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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히어로-134화 (134/153)

데일리 히어로 134화

“알 만하군. 자기 것을 빼앗아 간 데에 대한 복수라는 건가?”

“그런 거지.”

카시아스는 잠시 입을 다물고서 가만히 날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어쩐지 평소답지 않고 부담스러워서 그녀에게 물었다.

“왜?”

“역시 그렇구나 싶어서.”

“뭐가 역시 그래?”

“네가 내 부탁 때문에 거길 갈 리 없지.”

뭐야, 이 감성적인 반응은?

늘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게다가 자기중심적으로만 행동하던 녀석이 갑자기 이런 말을 하니까 적응이 안 되다 못해 어색할 지경이다.

그런데 카시아스가 오해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저기 말야, 내가 다운 타운으로 갈 결정적 원인을 제공한 건 무함마드가 맞아. 그런데…… 나 너한테도 말했지만 그 전부터 네 부탁 들어주겠다고 마음먹은 거 진짜거든?”

“…….”

카시아스는 아무런 대답 없이 날 관조했다.

그 표정이 여태껏 본 적 없던 것이라서 상당히 낯설었다.

오늘따라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난 하려던 말을 마무리 지었다.

“한마디로 무함마드 때문에 다운 타운에 간다기보단 네 부탁 때문에 가는 거라고.”

“……그렇군.”

대답이 뭐 이리 싱거워.

내가 손발이 오글거리는 걸 참아가면서까지 얘기했으면, 좀 더 풍부한 반응을 보여야 하는 거 아니야?

이 녀석이 워낙 안 보이던 모습을 보여서 괜히 나만 감정적이 된 모양이다.

내 얘기를 다 듣고 난 카시아스는 느닷없이 벌떡 일어났다.

순간 그녀의 모습이 환한 빛에 휩싸였다. 사위를 밝히던 빛은 삽시간에 사라졌다. 빛이 명멸한 곳엔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서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왜 갑자기 변신하고 그래?”

“간다.”

“용무 끝났으니 잽싸게 돌아가시겠다?”

“그래.”

“얼른 가라. 나도 피곤해서 빨리 쓰러져 자고 싶으니까.”

“내일 아침에 찾아오도록 하지.”

카시아스가 내게 둔 시선을 창으로 돌렸다. 동시에 닫혀 있던 창문이 옆으로 스르르 열렸다.

카시아스는 창틀로 가볍게 뛰어올랐다.

그런 녀석의 몸 위로 달빛이 아스라이 내려앉았다.

당장에라도 창 너머로 뛰쳐나갈 것처럼 행동하던 녀석은, 그러나 무슨 일인지 가만히 서서 뜸을 들였다.

그러다 문득.

“고마워.”

그 한마디를 남겨 놓고서는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

난 내 귀를 의심했다.

지금 저 녀석의 입에서 고맙다는 말이 나왔단 말야? 정말로?

“허, 허허허.”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다는 건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분명하다.

* * *

아침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섰다.

설열음에게는 어젯밤, 잠들기 전에 데스 파이트에 참가하겠노라고 말을 해둔 터였다.

집 앞 골목길을 빠져나오자마자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내 어깨 위에 올라탔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 검은 고양이는 카시아스였다.

“어디서 만나기로 했지?”

카시아스는 내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건 원래 이 녀석의 패턴이 아니잖아?

“왜 갑자기 소곤거려? 그냥 텔레파시로 해.”

“내 마음이다. 입 닥치고 대답이나 해라.”

“……입 닥치고 어떻게 대답을 하라는 거냐.”

잠깐 패턴을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다.

이 녀석은 여전히 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만렙 마이 페이스 유저다.

“어디서 만나냐니까.”

“여기서.”

내가 대답을 하자마자 저 멀리서부터 부다다다다다! 하는 소음이 들려왔다.

뒤이어 급정거.

끼이이이익!

설열음이 검은 바이크를 몰고 와 내 옆에 섰다.

그녀가 헬멧 고글을 올리고 카시아스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달봉아.”

설열음은 일전에 카시아스에게 제멋대로 달봉이라는 이름을 붙였었다.

카시아스는 그 이름을 심히 거슬려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설열음 역시 달봉이 못지않은 만렙 마이 페이스 유저다.

