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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히어로-123화 (123/153)

데일리 히어로 123화

줄을 서 있던 노숙자들 중 몇몇이 그 광경에 환호하며 박수쳤다.

저들은 아마 노숙자 연기를 하고 있는 이들이리라.

이런 장면이 연출될 때 환호하라고 곽정철이 심어놓은 것이다.

두 사람은 아주 사이좋은 벗의 모습을 연출한 뒤, 다시 배식을 시작했다.

이제는 백천호도 배식에 참여했다.

그렇게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 가장 영향력 있는 두 사람이 열심히 배식을 하던 와중, 새로운 인물이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백천호의 아들 백설우였다.

백천호는 아무것도 모른 채 배식을 하고 가식적인 미소를 짓느라 여념이 없었다.

곽정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자리에 모인 기자들도 백설우에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직 나만, 설우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드디어 설우가 사랑의 밥차 가까이에 다가왔다.

설우는 배식을 하던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곽 의원님, 아버지, 고생이 많으세요.”

곽정철과 백천호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지척까지 다가와 서 있는 설우를 보고서 그대로 굳어 버렸다.

여기에 온 이후부터 입가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미소까지 일순 가셨다.

누가 봐도 당황한 티가 역력히 드러났다.

하지만 그들은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다시 미소를 머금었다.

심지어 자신의 아들을 죽이려 들었던 백천호는 두 팔 벌려 설우를 반겨주었다.

“우리 장남이 여기엔 무슨 일로 왔을까?”

백천호는 저런 말을 하면서 머릿속으로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설우를 돌려보낼 수 있을까 생각하는 중이겠지.

설우는 그런 백천호를 보며 그에게만 들릴 듯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얘기했다.

“무슨 일로 왔겠어요? 곽 의원님이랑 아버지께서 이렇게 고생하시는데 장남인 제가 집에만 박혀 있을 수 없어서 도우러 나왔죠.”

설우의 말에 백천호가 놀라 입을 쩍 벌렸다.

그도 그럴 것이 설우는 여태껏 자신이 자폐증을 모두 고쳤다는 사실을 감추고 있었다.

당연히 백천호는 설우의 상태가 전과 다름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일반인과 별다를 바 없이 말하고 행동하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갑자기 모든 카메라가 설우에게 집중되었다.

찰칵! 찰칵!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설우는 그에 당황하지 않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잠시 그런 설우를 지켜보던 백천호는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좋을지 판단하고 즉시 실행에 옮겼다.

그가 밥차에서 내려와 설우를 품에 꼭 끌어안고 등을 두들겼다.

“장하다, 내 아들!”

그는 크게 외친 뒤, 설우에게만 들릴 듯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떻게 된 거냐. 내가 알던 설우가 아닌 것 같구나.”

물론 백천호의 음성은 나와 설우만 들을 수 있었다.

설우가 대답했다.

“연기였습니다.”

“뭐?”

“전 자폐증에 걸리지 않았어요, 아버지.”

“그게 무슨 말이냐?”

“작은아버지를 방심하게 만들기 위해서 연기를 한 거라구요.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죠?”

그러자 백천호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이윽고 그의 입꼬리가 씩 말려 올라갔다.

백천호는 설우와 포옹을 끝내고서 한 손을 잡아 만세하듯 들어 올렸다.

설우도 그런 백천호의 행동을 거부감 없이 따라 했다.

“여러분! 제 자랑스러운 장남이 아비 혼자 고생하는 걸 못 보겠다고 직접 손을 거들러 왔습니다! 내가 지금 기분이 얼마나 좋을지 짐작들 되시지요? 하하하하하하!”

백천호가 능숙하게 상황에 대처하며 소리쳤다.

그러고서는 설우를 데리고 밥차에 올라가 함께 배식을 시작했다.

둘은 배식을 하는 와중 계속해서 작게 대화를 나눴다.

“언제부터냐. 연기를 한 게.”

“아버지는 제가 자폐아라는 걸 언제 알게 됐습니까.”

