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135화
“무함마드…… 이 자식 진짜 본 때를 보여줘야겠네. 근데 뉴클리어가 대진 번호 1번이고, 내가 16번이면 끝에서 끝이잖아? 토너먼트식으로 경기가 치러질 텐데 뉴클리어랑 나는 둘 다 끝까지 살아남는다는 조건하에 결국 결승전에서 붙게 되겠네?”
“응.”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위적인데?”
“다운 타운은 돈으로 불가능한 게 없는 세상이니까.”
한마디로 무함마드가 데스 파이트 관계자에게 돈을 뿌려 대진 순서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데스 파이트의 룰대로 1회전을 치르고 승리할 경우 2회전에 나가지 않아도 돼. 뉴클리어가 두렵다면 1회전만 승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끝이야.”
“꼬리를 감추고 도망가라? 그럴 순 없지.”
“내 호의는 여기까지. 네가 더 좋아진 기념으로 말해준 거니까 고맙게 생각하진 않아도 돼. 그럼 이만.”
설열음은 카시아스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사라졌다.
하여튼 특이한 여자라니까.
* * *
―나이트들에게 경기 룰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나이트들은 총기류가 아니라면 어떤 무기를 사용해도 무방합니다. 경기 중 상대방을 죽여도 상관없습니다. 그럼 오늘의 데스 파이트 1회전 제1시합, 나이트 뉴클리어 대 나이트 켈베로스! 시작하겠습니다!
난 선수 대기실에서 모니터를 관전하고 있었다.
열여섯 명이 싸우게 되니 1회전은 총 8시합까지 치르게 된다.
1시합은 무함마드에게 날 죽이라 사주받은 뉴클리어와 켈베로스의 대결이었다.
난 뉴클리어가 어떤 놈인지 파악하기 위해 신중히 경기를 지켜보기로 했다.
뉴클리어는 얼굴을 하얀 가면으로 가린 채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검은 타이즈를 입고 있었다.
녀석은 근육질이라기보단 조금 마른 듯한 체형이었다.
반면 켈베로스는 뉴클리어와 상반되는 사내였다.
어림잡아도 그의 키는 2미터 30은 족히 되는 것 같았다.
몸은 커다란 근육덩어리들로 우락부락했고, 얼굴은 야차처럼 험악했다.
그는 사람이라기보단 거인에 가까웠다.
켈베로스가 주먹을 말아 쥐더니 바닥을 쾅! 쳤다.
쿠와아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지면에 미세한 진동이 일었다.
그의 주먹이 틀어박힌 바닥은 충격으로 인해 푹 파여 들어갔다.
사방으로 흙모래가 비산했다.
켈베로스가 히죽 웃으며 뉴클리어를 노려보았다.
딴에는 기선제압을 한 것이다.
그런 켈베로스의 과격한 행동에 관중석을 가득 채운 귀족들은 열광했다.
“잘한다, 켈베로스!”
“저 가면 쓴 이상한 놈을 잡아라!”
“오늘도 3연승 하라고!”
귀족들의 분위기를 보아하니 뉴클리어는 이번에 처음 출전하는 모양이었다.
반면 켈베로스는 이 바닥에서 아주 유명한 나이트인 모양이다.
오늘도 3연승이라는 말은 그 이전에 여러 번 3연승의 기록을 세운 적이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켈베로스가 광기에 찬 시선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그러고는 성난 황소처럼 뉴클리어에게 달려들었다.
뉴클리어는 그런 켈베로스를 막을 생각도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그 거대한 다리를 날렵하게 놀려 순식간에 둘 사이의 거리를 좁힌 켈베로스가 뉴클리어의 목을 움켜쥐려 했다.
저 거대한 손에 목이 잡히면 분명 부러지고 말 게 뻔했다.
그런데 그때!
“나한테 그렇게 까불면 혼나지…… 아마.”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응?”
뉴클리어에게 내뻗던 켈베로스의 팔이 수십 조각 나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뉴클리어는 지금 자신에게 벌어진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는 얼굴이었다.
