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130화
결국 또 저 녀석의 상술에 항복 선언을 하는 건 나였다.
“알았다, 알았어. 9,000링크 영혼 다 줘.”
내 말에 라헬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라헬은 세 개의 영혼을 내게 밀었다.
영혼들이 허공을 부유해서 다가와 내 몸 안에 스며들었다.
“27,000링크 잘 받았습니다~! 총 55,000링크를 지불하셨으니 이제 남은 건…… 9,000링크 정도네요?”
라헬이 갑자기 박수를 쳤다.
짝짝짝짝짝!
“다시 거지가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호갱님!”
“뭐? 호갱니임?”
“아휴, 진짜 영혼 팔아먹기 힘드네요. 피곤해 죽겠으니까 그만 가주세요.”
“나도 이런 취급 받으면서 더 있기 싫다. 간다.”
“가든가 말든가 관심 없지만 예의상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는 드릴게요.”
그러고서 라헬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하아, 울화통 터져.
가정 폭력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일단은 새로 얻은 능력들을 확인해 볼까?
“마인드 탭.”
이름 : 유지웅
소속 : 지구, 대한민국
성별 : 남
나이 : 20
영력 : 35/35
영매 : 33
아티팩트 소켓 4/4
보유 링크 : 10,034
그새 링크가 더 적립돼서 10,000링크를 넘겼다.
링크가 조금 더 쌓이면 다시 소울 커넥트에 접속해서 11,000링크짜리 영혼들의 능력을 들어볼까 하다가 그만뒀다.
분명 라헬은 거지가 찾아왔다고 조롱할 게 뻔할 테니까.
난 영매 탭을 터치했다.
팅―
맑은 소리와 함께 내 앞에 지금까지 사들인 영혼의 능력이 쫙 펼쳐졌다.
영매
패시브 소울 : 17
―강인한 육신[소라스]
―뛰어난 청력[파펠]
―뛰어난 자가 치유력[라모나]
―남성을 유혹[아르마](침묵)
―완벽한 절대미각[리조네]
―뛰어난 요리 실력[마르펭]
―뛰어난 민첩성, 근력[바레지나트]
―아이언 스킨[지그문트]
―굉장한 창술[블랑]
―굉장한 궁술[쟈비아]
―굉장한 리더십[길버트]
―포이즌[루카스]
―애니멀 링크[카인]
―완벽한 민첩성[벨로아]
―염력[시다스]
―육체 재생[아치]
―음속 이동[커즐]
액티브 소울 : 16
―낭아권[무타진/소모 영력 1/재충전 5초]
―화 속성 초급 마법 번(Burn)[마르카스/소모 영력 5초당 1]
―수 속성 초급 마법 아쿠아(Aqua)[레퓌른/소모 영력 5초당 1]
―천상의 목소리[로레인/소모 영력 5초당 1]
―뇌 속성 중급 마법 라이트(Light)[포포리/소모 영력 3초당 1]
―화 속성 중급 마법 파이어(Fire)[파멜라지나/소모 영력 3초당 1]
―지 속성 중급 마법 더트(Dirt)[제피엘/소모 영력 3초당 1]
―투시[잘루스/소모 영력 1초당 1]
―타임 리와인드[샹체/소모 영력 10/1일 3회 제한]
―섀도우 워커[크라임/소모 영력 3초당 1]
―투명화[루/소모 영력 3초당 1]
―검기[제서스/소모 영력 1초당 1]
―최면[캐러반/소모 영력 없음/30일 1회 제한]
―수 속성 중급 마법[아틸리/소모 영력 3초당 1]
―중력 제어[요마르/소모 영력 1초당 1]
―사이코메트리[씰/소모 영력 없음/1일 1회 제한]
흠.
염력, 육체 재생, 음속 이동은 패시브 스킬이네.
나머지는 전부 액티브 스킬이고.
그런데 최면과 사이코메트리는 소모 영력이 없잖아?
대신 최면은 한 달에 한 번, 사이코메트리는 하루에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다 이거지?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나는 마인드 탭을 닫았다.
이제 내가 모은 영혼의 수는 서른셋.
앞으로 스물일곱 개의 영혼만 더 모으면 된다.
링크가 빠르게 불어날수록 영혼을 모으는 속도도 비례해서 빨라졌다.
