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125화
상덕이가 카메라를 뒤로 감췄다.
“이제 믿겠어요?”
“정말…… 취재 안 할 거야?”
“안 한다니까요.”
“복슬이 이야기도 안 하고?”
“그럼요.”
“그걸 어떻게 믿어!”
“어떻게 하면 믿으시겠어요?”
할아버지는 잠깐 고민하다가 집으로 후다닥 뛰어 들어갔다.
그러더니 종이와 펜 한 자루를 가지고 다시 나왔다.
할아버지는 그걸 내게 들이밀며 말했다.
“각서 써!”
“각서 쓰면 믿으시겠어요?”
“그럼! 각서 쓰면 믿지! 각서는 거짓말 안 하니까!”
역시 옛날 분이신지라 해결 방법도 단순하고 간단했다.
요즘 시대엔 각서 한 장 가지고 상대방의 믿음을 사긴 힘들다.
할아버지가 괴팍하긴 하지만, 그만큼 순진한 면도 있는 것 같았다.
“알겠어요. 각서 써드릴게요.”
“내가 말하는 대로 써!”
“네네, 얼마든지요.”
“방송국쟁이 아무개, 아무개는! 아무개에는 니들 이름 적으면 돼. 알지?”
“네, 알아요.”
“복슬이와 나와 관계된 어떠한 이야기도 하지 않겠다! 만약 이를 어길 시, 목숨으로 보상하겠다!”
참 터프하시네.
“네, 다 적었어요.”
“다 적었으면 날짜 적고 밑에 이름 쓰고 둘 다 싸인해.”
나와 상덕이는 할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종이에 적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름은 가명을 적었다.
사인도 즉석에서 대충 만들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각서를 탁 빼앗아서 읽어보더니 주민증을 확인할 생각도 않고 접어서 품에 넣었다.
“따라와.”
할아버지는 우리를 집 뒤편 창고로 안내했다.
투박한 손으로 창고 문손잡이를 잡은 할아버지가 다시 한번 당부했다.
“각서는 나한테 있다. 만약에 조금이라도 이상한 소문이 돌면 너희들 목숨은 그날도 날아가는 거야!”
“알았어요. 염려 마세요.”
비로소 할아버지가 창고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 안에 머리에 피를 뒤집어쓴 채 힘없이 축 쳐진 복슬이가 보였다.
“…….”
상덕이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멋쩍은 듯,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앓는 소리를 했다.
“아, 내가 일부러 그랬나? 저 큰 개 주인한테는 미안하지만! 나도 우리 나비가 소중하단 말이야!”
할아버지가 기르는 검은 고양이 이름이 나비인 모양이다.
“저놈이 우리 집 마당까지 뛰쳐 들어와서는 우리 나비를 물어 죽이려고 계속 날뛰는데 그럼 내가 어떡해? 나한테는 가족이 아무도 없어! 아들 두 놈 중 장남은 사고로 죽고! 막내는 병들어 죽고! 마누라는 나보다 한참 연상을 만났더니 나이 들어 죽고! 이제 내 가족이라고는 나비밖에 없단 말이야! 그런데 내가 나비까지 개한테 물려 죽게 만들어야겠냐고! 근데 내가 무슨 힘이 있어? 저 큰 개를 어떻게 막냐고! 급하다 보니까 손에 들고 있는 걸로 때렸는데, 그게 호미였지 뭐야!”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래, 말투는 괴팍하지만 은근히 속은 순수한 이런 할아버지가 개한테 괜히 해코지를 했을 리가 없다.
난 잔뜩 흥분한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아드렸다.
“할아버지. 괜찮아요. 다 이해했어요. 할아버지 말이 맞아요. 저 같아도 그랬을 거예요.”
“그, 그래? 그렇지? 내 맘 이해하지?”
“정말 다 이해해요. 맘고생 많으셨겠어요.”
“그래! 내가 맘고생이 심했어! 엄청 심했어! 얼떨결에 호미로 찍어 버렸는데, 저놈 새끼 죽는 건 아닌지…… 그렇다고 어디다 말은 못하겠고, 병원 데려가서 치료할 돈도, 힘도 없고. 내가 진짜 마음고생이 심했어!”
“이제 괜찮아요.”
난 복슬이를 자세히 살폈다.
미세하지만 복부가 부풀었다 줄어들었다 하는 것이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다행히 아직 살아 있네요.”
