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132화
그런데…… 그는, 아니 그녀는.
“오래간만이네.”
다름 아닌 다운 타운의 커플러 설열음이었다.
“설열음?”
“잘 지냈지?”
“네가 왜…….”
설열음이 예의 그 무감정한 시선으로 날 바라보다가 툭 던지듯이 말했다.
“너 추천당했거든.”
“뭐?”
“누군가가 너를 데스 파이트에 추천했다고.”
갑자기 머리가 멍해졌다.
최면의 힘
설열음을 몇 번 보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한결같은 면이 있었다.
항상 사람을 당황시킨다는 것.
블랙 바이크를 타고 내 앞에 나타난 그녀는 예의 그 차가운 시선으로 날 바라보았다.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추천당했다고?”
“응.”
음성에서 차가움이 뚝뚝 떨어진다.
시크하기로 따지자면 카시아스 저리 가라 할 정도다.
아무튼 누군가 날 다운 타운의 데스 파이트에 추천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한데……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추천이라는 건 추천당하는 당사자가 다운 타운에 한 번도 발을 들인 적 없을 때 가능한 거 아니야? 난 이미 다운 타운에 갔다 왔잖아? 너한테 받은 포털도 집에 있는데.”
설열음은 내게 육각형 모양의 얇은 펜던트를 건네줬었다.
그것의 이름이 포털이다.
다운 타운으로 향하는 차원의 문을 여는 도구였다.
언제든 내가 다운 타운으로 가고 싶으면 이 포털을 이용하면 되는 일이다.
굳이 누군가의 추천을 받을 필요는 없었다.
내 물음에 설열음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애초에 다운 타운에 가고말고는 순전히 네 의지야. 처음 무천도사가 널 추천했을 때도, 다운 타운에 가겠다고 나선 건 너였으니까. 가기 싫으면 무시해. 그걸로 끝.”
“그러니까 추천은 언제든 받을 수 있다는 얘기야?”
“응. 하지만 이번 추천은 경우가 좀 달라. 저번의 추천은 너를 다운 타운에 인도하기 위한 거였고, 이번은 개인적으로 네가 데스 파이트에 꼭 참가하길 바라는 사람이 추천한 거야. 초대의 개념으로 보는 게 더 옳겠지.”
“그게 누군데?”
“귀족 무함마드.”
“무함마드?”
“이랑이를 노예로 사들이려던 사람.”
기억난다.
내가 세이브 카드로 노예가 될 뻔한 이랑이를 구했을 때, 관중석에 있던 귀족들 중 터번을 쓴 아랍계 콧수염 중년 사내가 고함을 질러댔었다.
‘젠장! 저 빌어먹을 새끼! 감히 내 노예를 해방시켜?!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
그 녀석이군.
“이랑이를 노예로 데려가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내가 무너지는 꼴을 보고 싶다 이건가?”
“그런 셈.”
흠…… 그냥 홧김에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뒤끝이 장난 아니군.
하지만 설열음이 말했듯이 내가 굳이 데스 파이트에 참석해야 할 이유는 없다.
거절하면 그만이다.
한데 자꾸만 카시아스가 걸린다.
틈만 나면 다운 타운에 꼭 다시 가보자고 애걸복걸하지 않았던가.
“어떻게 할 거야?”
설열음이 물었다.
난 고민하다가 갑자기 든 위화감에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언제부터 나한테 반말했어?”
이 여자, 원래 꼬박꼬박 존댓말을 사용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짜고짜 반말을 해대고 있었다.
“방금 전부터.”
설열음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난 말 놓으라고 한 적 없는데?”
“나 역시 말 놓으라고 한 적 없지만, 네가 먼저 말을 놓았잖아. 저번에. 그래서 나도 놓기로 했어.”
“의외로 꽁하는 구석이 있네. 그런 건 전혀 개의치 않는 줄 알았더니.”
“그냥 이편이 나도 편하니까. 불편하면 다시 존댓말 써드릴까요?”
“됐어. 나도 그게 편해.”
“그래서 대답은?”
“언제까지 결정해야 돼?”
