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129화
“이 영혼의 이름은 캐러반. 능력은 최면술이랍니다.”
“최면술? 그것도 특이한 능력이네.”
“캐러반의 최면술은 절대최면이지요. 사람들은 성향에 따라 최면에 잘 걸리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 법일진대 캐러반의 최면엔 빠져들지 않는 사람이 없었답니다.”
“캐러반도 그 능력으로 잘 먹고살았어?”
“물욕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던지라 그냥저냥 살았더랬죠. 하지만 늘 그렇듯 사람을 망치는 건 사랑인지라, 캐러반도 한눈에 반한 여인 때문에 인생이 무너지게 되었죠.”
“왜?”
“지독한 짝사랑이었거든요. 캐러반이 사랑했던 여인은 약혼자가 있었고 캐러반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죠. 그도 그럴 것이 캐러반은 좀 많이 못생긴 편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캐러반은 그녀를 가지고 싶었고, 결국 해서는 안 되는 짓을 벌이고 말았답니다.”
대충 어떤 스토리가 나올지 짐작이 된다.
“그 여인에게 최면을 걸었군.”
“역시 지웅 님께서는 영특하기 그지없으시네요. 그걸 한 번에 때려 맞추시다니요.”
……영특하다면서 때려 맞췄다고 하는 건 뭐야?
칭찬이야, 욕이야?
이 자식이 링크 많이 들고 와서 무조건 굽실거리는 줄 알았더니 은근히 엿 먹이네?
“캐러반은 여인에게 최면을 걸어 약혼자와의 사이를 억지로 정리하게 만들었죠. 그리고 자신의 여자로 만들었답니다. 처음에는 그게 좋았더랬죠. 하나 시간이 갈수록 여인의 사랑이 최면에 걸려 흉내만 내는 거짓임을 뼈저리게 느꼈답니다. 결국 캐러반은 자신이 저지른 짓에 환멸을 느껴 괴로워하다가 자결하고 말죠.”
“불행한 인생이네.”
라헬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다음 영혼에 대해 설명했다.
“이 영혼의 이름은 아틸리. 여인이었답니다. 영혼의 능력은 수 속성 중급 마법 웨이브(Wave)랍니다.”
“마법사였나 보네.”
“맞아요. 마법사였죠. 아틸리는 그럭저럭 괜찮은 남작가의 영애였답니다. 어렸을 때부터 마나를 느꼈던 아틸리는 일찌감치 마법사들이 모여 사는 빛의 탑에 들어가 마법을 배우게 되었죠. 그러다 성인이 되는 날 빛의 탑을 나와 왕실마법사 시험에 응시해 당당히 합격! 왕실마법사가 되었답니다. 하지만 그녀는 왕국에 내란이 터졌을 때, 왕실을 넘보던 공작가와 싸우다 죽음을 맞고 말았다죠.”
“그래? 전쟁에 휘말려 죽었다면 다른 이들보다는 좀 덜 억울한 죽음 아닌가?”
내가 여태껏 라헬에게 들었던 영혼들의 열전을 보자면 하나같이 어마어마하게 불행했었다.
때문에 그들과 비교했을 때 아틸리의 인생이 그렇게 불행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라헬은 고개를 저었다.
“누구나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답니다. 아틸리 역시 마찬가지였죠. 이렇게 전쟁에서 죽기 위해 왕실마법사가 된 게 아닌데! 더욱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왕실마법사가 된 건데! 그게 너무 분하고 억울했던 거랍니다.”
아…… 듣고 보니 그렇겠다.
조금 전에 내가 했던 생각은 지극히 내 개인적 기준에서 판단했을 때나 적당하다.
라헬의 말대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인생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는 법이니까.
물론 그게 절대적인 법칙 같은 건 아니다만, 대부분이 그렇다.
“마지막 네 번째 영혼의 이름은 아치.”
이름이 꼭 욕 같네.
“능력은 재생.”
“재생…… 은 뭐야?”
“말 그대로 재생입니다~ 아치는 자신의 몸 일부가 잘려도 다시 재생할 수 있었죠.”
“내가 지금까지 들었던 능력 중에 가장 쇼킹한데?”
“아치의 별명이 뭐였는지 아십니까?”
“뭔데?”