“그런데 저대로 놔두면 금방 죽을 거 같아. 어쩌면 좋나, 어쩌면 좋아.”
“할아버지. 제가 병원으로 데려갈게요.”
“네가?”
“네. 저는 복슬이를 들고 옮길 힘도 있고, 병원비도 있으니까 제가 데려가서 치료할게요.”
“저, 정말 그래도 되겠어?”
“그럼요. 할아버지만 조용히 계시면 제가 얼른 해결할게요.”
“다, 당연히 조용히 해야지! 암! 내가 약속은 확실히 지키는 사람이야!”
할아버지가 말을 하며 자기 가슴을 탕탕! 쳤다.
뭔가 우리 두 사람의 입장이 바뀐 것 같아 조금 웃긴 그림이었다.
“알았어요. 그럼 복슬이 상태부터 좀 볼게요.”
난 창고 안으로 들어가 복슬이의 머리 부분을 살펴봤다.
생각했던 것보다 호미에 찍힌 상처는 깊었다.
상처 밖으로 흘러나온 피가 복슬이의 털과 바닥에 진득하게 눌어붙어 있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이걸 챙겨 왔지.’
저번 민하늬의 의뢰로 실종된 고양이 루시를 찾으러 갔을 때, 루시는 납치를 한 범인의 학대로 곧 죽을 판이었다.
그래서 인피니트 포션을 먹여 살려냈었다.
때문에 혹시 몰라 이번에도 인피니트 포션을 챙겨 왔다.
난 주머니에서 몰래 인피니트 포션을 꺼내 복슬이의 입을 벌리고 흘려 넣었다.
과연 복슬이가 이걸 마실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그런데 이 녀석이 혀에 물이 닫자 살려는 본능이 깨어난 것인지, 열정적으로 인피니트 포션을 핥기 시작했다.
하루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 배고프고 목도 말랐을 것이다.
복슬이는 인피니트 포션 한 병에 담긴 물을 모조리 삼켰다.
그러자 복슬이의 머리에 난 상처가 빠르게 아물었다.
호미에 찍히며 빠진 털은 다시 나지 않았지만 상흔은 없었다.
“복슬아, 정신 좀 차려봐.”
내가 복슬이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러자 복슬이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한데, 혼자서는 힘든 모양이라 내가 조금 도와주었다.
복슬이는 겨우 발에 힘을 주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가 풀썩 주저앉았다.
아직 네발로 설 힘은 없는 모양이었다.
어찌 되었든 누워 있다 앉은 것만도 대단했다.
이를 할아버지가 놀라 소리쳤다.
“아이고, 살았네! 살았어! 저놈아가 살았어!”
“할아버지! 얼른 먹을 것 좀 갖다 주세요!”
“응? 아, 그래그래! 알았다!”
할아버지는 후다닥 달려가더니 이내 큰 세숫대야를 들고 와서 복슬이의 앞에 턱 놓았다.
세숫대야 안에는 두부만 넣고 만든 된장국에 밥이 한가득 말아져 있었다.
복슬이는 그것을 보자마자 걸신들린 듯 먹어치웠다.
“할아버지. 물도 주세요!”
“물? 물 줘야지!”
할아버지는 큰 국그릇에다가 물을 가득 담아 가져왔다.
순식간에 밥을 해치운 복슬이가 옆에 놓인 물도 허겁지겁 마셨다.
그렇게 배를 든든히 채운 뒤 갈증도 해소하고 나니, 이제야 좀 힘이 나는 모양이다.
복슬이는 힘을 내서 네발로 섰다.
“살았구나~! 살았어!”
“네, 복슬이 이제 살았어요. 그런데 할아버지. 복슬이 머리에 상처가 없는데요? 할아버지가 뭔가 착각하신 거 같아요.”
“뭐? 상처가 없다니? 피를 그렇게 철철 흘렸는데!”
“제가 지금 보니까 상처가 크게 안 보여요. 호미 끝에 살짝 찔렸는데 피만 많이 난 거 아니에요?”
“살짝 찔린 놈이 기절을 해?”
“너무 놀라면 그럴 수 있죠.”
“그런가……?”
할아버지가 고개를 갸웃하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무튼 마당에서 얘 좀 씻겨도 되죠?”
“얼마든지 씻겨라! 얼마든지!”
