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107화
찰싹!
“영혼이나 보여줘.”
“아무렴요.”
라헬이 손을 싹싹 비비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딱!
라헬의 옆으로 새로운 영혼 네 개가 나타났다.
“현재 지웅 님의 소지금과 영력으로 구매할 수 있는 영혼들만 불렀습니다~”
영력은 낮은데 링크를 많이 가져왔으면 내 영력보다 높은 영력을 필요로 하는 영혼들도 불러냈을 것이다.
그래놓고 내가 내 영력보다 높은 영력의 영혼을 사려 하면 아무 말도 안 했겠지.
나중에서야 ‘아, 그러고 보니 지웅 님의 영력보다 높은 영혼의 영력을 사셨네요. 이를 어쩌죠? 그렇게 되면 영혼을 사나 마난데. 안타깝게 됐네요~’ 했겠지.
라헬은 해맑은 얼굴로 가장 왼쪽의 영혼을 가리켰다.
“샹체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죠?”
“응.”
“그럼 나머지 세 영혼의 힘을 알려 드리죠. 전부 3,000링크로 살 수 있고, 영력은 25가 필요합니다.”
역시 25까지 올리길 잘했다.
“샹체 옆에 있는 영혼의 이름은 벨로아. 영혼의 힘은 완벽한 민첩성입니다.”
“완벽한 민첩성?”
“벨로아는 음속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 여성이었죠. 그는 자신의 재능을 살려 데브게니안 대륙 최고의 도둑이 되었답니다. 그녀가 목표로 한 물건은 무조건 손에 넣었죠. 그리고 단 한 번도 경비대에게 잡힌 적이 없답니다. 왜? 음속으로 움직이니까요. 그녀가 물건을 훔치는 걸 본 사람이 존재치 않았죠. 남부러울 것 없이 살던 그녀였지만 끝내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어요.”
“왜 자살을 해?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았다며?”
“음속의 속도를 가지고서도 훔칠 수 없는 게 있었거든요. 바로 사람의 마음이죠. 그녀는 짝사랑하던 사내에게 3년 동안 고백했지만 끝내 그의 마음을 얻지 못했답니다. 사내는 다른 여인과 결혼했고, 벨로아는 사내의 결혼식장에 나타나 스스로 목을 찔러 죽어 버렸죠.”
그것 참 슬픈 일이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얻지 못한 삶은 가혹한 것이구나.
라헬이 그 옆의 영혼을 가리켰다.
“이 영혼의 이름은 크라임. 힘은 섀도우 워커. 말 그대로 그림자를 걷는다는 뜻이죠.”
“그림자를 걸어?”
“네. 크라임은 그림자 속에 숨을 수 있었어요.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그림자와 동화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림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답니다.”
“그러니까 그림자에 완벽히 동화되어 이동할 수 있다는 거야? 그림자가 이어진 곳이라면 어디든?”
라헬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거 아주 유용한 능력이다.
섀도우 워커를 잘 이용하면 백설우와 접촉하는 게 아주 수월해질 것이다.
“크라임은 암살자였죠. 하지만 암살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것도, 그다지 실력이 좋은 것도 아니었답니다. 다만 그는 꾸준히 연습을 할 뿐이었죠. 그 결과 10년이 지난 뒤엔 제법 이름을 날릴 수 있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섀도우 워커의 능력을 각성하면서 딱 1년 내에 전설적인 암살자가 되었답니다.”
“그렇겠지. 그림자에 동화되는 능력은 암살자에게 딱이잖아.”
“그렇죠. 하지만 그도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됐어요.”
“왜?”
“너무 많은 사람을 죽이다 보니 잠들 때마다 그들의 망령이 보여서 반쯤 미쳐 버렸거든요.”
어째 하나같이 자살해서 죽어 버리냐.
라헬이 마지막 영혼을 가리켰다.
“이 영혼의 이름은 루. 능력은 투명화랍니다.”
“투명화?”
“만지는 물건을 투명화시킬 수 있죠. 물론 자기 자신도 가능하답니다.”
“오호?”
이것 역시 아주 유용한 능력이었다.
“루는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었지요. 외모만큼 마음도 아름다웠던 그녀는 세상의 삿된 욕망 같은 것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답니다. 그저 그녀가 태어난 소박한 시골 마을의 작은 집을 벗 삼아 살아가는 것이 그녀의 낙이었죠. 루는 투명화 능력을 자주 사용하지 않았어요. 그럼 언제 사용했을까요?”
