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105화
이름은 장혁우, 안준형, 김기혜.
나이는 차례대로 서른, 스물일곱, 스물넷이었다.
혁우 씨는 생긴 건 살짝 날티 나게 생겼다.
말투도 가볍고 장난스러웠다.
하지만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어 보니, 그 속에 진중함이 보였고 상당히 적극적이었으며 리더십이 강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말발이 좋았다.
그는 오늘 처음 본 모든 사람과 쉽게 융화되었고, 이 일을 꼭 하고 싶다며 열정적으로 덤벼들었다.
저 정도면 어떤 일을 맡겨도 잘하겠다 싶었다.
준형 씨는 덩치가 크고 살집이 제법 붙은 사람이었다.
말을 안 하고 있으면 조금 무서워 뵈는 인상이었다.
하지만 이 친구도 입을 열자 장혁우만큼이나 유머러스했고, 심성이 착하다는 게 바로 느껴졌다.
기혜 씨는 제법 예쁘게 생겼다.
그리고 해맑았다.
생긴 것처럼 말도 착하고 예쁘게 했다.
농담으로라도 욕은 사용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남에게 실례될 것 같은 얘기 역시 자제했다.
두 눈은 늘 다른 사람들을 관찰했다.
그러다 누군가 대화에 조금 끼지 못한다 싶으면 일부러 그에게 말을 걸거나 그를 주제로 화제를 이끌어 나갔다.
‘셋 다 괜찮은 사람이야.’
난 그들에게 만난 그 자리에서 합격 통보를 주었다.
세 사람은 매우 좋아하며 서로 얼싸안았다.
첫 직원부터 제대로 된 사람들을 뽑게 된 것 같아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
합격 통보가 나간 이후 혁우 씨가 내게 물었다.
“아, 그런데 오들리 씨는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난 지금 선행을 할 때 착용하던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선글라스를 착용한 상태라 아무도 내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나이를 가늠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나이를 있는 사실대로 얘기해도 괜찮을까?’
나는 지금 이 순간부터 이들의 오너다.
그런데 오너가 자신들보다 훨씬 어린,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 못 한 사람이라는 걸 알면 무시하게 되지는 않을지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위치에서 어떤 말과 행동을 하고 어떤 책임감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올해로 딱 스물. 두 달 있으면 졸업해요.”
내 솔직한 고백에 세 사람은 조금 놀란 얼굴이 되었다.
그러나 곧 기혜 씨가 박수를 쳤다.
“와~ 멋있어요. 저, 오들리 님이 그렇게 어린 줄 몰랐어요. 그런데 어쩜 그렇게 리더십이 있으세요? 생각하는 것도 깊으시고.”
“그러게. 대화만 나눴을 땐 나보다 한참 형인 줄 알았다니까요.”
준형 씨가 맞장구 쳤다.
그러자 벙쪄 있던 혁우 씨가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진짜 이러니까 오너를 하는구나 싶네요. 역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은 그릇 자체가 다른 것 같아요. 앞으로 잘 부탁하겠습니다, 오들리 사장님. 일 깔끔하게 해결하면 보너스도 주시는 거죠? 아, 명절에는 나이 같은 거 필요 없이 돈 많은 사장님이 형입니다? 절하면 세뱃돈 주셔야 합니다?”
넉살 좋은 그가 아부하듯 두 손을 싹싹 비벼댔다.
그러자 다른 두 사람도 크게 웃었다.
나도 기분이 좋았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사람을 잘 다룰 수 있게 되었지?’
생각하던 난 그게 나라는 인간 자체의 능력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새로 얻은 직원들을 이렇게 잘 끌어갈 수 있었던 건 길버트의 능력인 ‘굉장한 리더십’ 덕분이었다.
지금까지는 이 능력을 어떻게 써먹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사람들과 대면하는 자리에서는 나도 모르게 표정, 몸짓, 말투, 행동 하나하나가 평소의 나와는 미세하게 다르게 바뀌었다.
한데 그 미세한 차이들만으로도 사람들은 내게 편하게 다가오면서도 함부로 대하지는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회사 이끌어 나가기는 편하겠네.’