“내일 아침까지. 데스 파이트는 내일 오후 한 시에 개막해.”
“알았어. 그때까지 결정할게.”
“샵(#) 일곱 번 누르고 신호음 가면 끊어. 그럼 데스 파이트 주최 측에서 다시 전화가 올 거야. 그때 참여 의사 말한 뒤 포털로 넘어오면 돼.”
“설명 안 해도 알아.”
“그래, 그럼 가볼게.”
설열음은 내 앞에 갑자기 나타났을 때처럼, 미련 없이 떠났다.
부다다다다다!
바이크를 타고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쿨내가 풀풀 풍긴다.
“다운 타운이라…….”
가봐야 하나 싶었다.
카시아스가 계속 가고 싶어 하던 와중,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다.
어쩌면 이건 다운 타운에 가라는 하늘의 계시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도 다운 타운에 완전히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지구 지하에 그런 이상한 세상이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있는데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리가 없다.
다만 다운 타운에 대한 기억들이 워낙 거지 같아서 거부하고 있는 것뿐이다.
아무튼 지금은 그 생각을 접고 의뢰에 집중해야 한다.
올해 중학교 1학년생인 민지는 아빠의 가정 폭력에 집을 나간 엄마를 찾아주고, 아빠 역시 더 이상 폭력을 쓰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우선 집 나간 엄마의 소재는 파악했다.
민지의 엄마는 집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의 단독주택에 세 들어 사는 그녀의 친부와 함께 있다.
사이코메트리로 그녀가 있는 곳을 알아낸 뒤 직접 찾아가 두 눈으로 확인까지 했다.
이제 남은 건 민지의 아버지가 직접 민지 어머니를 데려오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려면 민지 아버지를 만나야 하는데, 어제 술 마시러 나갔다던 민지 아버지는 아직도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민지는 현재 상덕이가 데리고서 함께 놀아주는 중이다.
나는 민지의 집 앞에서 언제 올지 모를 민지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만 흘렀다.
띠링!
스마트폰의 메시지 앱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상덕이였다.
―아버지 만났냐?
―아니, 아직.
―뭐? 여태 그러고 있으면 어떡해!
―그럼 아버지가 오지 않는 걸 어쩌냐 인마.
―무슨 수를 내! 민지랑 또 뭐하면서 놀아줘야 할지 모르겠단 말야!
―대충 알아서 잘 놀아줘. 어디 근처 공원 같은 데라도 데리고 가든가.
―곧 해 떨어져.
―그럼 밥이라도 먹어.
―이런 무책임한 놈.
그때였다.
코가 붉게 물든 40대 정도의 남성이 터덜터덜 걸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퀭한 눈으로 날 노려봤다.
“뭐냐?”
“네?”
“너 뭐하는 놈인데 남의 집 문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냐고!”
말할 때마다 술 냄새가 팍팍 풍기는데 거하게 한 잔 걸친 모양이다.
“혹시 민지 아버님 되십니까?”
“네가 내 딸 이름을 어떻게 알아?”
역시나.
민지 아버지는 살짝 당황하더니 이내 미간을 와락 구겼다.
그리고 내 멱을 두 손으로 틀어쥐었다.
“너 누구야! 내 딸이랑 무슨 사이야! 엉!”
술에 취하면 폭력적으로 변한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민지 아버님, 안녕하세요. 저는 오들리라고 합니다.”
“뭐? 오들리? 이름이 뭐 그따위야? 그리고 이거…… 얼굴인 줄 알았더니 가면이네?”
가면 쓴 걸 이제야 알아채다니, 취해도 된통 취했나 보다.
“야, 가면 벗어봐. 어서 벗어봐!”
민지 아버지가 거칠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은 내 가면에 닿기 전, 강제로 멈춰졌다.
내가 민지 아버지의 손목을 틀어쥔 것이다.
“어쭈? 어린놈의 새끼가 어른이 훈계하는데 싸가지 없이 팔을 잡아!”
하아, 안 되겠다.
상황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일을 처리해야지.
마침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난 민지 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보며 캐러반의 능력 최면을 시전했다.
