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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히어로-101화 (101/153)

데일리 히어로 101화

끝까지 미운 말만 하고서 그녀는 창을 넘어 사라졌다.

스산한 바람이 불어와 창을 얼른 닫았다.

‘참 모르겠단 말이야.’

난 여전히 카시아스에게 궁금한 것투성이다.

왜 날 선택한 건지.

레이브란데의 인과율을 내게 시전함으로써 그녀가 얻는 게 무엇인지.

50개의 영혼을 모두 얻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그녀는 내게 알려주지 않는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카시아스는 여전히 내게 의문투성이다.

크리스마스이브

드디어 고대하던 크리스마스이브 날이다.

새벽에 잠이 깨버린 터라 더 눈을 붙이지 않았다.

컴퓨터를 켜서 여기저기 인터넷 사이트들을 돌아다녔다.

시간은 금방 흘렀다.

해가 떠오르며 어둠을 밀어낼 즈음 부엌에서 아침을 차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안 있어 맛있는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지웅아~ 지나야~ 일어났니?”

“네~ 일어났어요.”

대답을 하며 거실로 나갔다.

누나도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왔다.

아버지는 새벽에 들어오시기 때문에 아침을 드시지 않는다.

점심 때까지는 푹 주무셔야 한다.

내가 먼저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왔다.

이어, 누나가 들어갔다.

그사이 상이 차려졌다.

엄마와 나는 먼저 앉아서 아침을 먹었다.

뒤늦게 누나가 나와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고 상에 앉았다.

“치사하게 둘이서만 먼저 먹기야?”

누나가 툴툴댔다.

“그러게 조금 빨리 일어나서 씻지.”

엄마가 핀잔을 주었다.

“그나저나 오늘 크리스마스이브네. 지나야, 너 남자 친구 없니?”

“없어요.”

“왜 없을까.”

“남자 만날 시간이 어디 있어, 내가.”

누나는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밖에 나가면 누나한테 목매는 남자가 한 트럭이다.

진지하게 사귀는 남자만 없을 뿐이지 가볍게 만나는 남자는 수두룩할 거다.

까톡! 까톡! 까톡! 까톡!

저것 봐라.

벌써부터 누나의 스마트폰이 난리가 났다.

하지만 누나는 관심도 없다는 듯 심드렁했다.

“잘 먹었습니다.”

나는 아침을 먹고 일어나 교복을 입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는데 누나가 그런 내 뒤를 재빨리 따라왔다.

“같이 가! 엄마, 회사 다녀올게요!”

누나랑 나는 나란히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걸어가면서 누나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야.”

“내게는 유지웅이라는 이름이 있으니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까부네. 아무튼 너 오늘 뭐하냐?”

“오늘? 왜?”

“크리스마스이브잖아. 여자 안 만나?”

“…….”

난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누나가 눈을 가늘게 뜨고서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호오~? 요것 봐라! 너 만나는 여자 있지?”

“그게 왜 궁금해?”

“19년 인생 찌질하게 살던 내 동생한테 드디어 여자가 생겼다는데 놀랍잖아!”

“나 여자 생겼다고 말한 적 없는데.”

“침묵은 무언의 긍정이라는 거 몰라? 그래서, 어떤 여잔데? 예뻐?”

“몰라도 돼.”

“우와~ 얘 좀 봐. 진짜로 만나는 여자 있나 보네?”

아이고, 귀찮아.

“누나, 아침부터 피곤해지기 싫으니까 조용히 가자.”

“언제 한번 누나랑 셋이 만나자.”

“왜?”

“여자는 여자가 봐야 제대로 알 수 있는 법이거든. 언제 볼까? 이번 주 주말 어때?”

뭐가 이렇게 급해?

무엇보다 난 아랑이와 누나를 만나게 해줄 생각이 전혀 없다.

“그 얘긴 다음에 해.”

“왜~ 지금 해.”

“아, 버스 왔다!”

나이스 타이밍.

난감하던 차에 버스가 도착했고 난 얼른 올라탔다.

누나는 나와 가는 방향이 달라서 다른 버스를 타야 한다.

