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120화
남자가 내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그럼 저 새끼는 뭔데! 오늘부터 사귀기로 한 거냐!”
“아니. 지웅이는 전부터 알던 사이인데? 내가 가장 많이 호감을 가졌던 남자이기도 하고.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너한테 이별 통보 하고 나서 네가 헐크로 변하는 바람에 쫓기는 중에 정의의 히어로처럼 여기서 딱 만났지 뭐야? 그래서 난 지웅이랑 사귈 거야. 너 같은 다혈질은 딱! 싫어.”
“너 말 다 했어?!”
“그래, 다 했다! 왜!”
이거 참 난감하네.
처음엔 남자의 안하무인격 행동에 화가 났지만, 둘이서 사랑싸움을 시작해 버리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인비야. 어지간하면 둘이서 잘 해결을…….”
난 그냥 둘 사이에서 빠지려고 했다.
그런데 내 팔을 잡고 있는 인비의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떠는 거지?
하는 행동은 거칠기 짝이 없는데 벌벌 떠는 이유를 모르겠다.
“너…….”
인비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니 여기저기 잔 상흔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남자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야, 좋은 말 할 때 일루 와라.”
남자가 협박했다.
“싫은데? 나 너랑 방금 끝냈잖아. 그런데 왜 네 말대로 해야 돼? 베에~!”
“이 썅년이 진짜!”
남자가 오른손을 확 들어 올렸다.
얼굴의 상흔, 사정없이 떨리는 몸과 눈동자.
‘그랬군. 이 새끼…… 개새끼네.’
남자가 손을 휘두르는 순간, 인비를 뒤로 밀어내고 내가 앞으로 나섰다.
짝!
남자의 손은 인비 대신 내 뺨을 후려쳤다.
“으악! 뭐, 뭐야!”
내 뺨을 때린 남자는 손을 잡고 펄쩍 뛰었다.
오히려 맞은 당사자인 난 아무렇지도 않았다.
내 피부는 아이언 스킨으로 인해 강철처럼 단단하기 때문이다.
남자가 오른손을 흔들며 날 노려봤다.
“너 뭐야, 이 새끼야!”
“방금 못 들었어? 인비 새 남자 친구다.”
“하, 이 썅년놈들이 단체로 돌았나!”
녀석이 욕을 하며 바닥에다 침을 탁 뱉었다.
인비가 내 팔을 끌어당겼다.
“지웅아, 괜찮아?”
“응, 괜찮아.”
“나 대신 맞았잖아!”
“괜찮다니까. 알잖아, 나.”
인비는 오들오들 떨면서도 남자를 향해 소리쳤다.
“성대웅! 이제 그만하고 가! 안 그러면 진짜 큰일 날지도 몰라. 지웅이 화나면 무섭거든?”
녀석의 이름이 성대웅인 모양이다.
성대웅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 그래? 화가 나셨어? 근데 너도 나 알잖아, 인비야. 나 눈 돌아가면 어떻게 되는지. 그렇게 처맞고도 감 못 잡았어?”
그러더니 주변을 휘휘 둘러보다가 주먹만 한 돌덩이를 주워 들었다.
“죽어봐라, 개새끼야.”
성대웅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돌멩이를 내 얼굴에 찍으려 했다.
“꺄악!”
박인비가 고함을 질렀다.
내 얼굴이 돌멩이에 맞아 아작 날 줄 안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콱!
난 한 손으로 성대웅의 팔목을 잡아챘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들고 있던 돌멩이를 빼앗았다.
“이 개새끼, 무슨 힘이 이렇게 세!”
“고작 이 정도 가지고 세다고 하면 서운하지.”
난 돌멩이를 쥔 아귀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콰드득!
돌멩이가 산산조각 나 바닥에 떨어졌다.
그걸 본 성대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 지금 손으로 돌멩이를…….”
“돌멩이 말고 네 팔모가지부터 걱정해, 미친 새끼야.”
콰득!
“크악!”
성대웅이 내게 잡힌 팔목을 탁탁 때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 그만! 그만!”
“내가 여자한테 손찌검하는 새끼를 정말 싫어하거든.”
“이것 놔!”
“너는 인비가 그만 때리라고 했을 때 그렇게 했냐? 내가 볼 땐 전혀 아닌 것 같은데.”
“놓으라고 씨발!”
