의 막에 부딪혀 후두둑 떨어지는 순간 닌자는 허공에 갑자기 나타났다.
아까와 똑같이 검 끝을 내 정수리에 박아 넣으려는 자세였다.
난 녀석이 나타나는 순간 마법을 시전했다.
“파이어!”
파이어는 화 속성 중급 마법이다.
따로 불이 존재치 않아도 스스로 불을 만들어내 뜨거운 맛을 보게 한다.
화르륵!
거대한 불길이 일어 닌자를 감쌌다.
이번에야말로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길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는 검게 탄 재 한 줌만 풀럭풀럭 떨어져 내릴 뿐이었다.
‘쥐새끼 같이 잘도 피하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의미 없이 소모전이 지속되고, 결국 내가 먼저 지치게 될지도 모를 판이다.
내 영력은 무한한 게 아니라 한계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 전에 속전속결로 놈을 제압해야 했다.
‘닌자의 공격이 위협적인 건 아니야.’
날카롭고 빠르긴 해도 내게 큰 해를 가할 만큼 대단치는 않다.
놈의 움직임을 한 번만 잡을 수 있다면 크게 한 방 먹여서 충분히 이기는 게 가능하다.
‘어떻게 한다?’
방법을 생각했다.
하지만 딱히 이렇다 할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닌자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며 섣불리 공격하지 않았다.
한데 경기장에 어둠이 드러워졌다.
하늘을 보니 커다란 구름이 태양을 가리며 흘러가는 중이었다.
‘홀로그램으로 이런 효과까지 내다니. 진짜 하늘 같잖아. 정말 잘 만들긴 했다.’
순간 불현듯 내 뇌리를 스치고 가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가만…… 어둠…… 그림자…….’
난 경기장을 둘러보았다.
어디에도 닌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그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림자까지 감추고서 숨어 있다.’
대단한 은신술이다.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녀석이 그림자를 숨길 수는 있어도 없앨 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섀도우 워커를 사용해서 녀석의 그림자에 스며든다.
그렇게 하면 놈이 어디에 어떻게 숨어도 난 놈의 발아래에 있게 되는 것이다.
‘자, 한 번만 더 접근해라.’
내게 달려드는 순간 어쩔 수 없이 녀석의 그림자는 바닥에 생겨난다.
그때를 노려서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면 상황은 끝이다.
쐐애애액!
내 양옆에서 동시에 수리검 여섯 자루가 날아들었다.
난 염력을 이용해 그것들을 막아냈다.
이어 내가 딛고 서 있는 흙바닥이 파헤쳐지며 일본도가 쑥 솟구쳐 올랐다.
난 뒤로 물러섰다.
일본도와 함께 닌자가 땅속에서 밖으로 튀어나왔다.
녀석은 멈추지 않고 전광석화처럼 달려와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그 순간!
‘걸렸다.’
“섀도우 워커!”
난 놈의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었다.
닌자는 일순간 행동을 멈추더니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나도 놈의 그림자를 따라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