“도마뱀이었답니다. 아치는 재생하는 것 말고 별다른 능력이 없었지요. 그래서 강도나 깡패들에게 여러 번 목숨을 빼앗길 뻔했답니다. 그럴 때마다 아치는 미친 척하고 자신의 팔을 뜯어 버린다거나, 손가락을 씹어 먹으며 실실 웃는다거나 해서 위기를 모면했지요. 하지만 빠져 버린 팔도, 씹어 먹은 손가락도 한 시간만 지나면 다시 재생이 되었지요. 그래서 아치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도마뱀이라고 불렀답니다.”
진짜 도마뱀 같은 인간이네.
도마뱀은 포식자에게 꼬리를 잡히면 그걸 끊어 버리고서 도망가 버린다.
아치가 딱 그런 격이다.
“아치는 뭐가 억울한 거야?”
“그냥 그렇게 평생을 살아야 하는 것 자체가 억울했던 거죠. 재생이라는 능력이 있기는 한데, 자신의 삶을 풍족하게 해주는 데 쓰인 게 아니라 위험에서 도망치는 데만 쓰이니 적잖이 억울했던 모양이더라구요.”
참 별의별 사연이 다 있다.
라헬은 거기까지 설명하고서 내게 물었다.
“이 네 개의 영혼 중 사고 싶은 게 있으신가요?”
“솔직히 다 사고 싶긴 해.”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뭐?”
내가 놀라서 되묻는 순간, 라헬이 네 개의 영혼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동시에 네 개의 영혼은 공간을 빠르게 날아와 내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당황해서 라헬을 바라보니 녀석이 씩 웃으며 고개를 까딱 숙여 보였다.
“28,000링크 잘 받았습니다! 이제 35,000링크 남으셨네요?”
“내가 언제 산다고 그랬어!”
“사고 싶다면서요?”
“그래! 사고 싶다고 했지, 산다고는 안 했잖아!”
“사고 싶으면 언젠가는 사게 될 텐데 미리 사두면 좋잖아요, 지웅 님~!”
하…… 이게 이제는 강매까지 해버리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그럼 9,000링크의 영혼들이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설명해 드리지요.”
“분명히 말해두는데, 이번에도 강매하면 가만 안 둔다.”
“강매라니요, 무슨 그런 섭한 말씀을. 우선 맨 오른쪽에 있는 영혼!”
라헬은 과장된 동작으로 영혼 하나를 가리켰다.
“영혼의 이름은 요마르. 능력은 중력 제어.”
“이것도…… 엄청…….”
거기까지 말하는데 라헬의 눈에 빛이 일렁였다.
“엄청…… 어떠신데요?”
“아니야.”
괜히 엄청 끌린다고 했다가 또 강매당할라.
하여튼 방심할 수 없는 녀석이다.
내가 더 말을 않자 라헬은 다시 입을 열었다.
“요마르는 자신이 서 있는 곳 반경 1미터 내의 중력을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었죠. 한데 그런 요마르의 능력을 탐내던 상위층 과학자들이 어쌔신 길드에 그를 납치해 오도록 청부를 넣었답니다. 결국 요마르는 어쌔신에게 잡혀 과학자들에게 넘겨진 뒤, 6년 동안 고문에 가까운 갖가지 실험을 받다가 죽어 버리고 말죠.”
“과학자들이 요마르를 왜 잡아서 연구한 거야?”
“요마르가 어떻게 중력을 제어할 수 있는 그 원리를 파악하고 자신들이 가지려 했던 것이었답니다.”
“하, 진짜 지독하네.”
“원래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게 사람인 법이죠.”
“아니. 개인적으로는 네가 가장 지독하다고 본다.”
내 말에 라헬이 왼쪽 가슴을 움켜쥐고 미간을 찌푸렸다.
“으헉! 그 말은 제법 상처가 되었습니다~!”
“쇼 한다.”
“눈치채셨습니까?”
라헬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싱글벙글거렸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요마르 옆에 있는 영혼의 이름은 커즐. 능력은 음속 이동. 말 그대로 음속으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지요~ 커즐은 사실 열전이랄 것도 딱히 없어요. 그냥 평범한 가정에 태어나서 평범하게 살다가 평범하게 죽었어요.”
“그런데 뭐가 억울해서 레이브란데와 계약을 한 거야?”