팔꿈치까지 사라져 버린 오른팔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피가 울컥거리며 솟구치고 난 뒤, 비명을 질렀다.
“우, 우아아아아아악!”
켈베로스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뉴클리어는 그런 켈베로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이 버러지 같은 새끼! 무슨 속임수를 쓴 거냐!”
켈베로스의 벼락같은 노호성이 스피커를 타고 들어와 대기실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모니터 속에 보이는 귀족들도 일제히 귀를 틀어막았다.
하지만 뉴클리어는 여전히 느긋한 폼으로 켈베로스에게 다가갈 뿐이었다.
“네놈은 죽인다! 내가 죽인다!”
켈베로스가 뉴클리어에게 바람처럼 달려들었다.
아직 멀쩡한 그의 주먹이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게 튀어나갔다.
하지만 뉴클리어는 이번에도 느긋했다.
싸우러 나왔다기보단 차라리 산책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보는 것 같을 정도였다.
전의를 불태우는 켈베로스에 비해 뉴클리어는 너무나 여유로웠다.
그것은 곧 실력의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를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었다.
사람이 개미를 밟아 죽일 때 긴장하던가?
온 힘을 다 쏟던가?
지금은 뉴클리어가 사람이고 켈베로스가 개미였다.
콰앙!
켈베로스의 주먹은 뉴클리어의 코앞에서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운에 막혀 버린 듯했다.
“크으윽! 크아아아아아아!”
켈베로스가 다시 주먹을 거두어들였다가 빠르게 내뻗었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콰앙!
켈베로스의 행동에 귀족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왜 저렇게 맥을 못 써?”
“대진운이 좋지 않았어. 내가 보기에 뉴클리어라는 저놈은 초능력자다.”
“초능력자?!”
“그래. 가끔씩 저렇게 초능력자들이 데스 파이트에 참여하고는 하지.”
“그럼 이 시합 보나 마나…….”
“뉴클리어가 이긴다.”
초능력자?
초능력자가 데스 파이트에 나왔다고?
‘하긴…… 나 같은 놈도 있는데 세상에 초능력자가 없을 거라는 건 안일한 생각이지.’
켈베로스는 계속해서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무형의 막은 그런 켈베로스의 주먹이 뉴클리어의 얼굴에 닿지 못하게 했다.
“우어어어어어어!”
켈베로스는 점점 더 미친 듯이 주먹을 내리쳤다.
그럴수록 오히려 망가지는 건 녀석의 주먹이었다.
살이 터지고 뼈가 부러져 주먹은 이미 온전한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엉망이 되었다.
“이제 그만해야겠지…… 아마.”
뉴클리어의 나직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이어 켈베로스가 휘두르던 주먹이 펑! 하고 터져 나갔다.
마치 풍선이 터지듯.
그러고서는 연달아 팔목과 팔뚝, 팔꿈치, 어깨가 터졌다.
켈베로스의 뼈와 살이 다진 고깃덩이가 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크아아아아악!”
양팔을 다 잃어버린 켈베로스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뉴클리어는 그런 켈베로스에게 여전히 편안한 걸음걸이로 다가갔다.
켈베로스는 뉴클리어의 위압감에 겁을 집어먹고 주춤주춤 뒷걸음질쳤다.
그의 얼굴에서 이미 전의는 사라져 있었다.
경기장의 흙바닥이 붉은 피로 뒤덮이자 객석에서 열화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
몇몇 귀족은 일어서서 박수까지 쳐 댔다.
“잘한다, 뉴클리어! 그래! 이래야 재미있지!”
“죽여라!”
“죽여 버려!”
사방에서 켈베로스를 죽이라는 말이 빗발쳤다.
반면 켈베로스는 다가오는 뉴클리어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애원했다.
“사, 살려줘…… 살려줘, 제발.”
“여태껏 내게 주먹을 들이대고 살아난 사람은 없었지…… 아마.”
저 녀석은 말끝마다 ‘아마’라는 단어를 붙이는 습관이 있는 모양이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서거거거거걱!
살이 썰리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켈베로스의 눈이 붉게 충혈됐다.
이어, 그가 뒤로 한 걸음을 옮기는 순간.
