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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히어로-102화 (102/153)

데일리 히어로 102화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녀석이 다짜고짜 주먹을 내질렀다.

하지만 너무 느렸다.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려 터진 주먹에 맞아줄 바보가 아니다, 나는.

날아오는 주먹을 피하고서 놈의 턱을 잡았다.

맘 같아서는 몇 대 먹여주고 싶지만 보는 눈이 많았다.

괜히 일이 커지면 데이트는 고사하고 경찰서에서 하루를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볼 수 없는 방법으로 혼을 내줘야겠지.

난 포이즌의 능력을 발휘, 수천 가지의 독 중 급성 식중독 균을 내게 잡힌 두 녀석에게 흘려 보냈다.

그러는 사이 옆에 서 있던 놈이 주먹을 날렸다.

그마저도 피하고서 놈의 머리채를 휘어잡아 눈을 똑바로 보며 살기를 쏘아 보냈다.

이미 영혼의 퀘스트를 여러 번 하며 살기라는 것을 어떻게 다루는지 익숙해진 터였다.

“너…… 진짜 죽여 버린다.”

내 살기에 그대로 노출된 녀석의 동공이 몹시도 흔들렸다.

놈의 눈동자는 공포에 완전히 잠식되어 있었다.

난 계속해서 살기를 쏘아 보냈다.

그러자 놈의 몸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덜컹!

그때 버스가 요철을 넘으며 살짝 흔들렸다.

난 잡고 있던 녀석의 머리채를 놓았고, 그놈은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녀석은 감히 나와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억!”

“으어억.”

마침 급성 식중독에 중독된 두 녀석이 고통스러워했다.

식중독 균이 빠르게 퍼져서 몸을 괴롭히는 것이다.

놈들의 얼굴에 큼직큼직한 두드러기가 마구 올라왔다.

“어…… 야, 야 왜 그래?”

바닥에 쓰러졌던 녀석이 일어나 괴로워하는 친구들을 보며 물었다.

“나…… 이, 이상해. 내, 내리자.”

“나도…… 모, 몸이 가렵고 속이…… 우욱!”

두 녀석은 금방이라도 토할 것처럼 입을 틀어막고 욱욱거렸다.

그러자 놀란 나머지 한 놈이 버스 기사님에게 소리쳤다.

“아저씨! 차 세워주세요!”

기사님은 얼른 차를 세웠고, 세 녀석은 꼬랑지를 감춘 개처럼 도망치듯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가 다시 출발하고 나서 난 자리에 앉았다.

아랑이가 그런 내 손을 잡고서 빙긋 웃었다.

“잘했어, 지웅아.”

“미안. 최대한 참으려고 했는데.”

“아니야. 저런 인간들한테는 본 때를 보여줘야 돼. 그런데…… 그 사람들 갑자기 왜 그런 걸까? 얼굴에 막 두드러기 일어나고 힘들어하던데.”

“글쎄. 뭐, 음식 잘못 먹고 식중독이라도 걸린 모양이지.”

“쌤통이다. 평소에 맘을 못되게 쓰니까 그러는 거야.”

“맞아, 내가 봐도 그런 것 같아.”

아랑이와 나는 둘이 키득거리며 계속 웃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손을 잡고 있는 것도 익숙해졌다.

좋은 날, 갑자기 나타난 양아치들 때문에 하루를 망쳐 버리는 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오히려 그게 도움이 되었다.

* * *

늘 그렇듯이 아랑이의 먹방 투어는 식당 세 곳을 들를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배를 넉넉하게 채운 아랑이는 시간을 확인하더니 내게 물었다.

“우리 이제 뭐할까?”

“음…… 영화 볼까?”

무심코 난 그렇게 말했다.

평소 같았다면 영화를 보자는 제안 자체를 못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 날보다 아랑이가 편했다.

아랑이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안 그래도 나 보고 싶은 거 있었어.”

“그럼 보러 가자.”

“응!”

* * *

아랑이와 나는 영화를 보고 나와서 오락실에 들러 같이 오락을 했다.

그다음엔 노래방을 갔다가 나와서 다시 저녁을 먹었다.

그렇게 놀고 나니 벌써 아홉 시가 다 되어 있었다.

아랑이의 집은 외진 곳에 있어서 버스가 거의 다니질 않는다.

