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111화
“끄으으…….”
입 밖으로 괴로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나는…… 난 지금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다.
로드리만 백작가를 나와 집으로 돌아가던 중, 머리에 큰 충격을 입고 정신을 잃으려던 찰나 스스로를 투명화시켰다.
하지만 그곳을 벗어날 힘이 없었다.
머리에서 흐른 피는 투명화되지 않은 채 바닥에 떨어졌고, 내 머리를 가격했던 괴한은 실체가 보이지 않는 날 납치해 데리고 왔다.
날 납치한 이는 반 포이르 남작이었다.
돈과 여자를 밝히고 성격이 난폭하기로 유명한 귀족이었다.
그에게 잡혀 발에 족쇄를 매달고 방 안에서만 생활해야 했다.
족쇄를 풀 방법은 없었다.
반 남작은 매일 밤마다 날 겁탈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는 몸을 주기 싫으면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투명하게 만들라고 말했다.
그가 투명화하기를 원하는 물건들은 대부분 마약이나 장물 같은 것이었다.
반 남작은 불법적인 물건들을 투명하게 만들어 안전히 거래처에 넘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런 그의 욕심을 내 능력으로 채워줄 생각이 없었다.
내가 거절할 때마다 반 남작은 다시 날 겁탈했다.
그렇게 지옥 같은 생활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러다 결국 오늘…… 난 자살을 했다.
하지만 또 한 번의 기회를 얻은 지금, 다른 선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의 내겐 이 족쇄를 풀어 버릴 힘이 있다.
내 팔은 전과 똑같이 가녀리기만 했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인간을 초월하는 것이다.
족쇄를 양손으로 잡아 힘껏 당겼다.
그러자 족쇄는 쩌적 하고는 갈라졌다.
우선 옷을 입어야 했다.
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몸뚱이였다.
문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예상대로 잠겨 있었다.
퍽!
발로 문을 걷어찼다.
쾅!
문은 통째로 뜯겨 나가 복도에 처박혔다.
그 소란에 하인들이 모여들었다.
여자 하인도, 남자 하인도 보였다.
그중 날 가장 막 대했던 남자 하인 한 명에게 다가갔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이 썅년 족쇄를 풀었잖아?”
남자 하인이 다짜고짜 내게 손찌검을 하려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내 주먹이 뻗어 나갔다.
퍽!
남자 하인의 얼굴에 주먹이 제대로 들어갔다.
“컥!”
남자 하인의 코가 부러지고 쌍코피가 터졌다.
난 뒤로 넘어진 남자 하인에게 다가가 그의 옷을 벗기려 들었다.
그러자 다른 하인들이 달려들었다.
나는 그들에게 가차 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퍼퍼퍼퍼퍽!
전이었다면 상상도 못 했을 힘으로 난 그들을 모조리 쓰러뜨렸다.
그리고 다시 남자 하인의 옷을 벗기려 했다.
하지만 그는 저항했다.
그래서 머리를 잡아 반대로 돌렸다.
두두둑!
목이 부러지니 더 이상 저항을 하지 못했다.
죽으면서 혹시 대소변이라도 지릴까 싶어 얼른 바지부터 벗겨서 입었다.
그리고 상의도 벗겨 걸쳐 입었다.
내겐 지금 움직이기 편한 옷이 필요했다.
그래서 여자 하인이 아닌 남자 하인의 옷을 빼앗아 입은 것이다.
한바탕 소란이 일자 사병들이 들이닥쳤다.
“무슨 일이냐!”
그들은 주변 상황을 넋이 나가 살피다가 발가벗겨진 남자 하인과, 그 하인의 옷을 주워 입은 날 번갈아 보고서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사병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설마…… 네년이 그런 것이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그래? 이년이 제대로 돌았구나!”
사병이 목을 좌우로 꺾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가 다른 사람들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손찌검을 하려 들었다.
하지만 난 그의 뒤로 돌아가서 한 손으로 턱을 잡고 확 당겼다.
두두득!
“컥……!”
사병의 목이 완전히 뒤로 꺾였다.
거꾸로 돌아간 얼굴이 등에 달린 것 같은 기이한 형상이 되었다.
