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124화
요즘 애들이 무섭다고는 하지만 그들도 결국 사람이다.
절대적인 공포 앞에서는 결국 겁먹은 개처럼 꼬리를 말게 된다.
놈들에게 다시 한번 의뢰인의 아이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톡톡히 맛보여 주면 상황은 종결될 것이다.
다음 의뢰.
바람피우고 헤어진 전 남자 친구 앞에서 새로운 애인인 척해주세요.
이것 역시 알바생들이 하기엔 부담스러울 수 있다.
물론 여자인 기혜 씨는 이 의뢰를 맡을 수가 없으니 처음부터 제외다.
그럼 남자 둘이 남는데, 사실 그들 중 누군가가 한다고 나서도 내가 말려야 하는 게, 우리 일은 기본적으로 가면을 쓰고 해야 한다.
그러니 민낯을 보여야 하는 이 의뢰를 애초에 맡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난 믿는 구석이 있다.
바로 카시아스다.
그 녀석은 자신의 모습을 고양이로도 바꾸는 마법사다.
내 외형 정도쯤이야 얼마든지 다르게 바꿔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의뢰.
아빠의 가정 폭력 때문에 집 나간 엄마를 찾아주고, 아빠가 더 이상 폭력을 휘두르지 않도록 도와달라.
이게 가장 애매하다.
원래 이런 깊은 가정사엔 끼어들어봤자 남는 게 하나도 없는 법이다.
하지만 가정 폭력에 시달린다는 이야기를 보고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글을 작성한 이가 이제 겨우 중학교 1학년인 여학생이었다.
아빠라는 사람의 폭력이 중학생 딸에게도 가해지고 있다면 반드시 막아야 하는 게 맞다.
난 다섯 명의 의뢰인에게 전부 쪽지를 남긴 뒤, 집을 나섰다.
* * *
“형! 보고 싶었어요.”
집을 나와서 향한 곳은 설우의 집이었다.
설우는 몰래 방 안으로 들어온 날 보자마자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반겼다.
난 설우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나도 보고 싶었다.”
“오늘도 치료하는 건가요?”
“아니,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아.”
“네?”
“끝났다고. 너 이제 멀쩡해. 더 해봤자 의미 없을 거야.”
“아…….”
“그래서 오늘은 작별 인사 하러 왔다.”
“작별…… 인사요?”
“응.”
설우의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난 그런 설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나 한번 하자.”
“형…… 제가 치료된 건 치료된 거고…… 굳이 우리가 안 볼 필요가 있어요? 형은 저한테 생명의 은인이에요. 그런데 그냥 이렇게 작별을 해야 한다는 게 전 이해가 안 돼요.”
“인마. 사람은 원래 자기가 발 담근 물에서만 놀게 되어 있어. 노는 물이 다르면 자연스레 연락도 줄어들고 멀어지게 된다고. 그때 가면 더 슬플 거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작별하는 게 맞아. 너는 로열 그룹의 후계자로 거대 기업 사람이며 정재계 인사들을 상대해야 할 텐데, 내가 어디 그쪽 인맥에 가당키나 하냐.”
“저는 그래도 형이랑 연락하고 지낼 거예요.”
“그렇게 말해주는 것만도 고맙다.”
“말만 하는 게 아니라구요.”
“손이나 잡아.”
설우는 내 강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내민 손을 마주 잡았다.
그 순간 난 레이븐 링의 힘을 이용해 설우에게 주었던 능력을 다시 가져왔다.
이걸로 됐다.
설우의 의뢰는 완료되었고, 영혼의 힘은 되찾아왔다.
난 맞잡은 손을 가볍게 흔들고 놓았다.
“간다. 이제 혼자서 잘해 나갈 수 있지?”
설우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녀석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서 복잡한 감정이 담긴 시선으로 날 바라보았다.
“어서 대답해.”
설우는 대답 대신 이렇게 말했다.
“형…… 어제…… 나 잘했죠?”
……자식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른이라니까.
난 설우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잘했다. 정말 잘했어. 보는 내가 다 뿌듯해지더라.”
“앞으로도 지켜봐 주세요.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거예요, 저.”