빈 좌석에 앉아 창밖을 보니 누나가 뾰로통한 얼굴로 날 쏘아보고 있었다.

난 그런 누나에게 씩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누나는 내게 가운데 손가락을 올려 보였다.

하여튼 성질하고는.

* * *

교실에 들어서자 아랑이가 날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지웅아, 일찍 왔네?”

“응, 그러는 너야말로 엄청 빨리 왔잖아?”

“그냥…… 어제 잠을 좀 설쳐서.”

“잠을? 왜? 무슨 일 있는 거야?”

“뭔가 초등학교 때 소풍 가기 전날처럼 조금 설레는 바람에 그랬어.”

“아…….”

지금 그 말은 오늘 나랑 데이트 약속이 잡혀서 설레었다는 거 맞지?

아랑이가 저렇게 얘기하니 갑자기 나도 가슴이 콩닥거리며 뛴다.

그 이후로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오전 내내 멍하니 앉아 있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하교 시간이었다.

“지웅아, 집에 가자.”

상덕이가 책가방을 메고 일어서며 말했다.

어차피 이제 공부할 것도 없는데 책가방은 왜 꼬박꼬박 들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오늘 약속 있다.”

“무슨 약속?”

그때 아랑이가 다가왔다.

“가자, 지웅아.”

“응, 그래.”

상덕이가 묘한 표정으로 나와 아랑이를 번갈아 봤다.

“둘이 약속 있는 거야?”

“응.”

“둘만? 다른 사람 없이, 단둘이서?”

“그래.”

상덕이는 몹시 억울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내 멱을 틀어쥐었다.

“너만큼은 나와 같이 평생 싱글일 줄 알았는데……! 이런 식으로 떠나가는 거냐!”

“……뭐라는 거야.”

당황한 아랑이가 상덕이에게 얼른 말했다.

“상덕아, 그럼 너도 같이…….”

“에잇!”

상덕이는 아랑이의 말을 듣지도 않고 뛰쳐나가 버렸다.

“하아.”

절로 한숨이 나왔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놈이 대체 왜 저 모양인지.

가끔씩 저 녀석이 얼빠진 짓을 할 때마다 머리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닌지 진심으로 걱정된다.

아랑이도 놀라서 눈만 꿈뻑꿈뻑거렸다.

“신경 쓰지 말고, 가자 아랑아.”

“그래도…… 상덕이 상처받은 것 같던데.”

“저놈이 저런 행동 하는 거 한두 번이 아니야. 걱정 안 해도 돼.”

“가장 친한 친구잖아?”

“그러니까 잘 알지. 저러다가 하루 지나면 알아서 풀려.”

“그럴까?”

“그래, 얼른 가자.”

난 아랑이가 혹여라도 상덕이를 불러 셋이 밥 먹자고 할까 봐 얼른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아랑이는 흠칫! 하더니 이내 날 따라 걸었다.

* * *

교문을 나와 버스 정류장까지 계속 걸었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고 나니 아랑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랑아, 왜 그래? 안색이 안 좋은데. 상덕이 신경 쓰여서?”

아랑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럼? 어디 아파?”

“그게 아니라…… 소, 손.”

“응?”

난 그제야 알았다.

여태까지 아랑이의 손을 잡고 걸었다는 것을.

“윽.”

깜짝 놀라서 얼른 손을 놓았다.

아직 정식으로 사귀는 사이 같은 것도 아닌데 이 무슨 실수를!

상덕이 때문에 상황이 꼬일 것 같아 얼른 아랑이를 끌고 나온다는 게 나도 모르게 손을 계속 잡고 있었던 모양이다.

“미, 미안.”

내 말에 아랑이는 재차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은데.”

“응?”

아랑이가 다시 내 손을 슥 잡았다.

“괜찮아, 난. 손잡아도 좋아.”

쿵쾅쿵쾅!

속에서 북이라도 때리는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머릿속에서 갖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여자 쪽에서 손을 잡아주었을 때, 그다음은 어째야 하는지 나는 아는 게 없었다.

19년 동안 연애 고자로 살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때 마침 버스 한 대가 섰다.

아랑이는 버스를 보더니 말했다.

“아, 저거 타야 돼. 내가 데려가려는 맛집, 명동에 있거든.”