등에도 눈이 달렸다는 말은 이 사병을 위해 있는 말 같을 정도였다.
사병은 그대로 쓰러졌다.
그러자 다른 사병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그다음 행동이 이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우물쭈물거릴 뿐이었다.
‘끼리끼리 모인다더니.’
반 남작이 쓰레기인 만큼 사병들도 똑같은 쓰레기들이었다.
그저 반 남작의 위세만 믿고 설칠 뿐, 이런 위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다가갔다.
“흐억!”
가장 선두에 있던 사병이 갑자기 코앞으로 다가온 날 보며 놀라 검을 휘둘렀다.
자세가 엉망인 검이 제대로 상대방을 벨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지금의 난 일개 사병이 전력으로 상대해도 상처 하나 낼 수 없을 만큼 괴물이다.
그런데 저런 어설픈 검질이라니.
난 사병의 검을 피하고서 명치를 때렸다.
뻑!
“크허……!”
사병이 얻어맞은 곳을 감싸 쥐고 쓰러졌다.
아마 뼈가 부러지고 장기가 터졌을 것이다.
사병 하나를 제압한 즉시 뒤에 있던 사병 두 명의 옆구리를 때렸다.
퍼퍽!
그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눈을 까뒤집더니 널브러졌다.
나는 또 다른 사병들에게 다가갔다.
“으, 으아아아아!”
그때 후미에 서 있던 사병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그러자 도미노 현상처럼 다른 사병들도 무기를 집어 던지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사병들을 굳이 따라가 죽일 마음은 없었다.
난 내가 목적한 바를 이루고 이 저택을 떠나기만 하면 되니까.
그리고 그 목적한 바는 당연히 반 남작의 살해다.
난 3층으로 올라가 반 남작의 방을 찾으려 했다.
한 번도 이 저택의 곳곳을 둘러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저 반 남작의 방이 저택의 가장 높은 층에 있을 거라고 예상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내 수고를 덜어주려는 건지, 반 남작이 호위기사를 대동한 채 방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는 놀라고 화난 얼굴로 성큼성큼 복도를 걷다나 날 발견하고서 멈춰 섰다.
하인 중 한 명이 그에게 소동의 전말을 알린 모양이다.
반 남작은 날 씹어 죽일 듯 노려보며 고함쳤다.
“네 이 개 같은 년!”
내 입장에서 보자면 개 같은 건 반 남작이다.
아니, 저 인간은 그냥 개다.
욕망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개.
하루 종일 발정이 나서 색을 밝히는 개.
그런 개가 사람인 내 인생을 망쳐 놓았다.
난 사람으로서 그 개새끼를 죽이려는 것뿐이다.
“네년이 내 가문을 피바다로 만들어?! 얌전히 있기에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더니 손톱을 숨기고 있었어! 대체 지금까지는 왜 그냥 당하고만 있었던 건데? 어!”
반 남작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한편으로는 등에 식은땀이 흐르기도 할 것이다.
그동안 날 겁탈해 온 수많은 밤들이 어쩌면 그의 마지막 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테니까.
“그동안 힘이 없었으니까.”
“뭐? 그럼 지금은 갑자기 그런 힘이 생겼다는 말이냐?”
“그래.”
“어디 천한 것의 혀가 저렇게 짧아! 내 이 하극상을 용서 못 하겠으니 당장 그 목을 쳐야겠다!”
“할 수 있으면 해봐.”
“레윈!”
레윈은 반 남작의 호위기사다.
실력은 제법이지만 돈을 너무 밝혀 다른 귀족 밑에 가지 않고 가장 돈을 많이 주는 반 남작을 주군으로 삼았다.
레윈이 살기등등한 눈을 희번덕거리며 검을 뽑았다.
그가 망설임 없이 내게 다가왔다.
터벅터벅.
레윈은 날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 내게 다가오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저승으로 향하고 있다는 걸 모르겠지.
레윈이 가까이 다가와 내게만 들릴 듯 낮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사실 반 남작님만 아니었으면 나도 네년을 한번 맛보고 싶었지.”