“그래. 나도 그렇게 믿어.”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설우가 허리를 구십 도로 숙이며 인사했다.
아마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이기 싫은 것이겠지.
난 그런 설우를 보며 콧잔등을 쓱 매만지고 섀도우 워커의 능력을 이용해 저택을 빠져나왔다.
잘 살아라, 설우야!
* * *
설우의 저택에서 나온 뒤 스마트폰으로 데일리 히어로 사이트에 접속해 쪽지를 확인해보았다.
내가 쪽지를 보낸 다섯 명 중 가장 먼저 답장을 준 건, 고양이를 찾아달라는 의뢰인이었다.
의뢰인의 집은 평내에 있었다.
다행히 평내면 춘천에서 그리 먼 곳이 아니었다.
난 의뢰인과 연락을 취한 뒤, 춘천역으로 불렀다.
상덕이가 도착하자마자 바로 기차에 올라 평내로 향했다.
* * *
미리 약속했던 장소에서 의뢰인을 만났다.
의뢰인은 20대 중반의 여인이었다.
그녀가 찾아달라는 강아지의 이름은 복슬이.
견종은 삽살이.
잃어버린 건 어제 오전.
아직까지 행방이 묘연했고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의뢰인의 동네는 내가 사는 동네와 비슷한 조금은 낙후된 곳이었다.
동네 안에 골목도 많고 밭도 제법 있었다.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나이가 좀 드신 분들이었다.
복슬이는 마당에서 길렀고, 대문을 늘 닫아두었는데, 그날따라 밤새 대문 단속을 제대로 안 했었고, 복슬이도 어떻게 목줄을 풀고 달아났다는 것이다.
목줄이 풀리는 건 간혹가다 있는 일이었다고 한다.
나는 상덕이와 복슬이를 찾아 나섰다.
내가 동물들과 교감하는 걸 상덕이가 보면 안 되기 때문에 서로 떨어져서 수소문을 하기로 했다.
난 이번에도 고양이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이런 동네에는 길고양이들이 제법 있었다.
고양이와 대화를 시도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녀석들에게 적의가 없다는 걸 알려야 한다.
나는 근처를 지나가는 고양이들이 보이면 무조건 애니멀 링크의 능력으로 정신 교감을 시도했다.
처음 세 마리는 날 무시하고 도망쳤지만 네 번째 고양이는 나와의 대화를 허락했다.
녀석의 이름은 미오였고, 집에서 기르다가 유기묘가 된 케이스였다.
고양이들 사이에선 이런 케이스를 반쪼가리라고 부른다.
다행스럽게도 미오는 복슬이를 목격한 녀석이었다.
새벽녘, 복슬이는 평소 감정이 좋지 않았던 고양이 한 마리가 집 마당에 들어와 약을 올리자 마구 발광하다가 목줄이 풀렸다고 했다.
놀란 고양이가 열린 대문을 통해 달아나니, 복슬이는 고양이를 쫓아서 마당을 나선 것이다.
담벼락에서 이를 구경하던 미오도 호기심이 동해 열심히 고양이와 복슬이의 뒤를 쫓았다.
고양이는 건너, 건넛집에서 마당에서 방치해 놓고 키우던 녀석이었다.
그 집은 성질이 좀 고약한 할아버지가 혼자 사는 곳으로 대문도 달려 있지 않은 곳이었다.
복슬이는 정신없이 고양이를 쫓아 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새벽 일찍 일어나 마당 한편에 있는 작은 텃밭에서 고랑을 일구는 중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갑자기 덩치 큰 개가 들어와 자기네 집 마당을 휘저으니 화가 나서 들고 있던 호미로 복슬이의 머리를 찍어 버린 것이다.
그때 뭐가 잘못되었는지 복슬이가 옆으로 픽 쓰러졌고, 할아버지는 복슬이를 창고에 가둬두고 방치해 놓은 상태였다.
거기까지가 내가 미오에게 듣게 된 이야기였다.
“고마워, 미오.”
난 미오에게 인사를 건네고서 상덕이와 합류해 할아버지의 집으로 향했다.
미오의 말대로 그 집엔 대문이 달려 있지 않았다.
