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128화
이제 청소년의 울타리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 때문일까?
전보다 표현도 많이 하고 말도 많이 했다.
비로소 아랑이가 정말 내 여자 친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아랑아.”
“응?”
“보통 남자 친구 군대 가면 외로워서 힘들어하는 여자들이 바람난다던데?”
“난 안 그래요.”
“어떻게 장담해?”
“못 믿는 거지, 지금?”
아랑이가 볼을 살짝 부풀리고 미간을 좁혔다.
그런데 그 모습마저 귀여웠다.
“하하, 아니야. 믿어. 내가 아랑이를 안 믿으면 누굴 믿겠어.”
“에, 거짓말.”
“참말.”
“푸훗! 뭐야 참말이. 할아버지 같아. 우리 할아버지도 가끔 그런 말 많이 쓰는데.”
“아, 그러고 보니 무천도사님은 잘 계셔?”
“응. 너무 잘 계셔. 항상 너 보고 싶다고 난리야.”
“그래? 언제 한번 찾아가야겠네.”
“오면 할아버지가 정말 좋아하실 거야.”
우리는 그렇게 걷다가 조각 공원까지 오게 되었다.
공원 안으로 들어와서 또 조금 더 걷다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아랑이는 그때까지도 내게서 떨어지지 않고 딱 붙어 있었다.
“근데 아랑이는 어떻게 할 거야?”
“뭘?”
“졸업하면 뭐할 거냐고.”
아랑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빤히 바라보다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대학 가야지. 나 수시 합격했잖아.”
“아, 그랬었지.”
아랑이는 한국에서 가장 진학하기 힘들다는 한국대에 수시 합격했다.
하여튼 예쁘고 착하고 집안 좋고 가족 화목하고 머리도 좋고 인간관계 모나지 않고, 뭐 빠지는 게 없는 여자다.
‘예전의 나라면 아랑이와 이런 관계가 되는 건 꿈도 못 꿨겠지.’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카시아스에게 한없이 고마워지곤 한다.
그런 고마움도 얼굴만 마주치면 특유의 속 뒤집어지는 말투 때문에 싹 다 날아가 버리는 게 문제긴 하지만.
“대학교 생활은 어떤 걸까?”
내가 물었다.
“나도 아직 안 해봤으니까 모르지.”
“동아리 활동 하면서 정분 많이 난다던데.”
“내가 그럴 거 같다는 거지?”
“모르지, 사람 일.”
“이렇게 멋진 남자 친구를 곁에 두고 어떻게 눈을 돌리겠어?”
“대학 가면 나보다 멋진 남자 많을걸.”
“내 눈엔 지웅이가 제일 멋져.”
당장 내가 곁에 있어서 하는 말이라고 해도 기분은 좋았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 동안 벤치에 앉아 얘기를 나누었다.
* * *
아랑이를 택시 태워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정말 졸업을 했다.
오늘부터 난 사회인이다.
하지만 실감이 나질 않는다.
합법적으로 성인들이 즐기는 걸 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인데 정말 그래도 되는 건가 싶을 뿐이다.
“모르겠다. 그냥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것처럼 살아가면 되는 거겠지.”
그래, 인생에 답이 어딨겠는가.
우리는 그저 평생 살아가며 배우는 존재들이다.
평생.
새로운 능력들
졸업을 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그때까지도 가정 폭력 건에 대해 의뢰한 의뢰인에게선 답 쪽지가 오질 않았다.
그래서 난 일주일 동안 낮엔 다른 의뢰들을 해결하러 다니고, 밤엔 아버지의 가게에 나가 장사를 도왔다.
아버지는 나와 전에 상의했던 양고기 집을 내기로 하고 닭발 옆차기 본점이 있는 건물의 2층 매장을 인수했다.
그 이후부터 아버지는 나와 마주칠 때마다 날 들볶느라 정신이 없다.
“빨리 그럴듯한 양고기 레시피를 만들어 와!”
아버지가 원하는 건 그거였다.
닭발 옆차기만큼 대박이 날 수 있는 우리 가게만의 스폐셜한 무기!
물론 아버지는 음식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기 때문에 그 숙제는 고스란히 내가 떠맡아야 했다.
