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일리 히어로-133화 (133/153)

데일리 히어로 133화

그제야 난 골목에서 나왔다.

“휴, 이제 된 건가?”

상덕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울리기 무섭게 녀석이 전화를 받았다.

―어떻게 됐어?

“잘됐지.”

―그래? 그럼 이제 민지 데리고 가도 돼?

“응, 빨리 와. 최대한.”

―알았어! 당장 갈게!

일이 잘됐다는 말에 상덕이의 음성은 날아갈 듯했다.

* * *

삼십 분 정도가 흘렀다.

상덕이는 싱글벙글 신난 얼굴로 민지의 손을 잡고 나타났다.

“뭐가 그렇게 즐겁냐?”

“그게~ 오다가 돈 주웠거든.”

“돈? 얼마나?”

상덕이가 주머니에서 오백 원짜리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무려 오백 원!”

……아니 근데 이 새끼가…….

“나랑 장난하자는 거냐.”

“장난? 장난? 너 지금 오백 원 알기를 우습게 안다? 이런 게 하나하나 쌓이면 나중에 빌딩 살 자금이 되는 거야, 알아?”

“아니…… 그게 아니고 옆을 봐라.”

상덕이는 내가 시키는 대로 옆을 돌아봤다.

“옆? 아무것도 없는데.”

“거기서 시선을 조금 내려봐.”

이번에도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행동하는 상덕이.

“자, 내렸다. 뭐가 있…… 네?”

상덕이의 시야에 들어온 건 녀석의 손을 꼭 잡고 있는 민지였다.

“민지가 몇 살이냐.”

“주, 중 일이지.”

“그럼 네가 가다가 오백 원을 주웠을 때 그게 네 주머니로 들어가는 게 맞냐, 민지한테 주는 게 맞냐.”

“미, 민지한테 주는 게 맞지…….”

“어서 줘.”

“응.”

상덕이가 민지에게 오백 원을 건네주었다.

민지는 ‘감사합니다!’ 하고 밝게 인사하더니 그 돈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그런 민지의 머리를 상덕이가 쓰다듬었다.

“민지는 인사성도 참 밝다. 엄청 예뻐! 나도 민지 같은 동생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헤헤.”

조금 전까지는 혼자 보기 힘들다고 우는소리만 계속하던 놈이…… 하여튼 연구 대상이다.

난 민지에게 다가가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췄다.

“민지야.”

“네?”

“방금 오빠가 아버지를 만났어.”

“정말요?”

“응. 그런데 오빠가 아버지한테 이런저런 얘기할 필요도 없더라?”

“왜요?”

난 손으로 민지의 뒤쪽을 가리켰다.

민지는 내 손을 따라 시선을 돌려 저 멀리 골목길을 바라봤다.

“저~기서부터 아버지가 막 뛰어오더니.”

손을 움직여 집 앞을 가리켰다.

민지의 시선도 덩달아 움직였다.

“여기 문 앞에 서서 막 소리치더라. ‘아빠가 그동안 미안했다, 민지야! 아빠 이제 술 먹어도 괜찮아! 아무렇지 않아! 아빠가 얼른 엄마 찾아올게! 그러니까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 민지야!’ 하고. 그러더니 다시 왔던 길로 달려가셨어. 집에 민지가 있다고 생각했었나 봐.”

“아…….”

민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거짓말에 속은 것이긴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다.

민지가 내 손을 꼭 잡았다.

“정말 감사해요, 오들리 님. 감사해요.”

“감사 인사는 아빠가 온 다음에 해. 아빠 올 때까지 우리가 같이 기다려 줄게.”

“네!”

민지의 목소리가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밝아졌다.

* * *

상덕이와 함께 민지의 아빠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한 시간 정도가 흐르고 드디어 민지의 아빠가 민지 엄마의 손을 사이좋게 꼭 잡고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상덕아, 온다. 이제 빠지자.”

“빠져? 갑자기 어디에 빠져?”

“아니, 여기서 빠져 주자고.”

“왜? 일 잘 마무리되는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조금 떨어져서 지켜보면 되지! 민지랑 같이 서 있다가 민지 부모님이 댁들 누구요! 그러면 뭐라 대답할래?”

그제야 상덕이는 자기 머리를 탁 쳤다.