“초등학교 삼 학년 때였나.”

“그럼 그때부터일 겁니다.”

“그 어린 나이에 자폐아 연기를 했다고?”

“자폐증이 살짝 있었을지도 모르구요.”

“약아빠진 놈. 네 작은아버지에게 널 자폐증 환자로 인식시켜서 뭘 어쩌려고 그랬냐.”

백천호는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을 일부러 물어보고 있었다.

설우는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차기 사장 자리를 놓고 싸우는 중이시죠? 서로의 핏줄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기 위해서. 그런데 작은아버지는 날 자폐아라고 인식하고 있어요. 그래서 자기 핏줄이 아닌 나를 차기 로열 그룹의 후계자로 밀고 있는 중이죠. 내가 자폐아면 사장 자리를 꿰찬 지 얼마 안 되어 좌천되고 말 테니까요.”

“그렇겠지.”

“그럼 기회는 자연히 작은아버지 핏줄에게 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작은아버지가 노리는 건 그거예요. 하지만 아버지, 저는 정상입니다. 제가 자폐아라는 건 대외적으로 알려진 사실이죠. 기자들도 절 자폐아로 알고 있을 겁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자폐아란 인식을 가지고 있을걸요? 제 자폐증은 그렇게 심한 건 아니었으니까요. 그냥 별생각 없이 아버지를 따라 나와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거라 생각하겠죠.”

음? 내가 처음 설우에게 들었던 계획이랑은 좀 다른데.

본래 설우는 이 자리에서 자신이 정상임을 알릴 계획이라 말했었다.

그런데 설우는 백천호 말고 다른 사람들에겐 오히려 자폐증이 낫지 않은 듯 연기를 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인 걸까?

두 사람은 바삐 배식을 하며 계속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래서 네가 생각하는 게 뭐냐.”

백천호가 물었다.

“전 계속 자폐증 환자인 척 연기를 할 겁니다. 작은아버지는 절 변함없이 차기 후계자로 추천하겠죠. 아버지는 그런 작은아버지를 견제하는 연기를 해주세요. 그러다가 제가 사장 자리에 앉는 날, 가면을 벗어던질 겁니다. 그러면 그제야 작은아버지는 자신이 실수한 걸 알고 무릎을 탁 치겠죠. 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을 거예요.”

“…….”

백천호는 말없이 미소를 머금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계획이었다.

애초에 설우가 내게 말했던 것보다 지금 늘어놓은 것이 더욱 괜찮았다.

설우를 보는 백천호의 눈동자가 확 달라졌다.

그가 설우의 등을 과장되게 탁탁 두들기며 말했다.

“여러분! 아시는 분도, 모르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우리 장남은 보통의 사람과는 조금 다릅니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죠. 하지만 그러면 어떻습니까? 자신도 아버지와 함께 직접 봉사 활동을 하겠다고 이렇게 찾아오는 아들이 전 그저 자랑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러자 사방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찰칵! 찰칵!

카메라 플래시는 그 전보다 훨씬 많이 터졌다.

설우는 백천호의 옆에 서서 배식 봉사를 시작했다.

그러다 멀리서 지켜보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설우가 해맑게 미소 지으며 눈인사를 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 * *

봉사 활동이 끝날 때까지 내가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설우가 자폐증이 치료된 모습을 감추고서 연기를 했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설우는 백천호와 함께 차를 타고 돌아갔다.

때문에 개인적으로 말 한마디 나눌 여유도 없었다.

아무튼…… 나도 슬슬 자리를 떠야겠다.

의뢰인들을 만나러 갈 때마다 쓰는 가면을 착용한 상태라 주위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이걸로 설우의 문제는 해결된 거겠지.’

앞으로 내가 설우를 도울 일은 없다.

이제 백천호는 설우가 죽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설우도 이젠 자신을 죽여달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당당히 후계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그리고 자폐증도 완전히 치유되었다.

‘다음번엔 작별 인사를 하러 가야겠군.’