하지만 난 자신이 있었다.
눈이 하트가 될 정도로 맛있는 양고기 요리를 먹어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건 그건 내 기억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제서스 로드리만의 기억이었다.
그는 신검이라 불리는 소드 마스터이자 대단한 미식가였다.
그래서 유명하다 소문난 식당은 어디든 찾아가곤 했었다.
그가 먹어본 여러 음식들 중 기가 막힌 양고기 요리를 내놓은 식당이 있었다.
난 제서스가 먹었던 양고기의 맛을 떠올린 뒤, 리조네의 능력으로 양고기 조리법을 분석했다.
거의 모든 분석이 다 끝나긴 했지만, 그걸 그대로 사용할 순 없었다.
그 시절의 음식들은 무엇이든 향신료가 너무 많이 들어간다.
그리고 한국 사람이 살짝 꺼릴 만한 재료가 들어가기도 했다.
그래서 그걸 걷어내고 다른 재료를 첨가해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는 레시피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게 내가 할 일이다.
‘그거야 조금만 시간을 가지고 연구해 보면 답은 금방 나올 거야.’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아무튼 제서스가 먹었던 양고기는 양 꼬치가 아니었다.
커다란 양고기 덩어리에 특제 소스를 발라 소고기처럼 미디움으로 구워 각종 구운 야채와 함께 내놓는 식이었다.
러시아 사람들이 양고기를 그런 식으로 먹는다고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어찌 되었든 난 그 양고기를 메인 메뉴로 밀어붙일 생각이다.
‘열흘 안에 결판을 내야겠어.’
열흘이 지나면 아버지가 양 대신 나를 불판에다 구워 버릴지도 모른다.
매장은 사놨는데 시간이 흘러가면 헛돈이 나간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게 처리하기로 하고…… 그동안 링크가 얼마나 모였는지 볼까?’
여태껏 일부러 확인을 하지 않았다.
일전에 한번 모으다 실패하긴 했지만, 내가 목표로 삼은 링크의 액수는 10만 링크였다.
일전에 한번 그랬던 것처럼 링크를 많이 모으면 또 아이템을 업그레이드하는 이벤트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갈수록 링크가 빠르게 쌓여간다고 하지만 10만 링크는 만만찮은 액수다.
괜히 마인드 탭을 자주 열어보면 조바심이 날 것 같아서 여태껏 열어보지 않고 지낸 것이다.
“마인드 탭.”
오래간만에 마인드 탭을 열었다.
이름 : 유지웅
소속 : 지구, 대한민국
성별 : 남
나이 : 20
영력 : 25/25
영매 : 26
아티팩트 소켓 4/4
보유 링크 : 144,253
“대박.”
보유 링크 액수에 시선이 꽂히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다.
내가 모은 링크는 무려 14만 링크가 넘어가고 있었다.
마인드 탭을 연 상태에서도 링크의 액수는 빠르게 올라가는 중이었다.
역시 유튜브의 힘은 짱이다.
“십만 링크나 모았는데 별다른 이벤트는 벌어지지 않네?”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건 레이븐 링뿐이었나?
아무튼 목표치는 채웠으니 이제 더 모을 필요가 없어졌다.
그나저나 눈치채지 못했었는데 나이도 19에서 20로 바뀌었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일단 영력부터 업그레이드하자.
난 영력을 터치했다.
팅―
영력 : 25
영력을 26으로 업그레이드하시겠습니까?
업그레이드 비용은 3,300링크입니다.
[Yes/No]
‘Yes’를 터치!
팅―
영력 : 26
영력을 27로 업그레이드하시겠습니까?
업그레이드 비용은 4,000링크입니다.
[Yes/No]
이번에도 당연히 ‘Yes’를 터치했다.
이후로 영력이 35가 될 때까지 계속 업그레이드를 진행했다.
영력 : 35
영력을 36으로 업그레이드하시겠습니까?
업그레이드 비용은 16,000링크입니다.
[Yes/No]
이제 영력의 업그레이드 비용이 16,000까지 올라갔다.
영력을 35까지 올리는 데 든 총 비용은 81,000링크.
이제 남은 건 6만 링크 정도였다.