내가 안으로 들어서려 하자 상덕이가 내 어깨를 잡아끌었다.
“왜?”
“남의 집에 함부로 막 들어가면 어떡해? 신고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복슬이가 이 집 창고에 있으니까 들어가야지.”
“그거 확실해?”
“증인이 있었어. 내가 똑똑히 들었다니까. 괴팍한 할아버지가 사는 대문 없는 집이라고.”
상덕이는 반신반의하면서도 내 얘기가 틀린 적이 없으니 잠자코 따라왔다.
우리가 마당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인기척을 느꼈는지 집주인 할아버지가 문을 벌컥 열고 나왔다.
할아버지는 전체적으로 강퍅한 인상에 고리눈을 하고서, 미간엔 세로줄이 깊게 패어 있었다.
누가 봐도 성질머리가 보통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우리들을 보자마자 대뜸 호통부터 쳤다.
“뭐하는 놈들인데 남의 집 마당에 함부로 들어와!”
상덕이는 할아버지의 기세에 눌려 뒤로 자빠졌다.
콰당!
나는 할아버지에게 차분히 물었다.
“할아버지. 어제 새벽에 여기로 삽살개 한 마리 들어왔죠?”
그러자 할아버지가 잠시 움찔했다.
하지만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삽살개는 뭔 놈의 삽살개! 그런 일 없어!”
“들어왔을 텐데요.”
“그런 일 없다니까!”
상덕이가 주섬주섬 일어나서 카메라를 확인했다.
방금 넘어지면서 카메라가 바닥에 살짝 부딪힌 모양이다.
한데 할아버지가 카메라를 보더니 화들짝 놀랐다.
“그 카메라는 뭐야!”
역시 켕기는 게 있으니까 카메라를 무서워하는군.
아무래도 여기에선 거짓말을 조금 해주는 게 좋을 것 같다.
“할아버지. 사실은 우리가 방송국에서 나온 기자들이에요.”
“뭐? 기자?!”
할아버지가 놀라서 펄쩍 뛰었다.
내 옆에 있던 상덕이도 덩달아 펄쩍 뛰었다.
나는 상덕이에게 눈으로 입 다물라는 말을 전한 뒤, 다시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사실 동네 주민분들한테 제보를 받아서 취재하러 나온 거예요.”
“무슨 취재! 나 그런 거 안 해! 썩 꺼져!”
“취재 안 하실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럼 그대로 기사 낼게요. 양평에 사는 익명의 할아버지 집에 삽살개 복슬이가 들어갔고, 그 이후로 보이지 않는다는 제보를 받아 찾아갔지만, 할아버지는 인터뷰를 거부했다. 뭔가 의심스럽다. 괜찮죠?”
물론 이런 식으로 기사를 쓰면 큰일 난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할아버지를 압박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야 했다.
할아버지는 분명 고집스럽게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때문에 세상 물정도 잘 모를 게 분명했다.
내 예상대로 할아버지는 길길이 날뛰었다.
“누구 맘대로 그따위 기사를 내보네! 절대 안 돼!”
“그럼 삽살개가 있나 없나 좀 둘러봐도 될까요?”
“그것도 안 돼!”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그러면 어쩌라는 겁니까, 할아버지.”
“그냥 다 없던 일로 하고 돌아가!”
옳지, 걸렸다!
바로 저 말이 나오기를 원했던 거거든.
“좋아요, 할아버지.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때요?”
“뭘 어떻게 해? 몰라 나는! 다 몰라! 그냥 꺼져들!”
“들어보세요, 할아버지. 우리는 기자이긴 하지만 동물보호연대에 가입한 사람들이기도 해요. 물론 우리가 지금 제 역할을 하려면 할아버지를 취재해야겠죠.”
“그런데 뭐!”
할아버지는 내가 뭐라고 하든 악만 계속 질러댔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복슬이에 대해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면 취재 안 할게요. 그리고 이번 일도 없던 걸로 할게요. 그냥 우리만 알고 넘어갈게요. 복슬이도 할아버지네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발견했다고 말하면 되잖아요.”
“웃기고 있네!”
“김VJ, 카메라 치워.”
“응? 아,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