자고로 회사의 우두머리는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
그게 사람들을 확 휘어잡는 강함이든, 그들이 내게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부드러움이든 말이다.
아무튼 데일리 히어로에는 세 명의 직원이 생겼다.
앞으로 그들은 가벼운 의뢰들을 도맡아서 해결하게 될 것이다.
남은 건 그들 셋에게 붙여줄 카메라맨이었다.
카메라맨은 사실 할 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
해서 굳이 면접을 보고 뽑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 일은 상덕이에게 적당히 센스 있게 잘 찍는 사람을 뽑으라고 했다.
* * *
직원들과 헤어진 후, 나는 애막골로 향했다.
아버지의 가게를 들르기 위해서다.
이틀 전, 아버지는 드디어 닭발 옆차기 2호점을 오픈했다.
내 예상대로 2호점은 늘 만원사례였다.
항상 본점 앞에서 줄을 서고 기다리던 손님들이 2호점으로 몰려들어 회전율이 빨라졌다.
그만큼 대기 시간이 너무 길다는 손님들의 불만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2호점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웨이팅을 하게 되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닭발 옆차기의 인기는 그만큼 대단했다.
아버지는 요즘엔 본점보다 2호점에 주로 계신다.
본점은 일하는 분들이 완전히 익숙해져서 아버지 없이도 잘 돌아가지만, 2호점은 아직 간섭해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2호점의 주방 아주머니는 본점 주방에서 일하는 상덕이 어머니가 만들어놓은 양념장을 받아다가 쓴다.
양념장은 닭발 옆차기만의 비밀이다.
그래서 양념장을 직접 만들어 갖다 주지, 제조 비법을 가르쳐 주진 않았다.
어찌 되었든 본점에서 만든 양념장을 쓰기 때문에 2호점의 닭발도 맛은 똑같았다.
내가 2호점에 들어서자 아버지가 기분 좋게 웃으며 날 맞이했다.
“장남 왔냐!”
“네, 아버지. 좀 도와드릴까요?”
가게 밖에 기다리는 손님은 없었지만 가게 안은 만석이었다.
종업원들은 전부 바빠 보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됐다, 이놈아! 이제 주말에는 너도 좀 쉬어라.”
“그렇게 말씀해 주시면 고맙죠.”
“이 자식이 이거, 순전히 빈말이었구만.”
“하하, 들켰어요?”
내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버지가 그런 내게 어깨동무를 턱 하더니 말했다.
“이러다가 3호점까지 내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좋죠. 내버려요, 아버지.”
“사실 어제 들은 얘긴데 이 건물 2층 사람들이 나간대. 거기에다가 3호점을 내면 어떨까 싶은데.”
“얼마든지요. 그런데 3호점은 좀 다르게 가면 어때요?”
“응? 다르게 가다니?”
“닭발이 아니라 새로운 아이템으로 도전하는 거죠.”
아버지가 미간을 구겼다.
새로운 아이템이라는 것에 거부감이 생기는 모양이다.
“녀석아, 지금 닭발이 이렇게 잘되는데 굳이 모험을 할 필요가 뭐가 있냐?”
“아버지 생각해 보세요. 두 건물에 닭발 집만 세 개예요. 그게 과연 괜찮을까요?”
“지금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마당에 뭐가 문제냐.”
“기다리는 사람이 있긴 하죠. 그런데 본점만 있을 때만큼은 아니에요. 기다리는 사람들 기다리지 않게 하려고 3호점 내면 분명 거기는 늘 빈자리가 더 많을걸요?”
“흐음.”
아버지가 턱을 어루만지며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네 말도 맞는 것 같구나.”
“닭발은 붙어 있는 두 건물이면 충분해요. 위에는 다른 아이템으로 도전해요, 아버지.”
“무슨 아이템? 생각해 놓은 거라도 있냐?”
“뭐…… 가장 만만하게 돼지고기나 소고기, 아니면 닭고기 같은 걸로 덤빌 수 있겠지만 전 조금 특이하게 양고기로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양고기?”