“어디서 입을 좆같이 놀려!”
짝!
성대웅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다.
“크억!”
놈의 고개가 옆으로 홱 돌아갔다.
고개를 따라 몸이 뒤틀렸다.
하지만 내게 팔목이 잡혀 있어서 넘어지지는 않았다.
벌써부터 넘어지면 섭섭하지.
“잘 들어. 지금부터 난 널 반 죽여놓을 거야. 신고해도 괜찮아. 합의금? 달라는 대로 줄게. 그러니까 일단 맞자.”
“자, 잠깐만요…… 잠깐…….”
한 대 맞으니까 존댓말이 절로 나오는구나.
한데 너무 늦었다.
이미 난 널 잔뜩 두들기기로 마음먹었거든.
퍽!
“컥!”
이번엔 옆구리를 걷어찼다.
성대웅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털썩.
내가 팔목을 놓자 놈이 옆구리를 움켜쥐고 주저앉았다.
“크허…… 컥!”
난 성대웅의 턱을 올려 찼다.
퍽!
“끄허어…….”
놈이 대자로 뻗었다.
그 상태로 사지를 파르르 떨더니 이내 기절해 버렸다.
뭐야? 맷집도 더럽게 없는 새끼가 그 패악질을 부렸던 거야?
“쓰레기 같은 놈.”
카악 퉤!
기절한 놈의 몸에다 침을 뱉었다.
상황이 정리되고 뒤를 돌아보았다.
인비가 눈을 꿈뻑거리며 나와 기절한 성대웅을 번갈아 봤다.
“인비야.”
“어, 응?”
“저 새끼 한 번 더 나타나서 지랄하면 바로 나한테 연락해.”
“응…… 그, 그럴게.”
“왜 그렇게 놀라 있어?”
“어? 아니 그게…… 지웅이 너 많이 변한 것 같아서.”
“내가?”
“응. 예전에는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잖아?”
그렇지.
불의를 참지 못해 못된 놈들을 때리긴 했지만 이렇게 거친 말투를 구사하진 않았었지.
“그냥. 하도 더러운 꼴을 많이 보다 보니까 나도 변하더라.”
“그랬구나. 처음으로 네가 조금 무섭다고 생각했어.”
“뭐 그건 네 판단이니까 내가 뭐라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아무튼 그동안 저놈한테 제법 손찌검 당한 것 같던데, 신고하지 그랬어.”
“뭐하러 신고까지 해, 쪽팔리게.”
“그게 뭐가 쪽팔려. 어디 가서 말 못하게 계속 맞고 사는 게 더 쪽팔린 거지.”
“그런가?”
“그래.”
인비가 에헷~ 하고 웃더니 내게 와락 안겨들었다.
“아무튼 도와줘서 고마워. 역시 지웅이 넌 내 정의의 사도야.”
그때 잠자코 있던 카시아스가 내 곁으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갈 길이 바쁘니 그만 떨어져 줬음 좋겠는데.”
서늘한 카시아스의 음성에 인비의 시선이 절로 돌아갔다.
“어? 지웅아. 이 언니 누구야? 되게 예쁘다.”
“그냥 아는 사람.”
“아는 사람? 사귀는 사이 아니고?”
“그런 거 아니야.”
“그래? 근데 둘이 왜 만났어? 어디 가려고 했던 거야?”
“마트.”
“마트엔 왜?”
얘는 왜 이렇게 궁금한 게 많아?
“장 좀 봐 오려고.”
“장을 왜 봐?”
“내 옆에 있는 예쁜 언니네 집 냉장고에 먹을 게 하나도 없어서 뭣 좀 사다가 요리나 만들어주려고.”
“뭐? 이 언니네 집에도 들락거리는 사이야? 이 언니, 가족들이랑 같이 살아?”
“혼자 산다.”
이번엔 카시아스가 대답했다.
“어머나.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남자 함부로 들이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언니. 지웅이가 그런 쪽으로는 순진하다지만, 언제 늑대로 돌변할지 모르는 거라구요. 그러다 언니 몸이라도 노리면 어쩌려고 그래요?”
“노리면 노리라지. 그게 왜? 닳는 것도 아니고.”
커헉!
카시아스 저게 무슨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거야?
인비는 나만큼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
“어머나…… 이 언니…….”
과연 무슨 소리를 하려나.