난 마인드 탭을 닫고 영혼의 상점에 접속했다.
“소울 커넥션.”
* * *
“지웅 님~! 아니 왜 이렇게 오래간만에 오셨나요? 제가 지웅 님을 얼마나 보고 싶어 했다구요. 잠들 때마다 지웅 님 얼굴이 꿈속에 나오는 바람에 상사병을 앓고 있는 줄 알 정도였다니까요! 늘 정직한 물건을 파는 저 라헬! 오늘도 지웅 님께 양질의 상품만을 제공할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라헬이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아부를 떨어댔다.
하여튼 이 자식은 뼛속까지 수전노에 속물이다.
“영력을 35까지 올리셨군요? 링크는 무려 6만 링크를 들고 오셨구요! 지웅 님. 이런 말 어떨지 모르겠지만 전부터 느꼈던 건데 참 남자답게 잘생기셨습니다. 헤헤헤헤.”
이 자식이 왜 이래?
웃음소리까지 이상해졌네?
상대가 링크가 많으면 많을수록 이놈은 간신배처럼 바닥에 납작 엎드리는 모양이다.
정말 링크 있을 때랑 없을 때의 차이가 아주 명확하다.
얼굴에 얼마나 두꺼운 철판을 깔아야 저런 게 가능해지는 걸까?
‘에이, 깊이 생각하지 말자. 어차피 레이브란데가 만들어낸 환영일 텐데.’
“그만하고 내가 살 수 있는 영혼들이나 보여줘.”
“당연히 그래야지요, 네네.”
라헬이 굽실거리다가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러자 내 앞에 열한 개의 영혼의 주르륵 나타났다.
‘엄청 많네.’
라헬은 열한 개의 영혼을 네 개, 세 개, 두 개, 두 개로 나눴다.
그러고선 네 개로 묶은 영혼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는 단돈 7,000링크로 살 수 있는 영혼들이랍니다~ 필요 영력은 27이지요.”
다음에는 세 개로 묶은 영혼을 가리켰다.
“이 세 개의 영혼은 9,000링크로 살 수 있답니다~ 필요 영력은 29되겠습니다.”
이어 두 개씩 나뉜 영혼들을 양손으로 가리켰다.
“오른쪽에 있는 영혼 두 개는 11,000링크, 왼쪽에 있는 영혼 두 개는 13,000링크로 살 수 있지요. 필요 링크는 오른쪽이 32, 왼쪽이 35되겠습니다.”
여기 있는 모든 영혼을 다 사려면 총 103,000링크가 필요하다.
지금 내 수중에 있는 건 6만 링크.
능력을 보고서 일단 필요한 영혼들부터 사야겠다.
어차피 링크는 지금도 미친 듯이 쌓이고 있으니 다른 영혼들은 링크가 모일 때마다 접속해서 사면 된다.
“어떤 영혼의 능력부터 설명해 드릴까요?”
“낮은 것부터 차례대로.”
“알겠습니다요.”
‘알겠습니다요’는 또 뭐야?
흡사 간신배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라헬이 네 개로 묶인 영혼들을 가리켰다.
“오른쪽 영혼부터 시작해서 왼쪽으로 차례차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 영혼의 이름은 시다스. 능력은 염력.”
“염력? 물체를 생각으로만 움직이는 그거?”
“바로 그거랍니다. 시다스의 염력은 특히 강력했지요. 현대로 따지자면 1톤 트럭 한 대도 가뿐하게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데브게니안에서 시다스는 그 염력의 능력으로 제법 잘 먹고 잘살았답니다. 하지만 시다스의 인성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지요. 살아생전 그는 염력으로 못된 짓을 많이 일삼았답니다. 하나, 그런 스스로의 인생이 죽음을 목전에 둔 순간 주마등처럼 흘러가면서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지요. 시다스는 그게 후회되어 레이브란데 님과 계약을 맺은 영혼이랍니다.”
자신의 악행을 반성해서 후회하는 영혼이라.
딱하군.
살아생전엔 느끼지 못했던 것을 죽음 앞에서 느끼게 되다니.
어찌 되었든 염력은 확실히 매력적인 능력이다.
라헬이 다른 영혼의 설명을 이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