“그래? 그럼 타자.”

“응.”

우리는 손을 잡고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비어 있는 뒷좌석으로 가 나란히 앉았다.

그때까지도 아랑이는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정말이지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그 좋은 기분에 재를 끼얹는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다다음 정류장에서 좀 날티 나 보이는 사내놈들 셋이 버스에 올랐는데 우리 쪽으로 걸어오면서 계속 나와 아랑이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시비 걸지 말아라.’

어지간하면 이 소중한 시간을 망치기 싫었다.

그러나 그놈들은 내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세 녀석 중 둘은 우리 뒷좌석에 앉았고 한 놈은 그냥 서서 손잡이를 잡았다.

그런데 뒤에 앉은 사내놈 둘이 마치 우리더러 들으라는 듯이 이런 말을 했다.

“그림 좋다. 고딩들이 손잡고 다니고.”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여자는 졸라 예쁘네.”

속에서 화가 울컥하고 치밀었지만 일단 참았다.

아랑이도 애써 놈들을 무시한 채 내 손을 더 꽉 잡았다.

그래, 참자 참아.

좋은 날이니까 참아야 한다.

“여자가 예쁘면 남자가 그만큼 뭘 좀 알아야 하는데, 아직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고삐리가 뭘 알겠냐?”

“모르지, 몰라.”

“우리가 알려줄 수 있는데.”

“꼬마 아가씨, 비리비리한 남친은 그냥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라 그러고 오빠들이랑 놀래?”

이 자식들이 이제는 노골적으로 시비를 걸어왔다.

아랑이가 그들을 돌아보고서는 담담하게 말했다.

“죄송한데요, 저 당신들이랑 놀 생각 없어요. 오늘은 남자 친구랑 기분 좋게 보내고 싶거든요. 그러니까 그만해 주셨으면 해요.”

“푸하하하! 이야~ 완전 세게 나오는데?”

“졸라 사랑하나 봐? 야, 여자 친구 교육 잘 시켰다?”

이유가 뭘까?

왜 이런 놈들은 자신들에게 아무 짓도 안 한 사람들한테 시비를 거는 걸까.

그것도 이런 백주대낮에 멀쩡한 정신으로.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오, 어제 나이트에서 뺑이만 치다가 골뱅이 하나 얻어 걸리지도 않아서 기분 뭣 같은데 진짜 짜증 나네.”

“꼬마 아가씨. 오빠들 나쁜 사람 아니야. 그냥 같이 놀자. 괜히 네 남자 친구 험한 꼴 당하면 가슴 아프잖아. 응?”

그래.

이 녀석들에게 이유 같은 건 없다.

그냥 모든 게 다 비뚤게 보이는 거다.

내일 같은 건 없고 오늘만 사는 놈들이다.

세상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가슴 가득 차 있는데, 해소할 방법이 없으니 되는 대로 풀고 다는 거겠지.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나도 더는 잠자코 있기 힘들다.

“야, 여자 친구 좀 빌려주라?”

툭.

한 놈이 그리 말하며 내 머리를 탁 쳤다.

“이 새끼 쫄았냐? 아무 말도 못 하네.”

“하하하하하!”

세 녀석이 크게 웃었다.

결국 난 아랑이의 손을 놓고 벌떡 일어서서 놈들을 돌아보았다.

“어? 왜? 화났냐? 한 대 치고 싶어졌어? 그럼 쳐 봐.”

이쯤 되니 아랑이도 날 말리지 않았다.

아랑이는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이랑이를 구하기 위해 다운 타운에 가서 데스 파이트까지 치르고 왔던 나다.

이런 녀석들 트럭으로 와도 날 어쩌진 못한다.

난 세 놈들의 눈을 하나하나 마주치며 경고했다.

“한 번만 더 잡소리 지껄이면 가만 안 둔다.”

“오호호~ 세게 나오는데?”

“뭐래, 미친놈이.”

“개새끼가, 쳐 돌았나!”

한 놈이 내 멱을 틀어쥐려 했다.

난 그 손목을 낚아채 힘을 꽉 주었다.

“악!”

내게 손목을 잡힌 놈이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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