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104화
게임으로 따지자면 숨겨진 조건을 만족해서 히든 보너스가 주어진 것이다.
―참고로 레이븐 링은 지금 업그레이드하지 않으면 나중엔 다시 못 하니 신중히 선택해 주세요.
여인의 말이 끝나자 내 앞에 새로운 창이 하나 떴다.
창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레이븐 링을 업그레이드하시겠습니까?
업그레이드 비용은 20,000링크입니다.
[Yes/No]
이거는 업그레이드를 안 할 수가 없잖아?
괜히 그냥 넘겼다가 나중에 또 무슨 불이익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다.
레이브란데의 인과율은 정말이지 의뭉스러운 구석이 많은 마법이다.
소울 스토어의 주인인 라헬이 성격 파탄자인 것부터 시작해서 히든 소울을 숨겨놓는 것도 그렇고 뜬금없이 터지는 영혼의 퀘스트도 하나하나가 악질의 내용들이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50개의 영혼을 모두 모아야 한다는 건데, 혹시 히든 소울을 얻는 또 하나의 조건이 레이븐 링을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상황에 처하면 무조건 ‘Yes’를 누를 수밖에 없다.
난 내 의지는 저 먼 우주로 날려 보낸 채, 레이브란데의 농간에 이끌려 ‘Yes’ 버튼을 터치했다.
그러자 창에 뜬 글자가 지워지고 새로운 글이 떠올랐다.
축하드립니다.
레이븐 링이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변경된 레이븐 링의 상태는 마인드 탭에서 확인해보십시오.
이번에도 시키는 대로 해야지 뭐.
“마인드 탭.”
난 마인드 탭을 열었다.
“솔직히 업그레이드했다고 해서 별로 기대는 안 된다만…….”
레이븐 링의 능력은 내가 가지고 있는 영혼의 힘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능력을 업그레이드한다고 뭐 크게 달라질 게 있을까?
‘내 이만 링크.’
갑자기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레이븐 링을 업그레이드했지만 히든 소울을 얻을 수는 없었다.
‘확 타임 리와인드 능력으로 돌아가서 ‘No’를 눌러 버려?’
그런 생각을 했지만 이미 3초는 훨씬 지나 버렸다.
난 아티팩트 소켓을 터치했다.
팅.
아티팩트 소켓 : 4/4
착용 중인 아티팩트
―레이븐 링
―비욘드 텅
―인피니트 포션
―무한의 가방
보유 중인 아티팩트.
―신레이븐 링: 레이브란데가 만든 반지. 반지를 착용한 자는 자신이 사들인 영혼의 능력을 타인에게 전이할 수 있으며 원하는 경우 다시 가져올 수 있다. 더불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영혼의 능력 중 하나를 침묵시킬 수 있다. 영구적 침묵은 아니므로 언제든 침묵의 해제가 가능하다.
―비욘드 텅: 레이브란데가 만든 목걸이. 링크로 사들인 영혼의 능력을 십수 배 이상 강화시킬 수 있다. 단, 강화 유지 시간은 30분이며, 하루에 한 가지 능력밖에 강화할 수 없다. 강화시킨 능력의 유지 시간이 끝나면 그날 하루는 그 능력 자체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인피니트 포션 : 레이브란데가 절명의 미궁에서 발견한 고대의 아티팩트다. 인피니트 포션은 자체적으로 힐링 포션을 만들어낸다. 힐링 포션이 생성되는 기간은 한 달이다. 힐링 포션이 효력을 발휘하려면 반드시 병에 가득 채운 다음 그것을 전부 마셔야 한다. 만약 힐링 포션이 병에 가득 채워지지 않았는데 마시거나, 가득 채워졌다 하더라도 전부 마시지 않는 경우,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인피니트 포션의 효과 범위는 신체의 일부가 완전히 잘려나가지 않은 한 모든 상처를 치료할 수 있다. 단, 상처가 난 지 2시간이 지나지 않아야 한다.
―무한의 가방: 천으로 만든 크로스백 형태의 가방. 레이브란데가 신묘의 화원에서 발견한 아티팩트다. 가방의 입구보다 작은 물건은 무한정으로 집어넣을 수 있다.
