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106화
아니, 그럴 겨를이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
난 무릎 꿇고 있는 김종래를 일으켜 세웠다.
“이러지 말자, 종래야. 남자가 무릎을 함부로 꿇어서 쓰나.”
어라? 내가 왜 이러지?
사실 난 이 녀석을 실컷 깔아뭉갠 다음 능력을 되찾아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다정다감한 말투를 쓰고 있었다.
게다가 김종래를 일으키는 내 손길이 마치 여인을 다루듯 조심스럽고 부드럽다.
김종래는 내 손에 이끌려 일어섰다.
난 그가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겼다.
그러자 여태껏 감추어져 있던 사슴처럼 아름다운 눈이 드러났…… 미쳤어! 나 왜 이래! 정신 차려!
‘이것이 남자를 유혹하는 아르마의 능력인 건가?’
무섭다.
진정 무섭다.
이 능력은 김종래를 괴롭히기 위해서 전이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김종래뿐만 아니라 녀석의 주변에 있던 남자들까지 함께 괴로웠을 게 분명했다.
나도 지금 자괴감이 들 지경이다.
그러니 김종래에게 끌렸던 다른 남자들은 어떻겠는가?
자신의 새로운 성 정체성에 눈을 뜬 건지 의심하며 괴로워했을 것이다.
아무튼 이 망할 능력을 얼른 가져가야지 안 되겠다.
“김종래.”
“네……?”
“그렇게 놀랄 필요 없어, 종래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내가 하려던 말은 ‘뭘 그렇게 놀래, 이 자식아! 죄 지은 게 많아서 그러냐?’였단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놀랄 필요 없어, 종래야’라니!
……참 다행이지.
하려던 말 그대로 했으면 이 안쓰러운 아이가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 으아아아아악! 정신 차리라고, 유지웅!
“저, 저기…… 빨리 저 좀 도와주세요, 선생님.”
“응, 그럼 도와줘야지. 손 좀 줘볼래?”
진짜 믿기지 않는다.
내가 종래 씨한테 이토록 나긋나긋한 말투를 사용하고 있다니, 정말 좋은 걸?
……또 생각이 이상한 쪽으로 꼬여 버렸어.
빨리 능력을 가져가자.
그게 내가 살 길이다.
종래가 손을 내밀었다.
난 그 손을 살며시 잡았다.
주먹을 많이 쓰고 살았을 텐데도 섬섬옥수 어찌나 고운지 이대로 잡고서 영원히 놓아주기 싫었다.
‘……시팔, 진짜 무서운 능력이다, 아르마.’
“저, 저기 선생님. 왜 이렇게 쪼물딱대세요.”
종래의 음성에 겁이 가득 담겨 있었다.
여태껏 숱한 남성에게 비슷한 짓을 당했던 모양이다.
가엽기도 하지.
종래야.
내가 빨리 널 고통 속에서 해방시켜 줄게.
그럼 너는 날 영원히 기억해주겠지?
단지 스쳐 가는 인연이 될지라도 말이야.
그렇게나마 네 기억 한 조각 안에 자리할 수 있다면 됐어.
그걸로 나는 좋아.
나는 종래의 손을 잡은 채로 그에게 주었던 아르마의 힘을 되찾고 싶다 생각했다.
그러자 종래의 가슴에서 환한 빛이 일더니 팔을 타고 움직여 손으로 내려왔다.
그 빛은 영혼의 빛으로 내 눈에만 보이고 종래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빛은 맞잡고 있던 내 손으로 건너와 다시 내 팔을 타고 심장에 안착해 사라졌다.
‘되찾았어.’
아르마의 능력을 되찾자마자 조금 전의 상황이 떠올라 몸을 바르르 떨었다.
‘끔직해!’
내가 대체 저 빌어먹을 양아치를 두고 무슨 생각을 했던 거야?
뭐? 날 영원히 기억해? 스쳐 가는 인연이 될지라도 기억 한 조각 안에 자리할 수 있다면 됐어?
‘우엑!’
