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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히어로-109화 (109/153)

데일리 히어로 109화

택시를 타고 주소지를 찾아갔다.

“제대로 찾아왔나 보네.”

내가 내린 곳엔 넓은 정원을 낀 거대한 저택이 하나 보였다.

정원엔 셰퍼드 두 마리가 묶여 있었고,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 넷이 주변을 감시하는 중이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

“섀도우 워커.”

난 섀도우 워커를 시전했다.

그러자 내 몸이 바닥에 깔린 그림자 속으로 녹아들었다.

그것은 신기한 경험이었다.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오묘하고 기이했다.

그림자와 한 몸이 되어 빠르게 정원 안으로 들어섰다.

어둠이 내린 밤인지라 그림자는 사방에 깔려 있었고, 난 그림자들을 따라 정원을 가로질러 저택 안으로 잠입할 수 있었다.

정원에 있던 셰퍼드들이 이상한 기척을 감지했는지 컹컹! 짖어댔지만, 검은 정장의 경호원들은 엉뚱한 곳만 조사했다.

저택으로 들어오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10초 남짓.

영력은 3이 닳았다.

아직 20 이상의 영력이 남아 있었다.

난 집에 들어와서도 계속 그림자를 따라 이동하며 이 방 저 방을 드나들었다.

1층에는 백설우가 없었다.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러는 사이 다시 20초가 흘렀다.

총 30초가 지나갔으니 영력은 10을 소모한 것이다.

2층에도 많은 방이 있었다.

가장 가까운 방부터 하나하나 들어갔다 나왔다.

그러다 드디어, 백설우의 방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백설우는 침대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난 어둠 속에서 백설우의 방 곳곳을 살폈다.

다행히 방 안에는 감시 카메라가 없었다.

그림자 속에서 천천히 몸을 빼냈다.

백설우는 아직 내가 방 안에 들어온 것을 모른 채 여전히 창밖에만 시선을 두고 있었다.

그런 백설우의 뒤로 천천히 다가가 입을 탁 틀어막았다.

놀란 백설우가 몸부림쳤다.

‘윽! 역시 힘이 장난 아니네.’

이 녀석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나조차도 힘으로 제압하기가 조금 버거웠다.

아무래도 육신의 힘을 컨트롤하는 기관이 망가진 모양이다.

사실 인간의 뇌는 몸에 무리가 갈 정도로 무리하지 못하도록 늘 제어를 하고 있다.

그런데 백설우는 그 제어장치가 없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힘을 써 버리면 결국 다치는 건 자기 자신이다.

근육과 인대에 무리가 가서 나중에는 다 끊어지고 늘어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난 백설우가 더 난리 치기 전에 귀에 대고 속삭였다.

“오들리. 난 오들리야.”

그 말을 듣자마자 버둥거리던 백설우가 멈췄다.

“네가 게시판에 적은 글을 봤어. 그래서 몰래 여기까지 온 거야. 그런데 네가 소동을 피우면 난 찾아온 보람도 없이 돌아가야 돼. 무슨 말인지 알겠지?”

백설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손 치울게. 소리 지르면 안 돼.”

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백설우.

나는 천천히 그의 입을 막고 있던 손을 치웠다.

백설우는 약속했던 것처럼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대신 몸을 천천히 돌려 날 바라봤다.

오들리로 활동하는 나는 늘 마스크에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설우는 날 알아보지 못했…….

“지웅이 형.”

……어라?

“지웅이 형이다.”

어, 어떻게 알았지?

갑자기 정체를 확 털려 버리니까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일단은 잡아떼자.

“그게 무슨 소리야? 난 오들리야.”

백설우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나는 기억합니다. 그 목소리 기억합니다. 지웅이 형입니다. 지웅이 형이 맞습니다. 나를 구해준 형입니다. 목소리 잊지 못합니다. 잊을 수 없습니다.”

허어…… 혹시라도 목소리를 알아들을까 봐 평소보다 더 깔고 얘기했는데, 대번에 들켜 버렸다.

이렇게 된 바에야 더 정체를 숨길 이유가 없었다.

난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었다.

“그래, 맞아. 나야.”

“지웅이 형!”

백설우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쿨럭! 처, 천천히 해. 너 힘이 너무 세.”

“아, 미안합니다. 아무튼 정말 반갑습니다.”

나는 설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도 반갑다. 잘 지냈어?”

“잘 지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들리가 정말 지웅이 형입니까? 깜짝 놀랐습니다.”

“나도 네가 한 번에 알아봐서 놀랐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맞아. 내가 오들리야. 네 사연도 다 읽어봤고. 그래서 널 도와주러 왔어.”

“그럼…… 나를 죽여줄 겁니까?”

그리 묻는 설우의 눈빛이 너무나 슬퍼 보였다.

그 때문에 내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니, 난 널 살릴 거야.”

“살린다……? 저는 죽여달라고 했습니다.”

“설우야. 아직 넌 할 수 있는 걸 다 안 해봤어. 그러니까 그런 말은 하지 마. 이제 겨우 열다섯 살밖에 안 됐다고, 너. 내가 도와줄게. 설우가 살 수 있도록.”

“하지만 저는 하루하루가 괴롭습니다. 고통스럽습니다.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습니다.”

난 설우의 손을 꽉 잡았다.

“내가 널 좋아하잖아. 난 네가 살기를 원하잖아.”

“아…….”

설우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러니까 형이랑 같이 한 번 더 힘을 내보자. 알았지?”

설우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루의 후회

“그런데 어떻게 들어오신 겁니까?”

설우가 뒤늦게 궁금해하며 물었다.

“형은 사실 마술사거든.”

“마술사? 마술을 하는 사람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다 속임수라고 했습니다.”