어? 아티팩트의 이름이 레이븐 링에서 신레이븐 링으로 변했다.
그리고 아티팩트에 대한 설명도 바뀌어 있었다.
전에는 반지를 착용한 자가 영혼의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 전이시킬 수 있다고만 적혀 있었다.
한데 지금은 다시 가져올 수도 있다고 한다.
게다가 내가 가진 능력 중 하나를 침묵시킬 수도 있단다.
“그러고 보니…… 내가 사들인 영혼 중 두 개를 다른 사람에게 줬었지.”
하나는 엄마에게.
다른 하나는 박인비를 괴롭히던 양아치에게.
“우와아…… 생각해 보니까 이거 업그레이드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잖아?”
카시아스는 내가 모든 영혼을 다 모아야 한다고 했다.
전부 모을 수 있는 영혼의 수는 오십.
그런데 그중 두 개를 남에게 줬으니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결국 난 마흔여덟 개의 영혼만을 가지게 된다.
만약 레이븐 링을 업그레이드 안 했다면 다른 사람에게 준 두 개의 영혼을 되찾지 못했을 테고, 레이브란데의 인과율은 실패로 끝을 맺어 버린다.
“하아…… 진짜 방심할 수가 없게 만든다니까.”
아무튼 이제 신레이븐 링의 힘으로 엄마에게 주었던 능력을 다시 가져와야 한다.
엄마는 병이 완전히 나아서 건강해졌다.
더 이상 라모나의 자가 치유력이 없어도 괜찮다.
문제는 양아치에게 줬던 아르마의 능력이다.
‘아르마의 능력은 남성을 유혹하는 것이었지.’
딱히 그 능력이 필요 없을 것 같아서 고통받으라고 줘 버린 능력인데 그걸 다시 찾아야 할 상황이다.
한데 그놈을 어디서 찾는다?
놈과 나 사이의 연결 고리라고는 인비밖에 없다.
그렇다고 인비에게 녀석한테 연락을 해보라 하기는 뭐하다.
따로 내가 놈의 연락처를 받아내서 찾아가든가 해야겠다.
그런데 갑자기 드는 의문 하나.
“카시아스는 내가 다른 사람한테 능력을 줄 때 왜 말리지 않았던 거지?”
누구보다 영혼을 다 모으길 바라는 인간이 카시아스 아니었나?
[내가 강요할 부분이 아니었으니까.]
갑자기 머릿속에서 울려 퍼진 카시아스의 의지에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뭐야? 카시아스?]
나도 의지를 보냈다.
[창문이다.]
창문을 바라보니 카시아스가 앞발로 창틀에 매달려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난 창문을 열었고, 카시아스는 방 안으로 들어왔다.
지금은 낮이고 엄마가 집에 있어서 카시아스와 말로 대화를 주고받을 수는 없었다.
[근래는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이럴 때는 또 귀신같이 나타난다?]
[내가 타이밍 하나는 죽이니까.]
[아무튼 간에 말야…… 왜 그런 거야?]
[말했잖아. 내가 강요할 부분이 아니었다고.]
[아니지. 네 입장에서는 오히려 더 참견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말렸으면? 넌 어머니한테 라모나의 능력을 전이하지 않았을 거냐?]
[그건…….]
난 말끝을 흐렸다.
어머니가 죽어가는데 카시아스가 아무리 말렸다고 한들, 나는 분명 능력을 전이했을 것이다.
그래도 카시아스의 말을 완전히 용납하긴 힘들었다.
[그래. 엄마는 나한테 소중해. 그래서 영혼의 힘을 전이했어. 그런데 너는? 너 역시도 영혼을 모두 모으는 건 중요했을 거 아냐. 그것 때문에 차원 이동까지 해가며 나한테 레이브란데의 인과율을 시전한 거잖아.]
[그렇지.]
[나한테 엄마가 중요한 것처럼 네 목적도 너한테는 중요했을 텐데…….]
카시아스는 잠시 창밖을 주시하다가 의지를 전했다.