그래서 아랑이는 늘 택시를 타고 집에 들어간다.

난 아랑이의 택시를 잡아주기 위해 도로변으로 나왔다.

둘이서 택시를 기다리며 대화를 나눴다.

“오늘 즐거웠어, 지웅아.”

“나도 즐거웠어.”

“돈 너무 많이 쓴 거 아니야?”

“점심 저녁은 네가 계산했잖아? 나는 영화랑 노래방 간 것만 냈는데, 뭐.”

“그래도~ 내가 먼저 만나자고 한 거니까.”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돼.”

옛날 같았다면 천 원짜리 한 장에도 바들바들 떨었겠지만, 지금은 충분히 돈을 벌고 있으니까.

그건 그렇고 아무리 봐도 아랑이는 천사인 것 같다.

세상에 남자 지갑 형편까지 신경 써주는 여자가 얼마나 있을까?

그때 택시 한 대가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손을 들어 택시를 잡았다.

아랑이가 뒷좌석에 타서 창문을 내렸다.

“그럼 갈게.”

“그래, 잘 가 아랑아. 그리고…….”

“그리고?”

“조만간 또 둘이 만날래?”

사실 이 얘기를 한참 전부터 하고 싶었다.

그런데 도통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난 말을 해놓고 아랑이의 반응을 살폈다.

다행스럽게도 아랑이는 밝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러고 싶어.”

“연락할게!”

“알았어. 나도 도착해서 연락할게.”

아랑이는 손을 흔들었고 택시는 출발했다.

나는 아랑이를 태운 택시가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나를 죽여주세요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보낼 예정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크리스마스에도 가게 문을 열었다.

누나는 남자를 만나러 나갔다.

결국 나는 가게에 나가 아버지의 일을 도와드렸다.

가게가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새벽 다섯 시.

한데 그때까지도 엄마는 주무시지 않고 계셨다.

남자를 만나고 돌아온 누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랑 아버지를 기다린 것이다.

네 가족은 아침이 밝아 오는 시간에 함께 모여 조촐하게 술자리를 벌였다.

그렇게 크리스마스가 지나가고 다음 날 학교는 겨울방학에 들어갔다.

그동안 난 일부러 데일리 히어로 홈페이지에도 접속하지 않았고 마인드 탭을 열지도 않았다.

그냥 아무 생각도 없이 쉬고 싶었기 때문이다.

방학을 하고 나서 이틀이 지나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난 푹 쉬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휴식을 취했으니 이제 다시 활동을 할 때다.

“마인드 탭.”

이름 : 유지웅

소속 : 지구, 대한민국

성별 : 남

나이 : 19

영력 : 21/21

영매 : 18

아티팩트 소켓 : 4/4

보유 링크 : 2,542

그동안 동영상으로 조금씩 쌓인 링크가 벌써 2,500이 넘어 있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더니.

“그러면…… 능력 하나 정도는 살 수 있으려나?”

일단은 접속해 보자.

“소울 커넥트.”

* * *

“제발 부탁이니까 링크 좀 많이 가지고 오세요.”

라헬은 대면하자마자 면박부터 줬다.

“그거야 내 마음이지. 살 수 있는 영혼이나 보여줘 봐.”

라헬이 매우 못마땅한 얼굴로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러자 두 개의 영혼이 나타났다.

“링크도 얼마 없는 뜨내기손님한테 설명해 주기 엄청나게 귀찮지만 일은 일이니까 해야겠죠.”

진심으로 한 대 쥐어박고 싶다.

라헬은 오른쪽 영혼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영혼의 이름을 잘루스. 1,500링크고 영력은 20이 필요해요. 잘루스의 능력은 투시죠.”

“투시? 그거…… 엄청 좋은 능력이잖아?”

투시라고 하면 남자들의 로망이 아니던가.

남자라면 어렸을 때 누구나 한 번쯤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투시하는 능력을 얻어 여자의 옷 속을 투시해 보고 싶다고.

내 그런 생각을 라헬이 눈치챘는지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방금 야한 생각 하셨죠?”

“아, 안 했어!”

“어? 말 더듬네?”

“아니라니까!”

그래, 사실 하긴 했다.