당장에라도 먹은 걸 다 게워내고 싶어질 만큼 역겨웠다.
문제는 당시에는 저게 내 진심이었다는 것이다.
김종래는 지금까지 주변에 있던 얼마나 많은 남자를 게이로 만들었을까?
‘어유, 이제 빨리 가야지. 이 새끼랑 같은 공간에서 숨 쉬기도 싫다.’
그렇게 생각하고 자리를 뜨려는데.
꽈악.
“엥?”
김종래가 내 손을 꽉 잡고 놓질 않았다.
“뭐야?”
난 인상을 쓰고 김종래를 노려봤다.
그러자 김종래가 손을 뻗어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이 새끼 왜 이래!
“기억났어, 당신.”
“기, 기억났다고?”
“그래. 어떻게 잊겠어. 정신없이 양아치 짓만 하며 방황하던 날 똑바로 살게 하려고 혼내주었던 사람인데.”
……똑바로 살라고 혼냈던 게 아니라 재수 없어서 그냥 깐 거야, 병신아.
네 멋대로 아름다운 추억 같은 걸로 포장하지 마.
“그랬구나. 내 주변에 있던 형님들, 남동생들이 나를 볼 때 이런 기분이었구나. 이제 그들의 마음을 조금 알겠어. 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내쳤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건지. 하지만 이제 알겠어. 내가 왜 그랬던 건지.”
김종래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모두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였던 거야.”
“……뭐?”
“내 마음 전부를 당신에게 주기 위해서 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거라고.”
“한마디만 더 하면 죽여 버린다.”
“그래. 나도 날 사랑했던 남자들에게 똑같은 말을 했었지. 하지만 그때마다 그들은 내게 이렇게 말했지. 네 손에 죽는다면 그것도 좋아. 나 역시 지금 네게 그런 마음이야. 얼마든지 죽여줘. 단, 마지막 숨은 네 품에서 쉴 수 있게 해줘.”
그냥 때릴까?
때려서 기절시킬까?
재수 없고 역겨워서 미칠 지경이다.
‘아, 침묵!’
내 인내심이 바닥을 치려는 순간 신레이븐 링의 새로운 능력이 떠올랐다.
나는 얼른 아르마의 능력을 침묵시켰다.
그러자 내 얼굴을 쓰다듬고 있던 김종래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악! 에이, 씨팔! 우웩! 우웨에에엑! 뭐라는 거야, 이 병신 같은 새끼가!”
그는 소리치면서 자기 뺨을 무려 여덟 대나 때렸다.
그러더니 소름 끼친다는 듯 양 어깨를 감싸 안고서 날 노려봤다.
“어떻게 한 건데요…….”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불쌍한 인생 구제해 준 거지. 이제 괜찮을 거다. 앞으로 착하게 살아라. 알지? 인비 앞에는 두 번 다시 나타나지 말아야 한다는 거.”
김종래는 경계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다음 부리나케 도망쳤다.
“아…… 머리에 털 나고 가장 더러운 경험이었어.”
빨리 집에 가자. 여기 더 있기도 싫다.
* * *
집으로 돌아온 나는 엄마에게 주었던 라모나의 능력을 되찾아왔다.
“그럼…… 지금까지 몇 개의 영혼을 가지고 있는 거지? 마인드 탭.”
이름 : 유지웅
소속 : 지구, 대한민국
성별 : 남
나이 : 20
영력 : 21/21
영매 : 21
아티팩트 소켓 4/4
보유 링크 : 15,531
앞으로 남은 영혼의 수는 스물아홉.
아직 반 이상이 남아 있지만 링크가 빠르게 쌓이는 만큼 금방 사들일 수 있을 것이다.
만오천 링크 정도면 지금 당장 영력을 몇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고 영혼도 서너 개는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링크를 더 많이 모아볼 생각이다.
레이븐 링처럼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아티팩트가 또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딱 십만 링크까지만 모아보자.’
그 이후에는 더 모아봤자 아이템 업그레이드 이벤트는 일어나지 않는 걸로 판단할 것이다.