[사실 나도 레이븐 링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는 건 몰랐다. 다만 전이했던 영혼을 다시 되찾아 올 수 있는 방법이 무언가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지.]
[단순히 그런 짐작만으로 날 제지하지 않았다고?]
[아니. 만약 네가 영혼을 다 모으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내가 감내해야 될 운명이니까.]
[운명? 네가? 차원을 넘어서 온 카시아스가? 고작 운명론 같은 걸 들먹인단 말야, 지금?]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카시아스를 알고 지내온 이후, 이토록 연약해 보이는 말은 처음이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어. 하지만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건 그만한 용기가 필요한 거야. 어떠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수긍하고 감내할 그릇이 되지 않는다면 나 같은 말은 못 해.]
그러니까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포기한다는 게 아니라 그것 또한 내 것이라 받아들이고 감싸 안을 거라는 말이지?
그래도…… 완전히 받아들이긴 어려운 사상이다.
특히나 빵 셔틀의 인생을 살던 루저의 입장에서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겐 더더욱 그렇다.
카시아스는 창밖에 두었던 시선을 내게 돌렸다.
그녀의 눈은 깊고 맑았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지구에 왔다. 그리고 너를 만나 레이브란데의 인과율로 계약을 맺었지. 딱 거기까지가 내 몫이었다. 나는 할 만큼 한 거야. 널 만나서 계약을 하기 전까지는 내 계획에 오로지 나의 의지만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너의 의지도 함께하게 되었어.]
[…… 그래 조금은 알겠어. 무슨 말인지.]
[그럼에도 넌 지금 잘하고 있잖아. 그럼 된 거라고 생각해.]
어……?
방금 카시아스가 웃었던 것 같은데.
너무 찰나의 순간이라 헛것을 본 건가 싶었다.
그건 카시아스에게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따뜻한 미소였다.
[카시아스 너 방금…….]
난 그녀에게 물어보려 했다.
하지만 카시아스는 한 줄기 바람처럼 사라졌다.
되찾은 영혼
방학도 다 끝나가는 시점.
데일리 히어로 홈페이지의 방문자는 날로 늘어갔고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는 60만을 돌파했다.
지금까지 내가 해결한 의뢰는 총 37개.
상덕이의 편집 기술이 상당히 좋아서 모든 동영상이 보는 재미가 있었다.
재미라는 건 단순히 웃기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다.
감동적이든, 코믹하든, 무섭든, 아무튼 사람의 감정을 제대로 건드릴 수 있다면 그게 재미가 되는 것이다.
물론 누군가의 고민을 해결해 주는 것이니 우리의 영상은 대부분 감동 코드가 존재했다.
오늘은 상덕이와 함께 직원을 뽑기로 한 날이다.
상덕이가 홈페이지에 올린 공고문을 보고 제법 많은 이들이 메일을 보내왔다.
난 그 메일들을 모두 확인한 후 전화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중에서 직접 면접을 봐도 되겠다 싶은 사람 셋을 추려냈다.
그들과 함께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셋 다 집은 서울이었다.
한 명은 신림동, 한 명은 명동, 한 명은 강변에 거주하고 있었다.
난 그들에게 직접 춘천으로 올라오라 했다.
내가 서울로 갈 수도 있는 일이다.
사실 그게 더 효율적이다.
춘천으로 세 사람이 오는 것보다 나와 상덕이 둘이 서울로 가는 게 낫지 않겠는가.
하지만 일부러 그들을 춘천까지 불렀다.
앞으로 그들은 수많은 의뢰를 해결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으로 다녀야 한다.
그런데 고작 서울에서 춘천 오는 걸 귀찮아한다면 이미 자격 박탈이다.
아울러 시간 약속도 잘 맞춰야 한다.
우리 일은 백 퍼센트 서비스업이다.
고객을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그들과 춘천으로 부른 시점에서 이미 1차 테스트가 시작된 것이다.
다행히도 세 사람은 나와 상덕이가 기다리고 있는 카페에 늦지 않게 도착했다.
두 명은 남자, 한 명은 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