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112화
더블 퀘스트
귀족살인죄로 병사들은 날 추격했다.
하지만 난 그들을 너무도 쉽게 따돌릴 수 있었다.
내겐 투명화 능력이 있었고,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 수 있는 섀도우 워커의 능력도 있었다.
그러니 내가 그들에게 잡히는 일은 일어날 수 없었다.
지금 나는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있다.
로만이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로.
내 고향이 그리워서 그런 건 아니다.
그곳에서 숨죽여 평생을 살아가려는 것도 아니다.
거기엔 마제스의 신전이 있다.
마제스는 지금은 잊힌 운명의 신이다.
신들도 인간들처럼 싸움을 한다.
더욱 강한 신이 되기 위해, 스스로의 권좌를 더욱 굳건히 지키기 위해, 그래서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이 자신을 유일신으로 섬기게끔 하기 위해, 끊임없이 싸움을 벌인다.
그러나 인간들은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
태초의 세상엔 수많은 신들이 관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신들은 끝없는 전쟁을 반복하다 대부분 사라졌다.
마제스 신도 그렇게 사라지고 말았다.
인간들이 사는 세상의 그분의 힘이 담긴 신물(神物)과 그 신물을 지키기 위한 작은 신전을 만들어놓고 말이다.
신물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신전은 땅속에 감추어져 있다.
그리고 그 신전은 마제스 신이 만들었던 ‘마르티안 일족’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
난 마르티안 일족의 피를 물려받은 사람이다.
내게 투명화 능력이 있는 것도 마르티안 일족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 일족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이 능력은 사실 마제스 신이 남긴 신물 ‘영혼의 보옥’을 지키기 위해서 존재한다.
누군가 감추어진 신전을 찾아내 영혼의 보옥을 가져가려 하면, 그것을 투명화시켜 지켜야 한다는 사명 아래 얻게 된 능력이다.
그래서 지금껏 누구도 이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영혼의 보옥을 탐내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다.
영혼의 보옥은커녕 마제스 신을 아는 사람 자체가 세상에는 존재치 않는다.
그만큼 마제스 신은 짧게 군림했던 신이다.
힘이 약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제스 신은 그분의 권능을 받아 태어난 인간을 만들었고, 그 피가 내게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내가 다시 자식을 낳지 않는다면, 마르티안 일족은 내 대에서 끝이 난다.
‘어차피 후손을 낳기 전에 한 번 죽었으니 이미 마르티안 일족의 대가 끊긴 것이나 다름없겠지.’
생각해 보면 참 바보 같은 일이었다.
우리 일족이 투명화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은 건, 꼭 영혼의 보옥을 탐내는 이가 없었다기보다는, 능력이 세상에 알려질 경우 귀찮아질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마음이 너무 여렸다.
아니, 그건 마음이 여린 게 아니라 멍청했던 것이다.
이렇게 될 걸 뻔히 알면서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고 싶어 능력을 사용해 버렸으니 말이다.
‘이제는 됐어.’
난 또 한 번의 인생을 살게 됐지만, 후손을 남길 생각이 없다.
영혼의 보옥을 더 이상 지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왜?
영혼의 보옥은 내가 사용할 것이다.
그 보옥 안에 들어 있는 힘을 이용해서 꼭 알고 싶은 게 있었다.
한 번 사용하면 사라져 버리는 것이 영혼의 보옥이다.
보옥의 힘은 상당한 것이다.
그 힘이 악인의 손에 들어갈 경우 세상에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하나 난 그런 일을 벌이려는 게 아니다.
내가 알고 싶은 건…… 한 남자의 진실이다.
‘정말 날 이용하려고 데려온 것이었나요.’
제서스에게서 내가 느꼈던 건 진실된 감정이었다.
그는 나를 진정으로 아껴주었다.
하지만 멜레사는 제서스가 나를 이용하기 위해서 거짓된 친절을 베풀었다고 말했다.