“최면.”
그러자 민지 아버지의 눈동자에서 초점이 사라졌다.
캐러반의 능력은 정확히 말하자면 ‘절대최면’이다.
성향에 따라 최면에 잘 빠지는 사람이 있고 아예 빠지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캐러반은 누구든 자신의 최면에 빠져들게끔 만들 수 있었다.
그것이 절대최면이었다.
지금처럼 술에 잔뜩 절어 버린 민지 아버지 역시 절대최면의 힘을 거부할 순 없었다.
동공이 풀린 민지 아버지는 그 자리에 석상처럼 굳어 버려 입을 헤 벌렸다.
난 그의 의식이 정지되며 동시에 활짝 열리는 것을 느꼈다.
그 안으로 내 의식이 파고들어 갔다.
난 최대한 깊은 곳까지 의식을 밀어 넣은 뒤, 내가 그에게 원하는 것들을 각인시켰다.
“민지 아버지. 민지 아버지는 사실 선하고 좋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삶이 힘들어 술을 마시게 되면 그동안 참았던 울분이 튀어나올 뿐이죠. 그러나 민지 아버지는 지금부터 강한 사람이 됩니다. 하루하루 더 열심히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게 될 겁니다. 술을 마셔도 울분이 터지지 않습니다. 그걸 컨트롤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어른스러운 사람이니까요. 물론 힘든 삶 속에서 희망찬 내일을 바라보는 마음가짐도 한몫하겠죠. 민지 아버지의 본성은 가족을 사랑하는 멋진 가장입니다. 앞으로 민지 아버지는 언제 어느 때든 그런 멋진 가장의 모습으로 살며, 힘든 시기를 잘 이겨 나갈 겁니다. 나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가족을 지키고 존중해 주는 사람. 그게 민지 아버지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들을 말할 때마다 민지 아버지의 의식 속에 내 의지가 침투했다.
침투한 의지는 민지 아버지의 의식을 건드려 놓았다.
그 전까지 깊이 박혀 있는 약해 빠진 의지들을 모두 없애고 강인한 의지를 박아 넣었다.
“민지 아버지는 지금까지의 삶을 진정으로 후회하고 반성했습니다. 그래서 새로 거듭난 겁니다. 민지 아버지는 민지 어머니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민지 어머니가 숨어 사는 친정집은 굳이 말로 알려주지 않아도 되었다.
내 의식은 그 저택의 위치까지 전부 머릿속으로 직접 전해주었다.
“민지 어머니는 지금 동네 근처로 이사 온 친정아버지와 함께 있습니다. 물론 이건 제가 가르쳐 드린 게 아닙니다. 며칠 전부터 민지 아버지는 민지 어머니를 찾기 시작했고, 우연찮게 발견하게 된 것이죠. 아울러 민지는 지금 집에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민지는 아버지한테 얼른 엄마를 모시고 오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민지 아버지는 당장 민지 어머니를 찾아가게 될 것입니다. 물론 술을 많이 마셨지요. 그러나 주사도, 흐트러진 모습도 보이지 않을 겁니다. 민지 아버지는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으니까요.”
필요한 일을 모두 마친 내 의식은 민지 아버지의 의식 속에서 빠져나왔다.
난 한 손을 올려 민지 아버지의 눈앞에 두고 말했다.
“이제 제가 셋을 세고 손을 튕기면 민지 아버지는 이전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겁니다. 자, 하나, 둘, 셋.”
딱!
손가락을 튕기자 민지 아버지의 눈동자에 초점이 다시 돌아왔다.
그 순간 난 빠르게 달려 멀찍이 떨어진 골목 귀퉁이에 몸을 숨겼다.
민지 아버지는 정신이 없는지 머리를 휘휘 젓다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눈을 크게 떴다.
“그래…… 민지 엄마. 민지 엄마 데리러 가야지!”
민지 아버지가 닫혀 있는 집 문을 향해 소리쳤다.
“민지야! 아빠가 얼른 엄마 데려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알았지!”
민지 아버지는 후다닥 달려 민지 어머니가 있는 저택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