퍼어어어엉!
녀석의 육신이 수십 조각 나며 터져 나갔다.
피와 살 조각, 제 형태를 잃어버린 뼛조각이 사방으로 날아가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코앞에 서 있던 뉴클리어의 몸엔 핏방울 하나도 튀기지 않았다.
좀 전에 모았던 무형의 막으로 보호를 한 모양이다.
―제1회전 1시합 승자는 뉴클리어.
켈베로스가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상태로 죽임을 당한 뒤, 사회자의 무미건조한 멘트가 들려왔다.
동시에 귀족들이 우레와 같은 함성을 보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뉴클리어는 그런 반응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서 경기장을 벗어났다.
나이트 닌자
뉴클리어의 시합이 끝난 뒤로 계속해서 2시합, 3시합이 이어졌다.
내 눈은 모니터에 고정되어 있었으나 시합의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뉴클리어때문이었다.
그 녀석의 능력이 무언지 궁금했다.
‘염력 같은 건가?’
내게도 라헬에게서 산 능력 중 염력이 있긴 했다.
시다스의 능력으로 무형의 기운을 운용할 수 있다. 이를테면 물체에 손을 대지 않고 옮긴다든가, 상대방에게 타격을 준다거나 하는 게 가능하다.
아직 제대로 사용해본 적은 없었다.
‘지금 사용해 봐야겠어.’
염력은 다행스럽게도 패시브 스킬이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었다.
난 염력을 시전했다.
그러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기운이 내 몸 안에 가득 차는 것이 느껴졌다.
난 그 무형의 기운을 밖으로 배출했다.
그리고 기운을 움직여 테이블 앞에 놓인 의자를 들어 올렸다.
의자는 대단히 쉽게 들어 올려졌다.
마치 누군가 마술을 부린 것 같은 광경이었다.
‘여기서 의자를 부수려면 무형의 기운을 압축시켜서 압박을 가하면 되는 건가?’
내가 생각한 원리를 그대로 적용해 보았다.
무형의 기운이 압축되며 허공에 떠 있는 의자가 바르르 떨렸다.
난 기운을 더욱 강하게 압축시켰고, 의자는 비로소 콰지직! 하며 산산조각이 났다.
‘됐어!’
일단은 염력으로 상대방을 얼마든지 공격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운용법도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 식이라면 뉴클리어처럼 이 무형의 기운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도 가능하겠지.’
무형의 기운으로 내 몸 주변을 둘러싸면 되는 것이다.
그럼 상대방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방패가 형성되고, 그의 공격은 내 몸에 닿지 않는다.
자, 이제 남은 건 시다스의 공격법을 파헤치는 것이다.
시다스는 내가 한 것처럼 무형의 기운을 압축해서 상대를 공격하지 않았다.
날카롭게 육신을 베어 버린 후, 터뜨리는 식이었다.
‘무형의 기운을 칼처럼 만들어볼까?’
나는 생각하는 즉시 무형의 기운은 내 의지대로 변형을 일으켰다.
물론 그 기운 자체는 내 눈에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감각으로 확연히 알 수 있었다.
난 날카롭게 변한 무형의 기운으로 테이블을 갈랐다.
서걱!
테이블은 깔끔하게 잘려 나가 두 동강이 났다.
나무 테이블이 아니었다.
단단한 철로 만들어진 철제 테이블이었다.
그럼에도 두부 썰리듯 썰려 나갔다.
‘이런 식이군. 염력…… 대단한 기술인데?’
이게 이렇게까지 무서운 능력일 줄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그럼 터뜨려 버리는 건?’
분명 켈베로스의 육신은 썰린 다음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의자를 부술 때 무형의 기운을 압축하는 건 가능했었어.’
이후에 내가 무형의 기운을 가만히 놔두었더니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었다.
무형의 기운은 내 의지대로 그 형태를 달리하지만, 딱히 어떤 의지가 전해지지 않으면 원래 상태로 돌아오려는 성질이 있다.
‘그럼 혹시…… 기운을 순식간에 한계까지 압축한 뒤, 의지를 거두어들이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