인비도 성격이 상당히 쿨하고 터프한 데다 제멋대로라서 할 말 안 할 말을 가리지 못하고 막 내뱉는다.
난 순간적으로 그녀의 입을 막을까 고민했다.
괜한 말로 카시아스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무슨 사단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한발 늦었다.
“엄청 멋지다!”
잉?
인비의 입에서는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지금 카시아스에게 멋지다고 한 거야?
“나 이렇게 쿨한 언니 처음 봐. 언니, 이름이 뭐예요?”
“카시아스.”
“네? 카…… 뭐라구요?”
“카시아스.”
“카시아스? 이름이 네 글자네요? 우리나라에 카씨도 있었나?”
……딱 들어도 다른 나라 이름이잖니, 인비야.
“카시아스. 이름 너무 길다. 전 그냥 가운데 이름만 따서 시아 언니라고 부를게요. 괜찮죠?”
“맘대로 해.”
“꺄아~! 언니 열라 쿨해! 존멋!”
인비의 말에 카시아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존멋? 그게 뭐냐.”
“존나 멋있다구요! 줄임말이에요~ 유행에는 좀 떨어지네요, 언니? 아, 근데 언니 맞죠? 얼굴만 봐서는 스무 살 초반 정도 되는 것 같은데. 몇 살이에요?”
“몰라도 돼.”
“꺄아~! 진짜 쿨해! 언니, 앞으로 우리 친하게 지내요! 저는 박인비라고 해요.”
카시아스는 더 이상 못 들어주겠는지 인비를 노려봤다.
하지만 인비는 카시아스의 심기가 어떤지 눈치 못 채고 계속 주절주절 떠들어댔다.
카시아스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게 불길했다.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어 가다가 터지기 일보 직전인 그때.
“으음…….”
성대웅이 정신을 차렸다.
녀석은 턱을 어루만지며 비틀비틀 일어섰다.
그러더니 날 보고서 화들짝 놀라 고함을 질러댔다.
“끄아아아악!”
“시끄러우니까 입 닫아. 처맞기 싫으면.”
“헙!”
성대웅이 손으로 입을 탁 틀어막았다.
“어떻게, 경찰서 갈까? 합의금 달라고 하면 줄게. 그런데 명심해야 할 건 거기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거야. 합의금 물어주고 다시 때릴 거야. 그리고 또 합의금 물어줄 거야. 물론 계속 그러다 보면 내가 옥살이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지. 그래서 마지막엔 너 어디 한 군데 불구로 만들어놓으려고. 아예 죽여 버릴 수도 있겠지만, 불구로 살아가는 게 더 고통스럽지 않겠어? 어디를 불구로 만들 거냐고? 사지를 뜯어 버릴 수도 있고, 네 가운뎃다리를 뜯어 버릴 수도 있겠지.”
내 말을 듣는 동안 성대웅의 얼굴이 파리해져 갔다.
꿀꺽!
녀석이 마른침을 삼켰다.
“경찰서 갈래 말래.”
“아, 안 가도 될 것 같은데요.”
“앞으로 두 번 다시 인비 앞에 나타나지 마라. 예전에도 너처럼 인비 괴롭히다가 나한테 걸려서 뼈마디 다 부러진 놈 하나 있거든. 그 꼴 나기 싫으면 알아서 피해. 알았냐?”
“네, 네…….”
“꺼져.”
성대웅은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도망가 버렸다.
띠링!
―폭력적인 남자 친구 때문에 괴로워하던 인비를 도와주셨네요~! 역시 지웅 님은 멋진 남자예요! 선행을 쌓아 1링크가 주어집니다.
이 소리 오래간만이네.
그때 마침 택시가 다가왔다,
“택시!”
나는 그 택시를 세웠다.
“인비야. 우리 이제 가볼게. 만나서 반가웠다.”
인사를 하고 난 앞좌석에 올랐다.
카시아스도 뒷좌석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인비가 따라서 택시에 올라탔다.
“너는 왜 타?”
“어차피 할 것도 없으니까 따라가려고. 그리고 나 혼자 있는데 대웅이 그 자식이 다시 오기라도 하면 어떡해.”
핑계가 좋다, 핑계가.
“어디로 모실까요?”
기사님이 물었다.
“혜성마트로 가주세요.”
“알겠습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셋이 함께 마트로 향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