한번 달봉이라고 불렀으면 그녀에게 카시아스는 끝까지 달봉이인 것이다.

“달봉아, 보고 싶었어.”

“…….”

카시아스는 대답 없이 그녀를 외면했다.

그러자 설열음의 어깨가 밑으로 추욱 처졌다.

어째 그녀의 머리 위에만 먹구름이 한가득 끼어 있는 것 같다.

“달봉이는 나 안 보고 싶었니?”

여전히 카시아스는 설열음을 무시했다.

그에 설열음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이번 생은 내게 무의미해.”

이 여자가 근데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왜 이렇게 무너진대?

하여튼 늘 자기 멋대로 굴다가 고양이 앞에만 서면 사람이 멍청이가 되어 버린다.

“어이, 설열음. 그런데 굳이 뭐하러 오늘 만나자고 한 거야? 생각해 보니까 말야, 나한테도 이게 있거든.”

말을 하며 난 얇은 육각형 모양의 펜던트 포털을 꺼내 들었다.

“다운 타운은 이 포털로 가면 되는 거잖아?”

“맞아.”

“네가 없어도 충분히 혼자 갈 수 있는데, 만날 필요가 있냐고.”

설열음은 대답 없이 날 쏘아봤다.

아주 죽일 듯한 눈빛으로.

그러더니 애정을 갈구하는 아이의 눈빛이 되어 카시아스를 바라보았다.

그 간단한 두 가지 동작만으로 모든 대답이 되었다.

“……너 달봉이 일찍 보고 싶어서 만나자고 한 거냐?”

“그래.”

“그리고 달봉이가 나만 좋아하니까 질투 나?”

“당연.”

“참 솔직하게 살아서 좋겠다.”

뭐가 이리 거침없어?

하여튼 이 고양이 덕후 같은 여자랑 말 섞어봤자 득 될 게 아무것도 없다.

“소원대로 달봉이 봤으니까 됐지? 나는 적당히 사람 없는 곳으로 가서 다운 타운으로 갈 테니까…….”

“아니.”

설열음이 내 말을 잘랐다.

난 당황해서 그녀에게 물었다.

“뭐가 아니야?”

“내가 데려다줄게. 인적 드문 장소. 뒤에 타.”

“혼자 간다니까.”

“내가 월권을 행사해서 널 다운 타운으로 가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어.”

그 말에 카시아스가 텔레파시를 보냈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해.]

[아…… 진짜 피곤해진다.]

[어서.]

[알았다, 알았어.]

나는 설열음의 뒤로 올라탔다.

그런데 설열음은 그런 내게 몸을 바짝 밀어 붙이는 게 아닌가?

“왜 이래?”

“…….”

설열음에게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체 이 행동이 무얼 의미하는 건지 한참 생각하던 난, 그것이 조금이라도 카시아스에게 닿기 위한 것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하아.”

진짜 답 안 나오는 여자다.

난 카시아시의 꼬리를 잡아 설열음의 목덜미를 간질여 주었다.

그러자 설열음의 전신이 환희에 찬 듯 부르르 떨렸다.

“출…… 발한다.”

말을 하는 설열음의 음성이 살짝 떨려왔다.

그러더니 부다다다다다! 하며 급출발했다.

난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쾅!

“윽!”

이 정신 나간 여자야!

뒤에 앉은 사람이 뭘 붙잡은 다음 출발해야 할 거 아냐!

* * *

우여곡절 끝에 설열음과 나는 인적 드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세 사람이 다운 타운으로 향할 수 있는 포털을 열었다.

난 아가리를 쩍 벌린 포털 속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머뭇거렸다.

그런 날 보며 설열음이 물었다.

“안 들어가?”

“이거…… 속 엄청 뒤집어지던데.”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아무것도 몰랐을 때야 씩씩하게 들어갔었지만, 한번 경험해 본 지금은 아무래도 망설여진다.

차라리 몸이 아픈 게 낫지, 속 뒤집어지는 건 정말 참기가 힘들다.

“빨리 들어가. 포털이 평생 저 상태로 유지되는 건 아니야.”

“나도 알아. 들어갈 거야.”

정말이지 들어가기 싫은 걸 억지로 참아가며 겨우 발을 움직였다.

뒤이어 설열음도 나를 따라 포털 안으로 들어섰다.