데일리 히어로 사이트를 세우길 정말 잘했지.
안 그랬다면 지금도 링크 하나 모으려고 여기저기 선행을 베풀며 애들 코 묻은 돈 뺏는 것마냥 적은 링크만 적립했을 것이다.
“그럼 의뢰 게시판이나 들어가 볼까.”
지금 시간은 오전 여섯 시.
아직 우리 가족은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시간이다.
여섯 시 반쯤 되어야 엄마와 누나가 일어난다.
엄마는 아침밥을, 누나는 회사 나갈 준비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난 스마트폰으로 데일리 히어로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런데 새로운 쪽지 하나가 와 있었다.
이 사이트에선 아무나 내게 쪽지를 보내지 못한다.
내가 먼저 쪽지를 보낸 의뢰인들만 답 쪽지를 보낼 수 있다.
어떤 의뢰인이 답 쪽지를 보낸 걸까?
쪽지를 확인해 봤다.
그런데 쪽지를 보낸 이는 바로 가정 폭력에 시달린다는 그 의뢰인이었다.
“엄청 늦게 보내네.”
난 의뢰인이 데일이 히어로 사이트를 완전히 잊어버린 줄 알았다.
그래서 그 의뢰도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한데 이제야 답 쪽지가 들어온 것이다.
쪽지를 확인한 난 의뢰인과 연락을 취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음성은 상당히 앳되었다.
잠깐 잊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의뢰인은 중학교 1학년생이었다.
‘앳된 게 당연하지.’
의뢰인의 이름은 이민지.
속초에 살고 있고, 자기 스마트폰이 없어서 친구 스마트폰 번호를 내게 알려준 것이었다.
해서 답 쪽지를 왜 이렇게 늦게 보냈냐고 했더니, 집에 컴퓨터가 없어서 사이트 접속하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지금처럼 친구 스마트폰을 빌려서 접속하지 그랬냐고 물으니, 사실은 고민 글을 올리고 정말 들어줄 수 있을까 싶어 별 기대 안 했었다고 말했다.
즉, 반신반의하며 의뢰 글을 올려놓고 잊어버린 것이다.
그러다 오늘 다시 생각나서 접속한 것이겠지.
어찌 되었든 난 민지와 오늘 오후 만날 약속을 잡고 통화를 끝마쳤다.
민지에겐 연락 수단이 없으니 어디서 몇 시에 만날 건지 확실하게 정해놓아야 했다.
민지와 나는 한 시에 속초 터미널에서 보기로 했다.
난 얼른 집을 나와 상덕이와 연락을 한 뒤 춘천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 * *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먼저 나와 있던 상덕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이 형님이 먼저 나와서 널 기다려야겠냐?”
“까분다, 또. 표 끊어야지.”
그러자 상덕이가 주머니에서 속초행 버스 티켓 두 장을 꺼내 들었다.
“이미 그것도 형님이 다 준비했지.”
“웬일이냐? 네 돈을 다 쓰고.”
“내가 널 그만큼 생각하고 아끼니까 피 같은 돈을 쓸 수 있는 거지. 암~”
아무래도 이 자식이 나한테 뭔가 바라는 게 있는 것 같은데.
“그냥 사실대로 얘기해라. 뭐 때문에 이래?”
상덕이는 속내를 들켰는지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나 월급 언제 오르냐?”
그럼 그렇지. 뭐 빼먹고 싶은 게 있으니까 지 돈을 쓴 거지.
그렇지 않고서는 십 원짜리 하나 내놓지 않을 놈이다.
“이제 회사 제대로 법인 등록하면 네 월급도 올려줄 거야.”
상덕이가 눈을 크게 떴다.
“어, 얼마나 올려줄 건데?”
“백이십.”
“백이십?”
상덕이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다.
“무려 사십만 원이나 올려주는 거야?”
“그럼! 우리 회사 엘리트 직원인데 당연하지!”
난 가슴을 탕탕 두들겼다.
그러나 상덕이가 만세를 불렀다.
“야호! 나도 이제 제대로 된 사회 초년생이다!”
한데 상덕이의 목소리가 워낙 커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일제히 우리를 쳐다봤다.
하나같이 상덕이를 이상한 시선으로 보거나 키득거리며 비웃었다.