왜 갑자기 나한테 퀴즈를 내는 거냐?
좋아, 장단 한번 맞춰주마.
“심성이 곱고, 삿된 욕망이 없다 했으니 주변에 자신의 힘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을 때 사용했겠지.”
“바로 그거랍니다. 뭐 예를 하나 들자면 가정 폭력으로 도망쳐 온 아이를 감추어준다든가 할 때 투명화 능력을 사용했죠.”
흠, 그런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겠네, 확실히.
“하지만 낭중지추! 그녀가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줌으로써 그녀의 능력은 입소문을 타고 퍼져 나가 결국 먼 대도시의 귀족들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죠. 이후부터 수많은 귀족이 찾아와 그녀를 자신의 가문으로 데려가려 했답니다. 하지만 루는 한사코 거절했다죠. 귀족들은 모두 루에게 어마어마한 부와 명예를 약속했지만, 말씀드렸다시피 루는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이번 영혼의 열전은 꽤나 길어지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공작가의 장남이 루를 찾아왔답니다. 루는 이번에도 자신을 귀찮게 하려는 것인가 싶어 마음이 힘들었죠. 그런데 그녀의 예상과 달리 그 공작가의 장남은 루가 살고 있는 마을에 귀족 접근 금지령을 내렸지요.”
“뭐? 공작이 그 정도의 힘이 있나?”
난 데브게니안 대륙의 여러 사람으로 살아봤기에, 그쪽의 귀족 체계과 직급마다 가지고 있는 권위, 힘, 영향력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공작이라고 하면 왕족의 혈육인 경우가 많고, 왕가를 제외한 귀족 중에서 가장 높은 작위다.
게다가 독립적으로 공작령도 가질 수 있어 분명 대단한 힘을 가진 귀족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공작가의 장남이 다른 귀족들에게 루가 사는 마을에 발을 들여놓지 말라 명할 수는 없었다.
내 의문에 라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공작가의 장남은 그만한 힘이 있었답니다. 당대 최고, 역사적으로도 최고로 꼽히는 소드 마스터 제서스 로드리만이 그였으니까요.”
“제서스 로드리만?”
“네. 로드리만 공작가의 마지막 핏줄이며, 신검(神劍) 제서스라고 불리었죠. 그의 검술은 가히 신의 경지에 다다라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훗날에는 광검(狂劍) 제서스라고 불리게 되었죠.”
알겠다.
신검 제서스에 대한 정보는 길버트와 바레지나트의 기억 속에 있었다.
모두가 존경하며 우러러보았던 제서스는 훗날 갑자기 미쳐 버려 가문의 모든 사람을 도륙했다. 그리고 1년여간 전 대륙을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살인을 저지른 뒤, 대륙 공적으로 낙인찍혔을 때 돌연 잠적해 버렸다.
그로부터 3년 후.
제서스는 어느 야산에서 목 잘린 시체로 발견되었다.
왜 그가 미쳐 버렸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아무튼 그가 루를 찾아갔었던 거군.
“이해했어. 제서스 정도면 충분히 다른 귀족들을 억누를 힘이 있었지.”
“맞아요. 아무튼 제서스는 루에게 당신이 너무 힘들어할 것 같아 짐을 덜어주기 위해 왔다고 했지요. 루는 그런 제서스에게 감동을 받았답니다. 제서스는 한동안 루의 마을에 묵었어요. 아무리 귀족 접근 금지령을 내렸다 하더라도 자신이 사라지면 귀족들은 슬금슬금 다시 발을 들여놓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지요. 한데 제서스가 그 마을에 묵으면서 루는 그 잘생기고, 남자답고, 상냥한 사내에게 푹 빠져 버린 거예요.”
“그래서?”
“결국 제서스가 마을을 떠나는 날 루는 그를 따라가기로 마음먹는답니다. 제서스는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고 루를 자신의 가문으로 데리고 갔죠. 하지만 제서스에게는 약혼자가 있었답니다. 그걸 몰랐던 루는 하루하루를 마음 아파하며 보내야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제서스의 약혼자가 루를 찾아와 말했죠. 떠나달라고. 이용만 당하는 당신이 불쌍해서 더 두고 볼 수가 없다고.”
“이용을 당해?”
그 말을 듣는 순간 저절로 떠오르는 비극적 스토리가 있었으나 아니길 빌며 물었다.