“복슬아, 따라와.”
복슬이는 나를 따라 창고에서 나오다가 할아버지를 보더니 움찔했다.
할아버지도 복슬이를 멋쩍은 시선으로 보며 헛기침을 했다.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할아버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저, 뭐시냐. 미안했다, 이놈아. 아, 그러게 왜 우리 나비를 쫓고 난리야!…… 아무튼 많이 고생했어. 다 내가 못나서 그런다. 내가 못나서.”
복슬이는 그런 할아버지를 또 한동안 바라보다가 슥 다가오더니 할아버지의 신발을 가볍게 핥고서 날 따라 마당으로 나왔다.
“…….”
할아버지는 복슬이가 핥은 신발을 보며 목석처럼 서 있었다.
나와 상덕이는 마당에 있는 수도꼭지에 호스를 연결해 복슬이의 털을 깨끗이 씻겨주었다.
“이제 됐다. 집으로 가자, 복슬아.”
컹!
이 녀석이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했는지 신나게 짖었다.
“할아버지. 이제 가볼게요.”
“기다려!”
할아버지는 후다닥 집으로 들어가셨다가 한 손에 초코파이 두 개를 들고 나와 내 손에 쥐어주었다.
“그…… 복슬이네 집 사람들한테 줘! 내 얘기는 하덜 말고.”
초코파이는 아마 할아버지한테 대단히 소중한 간식이었을 것이다.
난 할아버지의 정이 담긴 초코파이를 건네받았다.
“네. 꼭 그럴게요.”
띠링!
―의도치 않게 복슬이를 다치게 해서 난감해하던 할아버지를 도와주셨네요~! 아주 잘하셨어요. 이제 할아버지의 마음의 짐이 좀 덜어질 거예요! 선행을 쌓아 1링크가 주어집니다.
* * *
복슬이와 초코파이를 의뢰인에게 무사히 전달했다.
의뢰인은 복슬이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어디서 복슬이를 발견했냐고 의뢰인은 물었다.
난 길 잃은 개인 줄 알고 어느 마음 착한 분이 복슬이를 보살펴주었다며 적당히 둘러댔다.
의뢰인이 당장 그분께 가서 사례라도 하고 싶다고 하는 걸, 그분은 자기가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라며 주인분들에겐 말하지 말아달라 당부했다고 전했다.
의뢰인은 연신 고맙다고 내게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은 상덕이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렇게 첫 번째 의뢰를 마무리 지었다.
졸업
월요일.
아직 가정 폭력에 시달린다던 의뢰인에게선 답 쪽지가 오질 않았다.
반면 나머지 의뢰인들에겐 전부 답 쪽지가 왔다.
아이들을 봐달라고 한 의뢰인은 오늘 오후 세 시부터 밤 열 시까지 일곱 시간 동안 부탁해도 되겠냐고 했다.
난 그날 오전에는 학교에 가야 했기에 만약 먼 지방이었으면 거절할 수밖에 없는 의뢰였다.
하지만 다행히 의뢰인이 사는 곳은 서울이었고 이를 수락했다.
하교하자마자 상덕이와 바쁘게 서울로 향했다.
의뢰인의 집에 도착해서 금실 좋아 보이는 부부와 어린 남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첫째는 네 살 난 남자아이로 이름이 준우였다.
둘째는 세 살 난 여자아이고 이름은 지우였다.
의뢰인 부부는 오늘이 결혼기념일인데 양가 부모님도 사정이 생겨 아이들을 봐줄 수 없게 되었기에 의뢰를 부탁한 것이다.
우리는 걱정 말고 데이트 잘 즐기시고 오라며 의뢰인 부부를 떠나보냈다.
아이들은 의뢰인 부부와 떨어지자마자 울고불고 난리를 쳐 댔다.
‘이걸 생각 못 했네.’
난 아이들을 다치지 않게 보살필 생각만 했지, 이 녀석들이 감당 못 할 정도로 울어대는 것은 전혀 생각 못 했다.
그런데 그때 상덕이가 가면을 벗더니 아이들 앞에 서서 우스꽝스러운 얼굴로 이상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난 저 녀석이 왜 저러나 싶었다.
한데 아이들은 그런 상덕이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방긋방긋 웃으며 그 괴상한 춤을 따라 추었다.
‘상덕이에게 이런 능력이 있을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