“그가 자신에게 음속 이동의 능력이 있었다는 걸 깨달은 것이 불과 죽기 하루 전이었거든요.”
“뭐?”
“그래서 억울했던 거죠. 젊은 시절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한번 제대로 써먹어서 더 괜찮은 인생을 보냈을 텐데…… 싶었던 겁니다.”
그것 참 억울하기는 하겠다.
“그런데 왜 그 능력을 죽기 직전에서야 알았대?”
“단순히 재수가 없던 거죠 뭐.”
“……그렇게 간단히 단정 짓고 넘어갈 만큼 가벼운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라헬이 자기 이마를 살짝 긁으며 대답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그게 진실이라 달리 할 말이 없답니다~ 정말로 죽기 직전에 자기 능력이 뭔지 알게 되는 능력자들도 은근히 많으니까요.”
“거 참.”
라헬은 9,000링크의 마지막 영혼을 가리켰다.
“이 영혼의 이름은 씰. 능력은 사이코메트리입니다.”
사이코메트리에 대해서는 나도 잘 알고 있다.
그건 만화나 영화, 소설의 소재로 제법 자주 쓰이곤 한다.
사이코메트리는 사물에 담긴 기억을 읽는 능력이다.
그러니까 내가 길을 가다 어떤 반지를 주웠다고 가정해 보자.
그럼 그 반지의 주인이 누구인지 대번에 알 수 있게 된다.
심지어 반지의 주인이 반지를 끼고서 했던 모든 행동들도 알게 되는 것이다.
사이코메트리는 제법 유용한 능력이다.
‘이건 꼭 사야 돼.’
다른 건 몰라도 저건 사겠다고 마음먹자마자 라헬의 입꼬리가 씩 말려 올라갔다.
저 자식은 가만 보면 독심술이라도 하는 것 같단 말야.
라헬은 잠시 나를 지켜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씰은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십분 발휘해 탐정이 되어 잘 먹고 잘살았습니다. 하지만 죽음에 이르는 순간 그는 자신의 인생이 후회된다고 말했지요.”
“걔는 또 왜?”
“아이러니하게도 씰의 능력 때문이었답니다. 사이코메트리는 씰의 몸에 닿는 모든 사물의 기억을 전해주었지요. 그렇다 보니 그는 굳이 몰라도 되는 타인의 비밀들까지도 모두 알게 되었답니다. 그렇다 보니 자신에게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는 것도 알 수 있었죠. 아울러 그가 만나는 여자들 역시 백 퍼센트 진실만 말하는 이가 없다는 걸 깨달았지요. 결국 씰은 인간불신증에 걸려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쌓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야 했답니다.”
“잘 먹고 잘살았다며?”
“돈은 잘 벌었지요. 저택도 제법 고급스러웠구요. 하지만 그것뿐이었어요. 잘 먹고 잘산다고 무조건 행복한 게 아닙니다~”
……어째 말장난에 넘어간 것 같다.
“아무튼 9,000링크로 살 수 있는 영혼은 이렇게 셋입니다. 어때요? 구미가 당기시나요?”
“나쁘지 않네.”
“사고 싶으시죠?”
“나머지 영혼들 능력부터 듣고 나서.”
“…….”
그러자 라헬이 입을 꾹 다물고서 날 지그시 바라봤다.
갑자기 또 왜 저래?
“왜 그래, 라헬?”
“지웅 님.”
“뭐.”
“제가 지웅 님을 존경하고 존중해 마지않긴 하지만요.”
이게 또 무슨 얘길 해서 사람 현혹시키려고?
절대 안 넘어간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좀 너무합니다.”
“그러니까 뭐가 너무한 건데? 말 빙빙 돌리지 말고.”
“제가 지금 설명드린 영혼만 일곱이잖아요. 열전까지 일일이 짚고 가느라 입이 많이 아프단 말입니다. 힘들기도 하구요. 그러니까 나머지 영혼들은 나중에 설명 듣고 그냥 오늘은 9,000링크짜리 영혼 세 개 사서 꺼지…… 아니, 돌아가시면 안 될까요?”
하…… 하하.
확실히 내 수중의 링크가 아까보다 적으니까 태도가 확 바뀌는구나.
“싫다면?”
“파업할래요. 힘들어서 못해먹겠어요.”
“…….”
하아.
정말이지 딱 한 대만 때렸으면 소원이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