“반 남작 밑 닦으면서 살지 않았다면 여기가 네 무덤이 되지는 않았을 거야.”
내 말에 레윈은 기가 탁 막힌 듯 혀를 찼다.
사실 내 언행에 지금 나도 많이 놀라는 중이다.
지금의 난 순수한 나라고 할 수 없다.
내 안에는 나 말고도 여러 가지의 인격이 복합적으로 뒤섞여 있다.
언제 어느 때든 다른 가면을 쓰고 상대방을 대할 수 있을 만큼.
내 인생을 한 번 더 살게 해준 유지웅의 혼에 담긴 여러 사람의 인격 때문이다.
레윈은 놀란 것도 잠시, 미간을 와락 찌푸렸다.
“그 입부터 찢어주마!”
레윈이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 검이 내 입을 찢는 일 같은 건 벌어지지 않았다.
탁.
난 검날을 손으로 잡았다.
“……!”
“……!”
레윈과 반 남작이 경악에 찬 얼굴로 입을 쩍 벌렸다.
난 검날을 잡아당겼다.
레윈은 순간적으로 가해진 내 힘을 견디지 못하고서 검을 놓쳤다.
상대와의 싸움에서 검을 놓쳐 버린다는 건 검사의 수치다.
나는 빠르게 레윈의 지척으로 다가갔다.
레윈이 주춤하며 몸을 빼려는 순간, 난 벌어진 입에 손을 집어넣어 아래위로 찢었다.
쩌어억!
“끄어어어어어!”
레윈의 입이 찢어지며 턱이 빠져 버렸다.
빠진 턱이 피로 물들어 덜렁댔다.
난 한 손으로 레윈의 목을 잡고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두드득!
“끄으…….”
레윈의 눈알이 뒤로 넘어가며 흰자위만 가득 찼다.
그걸로 끝.
레윈의 인생은 거기서 마감되었다.
휙. 털썩.
레윈을 옆으로 던져 버리고 반 남작에게 다가갔다.
터벅터벅.
반 남작은 겁에 질려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 허둥거렸다.
“자, 잠깐만 루! 기다려! 내 말 좀 들어봐.”
“얘기해.”
난 반 남작에게 향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반 남작이 뒷걸음질 쳤다.
“미안하다! 내가 다 잘못했어! 네, 네가 이렇게까지 상처받을 줄은 몰랐다!”
“사과는 잘 받았어. 이젠 더 미련 없이 죽일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아니! 기다려 봐! 이, 이렇게 하자! 내가 네게 내 재산의 2할을 주마! 이건 엄청난 제안이야! 내 재산이 얼마나 많은지는 익히 짐작하고 있겠지? 그중에 2할이라면 너는 물론이고 네 자손들까지 평생 먹고살 수 있는 금액이라고!”
“널 죽이면 전 재산을 훔쳐 갈 수 있을 텐데 왜 그래야 하지?”
반 남작은 자신의 제안이 먹혀들지 않자 다시 화를 냈다.
“이 썅년이! 날 죽이면 네가 무사할 것 같아? 평민 쓰레기가 귀족을 죽인 죄는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결국 너도 죽을 거란 말이야!”
“괜찮아. 이미 한 번 죽었으니까. 그런 거 두렵지 않아. 어차피 내 죄는 이미 씻기 힘들 정도로 커. 널 죽이지 않아도 죽어. 그러니까 이왕 죽을 거 널 죽일 거야.”
“이 개 같은 년!”
반 남작이 욕을 내뱉는 순간.
타탁!
빠르게 달려 나가 그의 벌어진 입에 주먹을 질러 넣었다.
퍼억!
“……!”
내 주먹은 반 남작의 입으로 들어가 뒷목을 뚫고 나갔다.
주먹을 빼자마자 반 남작의 왼쪽 가슴을 가격하고, 정수리를 발로 내리찍었다.
퍼퍽!
반 남작은 머리가 터지고 가슴이 움푹 파인 비참한 광경으로 쓰러져 죽음을 맞았다.
난 그의 옷 속에서 돈 주머니 하나를 꺼내 허리에 찼다.
바닥에 떨어진 레윈의 검도 챙겼다.
그리고 유유히 저택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