“사실 제서스도 루를 이용할 목적으로 친절을 베푼 뒤, 자신에게 반하게 만들어 데리고 온 것이었죠. 제서스의 약혼자는 같은 여자로서 루가 안타까워 이를 말해준 거였답니다. 결국 루는 마음이 조각나 그날 밤 투명화의 능력을 사용, 스스로를 투명화시켜 성을 떠나 버리죠.”
역시나 그렇게 진행되는군.
“그러다 어느 더러운 귀족에게 잡혀 몸과 마음이 모두 더럽혀진 다음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답니다.”
“하나같이 우울한 인생을 사는군, 이 영혼들은.”
“그래서 레이브란데 님과 계약을 맺은 거죠. 세상에 한이 남은 영혼들은 너무 탁해서 그것을 씻어내기 전까진 저승으로 못 가니까요. 때문에 레이브란데 님과 계약을 맺어 자신들의 힘을 남을 돕는 데 사용할 경우 맑은 에너지가 발생하고 그것이 탁한 영혼을 세척해서 저승으로 가게 되는 것이죠.”
“그래 그 이야긴 알아. 그리고 그들을 성불시켜 준 대가로 자신들의 힘을 내게 선물처럼 남겨주는 거고.”
카시아스에게 이미 한 번 들은 이야기다.
아무튼 내가 사들이는 영혼들 중 괜찮은 죽음을 맞은 이는 아무도 없다.
앞으로도 영혼들의 열전을 들을 때마다 유쾌하지 않을 것은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 이제 영혼을 사셔야죠?”
지금 내게 있는 링크가 12,000남짓.
1,500링크의 잘루스와 3,000링크의 영혼 셋을 다 사도 충분하다.
“영혼들 모두 다 줘.”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늘 느끼는 거지만 라헬이 아무런 딴지도 걸지 않고 영혼을 팔아넘기면 어쩐지 기분이 찝찝하단 말야.
나 잘되는 꼴을 워낙에 싫어하는 놈이라야 말이지.
라헬이 오른손을 우아하게 휘두르자 네 개의 영혼이 내게로 날아왔다.
그것들은 곧 몸 안으로 스며들어 사라졌다.
라헬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제 이천 링크도 안 남았네요?”
“그래서?”
“거지랑은 볼일 없으니 얼른 사라져 주시길.”
하아…… 이젠 면역이 되레 한다.
저 인간의 저런 행동.
라헬은 인사도 없이 뒤돌아섰고, 소울 스토어와의 접속이 끝났다.
* * *
현실로 돌아온 난, 마인드 탭을 열었다.
“마인드 탭!”
이름 : 유지웅
소속 : 지구, 대한민국
성별 : 남
나이 : 20
영력 : 25/25
영매 : 25
아티팩트 소켓 4/4
보유 링크 : 1,876
저 아름다운 영매의 숫자를 보라.
이제 딱 반 왔다.
나머지 25개의 영혼만 더 모으게 되면 레이브란데의 인과율은 끝난다.
난 영매를 터치했다.
팅.
영매
패시브 소울 : 14
―강인한 육신[소라스]
―뛰어난 청력[파펠]
―뛰어난 자가 치유력[라모나]
―남성을 유혹[아르마](침묵)
―완벽한 절대미각[리조네]
―뛰어난 요리실력[마르펭]
―뛰어난 민첩성, 근력[바레지나트]
―아이언 스킨[지그문트]
―굉장한 창술[블랑]
―굉장한 궁술[쟈비아]
―굉장한 리더십[길버트]
―포이즌[루카스]
―애니멀 링크[카인]
―완벽한 민첩성[벨로아]
액티브 소울 : 11
―낭아권[무타진/소모 영력 1/재충전 5초]
―화 속성 초급 마법 번(Burn)[마르카스/소모 영력 5초당 1]
―수 속성 초급 마법 아쿠아(Aqua)[레퓌른/소모 영력 5초당 1]
―천상의 목소리[로레인/소모 영력 5초당 1]
―뇌 속성 중급 마법 라이트(Light)[포포리/소모 영력 3초당 1]
―화 속성 중급 마법 파이어(Fire)[파멜라지나/소모 영력 3초당 1]
―지 속성 중급 마법 더트(Dirt)[제피엘/소모 영력 3초당 1]
―투시[잘루스/소모 영력 1초당 1]
―타임 리와인드[샹체/소모 영력 10/1일 3회 제한]
―섀도우 워커[크라임/3초당 1]
―투명화[루/3초당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