전생에서는 그저 순진하게 그 말을 전부 믿었다.
지금은 다르다.
그저 남의 말을 듣기만 해서는 진실을 알 수가 없다.
난 너무 착하게만 살아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건 멍청한 것이다.
내가 주변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만큼 날 대놓고 이용할 목적이 보이지 않거나, 싫어하는 눈치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들 역시 날 진심으로 대한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강조하지만 멍청했다.
사람들은 그렇게 남을 생각하지 않는다.
늘 남보다 자기 자신이 우선이다.
자기 것을 지킨 다음에 남을 돌아보곤 한다.
그게 사람의 본질이며, 본성이다.
그래서 나는 내 힘으로 진실을 알아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혼의 보옥이 필요하다.
* * *
한 달가량을 걸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도 난 투명화 능력으로 모습을 감추고서 집을 찾아갔다.
이미 어두운 한밤중이었지만, 그래도 조심했다.
이곳의 그 누구와도 마주치기 싫었다.
마을 사람들은 오래간만에 돌아온 날 보며 소란을 떨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난 결코 좋은 마음으로 돌아온 게 아니다.
그리고 예전의 상냥한 나 역시 이제는 없다.
그래서 그들의 반가운 소란을 들어주기 싫었다.
그럴 자신도 없었다.
집에 도착해 방 안을 슥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반년간 주인도 없는 빈집을 그 누구도 침범하지 않았다.
그저 먼지만 자욱하게 쌓여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고마웠다.
그 마음을 한편에 접어두고서 다시 집을 나왔다.
뒤편에 있는 숲으로 들어서서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비로소 안심한 뒤,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바닥에 댔다.
그러자 미세한 빛이 일더니 흙더미가 사라지고 지하 깊은 곳으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구름에 가려 달빛조차 닿질 않는데도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밝았다.
게다가 그 빛은 절대 밖으로 새 나오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이 신의 권능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천천히 발을 내디뎌 신전을 향해 거닐었다.
길고 긴 계단을 밟아 내려왔다.
계단의 끝엔 내가 살던 작은 집과 크게 다를 것 없는 공간이 나타났다.
그게 신전이었다.
어렸을 적 어머니의 손을 잡고 내려온 이후, 처음 방문한 것이다.
신전 내부에 이렇다 할 장식물은 없었다.
그저 작은 제단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 영혼의 보옥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영혼의 보옥은 자두만 한 크기의 동그란 구슬이다.
투명한 보옥의 안에는 작은 빛 하나가 둥실 떠 있다.
난 그것을 조심스레 들었다.
‘이것을 삼키면…… 보옥의 힘을 사용할 수 있어.’
보옥의 힘.
그것은 내가 타인의 기억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즉 세상에 있는 어떤 이의 기억도 보옥을 삼키면 전부 알게 된다.
한 왕국의 멸망을 바라는 사람이 보옥의 힘을 사용하게 되면, 일은 매우 쉬워진다.
왕국의 정세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자의 기억을 읽어 버리면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 왕국의 허와 실, 물밑에서 일어나고 있는 알력 싸움, 자금력, 병력, 그 외에 모든 정보를 완벽히 파악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난 보옥을 천천히 입에 넣었다.
보옥은 혀에 닿는 순간 액체로 변해 목을 타고 흘러 들어갔다.
보옥의 힘이 빠르게 퍼지며 배 속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기이한 기운이 전신으로 퍼지는가 싶더니 전부 머리로 몰려들었다.
갑작스런 현기증이 몰려왔다.
어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으음…….”
눈앞이 흐려지며 신음이 흘러나왔다.
사물들은 계속해서 흐려졌고, 깜빡이던 눈앞에 누군가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제서스의 기억이었다.
빠르게 흐르는 기억들은 전부 내 뇌리에 확실히 틀어박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기억의 흐름이 서서히 느려졌다.