벌어져 있던 차원의 문이 빠르게 닫혔다.

이어 속이 울렁거렸다.

* * *

참으로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기분이다.

어떤 기분이냐고?

말 그대로 최악.

오장육부가 죄다 거꾸로 뒤집혀 처박힌 것 같다.

“으으윽.”

배를 움켜쥐고 비틀거리는 나와 달리 설열음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설열음이 정신 못 차리는 내 목덜미를 잡아챘다.

그 순간 닫혔던 차원의 문, 포털이 다시 열렸다.

설열음은 내 목덜미를 확 당겨 포털 밖으로 내몰았다.

그녀가 포털에서 나오고 난 뒤, 문은 다시 닫혔다.

“으으으.”

여전히 속이 울렁거려 괴로워하는 내 앞엔 익숙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발밑에 깔린 강철 바닥.

저 멀리 보이는 커다란 돔 형태의 건물, 콜로세움.

더불어 지하임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존재하는 하늘.

물론 저 하늘은 가짜다.

홀로그램이라는 기술로 사람의 눈을 속이는 것이라고 설열음이 말해줬었다.

데스 파이트는 바로 저 콜로세움에서 벌어진다.

데스 파이트에는 총 다섯 개의 출입구가 존재한다.

그중 네 개는 동서남북으로 나 있으며 관객들이 입장하는 문이다.

나처럼 데스 파이트에 출전하는 나이트들은 남동쪽 문인 헬 게이트를 이용해야 한다.

우리는 헬 게이트를 통해 콜로세움에 입장했다.

“이 문은 지나갈 때마다 기분이 영 찝찝하단 말야.”

그도 그럴 것이 헬 게이트는 그 후진 작명 센스처럼 쩍 벌어진 악마의 아가리처럼 디자인을 해놨기 때문이다.

헬 게이트를 지나가니 붉은 복도가 나타났다.

긴 복도의 양옆으로는 많은 방문이 있었다. 이제 설열음은 이 방들 중 한 곳을 내게 지정해 줄 것이다.

그곳이 바로 선수 대기실이 된다.

설열음은 긴 복도를 빠르게 걷다가 급히 멈춰 서더니 오른쪽 방문을 가리켰다.

방문엔 ‘나이트 어벤저’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어벤저라는 건 내가 데스 파이트에서 사용하는 가명이다.

“여기야. 그리고 이거.”

설열음은 닷을 건네주었다.

닷은 까만색 복점처럼 생긴 작은 다국어 통역기다.

난 그걸 넘겨받아 귀 안쪽에 붙였다.

“그럼 그만 가볼게. 룰은 다 알고 있지?”

“응.”

“그리고…… 달봉이는…….”

설열음이 애타는 시선을 달봉이…… 아니 카시아스에게 보냈다.

[어쩔 거야?]

내가 텔레파시로 묻자 카시아스가 대답했다.

[넘겨줘. 너랑 같이 있어봤자 꼼짝없이 대기실에 갇혀 있기밖에 더하겠냐.]

[그딴 거 마법으로 ‘짜잔’ 하고 탈출해 버리면 되는 거 아니야?]

[설열음에게 붙어 있으면 그녀가 상부층과 나누는 무전을 엿들을 수 있겠지. 거기서 다운 타운에 대한 정보를 캐낼 생각이다.]

[그래? 네가 그렇다면야, 뭐.]

난 카시아스의 목덜미를 잡아 설열음에게 내밀었다.

“가져가.”

순간 설열음의 볼에 살짝 홍조가 어렸다.

그녀는 카시아스를 넘겨받자마자 이제껏 보지 못했던 호감 어린 시선을 내게 던졌다.

“너…… 생각보다 괜찮은 애구나?”

“뭐?”

“조금은 좋아졌어, 너.”

“……뭐?”

“정보를 하나 줄게. 오늘 참가한 나이트는 총 열여섯 명이야. 그중 가장 조심해야 할 건 나이트 뉴클리어. 말 그대로 핵폭탄 같은 인간이지. 뉴클리어는 대진 번호 1번, 넌 16번이야. 아울러 뉴클리어는 무함마드에게 사주를 받고 이 대회에 출전했지. 뉴클리어가 널 죽이면 무함마드에게 어마어마한 돈을 받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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