“아, 그러네!”

“으이구, 화상아. 얼른 가자.”

나와 상덕이는 민지에게서 떨어져 좁은 골목 뒤에 숨었다.

그러고는 고개만 빼꼼 내밀어 상황을 살폈다.

“근데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으면 무슨 얘기 하는지 들을 수가 없잖아?”

상덕이가 투덜댔다.

하지만 그건 상덕이의 얘기다.

나는 민지 가족의 대화를 충분히 엿들을 수 있었다.

“아빠, 엄마~!”

민지가 소리치며 부모님에게 달려갔다.

그러자 민지 아버지가 민지를 품에 꼭 안아주었다.

“우리 민지 밖에서 아빠 기다리고 있었어?”

“네!”

“집에 들어가 있지 않고.”

아버지의 품에 안겨 훌쩍이던 민지가 슬쩍 어머니를 바라봤다.

민지 어머니는 환히 미소 지으며 팔을 활짝 펼쳤다.

민지가 그런 어머니에게 와락 안겨들었다.

“엄마~! 어디 갔었어요! 흐아아아아앙!”

“미안. 미안해, 민지야.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두 번 다시 엄마, 민지 놔두고 어디 가지 않을게.”

민지 어머니도 민지를 안고서 펑펑 울었다.

민지 아버지가 두 사람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여보. 민지야. 지금까지 내가 정말 잘못했어. 미안했어. 이제는 술 마셔도 절대 예전처럼 못된 짓 하지 않겠다고 약속할게. 민지야, 아빠 정말 정신 차렸어. 지금도 술 이렇게 많이 먹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잖아.”

“그래, 민지야. 아빠 정말 많이 변했더라.”

민지 어머니가 아버지의 말을 거들었다.

민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정말요?”

“응~ 처음에 아빠가 엄마 찾으러 왔을 때는 너무 놀랐었어. 술 냄새가 심하게 났거든. 그런데…… 술 냄새는 나는데 이상하게 멀쩡해 보이더라. 그런데 아빠가 이제 아무리 술을 먹어도 전처럼 나쁜 짓 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지 뭐야. 술도 자주 안 마실 거래. 앞으로는 민지랑 엄마 위해서 열심히 일할 거라고 했어. 우리 가족 지켜줄 거라고 약속했어.”

“흐윽! 엄마~! 아빠아아아아!”

민지네 가족은 서로를 끌어안고 한참 동안 울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내 코끝도 찡해졌다.

그때였다.

띠링!

―술만 먹으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아빠 때문에 힘들어하던 민지네 가족을 도와주었네요~ 이제 민지네 가족은 다른 어떤 가족들보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예요! 선행을 쌓아 4링크가 주어집니다.

어라?

4링크?

왜 4링크나 주는 거지?

내가 선행을 했을 때 주어지는 링크의 기준은 도움을 바라는 사람의 수와 비례한다.

그런데 난 민지네 가족을 도왔다.

민지네 가족은 총 세 명이니 많이 받아야 3링크를 받아야 맞다.

‘뭐지?’

곰곰이 생각하던 내 머릿속에 잠깐 잊고 있었던 한 명의 얼굴이 더 떠올랐다.

‘아…… 민지네 할아버지.’

민지네 할아버지는 이 동네로 이사 왔고, 민지의 엄마와 함께 생활을 하고 있었다.

민지네 아버지가 그런 민지네 할아버지 댁으로 가서 바뀐 모습을 보이며 민지 어머니를 데려왔으니, 민지 할아버지도 분명 안도했을 테지.

그래서 1링크가 추가되어 4링크를 얻게 된 모양이다.

“됐다, 상덕아. 이제 가자.”

“어? 됐어?”

“보면 모르냐. 충분히 해결됐어. 가면 돼.”

“영상은?”

“이번 것도 찍지 마.”

“너 요새…… 찍지 말라는 영상이 너무 많아진다? 이렇게 하다가 망하는 거 아니야?”

“우리가 안 찍어도 다른 직원분들이 충분히 잘 찍어서 올려주고 있으니 괜찮아.”

“흠…… 그렇긴 하지만. 에라, 모르겠다. 일 덜 하면 나야 좋지 뭐.”

“가자.”

“그래, 가자. 배고프다.”