이윽고는 제서스가 나와 만난 순간에서 기억이 완전히 멈추어 버렸다.
‘왜…… 이러지?’
의문을 품고 계속해서 멈춰 버린 기억을 바라보는데 머릿속에서 기계음이 들려왔다.
띠링!
―축하드립니다, 지웅 님! 히든 퀘스트를 발견하셨어요~!
느닷없이…… 히든 퀘스트라니?
―루의 후회 퀘스트는 아직 완료된 게 아니에요. 지웅 님께서 발견한 히든 퀘스트를 함께 완료하셔야 루의 후회 퀘스트도 완료할 수 있답니다~
순간 내 영혼이 루의 몸속에서 확 빠져나오는 게 느껴졌다.
루는 제서스의 기억을 보던 그 자세 그대로 굳어 있었다.
그나저나 갑자기 왜 히든 퀘스트 같은 게 나오는 거야?
여인의 음성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사실 레이브란데 님과 영혼의 계약을 한 이는 루뿐만이 아니랍니다.
갑자기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이거 혹시…….
―그 혹시가 역시랍니다. 제서스 로드리만 공작도 죽어서 레이브란데 님과 영혼의 계약을 맺었죠.
하아…… 역시 그랬던 거였어!
그럼 내가 해야 하는 히든 퀘스트는 설마…….
―그 설마가 맞답니다. 지웅 님께서는 지금부터 제서스 로드리만 공작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강요는 하지 않아요.
띠링!
―히든 퀘스트 발동! 두 영혼의 퀘스트가 연계되어 더블 퀘스트로 바뀌었습니다. 더블 퀘스트는 두 개의 퀘스트 중 하나를 실패하게 되면 모두 퀘스트 실패가 되어 버리니 조심하세요. 만약 더블 퀘스트 진행을 원치 않으시면 수락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그 자리에서 더블 퀘스트는 사라지고 루의 후회 퀘스트만 완료되는 것이죠~ 하지만 더블 퀘스트를 클리어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숨겨진 보상은 놓칠지도 모른다는 거~!
띠링!
‘제서스의 진실’이 발동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Yes/No]
……그렇게까지 말하면 수락 안 할 수가 없잖아.
숨겨진 보상은 분명 제서스의 영혼일 테니!
어쩔 수 없지.
난 ‘Yes’를 터치하려 했다.
한데 생각해 보니 난 지금 영혼의 상태다.
그래서 육신이 없고 당연히 ‘Yes’를 터치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단지 내가 생각을 한 것만으로 ‘Yes’가 터치되며 팅― 하는 맑은 음을 흘렸다.
동시에 환한 빛이 내 영혼을 잠식했다.
또다시 시작된 기분 나쁜 울렁거림.
그 속에서 정신없이 휘둘리다가 눈을 떠보니 내 앞엔 생소한 천장이 펼쳐져 있었다.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집 안에는 하나하나가 엄청난 고가의 물건들만 가득했다.
심지어 장인의 손이 닿은 장식품과 일류 화가의 그림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내가 누워 있던 침대도 이 세상 지금 시대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것이었다.
그렇다.
난 지금 제서스 로드리만 공작이 되었고, 그의 방에 있는 것이다.
새로운 영혼의 퀘스트가 시작되었다.
(#굵시)제서스의 진실(#굵끝)
띠링!
―제서스의 진실 퀘스트를 수락하셨네요. 지금부터 지웅 님은 제서스의 세상을 가상 체험하게 될 거예요. 제서스의 기억을 인스톨할게요~
여인의 음성이 들려온 이후, 소드 마스터이자 데브게니안 대륙의 광검이라 불리는 제서스 로드리만의 기억이 흘러들러 왔다.
‘드디어……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
‘감축드립니다, 제서스 공작 각하!’
‘자웅을 겨루러 왔소, 제서스 공작. 나, 질풍검 라인하르트라 하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그대의 신위가 허풍이 아니라면 대결을 피하지 마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