설우에게 주었던 라모나의 능력도 되찾아와야겠지.

어찌 되었든 가장 길었던 의뢰는 이걸로 끝이다.

이제 밀려 있던 다른 의뢰들을 해결해야겠다.

복슬이 찾기

일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데일리 히어로 사이트에 접속했다.

사이트는 날이 갈수록 성황이었다.

그에 따라 게시판에 올라오는 의뢰 글의 수도 빠르게 늘어갔다.

현재 내가 직원으로 뽑은 세 사람, 장혁우, 안준형, 김기혜 씨는 자기 맡은 일을 열심히 해주고 있었다.

그들 중 가장 많은 의뢰를 해결한 사람은 혁우 씨였다.

혁우 씨는 한 달 동안 총 10건의 의뢰를 해결해 건당 20만 원씩 계산해서 총 200만 원을 가져갔다.

준형 씨는 140만 원, 기혜 씨는 120만 원을 가져갈 수 있었다.

다들 이 일에 만족하는 눈치였다.

비록 지금은 내가 회사를 제대로 설립한 게 아닌지라, 직함은 직원이지만 아르바이트의 개념이 더 컸다.

하나, 난 졸업을 하자마자 회사를 정식 법인으로 등록할 것이고, 그들 역시 정직원으로 고용할 생각이다.

물론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선행을 카메라에 잘 담아주는 카메라맨들에게도 돈을 지불했다.

그 영상은 모두 상덕이가 편집해서 유튜브 채널과 데일리 히어로 사이트에 올렸다.

처음에는 나만 등장해서 활약하던 동영상이 이제는 마른 남자 한 명, 덩치가 제법 있는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이 늘어나서 훨씬 풍성하고 볼만해졌다.

그와 동시에 대체 가면을 쓰고 선행을 하는 사람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유튜브 채널에 올리는 동영상은 이제 한 편당 기본 40만 조회수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에 따라 내 통장으로 들어오는 금액도 상당히 짭짤해졌다.

난 뿌듯한 마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의뢰가 무엇이 있을까 검색해 나갔다.

당장 학교를 왔다 갔다 하며 처리할 수 있는 의뢰가 다섯 개 정도 보였다.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아주세요.’

‘하루 동안 아이들을 돌봐주세요.’

‘우리 아이를 학교에서 괴롭히는 애들이 있어요. 도와주세요.’

‘바람피우고 헤어진 전 남자 친구 앞에서 새로운 애인인 척해주세요.’

‘아빠의 가정 폭력에 엄마가 집을 나갔어요. 엄마를 찾아주시고, 아빠가 더 이상 폭력을 행사하지 않게 해주세요.’

이건 나 말고 알바생들이 하기는 힘든 일들이다.

실종된 애완동물을 찾는 게 의외로 어렵다.

그래서 애완동물이 한번 사라지면 여기저기 광고문을 붙이고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다시 찾게 되는 애완동물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하지만 내게는 애니멀 링크의 능력이 있다.

이 능력을 사용하면 동물들과의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

일전에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달라던 의뢰도 이 능력으로 해결했다.

그다음으로 하루 동안 아이들을 돌봐달라는 의뢰 역시 알바생들이 하기엔 부담이 크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수락했다가 만약 아이들한테 어떠한 안전사고라도 발생하면 큰일이 난다.

알바생들은 그런 상황을 책임질 수 없다.

해서, 이런 의뢰는 내가 맡는 게 낫다.

특별히 ‘아이들을 잘 돌봐주는 능력’ 같은 게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난 아이들이 안전사고가 나지 않도록 해줄 수는 있다.

영혼들에게서 얻은 내 여러 가지 능력을 상황에 맞게 사용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다음.

학교에서 괴롭힘 당하는 아이를 도와달라.

어찌 보면 내 입장에서는 이런 게 가장 쉽다.

레이브란데의 인과율을 시전받은 뒤 죽 겪어본 바로, 폭력은 폭력으로 제압하는 것이 제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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