“민지랑 영화 끝나고 뭐 안 먹었어?”

“먹었는데, 긴장 풀리니까 또 배고프다. 밥 좀 사주라.”

“……알았다, 웬수야.”

그렇게 난 최면의 힘으로 또 하나의 의뢰를 마무리 지었다.

다시 다운 타운으로

춘천으로 돌아오니 자정이 다 되어 있었다.

상덕이와 헤어져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들은 전부 잠에 빠져 있었다.

내 방에 들어서자마자 씻지도 않고 이불에 몸을 던졌다.

“흐아아, 좋다. 집이 최고지.”

오늘 의뢰는 최면술이 없었다면 해결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절한 시기에 최면 기술을 얻을 수 있었고, 의뢰를 수월히 해결하게 되었다.

가만히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잠이 솔솔 쏟아졌다.

‘씻어야 하는데…….’

머릿속에서 그렇게 외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오늘 하루 정도는 씻지 않고 그냥 자도 괜찮지 않겠어?’

스스로 위로를 하는데, 불현듯 오래전 이랑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형, 화장품 같은 거 안 발라요? 요새는 남자도 피부 관리해야 돼요. 씻고 나면 기능에 따라 제품 발라주고, 나갔다 돌아오면 클렌징으로 꼭 지워주고. 안 그러면 공기가 하도 더러워서 피부 다 썩어요. 동안 얼굴 유지하고 싶음, 꼭 그렇게 해요. 화장품 바르기 귀찮으면 외출한 뒤에 씻기라도 잘해야 돼요.’

그 말이 떠오르는 것까진 괜찮았다.

그런데 동시에 아랑이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아랑이는 나이에 비하자면 엄청난 동안이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어느 순간 화장실에 와 있었다.

옷을 훌훌 벗어 세탁기에 넣고 샤워를 했다. 따뜻한 물에 몸을 적신 뒤, 바디 워시로 구석구석을 깨끗이 씻어냈다.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 이까지 박박 닦은 후에 수건 한 장을 허리에 둘렀다.

겉옷과 속옷을 모두 세탁기에 넣어 버려서 걸칠 게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후다닥 화장실에서 나와 내 방으로 들어와 문을 잠갔다.

그런데.

“보기 흉하군.”

“헉!”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언제 들어왔는지 카시아스가 내 방 의자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사람의 모습이었다.

“너…… 뭐야? 왜 왔어?”

“옷부터 입지?”

“아!”

난 황급히 속옷과 옷을 찾아 꺼냈다.

카시아스는 그런 날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

“뭐가?”

“나 옷 입을 거야.”

“그런데?”

“보겠다고?”

“성적 흥분 같은 건 조금도 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라.”

“내가 싫다고.”

“그래서?”

……깜빡 했다.

말이 통하는 인간이 아니었지.

난 카시아스의 뒤로 돌아가서 얼른 옷을 입었다.

다행히 카시아스는 고개를 돌리는 얄궂은 짓은 하지 않았다.

“갑자기 왜 온 거야?”

“손님이 찾아오면 차라도 먼저 내오는 게 예의 아닌가?”

“우리가 예의 차릴 사이냐. 찾아온 목적이나 말해.”

“오늘 설열음 만났지?”

“……또 미행했냐.”

“남의 취미 생활에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

대체 어떻게 생활하면 미행이 취미가 되는 건데?

어쨌든 그렇다면 날 찾아온 이유는 이걸로 확실해졌네.

“다운 타운 얘기하러 온 거지?”

“맞아.”

“네가 굳이 이렇게 조바심 내서 찾아오지 않아도 될 일이었어. 가기로 마음먹었으니까.”

“왜 생각이 바뀐 거지?”

“네가 계속 보챘던 것도 있고…….”

내가 말끝을 흐리자 카시아스가 재촉해 물었다.

“그리고?”

“그리고…… 어떤 놈이 날 좀 보고 싶다 그래서, 제대로 보여주려고.”

“또 추천받은 건가?”

“추천이라기 보단 초대의 개념이겠지. 저번 데스 파이트에서 이랑이를 노예로 사들이려 했던 귀족 기억나?”

“얼굴은. 이름은 몰라.”

“이름이 무함마드라더라. 그 인간이 날 초대했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