어찌 되었든 오늘은 직원도 새로 구했고, 영혼도 되찾았다.
여러모로 알찬 하루였다.
새로운 능력들
개학을 사흘 앞둔 시점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만…… 자폐증은 뇌의 불균형한 발달로 인해 찾아오는 거라던데…… 그럼 그거는 라모나의 힘으로 치료할 수 없는 건가?’
난 인터넷에 접속해 자폐증에 대해 찾아보았다.
그러자 자폐증에 관한 여러 가지 관련 기사와 블로그 포스팅이 제법 많이 떴다.
그 글들을 빠르게 읽었다.
많은 이들이 자폐증의 치료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많이 언급되는 치료법으로는 약물 치료와 심리 치료가 있었다.
심리 치료는 또 그 안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세분화되어 나뉘었다.
그래서 그걸 일일이 다 정리하기엔 무리가 많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모든 치료법들이 자폐증을 완전히 치료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현대 의학으로는 자폐증을 치료할 수 없다. 하지만 현대 의학과 궤를 달리하는 초자연적 힘으로는 어떨까?’
내게는 비욘드 텅도 있다.
라모나의 힘과 영혼의 힘을 증폭시켜 주는 비욘드 텅의 조합으로 엄마의 백혈병도 치료했다.
말 그대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이번에도 기적이 일어나게 만들 수는 없을까?
‘가능할지도 모르지.’
무엇이든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법이다.
나는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서 백설우를 만나보기로 했다.
‘한데 어떻게 만나지?’
백설우는 로열 그룹의 후계자로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다.
게다가 자폐증까지 앓고 있어서 늘 경호원들이 따라붙는다.
그런 백설우를 따로 만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도 나 같은 일반인을 만나게 해줄 리가 없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백설우를 치료하려면 매일 만나야 한다.
비욘드 텅의 능력은 하루에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나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흠…… 어쩌지.”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해 보았다.
사실 법을 무시한다면 가장 괜찮은 방법이 하나 있긴 하다.
백설우를 납치하는 것이다.
그래서 치료가 될 때까지 곁에 두고 돌보면 된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그런 짓 했다간 대번에 잡히고 말 것이다.
거리거리마다 CCTV가 설치되어 있어서 흔적을 남기지 않고 백설우를 납치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혹시 소울 스토어에 도움 될 만한 힘을 가진 영혼이 있지 않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여태껏 뭔가 난관에 부딪혔을 때 소울 스토어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지금껏 모은 링크가 좀 아깝긴 하지만.”
내 목표는 10만 링크를 모으는 것이었다.
다른 아티팩트들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이벤트가 발생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일단은 영력부터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현재 내 영력은 21.
마지막으로 산 영혼의 힘을 사용하는 데 필요한 영력은 20이다.
더 비싼 영혼들을 살려면 영력이 적어도 25이상은 되어야 할 것이다.
마인드 탭을 열어 영력을 터치했다.
영력 : 21
영력을 22로 업그레이드하시겠습니까?
업그레이드 비용은 1,300링크입니다.
[Yes/No]
‘Yes’를 터치.
이후로 영력이 25가 될 때까지 계속 업그레이드를 했다.
영력 : 25
영력을 26으로 업그레이드하시겠습니까?
업그레이드 비용은 3,300링크입니다.
[Yes/No]
영력을 하나하나 업그레이드시킬 때마다 링크 가격이 엄청나게 오른다.
25까지 올리면서 소모된 링크는 총 7,900링크.
내 수중에 남은 건 12,000링크 정도였다.
“소울 커넥트.”
난 바로 소울 스토어에 접속 했다.
* * *
“어서 오세요, 지웅 님. 언제 지웅 님이 오시나 오매불망 기다렸답니다. 오늘따라 더 잘생기신 것 같네요.”
이 망할 수전노 간신배 자식.
링크를 많이 들고 오니까 바로 태도 달라지는 거 봐라.
“언제는 거지라며.”
“하여간 이놈의 입이 말썽이죠.”
라헬이 과장된 행동으로 자기 입을 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