하여튼 이 자식은 부끄러운 걸 몰라.
“야…… 빨리 버스나 타자.”
이 자리를 뜨고 보는 게 상책이겠다.
* * *
춘천에서 속초까지는 버스를 타고 두 시간 십 분 정도 걸린다.
우리는 아홉 시 반 버스를 탔다.
길은 막히지 않았고, 속초에 도착하니 열한 시 사십 분이 조금 못 되는 시간이었다.
한 시까지 여유가 있었기에 속초터미널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그래도 한 시간이 남았다.
상덕이와 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다가 약속 시간 십 분 전쯤 다시 터미널로 돌아왔다.
민지와 나는 속초 터미널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한 한 시 정각이 되었을 때 교복을 입은 소녀 한 명이 터미널 입구로 다가왔다.
까맣고 낡은 가방을 멘 소녀는 터미널 입구에 서서 나가는 사람들을 열심히 살폈다.
소녀의 얼굴은 상당히 불안하고 우울해 보였다.
본바탕이 못생긴 외모는 아니었다.
오히려 예쁜 편이었다.
그런데 미소가 사라지고 온갖 마이너스적인 감정들만 뿜어내고 있으니 예쁜 얼굴이 묻히는 케이스였다.
‘쟤가 민지구나.’
나와 상덕이는 소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네가 민지니?”
그러자 민지가 우리를 보며 화들짝 놀라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오…… 오들리 님?”
“그래, 오들리야. 가면 쓰고 있어서 놀랐지?”
“조금요.”
“내 신분을 밝힐 수 없어서 그러는 거니까, 이해해 줘.”
“아…… 네.”
“그럼 민지야. 너희 집에 가기 전에 잠깐 얘기 좀 할까?”
“네.”
“밥은 먹었니?”
“머, 먹었어요.”
민지는 먹었다고 했지만 민지의 뱃속에서는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꾸르르르륵!
“앗!”
민지가 뺨을 붉히며 배를 확 감싸 안았다.
그 모습이 제법 귀여웠다.
“민지야. 밥 먹으러 가자. 마침 우리도 아직 식사 안 했거든.”
“엥? 너 단기 기억상실증 걸렸…….”
아, 이런 눈치 밥 말아 먹은 새끼!
난 상덕이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살짝 쳤다.
퍽!
“컥!”
상덕이가 옆구리를 움켜쥐고 바들바들 떨었다.
민지가 놀란 눈으로 그런 상덕이를 바라봤다.
“그럼 밥 먹으러 가자, 민지야.”
“아니, 괜찮은데…….”
“어서. 나 배고파 죽겠어.”
난 망설이는 민지를 반강제로 끌고 식당으로 향했다.
* * *
민지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근처의 돈가스집으로 데려왔다.
물론 돈가스집이니만큼 주문은 돈가스로 통일.
상덕이는 어제부터 속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며 식사를 주문하지 않았다.
결국 돈가스는 나와 민지만 먹게 되었다.
사실 나도 배가 부르긴 하지만 민지를 위해서 이 정도 연기쯤은 아무렇지 않게 해줄 수 있다.
식사를 마치고 입가심으로 음료수를 마시며 민지와 조금 깊은 얘기를 나누었다.
“엄마는 언제 나가신 거야?”
“보름 전에요.”
“엄마가 자주 가시던 곳은 찾아봤어?”
“딱히 자주 가는 곳은 없었어요. 그냥 낮에 마트에서 일하시고 저녁이면 집에 들어오셨어요.”
“마트에는 가봤니?”
“네. 근데 일 그만두겠다는 얘기도 없이 안 나오셨대요.”
“외가 쪽 사람들은 어디에 사니?”
“순천에 계셔요.”
“그분들은 엄마가 아빠 때문에 힘들어했다는 거 아시니?”
“모르겠어요. 엄마는 외가 쪽이랑 연락을 거의 안 하셨거든요. 아빠랑 결혼한다고 했을 때 반대가 심했대요. 그래서 거의 연 끊다시피 하고 나와서 아빠랑 결혼한 거래요.”
“그랬구나.”
아무래도 민지에게선 엄마의 행방을 알아내기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난 다른 걸 물어보았다.
“아버지는 그럼 무슨 일 하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