“형은 진짜 마술사야. 속임수 같은 게 아니라.”

“정말입니까?”

설우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럼, 정말이지. 그러니까 아무도 모르게 여기까지 들어왔지.”

“신기합니다. 진짜 마술사는 처음 봅니다.”

“그래서 형이 지금부터 마술로 설우의 아픈 곳을 고쳐 보려고 해.”

“저는 머리가 아픕니다. 자폐증이라고 합니다. 뇌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고 균형이 어긋났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다릅니다.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설우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인정하는 것 같았다.

“그래 맞아. 형도 알고 있어.”

“그리고 이건 거의 고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형도 설우를 백 퍼센트 고칠 수 있다고 말 못 해. 아니, 오히려 못 고칠 가능성이 높지. 하지만 형의 마술로 하는 데까지는 해보고 싶어.”

“어떻게 말입니까?”

“형은 여러 가지 마술을 할 수 있는데, 그중에 사람의 병을 고치는 마술도 있어.”

“와~ 신기합니다! 그런 마술은 처음 들어봅니다.”

“이제 시작할게. 설우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겠지만 형을 믿어봐.”

“알겠습니다. 형은 날 구해준 사람입니다. 믿을 수 있습니다.”

“그래.”

난 설우의 손을 잡은 상태로 라모나의 영혼을 설우에게 흘려 보냈다.

내 가슴에서 인 작은 빛이 팔을 타고 내려가 설우의 손으로 넘어갔다.

빛은 계속 움직여 설우의 가슴까지 가서야 사라졌다.

라모나의 영혼이 완벽하게 이전된 것이다.

그 상태에서 이번엔 비욘드 텅의 능력을 사용해 라모나의 능력을 증폭시켰다.

“이제 됐어.”

“다 된 겁니까?”

“응.”

“나는 아무것도 못 느꼈습니다.”

“그게 당연한 거야. 하지만 나는 분명히 마술을 걸었어. 이제 설우의 아픈 곳이 고쳐지는지 안 고쳐지는지 지켜보면 돼.”

“언제 고쳐집니까?”

“그것도 모르겠어. 하지만 매일 밤 이렇게 와서 형이 설우에게 마술을 걸어줄게.”

“매일 밤 올 수 있습니까?”

“그럼. 형처럼 대단한 마술사는 이런 거 아무것도 아니야.”

“정말 멋있습니다. 저도 지웅이 형처럼 되고 싶습니다.”

“그럴 수 있을 거야. 그 전에 우선 건강해져야겠지? 그러니까 설우도 마음 강하게 먹고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해야 돼. 알았지?”

설우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지웅이 형이 말한 대로 하겠습니다.”

“그래. 오늘 형 만난 거 절대 비밀이야. 알았지?”

“아무한테도 말 안 합니다. 나만 알고 있을 겁니다.”

“착하다. 그럼 형은 그만 가볼게.”

“네. 내일도 꼭 오셔야 합니다.”

“그럼~ 형이 마술 보여줄 테니까 잘 봐.”

설우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지켜봤다.

난 씩 웃고서 섀도우 워커를 시전했다.

“섀도우 워커.”

시전어와 동시에 내 몸이 그림자 속에 녹아들었다.

“우와…….”

설우의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그림자를 타고 방에서 빠져나와 계단을 타고 내려간 뒤 1층 현관을 벗어났다.

그러자 다시 개들이 컹컹! 짖으며 난리가 났다.

“이 녀석들이 오늘 왜 이래?”

“아까 뭘 잘못 먹었나?”

“아무것도 없는데 요란이네.”

경호원들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말했다.

난 더욱 빨리 움직여 정원을 벗어나 저택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그리고 개 짖는 소리가 그칠 때쯤 되어서야 그림자 속에서 빠져나왔다.

“휴, 이제부터 시작이다. 형이랑 열심히 해보자, 설우야.”

그날 이후 난 매일 밤 설우를 찾아갔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학교는 개학을 했다.

낮에는 학교를 갔다가 하교하면 의뢰를 해결하러 다녔다.

그리고 밤에는 설우를 찾아가 비욘드 텅으로 라모나의 능력을 증폭시켜 주었다.

그렇게 딱 열흘이 흘렀다.

오늘도 난 설우의 방으로 몰래 찾아들었다. 내가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설우가 반갑게 날 맞이해 주었다.

“지웅이 형~ 보고 싶었습니다.”

“나도 보고 싶었다. 별일 없었지?”

“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늘 방에만 있어서 지루합니다.”

“책이라도 읽지 그러니.”

“이미 이 저택에 있는 책은 다 읽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 북을 다운받아 보고 있습니다. 그래도 지루합니다. 방 안에만 있어야 해서 지루합니다.”

“너 책 읽는 거 좋아하는구나?”

“네. 좋아합니다. 책에는 많은 정보가 들어 있습니다. 모르던 것을 알게 해줍니다. 그래서 좋아합니다.”

흠…… 내가 알기로 자폐증을 앓고 있는 사람의 평균 아이큐가 70에서 80이라고 했던 것 같다.

한데 어쩌면 설우는 아이큐 자체는 엄청 높을지도 모르겠다.

요 며칠 설우와 교류를 하면서 알게 된 건데, 의외로 아는 것도 많고 다양한 방면에 지식이 해박했다.

말이 좀 어눌해서 그렇지, 멍청한 얘기를 한 적도 한 번 없었다.

“손 줘.”

“네.”

내 말에 설우가 바로 손을 내밀었다.

난 설우의 손을 잡고서 비욘드 텅으로 라모나의 능력을 증폭시켰다.

그러자 설우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지웅이 형이 뭘 하는 건지 잘 모르겠고, 내 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건지도 알 수 없지만, 이 순간이 가장 기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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