그런데 다 커서 투시 능력으로 여자 옷 속이나 훔쳐보는 그런 치사한 짓거리를 할 맘은 추호도 없다.

그냥 어린 시절의 로망이었던 능력을 얻게 된다고 하니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뿐이다.

“다른 영혼에 대해서나 마저 설명해.”

라헬이 왼쪽 영혼을 가리켰다.

“영혼의 이름은 샹체. 능력은 타임 리와인드입니다. 필요한 링크와 영력은 잘루스와 같아요.”

“타임 리와인드?”

“한마디로 시간을 되감을 수 있다는 얘기죠. 능력을 발휘하면 3초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답니다.”

이거 대박이다!

비록 3초긴 하지만 어쨌든 타임 리와인드는 과거 회귀의 능력이다.

3초가 우스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3초 때문에 인생이 갈리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다.

만약 지금 내가 길을 가다가 코앞에서 차에 치이는 아이를 봤다고 치자.

시간을 3초 전으로 되돌리면 내 능력으로 얼마든지 아이를 살릴 수 있다.

한마디로 이 3초의 요점은 정보를 미리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런 정보가 없을 땐 내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육신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갑자기 달려든 차에 치인 아이를 구할 수가 없다.

그러나 정보가 있으면 미리 대처해서 살릴 수가 있다.

이건 가히 미래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샹체의 능력을 사겠어.”

“……네?”

“왜? 뭐 잘못됐어?”

“아직 영혼들에 대한 열전도 얘기 안 했는걸요.”

“아, 할 거야? 그럼 해.”

라헬 저놈은 기분 좋을 땐 영혼들의 열전을 얘기해 주지만, 기분이 별로일 땐 대충 설명하고 넘어간다.

오늘도 기분이 별로인지라 열전 따위 그냥 넘어가는 줄 알았…….

“안 할 건데요.”

“……한 대만 때리자.”

“1,500링크 잘 받았습니다. 이제 꺼지…… 아니, 가세요.”

방금 꺼지라고 말하려 그랬지!

난 라헬에게 따지고 싶었지만, 그럴 새도 없이 소울 스토어와의 접속이 끝났다.

* * *

이제 남은 건 1,000링크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도 간헐적으로 계속해서 링크가 쌓이고 있다.

“어디~ 의뢰가 얼마나 늘었나.”

데일리 히어로 사이트에 접속해 의뢰 게시판을 들어갔다.

며칠 안 보는 새 새로운 의뢰는 서른 건이 넘게 쌓였다.

하나하나 읽어보면서 내가 들어줄 수 있는 의뢰들을 솎아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새 의뢰들 중 특이한 제목의 의뢰가 있었다.

‘나를 죽여주세요.’

죽여달라고?

왜 멀쩡한 사람을 살인자로 만들려 하는 거야?

의아함을 품은 채 제목을 클릭했다.

그러자 장문의 글이 모니터에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오들리 님.]

오들리는 내가 민하늬를 만나고부터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닉네임이었다.

그 전에는 그냥 데일리 히어로라는 닉네임을 사용했었다.

[저는 백설우라고 합니다.]

백설우? 가만…… 백설우라는 이름이 낯설지가 않은데.

[저는 로열 그룹의 사장님인 백 천 자, 호 자 쓰시는 아버지의 장남입니다.]

기억났다!

얼마 전, 길거리에서 만났던 자폐아 소년!

난 백설우가 차에 치일 뻔한 것을 구해줬었다.

자폐증에 걸려 말도 안 되는 힘을 냈던 소년이었다.

[저는 열여섯 살입니다. 저는 자폐증이 있습니다.]

역시, 그 녀석이 맞았다.

자폐증이 있어서 그런지 글이 많이 투박하고 딱딱했다.

뭔가 꾸밈이 없고 있는 사실 그대로만 전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저는 죽고 싶습니다.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습니다. 엄마는 날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팔 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날 싫어합니다. 얼굴 보는 것도 싫어합니다. 경호원 아저씨도 날 싫어합니다. 내가 죽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날 죽이진 않습니다. 내가 사고로 죽기를 원합니다. 저는 가끔씩 발작을 합니다. 그러면 눈앞이 까매집니다. 마구 달립니다. 그걸 경호원 아저씨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갈 때 일부러 제가 탄 차 문을 잠그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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