“네. 드셔본 적 있으세요?”
그 물음에 아버지가 주먹으로 내 정수리를 딱! 때렸다.
“윽! 왜 그러세요?”
“이 녀석이 까마귀 고기를 잡쉈나. 너 어렸을 때 한번 데리고 갔었잖아.”
“……네?”
“그때 네가 냄새 이상하다고 웩웩거리는 바람에 그 맛있는 걸 다 먹지도 못하고 나왔다.”
내가…… 어렸을 때 그랬었다고?
전혀 기억이 없다.
아니, 그 맛있는 걸 왜 못 먹었을까?
“하여튼 양고기는 조금 위험할 것 같구나. 나는 맛있게 먹는다만 특유의 향 때문에 호불호가 많이 갈려.”
“그렇긴 한데 향만 잘 잡으면 충분히 대박 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들아. 차라리 돼지고기집이 어떻겠니? 아니면 닭갈비집이나.”
“아버지. 춘천에 차고 넘치는 게 닭갈비집이에요. 남들 따라서 똑같이 닭갈비집 한다고 얼마나 메리트가 있겠어요? 닭갈비로 대박 나려면 정말 어마어마한 양념을 개발하지 않고서는 안 돼요. 그리고 돼지고기는 전국적으로 넘치잖아요.”
“그런가.”
아버지는 입맛을 쩝 다셨다.
“아무튼 제가 어렸을 때는 양 꼬치를 싫어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좋아해요. 닭발 옆차기처럼 상덕이 어머니랑 연구해서 그럴듯한 양 꼬치를 만들어낼 테니 믿고 한번 가보시죠.”
아버지는 날 지그시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씩 말아 올렸다.
“그래, 뭐 까짓거! 우리 장남이 해보자고 해서 안 되는 게 뭐 있었나? 하자, 해!”
“그렇게 나오셔야죠. 조만간 상덕이 어머니 찾아뵙고 제대로 말씀드릴게요.”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천천히 해.”
“네, 아버지.”
좋아, 이번엔 양 꼬치다.
* * *
난 아버지의 가게에서 나와 애막골 공용 주차장으로 향했다.
거기서 만날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애막골을 찾은 또 하나의 이유다.
만나기로 한 시간은 7시.
지금 시간 6시 57분.
약속 시간 3분 전인데 만나자고 한 이는 이미 거기에 나와 있었다.
“어이, 오래간만이야.”
내가 인사를 건네자 녀석은 어깨를 흠칫거렸다.
그는 내가 사람들의 의뢰를 해결해 줄 때처럼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서 모자를 푹 눌러쓴 모습이었다.
뭔가에 쫓기는 것처럼 연신 주변을 둘러보며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내게 다가온 그가 간절한 음성으로 물었다.
“정말…… 정말 내 문제 해결해 주실 수 있어요?”
말투까지 공손하다.
“그럼, 해결해 줄 수 있지.”
그러자 녀석이 무릎을 팍 꿇었다.
“부탁드립니다! 제발 절 좀 구원해 주세요!”
구원이라는 단어까지 언급하며 애절하게 말하는 이 녀석은 박인비를 괴롭혔던 양아치 전 남자 친구다.
내가 이 녀석을 만난 이유는 전이시켰던 영혼의 힘을 되찾기 위해서다.
나는 이틀 전, 인비에게 이 녀석의 이름과 연락처를 알아냈다.
이름은 김종래.
나이는 스물둘이라 그랬었다.
김종래는 처음엔 내 연락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문자를 보냈다.
네가 어떠한 문제에 처해 있고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있는지 안다고.
그러자 종래는 처음엔 답문에 욕만 찍어서 보냈다.
그에 다시 답 문자를 보냈다.
평생 남자들한테 시달리고 싶으면 그따위로 행동하라고.
그러자마자 김종래의 태도가 몰라보게 공손해졌다.
그는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제발 자신을 구해달라고 애원했다.
나는 김종래에게 직접 만나서 얘기를 하자고 한 뒤, 만날 장소와 시간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지금 만난 것이다.
한데 김종래는 내 얼굴을 기억 못 하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